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땅 - 정관사와 접속사가 붙어 있어 직역하면 '그런데 그 땅'이다. 여기서 그 땅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를 가리킨다. 혼돈하고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가 아직은 생명체가 살 수 있을 정도로 정돈된 상태가 아님을 보여 주는 말이다. 즉 '혼돈'에 해당하는 원어 '토후'는 '공허', '헛된 것'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무질서와 아무런 형체가 없거나 생명이 없는 황량한 상태를 의미한다.
공허하며- 원어 '보후'는 사 34:11; 렘 4:23에서 '공허한'으로 번역되었는데 이것 역시 '토우'와 마찬가지로 미처 아무것도 갓춰지지 않는 적막한 상태, 무가치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혼돈하고 공허하였다'란 의미는 지구가 아직 조화된 모습을 갖추고 있지 않고,따라서 아무런 생명체도 살고 있지 않은 무질서하고 텅빈 상태였다란 뜻이다.
한편 본절의 하고...하며는 카오스적인 존재 상태를 뜻하는 말이지 일부 학자들의 주장처럼 거역한 사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변이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 여기서 '흑암'은 단순히 빛에 대칭되는 어두움의 개념이 아니라 창조 이전 빛이 없는 상태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한편 공동 번역은 이를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로 번역하였다. 왜냐하면 '깊음'에 해당하는 원어 '테홈'은 때로 '깊은 바다' 가리키기 때문이다. 아마 이는 창조된 원시 형태의 지구가 물 혹은 물 같은 유동체로 덮여있었으며 사면에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있었을뿐임을 뜻하는것 같다. 하나님의 신. - '루아흐'는 때로 '바람'이나 '숨'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혹자는 이를 하나님께서 깊은 물의 표면에 불게하신 바람으로 이해하기도 하나 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는 어디 까지나 제3위 하나님되시는 '성령'을 가리키는 말로 천지 창조시 부터 이미 삼위 하나님께서 서로 협력하여 사역하셨음을 암시해 주는 말로 이해하여야 한다. 혹자는 성령께서 신약 시대에야 비로소 활동하신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성경은 성령께서 이미 구약 시대 부터 여러모로 활동하였음을 분명히 증거해 준다 . 운행하시니라 - 원뜻은 '알을 품다', 따라서 이 말은 이미 새가 새생명의 탄생을 열망하며 알을 소중히 감싸 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지음 받을 인간의 삶의 장소를 조성하시기 위해 깊은 관심으로 포근하고 소중하게 돌보심을 의미한다.
[시 107:27]
저희가 이리 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이리저리 구르며 - 문자적인 뜻은 '빙빙 돌며'로서 하나의 원 주위를 계혹 맴돌며 춤을 추는 모습을 가리킬 때에도 사용된다. 지각이 혼돈하도다. - 문자적인 뜻은 '모든 그들의 지혜는 바닥이 났다'이다. 말하자면 항해사들의 배를 조종하는 모든 기술이 무익한 상태에 처했다는 것이다.
항해사들은 지식적으로 배운 항해술과 바다를 항해해 본 경험을 가지고 능숙하게 배를 조종하기 마련인데 이제 그 능력들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파도 앞에 항새사들의 보잘것없는 지식 및 경험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파도를 명령하는 자이신 하나님께 호소하는 일뿐이다.
고해와 같은 인생을 사는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스스로 쌓은 지식과 경험으로 헤쳐 나갈 수 없는 위경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도우심을 호소하는 것뿐이다.
[렘 4:23]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혼돈하고 공허하며 - 본절에서부터 28절까지는 임박한 파멸에 대한 심판의 참상이 환상을 통해 표현된다. 본문의 히브리어 '토후 와보후'는 창1:2에서 땅이 창조되기 전의 무질서한 상태를 묘사할 때 쓰인 말이었다. 이런 표현을 통해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에 임할 심판이 마치 땅이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은 혼돈을 초래할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