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심증후군(傷心 症候群)” 유감
미국 심장학회에 따르면 “상심 증후군”(傷心症候群, Broken Heart Syndrome)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상심 증후군”은 죽음, 이별, 불안과 같은 극도의 정서적 스트레스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신체 증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너무도 사랑했던 배우자가 죽으면 남겨진 배우자도 시름시름 앓다가 곧 바로 죽는 경우입니다.
한자어로 “상심”(傷心)은 상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상했다는 것이 무엇일까? 몸이 상했다는 말도 있지만 마음이 다쳤다는 뜻은 무엇일까? 마음과 연관이 있는 용어로는 “가슴”, “심장”, “속”이 있습니다. 마음은 뭐고 가슴은 뭐고 속은 뭐고 심장은 뭘까? “가슴이 아프다”, “심장이 깨어지다” “속이 상하다”라는 말도 사용 합니다.
상한 마음은 육체적 기관이 아닌 사람의 정서적 기관에서 나타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정(心情)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심정이란 마음에 품은 정서적 생각과 감정이란 뜻입니다. 한편 영어로 심장(心腸)을 Heart라고, 가슴은 Breast라고 부르는데 모두 육체적 기관을 지칭하는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한편 영어의 Mind는 육체적 기관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영어의 Mind는 한국어로 “마음”을 뜻하기보다는 “이성적(理性的) 정신”을 가리킵니다. 철학에서는 Mind를 “오성”(悟性)이라고 번역하는데, 사물에 대해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이러다 보니 관련용어들의 의미론적 관계를 따져보는 것과 각각의 용어들이 특정한 문맥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첫 걸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소위 어휘의미론(lexical semantic)과 문맥사용(context)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순간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단어의 사전적 문자적 의미가 본문 안에서의 의미는 아니라는 말도 됩니다.
이상에서 말한 단어들, 즉 “속” “가슴” “마음” “심장” 등은 서로 다른 뉘앙스를 지닌 동류(同流)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속이 타들어 간다.” “속이 상하다” “속이 쓰리다” “가슴이 아프다” “가슴에 통증을 느끼다” “마음이 짠하다” “마음이 상하다” “심장이 터질 듯하다” “심장이 멎다” 등과 같은 문구를 곱씹어 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마 언어의 다양한 맛과 멋과 힘을 경험하는 순간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육체와 정신”, “몸과 마음”, “육체와 영혼”은 불가분리의 관계입니다.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이 한 사람 속에서 어떻게 연결될까 하는 문제는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오랜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는 이미 의학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죽음을 어떻게 정의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심장이 멈추면 죽었다고 할까? 아니면 뇌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하면 죽었다고 판명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어쨌든 죽음은 이것들(영혼과 육체, 마음과 몸, 정신과 육체)이 서로 이별하면서 생기는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현상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죽음을 가리켜 인간사의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말하는 대신에 물리쳐야할 대적이요 원수요 극복해야할 장애라고 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영혼을 기괴한 형태로 남겨둡니다. 육체성 없는 영혼은 비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몸의 부활”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부활이 아닙니다! 몸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영혼과 육체의 영원한 합일, 육체와 정신의 온전한 회복, 몸과 마음의 완전한 조합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이 세상, 즉 깨어지고 일그러지고 고통 하는 이 세상에서 열렬하게 갈망하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그 “사람”을 상실하게 될 때, 아니 그 “사랑”을 상실하게 될 때 사람들은 심각한 “상심증후군”을 앓게 됩니다. 마음이 상해서 죽기까지 합니다. 이것을 보면 사랑이 크면 심장도 깨어져(broken heart)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죽음 너머까지 이어지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하나님의 사랑이 그런 것이고, 그래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고통 하는 사랑”이라 감히 부릅니다. 그분 역시 우리 때문에, 우리의 죄악 때문에, 죄악으로 인해 죽어가는 우리를 보시고 몹시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드님은 십자가에서 심장이 깨어져 죽으셨습니다. 그의 가슴은 부셔지고, 그의 마음을 상했고 그의 심장은 깨어졌지만(Broken Heart), 그의 사랑만큼은 결코 “깨어진 사랑”(Broken Love)은 아니었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온전한 사랑”(Perfect Love)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요 3:16)
상심증후군! 죽지 않으려면 적당히 사랑해야 하나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죽기까지, 죽도록 사랑해 봅시다. 그분이 그러셨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