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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대한항공 창업자 3세의 '땅콩유턴'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됐을때 글로벌 기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미숙한 대응에 전문가들 조차 놀랐다. 고작 땅콩 한봉지때문에 무릎을 끓리고 비행기에서 내쫓긴 사무장과 승무원만 탓하는 대한항공의 1차 발표이후 여론의 십자포화가 줄을 이었다. 대한항공이 사과성명을 발표할때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회적인 분노로 호미로 막을 일을 서까래로도 못막는 지경에 이르렀다.
머리는 헝클어진채 눈물로 범벅이된 얼굴을 숙이고 검찰청 문을 나서는 조현아씨를 동정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됐을까. 속죄의 눈물이라고 보는 국민들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한해에 홍보예산만 수백억원을 쏟아붓는 대한항공엔 PR전문가도 꽤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겼을까. 진정성있는 사과를 하도록 오너가족에게 직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게 정설이다.
지난달 전격 사퇴한 김윤배 전 청주대 총장을 조현아씨와 연결짓는다면 논리의 비약이라고 꼬집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보면 전혀 다르다고 볼 수도 없다. 무엇보다 작년 8월말 청주대가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되고 곧이어 김 전총장에 대한 사퇴여론이 확산된 이후 청주대 이미지는 추락하고 재학생들이 치유하기 힘들만큼 상처를 입은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김 전 총장은 지난달 성탄절 직전 결국 물러났다. 지난 9월초부터 총동문회와 총학생회, 교직원노조가 연대해 김총장 몰아내기를 시도한지 100일 이상 지난 시점이다. 그 사이 청주대에 어떤일이 있었는지는 평소에 뉴스를 멀리하는 도민들조차 다안다. 대학이 '지성과 학문의 전당' 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혼란의 극치였다. 학생들은 한때 학업거부에 나서고 대학의 핵심간부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와 책상 등 집기류가 내팽게쳐졌다. 김 전총장은 경청호 총동문회장에게 멱살을 잡히기도 했으며 학생들은 총장의 등뒤에서 욕설을 퍼부었다. 김 전총장은 시쳇말로 '개망신'을 당했다. 침묵하는 다수의 동문들이 보기에도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었다. 그는 이런 수모를 겪은뒤에야 총장사퇴를 결심했다. 김 전총장 역시 설립자 3세였다. 그가 사태 초기에 "지난 10년간 총장직에 있으면서 설립자의 후손으로서 청주대를 발전시키기는 커녕 부실대학의 오명을 쓰게 한것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고 과감하게 이선으로 물러났으면 이렇게 오물을 뒤집어쓰고 퇴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변에 옳은말을 할 사람이 없던가 아니면 누군가 했지만 김 전총장이 무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더 안타까운것은 그 사이 청주대 이미지가 바닥으로 추락했다는 점이다. 졸업생들은 취직을 하려고 해도 서류전형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중견기업 CEO들이 청주대 출신을 기피하는 사례도 회자된다. 한강이남 명문사학이라는 말은 공허한 수식어가 되버렸다. 청주대 설립자인 고 청암(淸巖) 김원근과 석정(錫定) 김영근이 지하에서 탄식할 일이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 불과 10살의 나이에 행상을 시작해 역경과 고난을 딛고 축척한 재산을 학교에 투자했다. 김옥길 전 이화여대총장은 회고록에서 석정이 '좁은 단칸방에서 아무런 장식도 없이 검소하게 생활하며' 오로지 꿈나무를 기르는데 정열을 쏟았다고 밝혔다.
열흘전 가장 힘든시기에 바통을 이어받은 황신모 총장에 대해 말들이 많다. 김 전총장의 측근이라는 점에서 '수렴청정'할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심부름꾼'이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하지만 지금 더 중요한것은 청주대가 정상화되는 것이다. 황 총장은 "어차피 교수인생의 말년이다. 더이상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총장직에 연연하겠나. 나 역시 청주대 출신으로서 학교를 제대로 일으켜세우겠다. 소신껏 하지 못한다면 과감히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황총장의 말이 진실인지는 시간이 말해 주겠지만 일단 그를 밀어줘야 한다.
대학사회는 급박하게 변하고 있다. 일본은 778개 대학중 적자를 낸 대학이 30%를 넘는다. 파산이 우려되는 대학이 11%에 달한다. 100개에 육박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대학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은 4년제 231곳중 27%에 이른다. 정부차원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대학은 정원을 감축하고 심하면 퇴출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이젠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이 오지 않는대학이 간판을 유지할 수는 없다.
부실대로 낙인찍힌 청주대도 풍전등화다. 언제까지 학교 구성원간 갈등과 반목만 하고 있을 것인가. 황 총장은 조속한 학교 정상화를 위해 대학발전협의회 구성을 제안했다. 교수회는 거부하고 있지만 무작정 반대가 능사는 아니다. 청주대가 표류할수록 피해를 입는것은 학생과 동문이다.
/jbnews 칼럼^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