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사찰의 미(美)' (동국대 교수 자현스님 /btn) 19회
초기에는 법당보다 탑이 더 중요시 되었다
대탑의 건축적 어려움은 사찰구조를 법당중심으로 변모시켰다
옛날엔 탑(대규모) 바로 뒤에 법당이 있는 구조였는데 점점 그 간격이 벌어지면서
점점 탑은 앞으로 나오고 규모는 더욱 작아진다
둘 다 남향이다보니 햇살 안 들어 난방문제도 있었음
(법당: 옛날엔 보도블럭 같은 거 깔려 있고 신발 신고 들어가는 문화 - 당연히 난방 없음
오늘날에도 법당에는 특별한 경우 아니면 난방 없음)

황룡사 9층탑 모형
황룡사는 당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사찰이 아니었다 - 진골이나 성골 (신라 골품제)
관상보다 중요한 '골상' - 뼈가 어떻게 생겼느냐에 따라 바른 기운이 흐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좌우한다는 생각 (뼈숭배사상)
매장해 보니까 뼈는 잘 안 썩어 - 그래서 사람의 본질은 뼈라고 생각한 단순한 생각
그래서 원효스님도 황룡사에 못 들어갔었다 - 그 후 금강삼매경 법문할 때 한 번 들어갔었다
황룡사 9층 목탑 - 약 80미터. 동아시아 최고 높이의 탑
- 민중들은 밖에서도 다 보인다 - 얼마나 가보고 싶겠어?
그 염원이 새겨진 게 남산 탑골 마애9층탑 (↓ 짝퉁?)

오늘날엔 원래 탑은 불이 나서 소실되고 이것만 남았다
옛날엔 그걸 보고 이걸 만들었는데, 지금은 이걸 보고 그걸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남은 유일한 목탑 (↑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중수)


불나고 새로 지은 모습 (↑)
불이 났을 때 자고 있는 스님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서 '빨리 나를 업어서 내보내 줬으면 좋겠다'
그랬다고 한다 - 놀래서 나가 보니까 불이나서 겨우 불상만 구해냈다

중국 자은사 (앞에 스님은 현장스님 ↗)
손오공, 저오능, 사오정 - 깨달을 오(悟)자 돌림 - 모두 실존 인물

자은(慈恩) - 자애로운 은혜 = 엄마의 은혜
당 고종이 자신의 어머니 문덕황후를 생각하여 지은 절
(아버지 것은 안 지어줘도 돼 - 자기 것은 자기가 지으면 돼 - 아버지가 당태종이니까 ㅎㅎ)

자은사 대안탑 - 현장스님이 가져온 경전들을 모신 탑 - 벽돌탑
대안탑(큰 기러기 탑): 현장스님이 인도에서 대안탑에 너무너무 큰 감동을 받아서 비슷하게 만든 것
소승불교는 육식을 한다 (대승불교는 안 해)
옛날 인도는 유목문화가 많이 남아 있었고 그래서 육식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당시 육식은 고급 음식이 아니라 싼 음식, 일반적인 음식이었다 - 요즘 미국에 햄버거처럼)
그 후 기원전후에 인도가 채식위주 문화로 바뀜
- 그러면서 육식하는 사람을 약간 하류문화로 보기 시작함 - '약간 잔인한 사람'
- 지금 우리나라도 약간씩 그런 문화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 - 앞으로는 육식 안 하는 문화로 확 바뀔 수도 있다
- 예전에 못살아서 소고기가 비쌌는데, 지금도 유기농 어쩌구 하면 소고기보다 비쌀 수도 있다
-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에서 소나 돼지를 직접 잡아 먹었지만 지금은 그런 거 하래도 못 해 (과도기)
- 마트에 가서 닭고기 포장 보고, '랩으로 씌워 놓은, 시체가 누워 있구나' 생각하면 그거 먹기 힘들다, 확 온다
- 꽁치 그런 거 먹을 때도 그 눈하고 몇 번 마주쳐 보라, 그러면 먹고 싶은 마음이 확 끊어진다
- 내가(자현스님) 어렸을 때 생선 눈 파 먹는 걸 즐겼는데 (그냥 장난으로 재미있어서..)
- 그러다가 '내가 왜 저걸 먹어야 하지? 시체가 누워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고는 생선을 못 먹었다.
- 어느 정도로 심했냐 하면, 생선을 자른 칼로 조리한 음식도 잘 못 먹었다, 그게 느껴졌다..
현장스님: 소승 절에 가면 육식을 주더라. 그런데 한 번은 '기러기 기념탑'에를 갔는데
왜 여기를 기러기탑이라고 하나 물어보았더니 - 원래 여기는 소승이어서 육식을 했었다
스님들이 어느 날, 배가 고프고 그럴 때 하늘을 보니까 기러기들이 쭉 줄을 맞춰 날아가고 있었다
농담삼아 '야, 저거 구어 먹으면 맛있겠다' 그런 말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한 마리가 떨어져 죽었다. 마치 들은 것처럼..
스님들은 깜짝 놀랐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하기를
'보살이 변신을 해서, 우리가 고기 먹는 걸 경계하기 위해서 그랬나보다.
부처님이 처음엔 육식을 허용했지만 그건 시대적 상황이고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육식을 안 하는 게 맞다..'
그래서 차마 그 기러기를 못 먹고 그 자리에 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현장은 크게 감동해서 중국에 돌아와 대안탑을 세우고
그때 자신이 직접 벽돌을 날랐다고 한다.
원래는 '안탑'이었다가 나중에 '작은 기러기탑, 소안탑'이 생기면서 '대안탑'으로 됨
☞ 스님이라도 고기를 먹을 수는 있다 <법륜스님> http://cafe.daum.net/santam/IQ3h/669
첫댓글 고맙습니다. ()
좋은 자료고맙읍니다.... 성불 하셔요..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