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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밭을 보라
요한복음 4:27~38, 너희는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함이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에게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2016년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심령과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에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 함께가는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새해 표어와 기도 제목을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제 마음 속에 전도에 관한 부담을 다시금 주셨습니다.
올해 표어는 오늘 본문 요한복음 4:35 말씀 중에 일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 성 우물가에서 한 상처 많은 여인을 개인 전도하였다가, 그 여인이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아 동네로 들어가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려고 물동이도 버려둔 채 달려가서 사람들을 데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함이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에게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여기서 밭은 세상을 가리키고 추수할 곡식은 사람들의 영혼을 가리킵니다. 추수꾼은 전도자로 부름받은 주의 백성들인 우리들을 가리킵니다. 이미 주 예수를 믿고 그를 따르는 성도된 우리들과 주님의 피로 값주어 세우신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에 대하여 결코 피할 수 없는 책임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누구나 힘써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힘들다고, 혹은 당장 전도의 열매를 거두지 못한다고 해서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올해 우리 모두가 이 사명을 정면으로 받아 순종함으로 감당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1.그러기 위하여 먼저 우리는 “영혼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된 사마리아 성 수가 성 여인은 그 이름도 나타나지 않은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그 당시 유대인들 입장에서 보면 거의 이방인처럼 다 싫어하는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유대인들을 몹시 싫어하여 차갑고 냉소적으로 대하곤 하는 원수지간이었습니다. 더욱이 그 당시에 남자가 우물가에서 여인과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이 여인은 과거의 삶이 기박하고 품행이 좋지 못하다고 그 동네 사람들마저도 사귀기를 꺼려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유다 땅에서 갈릴리로 여행하는 중에 일부러 이 사마리아 땅으로 오전 내내 걸어서 이 우물가에 와서 이 여인이 물을 길러 오기를 기다렸다가 이 여인을 만나 차근차근 말로써 전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을 붙였을 때에 이 여인은 말을 거는 예수님을 향하여 톡톡 쏘았습니다. 또한 불퉁거리면서 비난하여 그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참으시고 그녀의 말을 잘 받아주시고 진리를 설명해주시어서, 그녀는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녀는 마침내 그 불행하고 소망없는 삶에서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녀가 구원받아 물동이를 던져주고 동네로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은 속으로 기뻐서 제자들이 가져온 점심 식사도 잊어버립니다. 제자들이 가져온 음식을 드시라고 권하여도 예수님은 마음이 배불러서 “내게는 너희가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대답하시면서 그 영혼이 만족하며 행복해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이 지극하셨습니다. 지극히 비천한 영혼 하나를 건지는 것을 위하여 그 어떤 수고도 아까워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 사랑의 끈질긴 추적을 받아 붙들린 바 되어 구원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영혼 사랑에 대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한 영혼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를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목자에게 양 백 마리가 있지만 한 마리 양을 잃어버리면, 그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온 들을 헤매는 목자로 자신을 비유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 동네 어르신들은 “이렇게 험한 세상 죽으면 끝이다, 오늘 먹고 마시자.”라고 흔히 말하시곤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근심과 걱정이 많은 이 세상에서 죽으면 세상 시름 잊고 다 끝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사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나 죄를 범하고 살다가 죽으면 죄 값으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숙명을 피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이 있다는 점을 가장 많이 말씀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지옥불에 대한 경고를 가장 실감나게 많이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경고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장 많이 말씀하신 분도 예수님입니다. 그렇게 지옥불과 천국의 복됨을 예수님이 자주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한 사람이라도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고 천국으로 들어가게 할 간절한 마음이 예수님 마음속에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만 있을 수 없어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그토록 전도에 열정을 쏟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35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새벽 일찍이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하시던 중에 날이 밝아오자, 뒤늦게 잠에서 깨어난 제자들이 예수님을 여기 저기 찾아 나섰습니다.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을 광야에서 발견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르기를,
“모든 사람들이 주를 찾나이다”
라고 알렸습니다. 이미 아침 일찍부터 예수님이 묵으셨던 집 대문칸에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병을 고쳐주시기를 간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늘 그 집에 돌아가시면 많은 분들에게 병을 고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병이 고쳐져서 큰 기쁨을 얻는 복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기대와 달리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 1:38)
이 대답 속에 예수님의 마음속에 사역의 일순위가 전도였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몸을 고치는 육신 구원도 중요한 것이지만, 그 영혼이 영원히 지옥에 떨어져 고통당하는 사람을 살리는 영혼 구원 사역이 가장 중요하고 절박한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어디로 몰려가고 몰려오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없는 그 영혼들은 지금 지옥으로 내려가는 미끄러운 길로 휩쓸려 몰려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다 잃어버린 영혼들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바라볼 때, 그들이 어떤 멋진 옷을 입고 있는지, 무슨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지, 어떤 호화로운 집에 살고 있는지, 얼마나 그 자녀가 잘 나고 세상에서 얼마나 높은 지위에 있는지를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우리는 그들의 영혼 속에 예수님이 계신지 아니 계신지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 영적인 눈이 열려 그들의 영혼의 가난함과 가련함과 눈 먼 것과 불쌍함과 비참함을 보게 되어, 마음속에 주님처럼 안타까워 마음이 뭉클해지고 가슴이 아파서 그들 영혼을 놓고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입을 열어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마음 속에 가득했던 그 마음,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시려고 몸부림치시던 그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어떤 일보다 전도에 우선순위를 두고 긴박한 마음으로 전도하는 절실함을 품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전도에 대한 주님의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서 우리는 그 다음 꼭 실천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의 씨를 뿌리러 영혼의 밭에 부지런히 나가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한 곳에 가만히 정착하여 계시지 않으시고 날마다 전도하러 다니셨습니다. 예수님이 다니신 곳은 갈릴리 바다 좌우편을 마다하지 않고 배를 타고 여러 곳에 다니셨습니다. 갈릴리 동쪽 벳새다 지역에 다니기도 하시고, 북쪽 가버나움과 고라신을 다니기도 하시고, 서쪽 가이사랴와 막달리 지방을 다니기도 하시고, 남쪽 거라사 지역까지 배타고 가서 귀신들린 자를 고치기도 하셨습니다. 갈릴리 내륙 지방으로는 나사렛 고향에도 가시고, 가나 지역에도 다녀오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유다 지역과 예루살렘 지역과 사마리아 지역을 두루 다니셨고, 심지어 저 시돈과 두로 지역과 아람 지역과 납달리 지역과 데가볼리 곧 과거의 바산 지역까지 두루 다니면서 이방인들에게까지 전도하셨습니다. 3년 반 동안 예수님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전도하고 또 전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입으로만 전도하신 것이 아니라, 사실은 발로 전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도의 특징은 부지런함입니다. 전도는 가만히 앉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발이 움직일 때 전도가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전도자를 밭에 농사 짓는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씨를 뿌리고 씨를 거두는 농삿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혼의 밭에 나가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도 전도요 복음의 낫을 휘둘러 알곡을 거둬 창고인 주님 나라로, 교회로 거둬들이는 것도 전도입니다. 그런데 밭에 나가 일하는 농삿꾼들을 보면 어떤 사람이 농사를 잘 짓는가 하면, 자기 밭에 봄부터 가을까지 자기 논과 밭에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나가 보는 사람이 잘 짓습니다. 저희 시골 동네에 나중에 성공해서 동네에 문안네 집이라는 대갓집을 산 장동희 양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 집 뒤에 있는 논을 몇 배미 가지고 있었는데, 늘 새벽부터 논에 나가 물꼬를 트고 잡초를 제거하고 벼멸구나 병충해를 제거하곤 하더니, 언제나 농사가 대풍이었습니다. 제 어린 기억에 동네에 병충해가 들끓어서 농사가 망친 적도 몇 번 있었던 것 같은데, 그분 논에 있는 곡식들은 병이 들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린 저도 참 이상하다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생각하건대, 그분의 부지런한 발걸음에 곡식들이 감동해서 다 건강해서 병을 이겨낸 것 같습니다. 하여튼 농사는 발로 짓는 것입니다. 부지런함으로 짓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이미 영혼의 논밭을 다 각각 주셨습니다. 자기 이웃들이 영혼의 논과 밭입니다. 자기 직장 동료들이 자기에게 맡기신 영혼의 밭입니다. 자기 집 주변에 있는 아파트, 시장,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 천안 아산의 모든 영혼들이 다 내 영혼의 밭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주님이 맡겨주신 영혼의 밭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가서 부지런히 우리 발로 다니면서 복음의 씨를 뿌려주고 복음의 낫을 휘둘러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복음의 씨를 뿌리거나 복음의 낫을 휘두를 때에 거두는 것이 당장 없다고 해서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논밭에서 농사 짓는 사람들이 논밭에 당장 씨를 뿌렸다고 금방 그 열매를 거둘 욕심을 내는 조급한 농삿꾼은 없습니다. 땅을 일구고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땅을 잘 가꾸지도 않은 채 씨만 뿌렸다고 좋은 열매들을 거둘 것을 바라는 농사꾼도 없습니다. 부지런히 논밭에 나가 땀을 흘려야 마침내 때가 되어서 알곡을 거두는 추수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농사 짓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이처럼 영혼의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영혼의 알곡도 전도자의 씨 뿌리는 땀과 눈물과 기다림이 차고 찼을 때에 거두는 추수의 때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복음의 씨를 뿌렸다고 그 영혼을 당장 거두려는 조급함을 절대로 가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어서야 그 영혼을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내가 씨를 뿌리지 않았으나 쉽게 거둘 때가 있습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영혼을 수고함 없이 쉽게 거두어 들이는 은혜를 입을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미 그 영혼의 밭에 많은 수고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 영혼을 위하여 복음의 씨앗을 부지런히 뿌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제자들이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제자들로 거두라고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제자들 대신 누가 노력했습니까? 구약의 선지자들이 노력했으며, 세례 요한이 노력했으며, 예수님 자신이 노력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그렇게 다른 분들이 노력한 것을 단지 거두기만 했을 따름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평생 거두지 못하고 계속 하여 복음의 씨만 뿌리는 노력만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쉽게 풍성하게 거두는 은혜 속에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불공평한 일 아닐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영적인 농사에서 수고한 것을 결코 헛되지 않게 보상을 주신다고 오늘 말씀하고 계십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요 4:36)
열매를 거둔 자도 즐겁지만, 땀 흘려 씨 뿌린 자도 함께 즐거워하게 되는 것이 영적 농사의 은혜입니다. 장차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에 불신 영혼에게 복음의 씨를 계속하여 뿌리고 본인이 직접 거두지 못한 전도자도 훗날 그 영혼 구원의 일로 인하여 주님 앞에서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은 뿌린 자에게도 거둔 자와 함께 동일한 상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당장 내가 거두지 아니할지라도 평생에 부지런히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자가 됩시다. 반드시 때가 되면 그 영혼의 알곡을 거두게 하실 것이요, 혹 그 영혼은 다른 사람이 거두게 하실 것인데, 하나님은 때로 내가 노력하지 아니한 다른 곡식을 내가 쉽게 거두게 하는 기쁨도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설령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할지라도 우리가 그 영혼을 위하여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눈물로 기도한 수고는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반드시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내게 맡기신 영혼의 논밭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영혼의 논밭의 농삿꾼으로서 부지런히 발로 다니면서 기도와 사랑으로 그 밭을 기름지게 바꿉시다.
또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의 씨앗을 부지런히 뿌립시다. 부지런히 뿌리다 보면, 어떤 씨앗은 돌밭에 떨어져서 다 죽는 것 같지만, 조그만 틈이 있고 조그만 틈새가 생기면 마치 민들레 홀씨가 차가운 대리석 계단 틈에 떨어져서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듯이, 소나무 씨앗이 차갑고 단단한 바윗틈 사이에 떨어져 그곳에 뿌리를 내려 나중에 그 바위를 쫙 갈라지게 하듯이, 기어코는 복음의 능력이 바윗돌 같이 완악한 심령도 변화시키는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자기의 영혼의 밭에 나가 부지런히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성실한 영혼의 농사꾼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영혼 구원의 사건은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건지는 일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반드시 거센 방해가 있다는 점입니다. 한 영혼을 지옥 백성에서 천국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 전도 아닙니까? 한 영혼을 그를 죽이고 멸망길로 이끌던 마귀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보호 아래 이끌어내는 것이 전도 아닙니까? 그러므로 전도하는 일에는 무서운 영적 투쟁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다보면 다른 일에는 평화스럽고 인자하게 대답하다가도, 전도하려고 들면 사람이 확 변하여 말이나 표정이나 행동이 걍퍅하고 과격하고 비이성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지 않습니까? 이것이 그 사람의 본심이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붙들고 있는 마귀가 본능적으로 역사하여 그 사람을 완악하고 거칠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3,4 말씀에 이르기를,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3,4)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는 말로 설복시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영적인 싸움의 결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4 이하에서 사도 바울이 다시 말하기를,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4,5)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처럼 전도는 농사짓는 것인 동시에 영적 싸움입니다. 무서운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영혼을 건져내고자 전도할 때 그 사람 이면에 붙잡고 있는 영적 대적인 마귀와 귀신들과 싸움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전도하여도 여전히 완악하고 믿음을 갖지 못한 것을 보고 인간적인 마음으로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그 사람의 마음에 진을 치고 있는 마귀의 견고한 세력을 깨뜨리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할 인간적인 고집과 이론들을 깨뜨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더 높이 생각하는 모든 생각을 낮추어 오직 예수님을 아는 지식만이 가장 고상한 지식임을 인정하도록, 강력하신 성령님의 역사가 그 심령에 역사하도록 우리는 그 사람을 위하여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때가 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 가장 순종 잘하고 가장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 주님의 복음에 감격하며 전도에 매진하는 사람으로 바꾸어지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 4:35)는 말씀은 우리 교회 올해 표어입니다. 하지만 올해만이 아니고 우리가 평생에 붙들고 순종하며 부지런히 실천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제부터 평생 우리에게 주어진 영혼의 논밭을 향하여 우리 눈을 들어 살펴봅시다. 그 밭에 나가 부지런히 눈물로 씨를 뿌리며 수고의 거름을 주고 인내하면 때가 되면 반드시 알곡의 추수의 때가 올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한 영혼, 그토록 발이 부르트며 배고픔도 잊은 채 전도하여 건지시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시던 한 영혼을 우리도 매일 찾아나서는 영혼의 농사꾼들이 됩시다. 남은 평생에 우리의 논밭에서 얼마나 많은 영혼의 곡식들을 거두어서 주님 창고에 들일 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만 충성스럽게 수고할 따름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어 다만 충성스럽게 부지런히 복음의 씨를 뿌려가는 저희 모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