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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책, 문화가 만나는 달리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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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책소개 스크랩 리뷰 소년이 온다 : 한강
민욱아빠 추천 0 조회 42 15.03.02 12:0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  트라우마는 어떻게 침묵하게 만드는가.

 

  2000년을 넘긴 지 얼마 안되었을 때, 우연히 만나게 된 형님은 광주출신이었다.  딱히 5.18을 의식한 건 아니었다.  단지 시간이 지나면서 형님과 나름 친해졌고, 친해지다보니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형님은 5.18을 어떻게 겪었냐고..  순간 형님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며 입술엔 작게 힘이 들어간 듯 정적이 흘렀다.  아무 말이 없었다.  꼭 말해야 하는 거냐고, 하지 않으면 안되겠냐는 표정..  난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아차 싶은 마음까지 들어 고개를 숙이고 같이 잠시의 침묵을 나눈 뒤, 소주잔 한 잔을 꺾고 다른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다고 마음도 다르게 갈 수는 없었다.  무엇이 형님을 침묵하게 하는가..  나는 형님이 그 시간들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른다.  어쩌면 고립된 그 도시의 바깥에서 숨죽이며 살았는지도 모르고,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인양 시간을 흘려보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순간의 침묵엔 그 도시의 오래된 상처를 물리적 시간적 거리를 두고서야 알 수 있었던 타인이 쉽게 건들지 못할 트라우마 같은 것이 배어 있었다.  건든다는 것은 이제 막 아물어가는 수술 상처를 헤집어버리며 고통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듯, 그러지 말아달라 애원하는 듯한 굳은 침묵이었다. 

  2.  그들은 우리는, 망가져 간다.

 

  동호가 살았던, 채석장을 낀 허름한 한옥집은 그대로 있지 못하고 헐려버렸다.  번듯한 건물 하나 세워질 법 한데, 땅주인도 돈은 없고 목도 좋지 않아, 이제 곧 그만 둘 거라는 세입자가 가게를 운영하는 컨테이너 가건물하나 덩그러니 놓여졌을 뿐이었다.  그 도시의 도청도, 상무관도, 그 자리에 서서 그날들을 또렸이 보고 있었던 아름드리 나무들도, 헐리고 뽑히며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 버렸다.  누구 하나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트라우마를 물리적 공간에 담고 유지하려는 노력도 없이, 애써 붙잡아주던 몸이 썩어 사라져버린 후 그날의 영혼들이 기억의 연을 애써 이어붙여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공간들이 허무하게 사라져버렸다.  4.3이 그렇고 5.18도 그렇듯, 해결되지 못한 트라우마 그대로 보상금과 지원금이란 명목으로 유족들과 부상자들은 그대로 권력과 이권의 주역이 되어갔다.  서울의 변두리로 밀려나고 밀려나 머무른 비닐하우스 천막은 시시때때로 사고가 아니면 누군가의 의도적 방화로 불타 없어져 버린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철거민들을 내쫓아 집값 땅값을 올려보겠다고 5년전의 2월 추운 어느날엔 6명을 불태워 죽였다.  남은 것은, 그렇게 변하는 공간과 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날의 그 도시에서 죽어간 가족들과 지인의 기억을 마음에 담고 견디고 버티어가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묵묵하게 앙다문 입술뿐이다. 

  3.  기억해야 한다.

 

  아니, 이 말은 틀렸다.  기억을 꺼낼만한 이야기들, 자료들은 여전히 차고 넘친다.  보고 듣기만 해도, 우리는 그 날들을 충분히 기억해 낼 수 있다.  문장을 다시 써야 한다.  기억을 이어내야 한다고..  그러나 난 여전히 비관적이다.  우리는 기억을 이어낼 수 있을까..  집값 땅값을 올리겠다고 한겨울 생목숨 여섯을 불태워 죽여놓고는 만들어낸게 고작 주차장이고, 집값땅값이 생각같이 오르지 않으니 생목숨들 죽어간 자리 앞에서 개발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삼풍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추모공원을 만들겠다니 장사안된다고 주변상인들이 소화기를 뿌려대며 훼방을 놓았다.  300명이 넘는 어린 생목숨들이 바다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았던 게 일년도 안되었는데, 사람들은 이제 그만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자 한다.  그런 천박한 감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기억은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심각해진다.  기억해야 할 것들마저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얼마전 김광석 추모공연 이야기에 마음이 지쳐버리는 나는 강팍해진 것일까라는 생각마저도 든다.

  4.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학살자들, 자의로든 타의로든 사람을 죽였던 사람들, 아무런 감각없이 같은 사람들을 고문하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현재가 궁금해진다.  잘 살고 있을까?  우리의 기억을 위한 증거들은 왜,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가득하고 억압당하고 고문당하고 착취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들만 가득한가..  피해자들이 평범하게 현재를 살아내고 있다면, 가해자들의 평범한 현재 역시 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복수나 비난을 위해서가 아니다.  피해자들의 삶에 배인 트라우마가 치유받아야 하듯, 가해자들 역시 삶에 배였을 지 모르는 죄책감과 두려움을 치유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에서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느낄 수 밖에 없는 아픔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혹한 현상에 대해 어느하나 바르게 짚어내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넘겨오던 과거의 과오, 그로 인해 학살자들과 가해자들이 아무런 죄책감없이 권력과 재물을 쥐고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비참한 현실을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내야만 한다. 


  기억해야 할 과거를 세밀하게 들추어내는 또다른 이야기가 먹먹한 마음을 만들어내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30년도 더 된 시간이 응축되고 무게가 실려 가슴을 내리누른다.  소년은 죽은채 차가운 땅 아래에서 백골로 가족들의 손을 만나고 좀 더 양지바른 곳으로 이장되었을 때, 학살자 전두환은 공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따뜻한 집에서 장수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실에 대한 분노는 다시 먹먹한 슬픔이 된다.  우리는 여전히 기억해야 한다는 초심수준의 앙다문 다짐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슬프지만 세상의 감성은 한없이 얇아지고, 기억만이라도 해야하는 앙다문 다짐은 수가 점점 늘어나기만 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느끼는 슬프고 무거운 마음을 애써 정리해야 했던 이유는, 이 이야기가 단지 그런 감상만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억하는 일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힘의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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