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지붕이 푸른색을 띤 청와대에 다녀왔다.
지인의 초청으로 우리는 서너 단체와 합류하여 녹지원의 뜰을 실지로 밟아 보았다.
청와대란 말은 윤보선 전 대통령에 의해 사용되었고, 지금은 실제 건물 뿐 아니라 대통령의 국정수행부서 전반을 가리킨다.
그 곳은 경복궁과 인접해 있었으며, 그 뒤로는 동서남북으로 에워싼 4대 주산의 하나인 북악산이 우뚝 서 있다.
병풍처럼 드리워진 산새가 어머니의 품속 같다.
청기와는 독특한 색깔과 뛰어난 내구성으로 도자기를 굽는 비슷한 공정을 거쳐 구워냈기 때문에, 1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고,
색깔도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춘추관
일행은 청와대 동쪽 춘추관에서 키가 크고 호남인 경호원의 안내를 받으며 관내를 관람 하기위해 차례를 기다렸다.
1990년에 완공되었다는 이곳은 국내외 언론사 기자 300여명이 출입 할 수 있다고 한다.
춘추관이라는 이름은 중국 사서오경의 하나인 춘추에서 따온 말로
엄정하고 비판적인 태도로 역사의 기록을 담는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곳이다.
주위의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맞배지붕에 토기와를 올린 전통적인 우아한 멋이 배어난다.
나는 기다림이 지루하여 전열장에 진열되어 있는, 대통령이 각국의 국빈에게서 받은 선물들을 둘러보았다.
정교함과 섬세함이 뛰어난 예술 작품들이다.
한 눈에 각 나라를 상징하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녹지원
영상물을 통하여 대통령내외분의 환영인사가 있은 다음, 일행들은 일정에 의해 녹지원에 들어섰다.
수령이 162년이나 되었다는 17m의 높이 솟은 소나무가 네 개의 지지대를 의지하고 눈길을 끈다.
곳곳에서 관람객들의 감탄사가 들려온다.
떡갈나무, 감나무 등 120여종의 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주변의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뿐만 아니라 사슴, 희귀종 조류, 다람쥐 등이 자유롭게 노닌다는, 북악산 기슭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도심의 환경 보고서 같다.
봄이 되면 어린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어버이의 날, 장애인의 날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며,
지난 1995년 5월 28일에는 인근 주민 약 3,000여명을 초청하여 KBS 열린 음악회가 개최되었다고 한다.
서민들과 문턱을 좀 더 낮추고, 소통의 장이 열였던 모양이다. ‘나라사랑, 국민사랑’이라는 표어가 떠오른다.
녹지원을 지나 본관 앞에 다다랐다.
본관 2층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고, 영부인 집무실은 1층에 있었다. 본관 왼쪽은 세종대왕의 이름을 따서 세종실,
오른쪽 건물은 이순신충무공의 이름을 따서 충무실이라고 불린다.
충무실은 정상회담이나 외국 귀빈들을 위한 공식만찬이 끝난 후에. 개최되는 언론브리핑 장으로 이용 한단다.
실지의 내부는 영상물로만 볼 수 있었고, 곧 발길을 돌려 수궁터로 향했다.
수궁터
수궁터는 구 본관을 철거하고 복원한 곳이다.
삼각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북악산을 거쳐 경복궁 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이 산자락은 일찍이 명당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고종 5년에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과거시험이나 무술대회가 열리기도 한 곳이다.
또한 농사가 국사의 근본임을 일깨우기 위해 왕이 손수 가꾸던 8배미의 논이 있었던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1910년부터 경복궁을 조선총독부의 청사 건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후원에 있던 건물들을 모두 허물고
이곳을 공원으로 조성했으며, 총독관사를 새로 지어 7, 8, 9대 총독이 사용을 했다.
일본인들이 여기에 관사를 지은 것은 조선 왕권의 상징인 경복궁을 가로막아 그 앞에 청사를 짓고,
그 뒤편에는 총독관사를 지음으로써 조선왕실의 기를 누르고 풍수지리학적으로 맥을 끊어,
민족정기를 말살하여 이 나라를 영원히 지배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후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역대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되던 구 청와대 건물은 1993년 11월 철거되었다.
1989년에 집무실과 관사를 분리하면서 구 청와대 본관을 역대 대통령의 기념관 및 박물관으로 보존하자는 일부 의견도 있었으나,
민족정기를 바로잡고 국민의 자긍심을 되살린다는 의미로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철거하게 된 것이다.
철거 뒤 그 자리를 옛 모습대로 복구시킨 후 옛날 경복궁을 지키던 수궁들이 있었다 하여
지금은 수궁터라 부르게 되었다.(자료참조)
표석(천하제일복지) 주변에 구 본관이었던 지붕의 일부인 잔재가 기념으로 놓여있다.
망각을 일깨우기 위한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영빈관
영상매체를 통해서 자주 보았던 외국 국빈을 맞이하는 영빈관은
우리 민속 공연과 만찬 등이 베풀어지는 공식행사장으로 규모가 대단했다.
18개의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웅장한 모습이다.
원석을 사용했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확인함과 동시에 모두들 탄복을 한다.
더 놀라운 것은 바닥에 깔린 카페트가 통자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기인열전에 도전한 장인의 솜씨가 아닐까 싶다.
현직 대통령내외분의 영상물(사진) 옆에서 일행들은 기념사진을 찍느라 발길이 분주하다.
인솔자의 안내를 아랑곳하지 않고 추억의 장을 만들기 위해 열기가 뜨거웠다.
영부인이 제일 좋아한다는 200년이 넘은 금강소나무를 사용하여 지은 상춘재는 전통 한옥이었다.
현재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회의 장소로 이용하고 있으며.
외국 손님에게 한식가옥양식을 소개 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인 것 같았다.
칠궁
대통령실은 위민1관, 2관, 3관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위민(爲民)이란 뜻은 ‘오직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부’라는 의미의 이름이다.
위민1관에는 에너지 절약을 위해 외단열 시스템을 적용하여 건립을 하였고,
에너지 절약을 위해 친환경적인 태양광 발전시설을 외벽에 설치하여
일부전력을 자체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비상시 정전 되었을 때를 감안한 대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와대 서남쪽에 자리잡은 칠궁(七宮)은 조선시대에 왕을 낳은 후궁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후손을 낳아준 궁들만의 집합소인 셈이다.
숙종의 후궁이자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신위를 모신 육상 궁(毓祥宮)을 비롯, 저경궁(儲慶宮·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 대빈궁(大嬪宮·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 연호궁(延祜宮·영조의 후궁 정빈 이씨),
선희궁(宣禧宮·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 경우궁(景祐宮·정조의 후궁 수빈 박씨), 덕안궁(德安宮·고종의 후궁 엄씨) 등 7개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울러 칠궁은 종묘와 더불어 조선시대 묘사제도(廟祠制度)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자료참조)
마지막으로 사랑채에 들렀다.
이곳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심장부인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 위치하고 있었다.
대한민국관,·대통령관 등 국정홍보관과 G20 휴게실 등 영상물을 통하여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섬세하게 꾸며 놓았다.
그리고 하이서울관, 한식체험관 등 부속시설이 구성되어 있다.
전통 공예인들의 시연과 국립공원홍보관 등 다양한 전시, 행사가 펼쳐지며, 역사, 문화 발전상을
종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 같았다.
수령이 162년 된 녹지원의 소나무
우리는 두 시간 가까이 관람을 마치고 단체 기념촬영을 한 다음,
청와대가 새겨진 열쇠고리와 그림이 그려진 물컵 등 기념품을 손에 쥐고
총총걸음으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청와대를 빠져나왔다.
잠시나마 역대 대통령들의 이름을 떠올려보았다. 만감이 교체된다.
‘소통(疏通)’이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어야 한다는 의미라면,
정부와 국민이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하여 진정한 화합을 이루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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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관람에 대한 문의는 (02)730-5800
첫댓글 와! 영양에 대단한 기행작가님이 계시네요. 문향의 고장 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