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통화(key currency)도 외환위기를 겪을 수 있을까?
달러 제외, 나머지 4대 기축통화는 가능성 있어.
기축통화 지위는 로컬통화의 설움과는 비교 안 돼.
(이길영의 분석코멘트)
재미나는 가정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축통화를 말할 때 미국의 달러를 말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만 하더라도 영국의 파운드화가 기축통화 역할을 해 왔습니다. 이렇듯 단일통화 개념으로 보면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며, 당연히 기축통화는 외환위기를 겪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기축통화 개념을 넓혀 IMF(국제통화기금)의 SDR(특별인출권)을 구성하는 기축통화(key currency)를 포함하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현재 IMF(국제통화기금)의 SDR(특별인출권)을 구성하고 있는 기축통화는 미국의 달러, 유로존의 유로화, 영국의 파운드화, 일본의 엔화, 중국의 위안화입니다.
이들 5대 기축통화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기축통화도 외환위기를 겪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로스는 1992년 영국의 파운드화를 공격해 영국의 항복을 받아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앞으로도 이들 5대 기축통화는 외환위기를 겪을 수 있을까? 절대적인 중심 통화인 미국의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4개 통화는 외환위기에 노출될 수 있으며, 그 위험 정도는 미국과의 친분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현재 영국(파운드)과 일본(엔화)은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반면 유로존(유로화)은 우호적 독자노선을 견지하고 있으며, 중국(위안화)은 다소 적대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과거 미국(달러)은 유로존(유로화)이 미국에 대립각을 세울 때는 유로화를 공격해 유로존을 와해시키려 하기도 했습니다. 향후로도 가능하면 유로존이 와해되길 바라는 것이 미국의 기본적인 국가전략이나 무시할 수 없는 파워를 갖고 있어 현재는 우호적 공생관계에 있습니다. 참고로 현재 IMF(국제통화기금)의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를 포함해 역대 총재 11명도 모두 유럽출신입니다.
그러면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위안화)은 외환위기에 노출될 확률이 있을까? 재미있는 가정이나 사실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영국(파운드)이나 일본(엔화), 유로존(유로화)은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중국(위안화)은 사실상 국가가 환율을 구속할 수 있는 이질적인 ‘관리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 5대 기축통화에 비해 로컬통화(5대 기축통화를 제외한 나머지 통화)는 환율안정성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취약합니다. 기축통화국은 디플레이션을 막고 부채상환을 위해 역내의 통화량을 크게 늘려도 파장이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통화안정성이 크기 때문에 해당 통화의 채권을 사려는 수요가 항시 대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기축통화의 이점을 ‘세뇨리지 효과(seigniorage effect)라고 합니다.
그러나 로컬통화국이 통화량을 적극적으로 늘릴 경우 어는 순간 물가상승률이 통제를 벗어나 치솟는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남미 여러 나라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로컬통화국이긴 하나 아직까지는 통화량을 잘 컨트롤하고 있어 이에 대한 우려는 전혀 없습니다.
종합해보면 IMF(국제통화기금)의 SDR(특별인출권)을 구성하고 있는 5대 기축통화국의 위상은 로컬통화국에 비해 막강합니다. 현재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의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은 Aa2로 일본이나 중국보다도 높습니다. 그러나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외환위기 가능성은 일본이나 중국보다 훨씬 높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조짐이 있을 때마다, 기축통화국인 일본과 중국에 통화스왑을 맺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IMF 외환위기 때 일본은 우리나라의 통화스왑 체결 요청을 거절했는데, YS의 ‘버르장머리’ 발언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입니다.
2016.3.25 글. 이길영/전 한국경제TV 앵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