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역에서 거성아파트까지.
참, 씨발이다.
재수에 옴이 옮았는가? 별일도 다 당한다.
얼마 전에도 난데 없는 쓰레기 불법투기 체고장이 구청에서 날아오더니 불행은 연거푸 닥치는 법이다.
오후반 교대를 받아서 겨우 첫 탕 운행을 한 판이다.
개봉역을 출발하여 개봉3동 산꼭대기의 거성아파트를 돌아서 다시 개봉역에 도착하여 손님들이 내리게끔 승차대문을 열어 주고는 나도 운전석에서 내려 담배를 물고 맛있게 한 대를 피웠다.
대기시간이 넉넉지 않으니 여유롭지는 못해서 급하게 버스 앞 타이어에 꽁초를 비벼 끄고는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 순간에,
"아, 아저씨 담배꽁초를 투기하셨습니다! 범칙금 발부대상입니다."
어디를 봐도 꼴같이 않게 생긴 늙은이가 황색 완장을 차고는 볼펜을 거머쥔 손에 체크보드를 받쳐서는 턱 밑에 바짝 들어 민다.
이런, 제기랄! 뭔가?
어쨌든 심상치 않은 현상을 맞았다는 직감에 전광석화 같은 변명을 토했다.
"아이고~오, 수고 많니더. 아자씨요, 지가 요 마을뻐쓰 기사이거든요? 지금요, 뻐쓰 출발시간이라~ 하여튼 죄송하이더. 앞으로 조심하임시더."
하면서 얼릉 운전석으로 올랐다.
그러나 뭔지 그냥 무식한 손아귀 같은 게, 낚시 바늘에 물고기 물리듯 도로 지면으로 끌려 내려졌다.
늙은이가 내 허리춤을 단단히 부여잡고는,
"어 허! 대중의 발, 버스기사면 모범을 보이 여셔야지. 어서 신분증 내 놔욧!"
하... 난감했다. 기세로 봐서는 만만치 않다는 느낌이 엄습했다.
"아... 이, 아자씨요... 요, 손님들 좀 보소. 뻐쓰 출발시간 안 지키면 크닐 난다 아이껴. 시말서 막 써야하고, 시청 교통과에 가 가 해명하고 그런다 말이씨더. 미안타 하잖니껴?"
"미안하다고 되는 게 아니고, 나도 구청에 할당 받은 목표가 있어. 그래야 공공근로 일당도 받고 말이지. 내가 아까부터 저 쪽에서 지켜보면서 사진도 찍었는데 함 봐 봐."
이 양반이 기선을 잡았다는 듯이 숫제 반말로 손바닥 반만 한 디카를 주물럭거린다.
"아, 되꼬요 되써!"
더 버티다가는 차창 밖으로 물끄러미 내다보는 손님들에게 조차 우사를 당하겠다 싶어 완장을 버스 뒤편으로 데려가 주민증을 건넸다. 초등학교 머스마들이 넓은 뒷차창에 옹기종기 붙어서는 히죽거린다.
씨팔, 세상 더러워서는.
벌금이 하루 일당과 맞먹는 삼만 원이다.
거성아파트까지는 채 이십 분 정도의 운행거리지만 도무지 뒷통수가 근질거리는 것이 손님들이 죄다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아서 그 시간 내 내 분하고도 치욕스럽기 짝이 없다.
마을버스 2년 경력에 최대의 수치스러운 날로 기억되는 경우이다.
개봉역에서 출발하면 입구에 파리바게트라는 큰 빵가게가 입구에 위치한 개봉동 중앙시장의 한 복판을 통과하여 우회전하면 다세대 주택이 다닥다닥한 좁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중국집과 갈빗집, 한식집 등 온갖 식당이 줄 비하고 떡 방앗간과 때때로 대형 냉동차가 주차하는 우유대리점을 간신히 피해서 요리 조리 개봉슈퍼 앞에 섰다가 좌회전하여 거의 직선으로 주차 차량이 빽빽한 역시, 다세대 주택 골목을 타고 까마득한 산꼭대기를 오르면 산 정상을 깎아서 조성한 연립주택단지인 거성 아파트까지 운행하는 노선이 구로 13번 마을버스이다.
얼른 봐서는 버스노선이 개설 될 조건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거성아파트 주민들이 구청장에게 강력히 민원제기를 해서 노선을 수본운수에게 배정을 했고 운수회사에서는 탐탐치 않았으나 여러모로 거절하기 힘드니 궁여지책으로 노선버스로 사용하는 차량 중에 제일 작은 차종으로 한 대 투입하여 적자를 감수하는 그런 노선이다. 는 게 내가 들은 말이다.
"아저씨, 요거이 가질러 오꺼이요 잉~"
손님이 다 타자 채소가게 아지매가 배추보따리를 휙, 하니 승차 대 위로 던져 놓으니 아줌마 손님은 남의 일 같지 않게 보따리를 세워서 쓰러지지 않게 벽 쪽으로 가지런히 세운다.
"부안상회에서 배추 보냈지라이, 쥬시 갈은 것인디 한 잔 하소."
버스가 거성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자 배추를 받으러 온 아줌마는 음료수를 갈아서 가져 와서 운임을 대신했고 나중에 김치 한 통도 담아주는 경우도 있다.
"하이고, 오는 길에 실어 오는 건데 뭘 이런 걸 다 주시니껴? 남사시럽게."
노선버스가 사사로운 남의 집 심부름까지 한다는 게 웃기는 일이지만 여기니까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이거다! 이거, 13번 맞네."
전철에서 막 내린 몇, 중년의 여인들이 마을버스를 발견하고는 반가워한다.
"아저씨, 이 차 거성아파트 가나요?"
나는 대답 대신 대뜸 묻는다.
"아지매들, 점 보러 가시는 거지요?"
"어머머 어떻게 알았데?"
"척 보면 아니더. 이 시간에 길 물으면 다 점집에 가는 기라요. 그 집까지 모실테이 얼릉 타소."
그러면 할머니들은 당당하고 상대적으로 젊은 아줌마들은 쑥스러워한다.
"어데서 오셨니껴?"
"호 호 호 부천서 왔어요."
"하이고 어제는 안양 수원손님들이 마이 오디만 오늘은 부천, 인천 쪽에서 올라는 갑네."
"아저씨, 진짜로 그렇게 많이 와요?"
"그라이, 뻐스 운전수가 댐박에 알아 보잖니껴? 딱 만원만 받는다면서요? 그라고 무슨 방재를 한다꼬 무신 부적 같은 거 권하지 않고 부담 없다고 그러두만요?"
"어머, 아저씨가 도사네. 우리도 그런 소문에 이까지 찾아 온거예요."
하여간 거성아파트 턱 밑에 자리한 점집은 늦으면 다음날 다시와야 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단 돈 만원만 받아도 그 집이 벌어들이는 복채는 상당하다 할 것이다. 이렇게 문명이 발달된 세상에서도 주술을 믿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기복신앙으로 신도를 끌어들이는 사이비교회의 목사나 사찰에서 중도 그런 점을 이용하는 건 다를바 없다 하겠다.
"요, 요 새시 문 열고 들어 가 이 층으로 올라가며 점 봐 줄 꺼시더. 좋은 말씀 마이 듣고 가소."
점집은 지정 된 정류장도 아니지만 나는 일부러 그 집 앞에 버스를 세우고 갖은 친절을 떠는 건 일종의 그들에게 거는 희롱이었다. 할머니들은 너무 고마워했고 아줌마들은 창피해서 인사도 없이 황급히 내린다. 거성아파트 손님들은 그러는 내 행동에 슬그머니 재미 진 미소를 지은다.
"아저씨, 저 아가씨가 점집에 딸이라요."
퇴근하는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정류장에 내리자 빠른 걸음을 재촉하는 앳된 한 아가씨를 가리켜 거성아파트 단골 아줌마 손님이 귀띔을 한다.
"허~ 그래요? 근데 왜 여기서 내릴꼬?"
"지엄마 점쟁이라고 창피해서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걸어 집에 들어가는 거지요."
"저런, 돈 많이 버는 엄마가 챙피해?"
"그러게..."
종점 거성아파트 손님들은 운전수와 친해져서 이런 사담을 나눌 수 있는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