메트로 4호선 종점인 ‘끌리낭꾸르’ 에 선다는 벼룩시장을 찾아 갔다. 역에 도착했는데 너무 배가 고프다. 미술관에서는 배고픈 것도 몰랐는데 어느새 점심 시간을 훌쩍 지나버린 것이다. 이젠 바게트 샌드위치에 지친 우리는 중국 식당을 찾아 어느 마을로 들어섰다. 처음 와 보는 곳인데도 익숙한 분위기. 데쟈부라고 하던가. 조용한 마을을 한참 걷다 보니 셀프식 중국 식당이 나왔다. 우리는 먹고 싶은 것을 조금씩 접시에 덜어와 무게를 재고 돈을 낸 후 먹기 시작했다. 조금씩 덜어온 접시가 점점 늘어나고 우리의 배도 점점 불러오고 더불어 즐거워지고. 정말 맛있게 먹고 다시 벼룩시장으로.
벼룩 시장에 도착해서 구경을 하려는 찰나 손이 너무나 가벼웠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산 그 많은 화보집과 그림을 담은 쇼핑백은 ? 식당에 놓고 온 것이다. 헐레벌떡 뛰어가는데 길 건너편에서 누가 반갑게 손을 흔든다. 누구더라 ? 아, 식당 주인 아줌마. 손짓으로 네모를 그리며 어딘가를 가리키며 뭐라하는데 쇼핑백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자기집에 있다는 소리인가 ? 열심히 식당에 뛰어가 보나 아들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를 보더니 반가워하며 쇼핑백을 내 주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고마울수가. ‘탱큐’, ‘멜시’, ‘셰셰’ 등등 할 수 있는 외국어를 모두 동원하여 감사의 말을 전했다.
다시 벼룩 시장. 땡볕에 뛰어갔다 와서인지 무지 목이 마르다. 레몬이 들어있는 볼빅 한 병 사서 마시고 쇼핑 시작. 별 잡다한 물건에서부터 눈길이 가는 골동품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물건보다는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재미있다. 집시같기도 하고 히피같기도 하고. 전위 예술가 같기도 한 사람들이 영어로 불어로 이탈리아어로 장사를 한다. 우릴보더니 일본어로 뭐라한다. 아시아에는 일본 밖에 없는 줄 아는지. 당당히(?) 한국인임을 밝히고 물건을 구경했다. 우린 아주 요상한 티셔츠를 하나씩 샀다. 감히 입고 다닐 수는 없지만 정말 재미있는 티셔츠다. 성숙이는 여자들 가슴 모양을 쭉 나열해서 그려 놓은 것을 나는 귀여운 코끼리가 다양한 사랑의 체위를 보여주는 티셔츠를. 영원히 입고 다니지는 못할 티셔츠다. 하.하.하.
쇼핑을 끝내고 이제는 몽마르뜨 행.
오늘은 무지하게 덥다. 며칠 전 추워서 벌벌 떨던 기억은 환상이었나 ? 종잡을 수 없는 날씨이다.
하얀 성당 밑에 오밀조밀 바글바글 모여 앉은 사람들. 우리도 그 속에 끼여 잠시 휴식 중이다.
몽마르뜨. 뭔가 낭만적인 것이 있을 것만 같은 이름이다. 갑자기 에디뜨 삐아프의 노래가 떠오른다. 몽마르뜨라는 이름과 너무 어울리는 여가수아닌가. ‘빠리의 지붕 밑’. 아, 여기에 왔으니 파리가 아닌 ‘빠리’로 써야하는 것을.
계단에 앉아 수다를 떨던 우리는 수다를 멈추었다. 한 쌍의 남녀가 잔디에서 영화(?)를 찍고 있었기에. 다행히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기에 민망해하지 않고 태연하게 바라보았다. 우리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 사랑의 힘인가 ? 도무지….
하얀 돔의 성심성당은 무척 인상적이다. 바로 아래 삐갈이 있어서인지 유난히 성스러워 보이는 성당이다.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아주 아름다웠고 빛이 조금씩 새어 나오는 창문도, 초를 밝혀 놓은 제단도 성스럽다. 선물로 드릴 묵주를 사고 밖으로 나왔다.
몽마르뜨에서도 꼬마 기차를 탔다. 아마도 니스에서 타고 싶던 꼬마 기차를 타지 못해서인지 보이기만 하면 성숙이가 아우성을 친다. 꼬마 기차를 타자고.
어쨌든 몽마르뜨에서도 꼬마 기차를 타고 몽마르뜨 주위를 일주했다. 불행히도 안내 방송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기차가 다니는 길 양쪽의 오래된 집에 유명한 화가, 작가 등등의 예술가들이 살았단다. 그래서 그곳을 관광코스로 만들어 안내를 한다나 어쩐다나.
기차의 중간 역은 ‘삐갈’이라고 하는 유흥가다. 여기저기 벗은 여자들의 사진이며 보기 민망한 사진들이 사방에 붙어 있다. 낮이라 한가하단다. 밤에는 불야성에 관광객과 남자들, 호객하는 여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그 가운데 유명한 ‘물랭루즈’가 있다. 빨간 풍차로 멋지게 장싣한 술집. 한장 찍을까 했는데 왠지 주변 분위기가 어색해서….정말이지 의욕없는 여행자 티를 꼭 내고 만다니까.
삐갈을 여기저기 구경하다 고개를 들면 성당의 하얀 돔이 바로 보인다. 성스러운 성당의 아랫마을은 사창가에 가까운 유흥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