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그림자가 길어지고 산과 들에는 겨울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계절. 10월은 때 아닌 더위로 기상관측사상 10월의 날씨로는 가장 높은, 한 여름을 방불케 하는 25도를 보이더니 11월 들면서 갑자기 추워져 패딩이 나오고 손을 비비며 종종 걸음으로 퇴근길을 재촉하는 한파. 계속 덥다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단풍이 제대로 들지 않고 잎이 말라서 그대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들곤 한다.
내 차를 없앤 지도 벌써 8개월이 되니 그런대로 적응은 해가면서도 때때로 느끼는 불편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이 멋진 계절에도 나들이 한 번 못하고 집에만 있으니 특히 안식구의 답답해하는 심정을 십분 이해하지만 차가 없으니 선 듯 떠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런 저런 생각 끝에 KTX를 타고 강릉이라도 한 번 갔다 오자고 하여 사위에게 부탁을 하여 표를 예매하여 11월14일 이른 아침을 먹고 서울역으로 가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10시1분 발 KTX를 타고 그동안 묵은 체증을 쓸어내리듯 시원하게 달리는 기차는 순식간에 양평을 지나고 만종과 둔내를 거처 평창을 지나 딱 두 시간 만에 강릉역에 도착하였다. 2022년 가을에 소금강 산행을 가려고 강릉역에 내린지 꼭 일 년 만이다. 그 때는 산행 친구들과 왔는데 오늘은 사랑하는 안식구와 오게 되니 꼭 같은 차를 타고 꼭 같은 곳에 내렸는데도 기분이 다르고 색다른 의미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강릉은 강원도의 춘천에 이은 제2의 도시로 인구는 약 21만 명 정도며 강원도라는 도 이름이 강릉과 원주의 첫 글자를 따서 강원도가 됐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그만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강원도의 중심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적 특성상 다른 지역에 비춰볼 때 발전이 약간 늦은 감이 없지를 않다. 그리고 강릉은 내가 아는 바 텃세가 많은 곳으로 알고 있는데 특히 강릉 최씨의 세도가 만만치 않아서 선거철이 되면 상당한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박정희 시절 외무부 장관을 오래 하고 잠시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던 최규하 전 대통령이나 공화당 시절에 경제 부총리를 지낸 최각규는 강릉 최씨를 대표하는 인물이요, 조순 경제부총리도 강릉 출신으로 유명한 분이다.
역사적으로는 유명한 소설가 허균과 그의 누이 허난설헌이 강릉을 대표하는 문학가로 지금도 문학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또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도 빼놓을 수 없는 큰 인물들이다. 인물도 인물이지만 자연경관도 어느 곳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푸른 동해를 끼고 있는 강릉은 특히 경포호가 유명하다. 일찍이 경포호수에서 뱃놀이를 하면 하늘과 바다와 술잔에 뜬 삼월경이 유명하고 임의 눈동자와 마음에 뜬 달까지 5월경이 뜬다고 하는 경포호수는 천하제일이요, 경포대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역 앞에서 바로 택시를 타고 경포해수욕장으로 가려다가 기사에게 맛집을 물었더니 순두부집을 소개하면서 강릉에는 순두부가 유명하다고 하는 것이다. 식당에서 경포 바다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고 하니 약 15분정도 걸으면 되다고 하여 그럼 순두부 식당으로 가자고 하여 차로 15분 정도 가니 식당촌으로 온통 순두부 식당 같았다. 그런데 기사가 차*희식당으로 가라고 하며 바로 그 식당 앞에 내려주어서 보니 주차장에 차가 꽉 차고 식당 안에는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꽉차서 빈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과연 유명한 집인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며 종업원이 권하는 자리를 잡으며 보니 대부분 같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 우선 보기에 그럴싸한 메뉴인 것 같아서 한 번 먹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잘 모르면 메뉴판 제일 앞에 있는 것이 그 집의 대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맨 위에 있는 눈에 잘 띄는 순두부정식을 시키고 잠시 기다리니 불판에 순두부 전골냄비를 올려놓고 반찬을 갔다놓는데 보니 조금 전에 옆 좌석의 음식을 보면서 저런 것이면 했던 메뉴 바로 꼭 같은 것이었다. 손바닥만한 가자미 구이에 역시 배를 갈라서 양념을 바른 손바닥 크기의 황태구이와 코다리 찜 두 몇 토막에 제육볶음, 비지와 쌈배추, 고추무침과 참나물, 깻잎 지, 그리고 김치와 쌈장 에 밥 한 공기씩, 우선 순두분 전골은 작은 낙지가 들어가고 채소와 당면과 순두부가 풍성하게 들어간 것이 맛도 맛이지만 양이 장난이 아니다. 무엇보다 가지미의 싱싱하고 순하며 고소한 맛이 입맛을 확 당겨주고 황태찜도 계속해서 손이 가게 하는 마력을 지닌 듯, 제육볶음에는 거의 손이 가지를 않는다. 안식구는 처음부터 생선종류를 먹었으면 했는데 순두부집으로 가게 되어 아쉬운 마음이 않았지만 생각지도 않게 가성비 최고에 푸짐하게 생선 반찬을 먹게 되니 너무 만족해하여 나도 덩달아 마음이 좋고 입맛이 한층 당기는 것 같았다. 반찬들이 모두 맛이 깔끔하고 간이 맞아서 구미가 계속 당기지만 배가 불러서 도저히 더 먹을 수 없어서 밥과 반찬 일부를 남긴 채 숟가락을 놓아야 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식당을 나오니 바로 이어진 건물에 까페가 있어서 후식 겸 라떼로 입가심을 하며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 추수가 끝난 시골 풍경을 보면서 잠시 복잡한 도시를 벗어난 홀가분한 마음으로 머리를 식혔다.
까페에서 나와 천천히 걸어서 허난설헌 고택을 창아기니 간간히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당시에는 제법 사는 집인 듯 기와집과 여유로운 뜰 안이 당시의ㅣ 위상을 짐작하게 하였다. 허난설헌의 초상과 다소곳한 방들을 둘러보고 사립문 밖을 보니 일백여 년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아름드리 울창한 소나무 숲이 너무 멋지고 공기도 좋지만 숲길을 걷는 맛이 아주 상쾌하여 한참을 거닐며 사진도 찍곤 하면 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천천히 걸어서 경포 바다를 찾아가는데 오랜만에 걸어보는 한가로운 시골 길이라 기분도 좋고 나들이의 스스로 의미를 느끼며 가다 보니 수확을 끝낸 고추밭에 아직도 남아 있는 고추가 제법 보여서 안식구와 둘이서 한참을 따다 보니 금방 작은 비닐봉지에 한가득 차게 되어 그만 따고 가자고 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얼마를 걸어는지 드넓고 푸른 동해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며 쉼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니 사람을 가고 역사는 변해도 자연은 한결 같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모랫길을 걷다가 한 길로 나오니 마침 지나가는 빈 택시가 보여서 택시를 타고 강릉역으로 오니 4시경이다. 표 예매한 시간은 5시35분인데 아직도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애 하는 상황이라 매표소에 가서 표를 바꿔 4시40분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리니 6시45분경이다.
깊어 가는 가을 속으로 뛰어든 하루 멋진 강릉 여행을 마무리하며 생각하지도 않았던 멋진 식사에 역사의 현장과 경포 바다를 보며 의미있는 여행이었다고 행복해 하는 안식구로 하여 나도 행복한 여행이었다고 덩달아 기분이 좋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