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기상하 메시야 왕국의 대망
(18) 다윗의 기도 역대상 17장 16-27절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알아주셨습니다. 다른 뜻이 있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백향목 궁에 살고 있는 나보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곳에 계시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나를 돌보시고 지키시고 높여주신 하나님께,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거절하셨습니다.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대상22:8)
레위인의 삶이 제사장의 삶이 정결해야, 인간의 여섯 발자국을 받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순수한 마음도 거절하실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만들어도, 우리 손에 피가 묻어 있으면 하나님은 그것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계획이 하나님께 상달되고 받아들여지려면, 그쵸? 지금 우리는 더욱 정결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못했어도, 앞으로는 더욱 정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아니 우리로는 그러할 수 없으니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분을 믿고 그분을 영접하면, 우리 손에 피가 없는 것으로 여겨주신다고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지요? 의롭고 깨끗한 당신의 자녀로 여겨주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그저 내 의로움의 도구로 삼지 마시고, 예수님을 구주로 삼고, 더욱 우리 삶이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 더욱 도우시는 성령님과 함께 힘을 내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늘 우리의 화두요, 기도제목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다윗의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그 마음을 알아주셨지요? 그래서 살펴보신 대로 다윗과 언약을 맺어주셨습니다. 그 이름을 존귀하게, 그의 나라에 평화와 안정을, 그리고 당신께서 다윗의 집을 왕조를 세워주시기로 말입니다. 잘 알고 계시지요? 하나님의 언약은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는 한 영원한 것을 말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오늘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께 인정받아서, 우리의 이름을 원수를 멸하시며 존귀하게,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어느 누구도 해할 수 없도록 손대지 못하도록 지켜주시게, 그리고 영원토록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복을 주시는 자손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게 은총을 베푸시길 축복합니다.
자,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주신 말씀과 계시가 다윗에게 전해집니다. 그때 했던 일이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 과분한 은혜의 말씀이 주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는 다윗의 기도가 나옵니다.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어떤 성도가 되어야할 지 한 번 더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다윗은 나단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왜요? 왜 못짓습니까? 내가 피를 흘리고 싶어서 흘렸습니까?” “성전 내가 지을 테니 주여! 당신의 뜻을 돌이키소서!” 이렇게 기도하려고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오늘 이렇게 뜻을 분명하게 가르쳐주신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 마음, 내 고집, 내 계획 내려놓을 줄 아는 것이 오늘 다윗이었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접는 것이 아닙니다. 건축만 하지 않을 뿐, 다윗은 성전건축을 위한 모든 준비를 정성으로 최선을 다해 가장 좋은 것들로 자기가 다 해두었던 것이지요? 솔로몬도 물론 준비했고 기여를 했겠지만, 아뇨, 대부분은 다윗이 준비한 것들, 다윗의 인맥과 다윗의 헌물과 다윗이 준비한 땅에 다윗의 유지와 뜻대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려주신 설계도와 양식대로, 온전히 저 솔로몬 성전이 지어졌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요. 이것이 다윗의 강점입니다. 내가 못하게 되었으면, 다른 사람이 하게 되었다면, 내 마음이 거절당하고 오히려 다른 이에게 기회를 넘겨주게 되었다면, 여러분, 바로 거기입니다. 거기서 마음 상하고 서운하고 섭섭할 것이 아니라, 분노하고 삐딱선 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힘껏 돕고 더 힘껏 준비하고 더 힘껏, 내가 하고자 했던 그 마음과 비전을 가지고 더욱 곁에서 조력하고 지지하고 수고하고 헌신하는 다윗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 성전을 짓는 것이 중요하지, 내가 짓느냐 니가 짓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을 우리는 늘 잊지 않는 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영광은 하나님이 받으시면 되는 것입니다.
자 보십시오. 오늘 다윗, 하나님의 거절의 뜻 앞에 순종했던 다윗은, 그렇게 피를 많이 흘려 성전을 지을 수 없을 정도의 존재인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와 먼 장래의 일까지 말씀해 주시며 언약을 맺어주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다시 한번 자기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베드로와 다릅니다. 큰 복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 더욱 다가오는 것이지요.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죄인됨을 확인하며 나를 떠나소서” 했다면, 다윗은 오늘 본문 기록하듯, 죄인된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확인하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거룩하고 크신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가 작고 초라하고 죄인인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 앞에 찾아오시고, 우리로 우리를 보게 하심은, 우리로 죄책감을 가지고 당신을 떠나게 만들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신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오히려 그 모든 죄를 해결하시어 당신처럼 하나님 앞에 의로운 우리로 빚으시기 위해 찾아와 주시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초라한 우리의 삶을 이제는 의인으로 살 수 있게 하시는 더욱 하나님 앞으로 오라고 초청해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처럼, 더욱 하나님께 간구하며,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는, 우리에게 주신 크고 놀라운 은혜와 복을 누리는, 허락하신 모든 것으로 더욱 우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주의 종들이 다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 큰 복을 주시려고, 우리의 그릇을 준비해 가는 중이신 줄 믿습니다. 모든 연단과 훈련의 과정을 잘 거쳐내셔서, 다윗처럼 큰 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들, 내가 다 못 담아 자손만대에 이르는 큰 복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자, 오늘 이 다윗의 기도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둘째로, 다윗은 자신의 위치를 철저히 기억합니다. 자신은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한낱 인간이며 주님의 종이라는 것을 철저히 알고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6-1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대하여 먼 장래까지 말씀하셨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존귀한 자들 같이 여기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영예에 대하여 이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주께서는 주의 종을 아시나이다”(대상17:16-18)
그래요. 언제든지 우리 하나님 앞에 오시면 늘 내가 누구이고, 내 집안이 누구이고,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신 자리와 위치가 어디인가를 늘 확인해보시길 축복합니다. 내가 잘해서 복 주시고 세우시고 높이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은혜와 사랑 덕분인 것이지요. 그렇게 지금까지도 복을 주신 하나님은, 이것이면 충분하다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작은 것으로 여기시고, 더 큰 은혜와 복을 부어주시는 분이신 것이지요.
여러분, 하나님께 오늘부터 더욱 복을 구하시길 축복합니다. 지금까지 주신 복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지 마시고, 더 주실 수 있으신 아니 무궁무진하신 하나님께 구하시길 축복합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지 마시고, 오늘 당신의 자녀가 아버지께 필요한 것을 구하시는 복된 기도로 감사로 아뢰며 구하시길 축복합니다.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찾게 하시고 두드리면 열어주실 것입니다. 그 은혜가 오늘도 하나님 앞에 나와 앉아서 간구하는 주의 종들에게 가득 임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다윗은 하나님께서 들에서 양이나 치던 자신과 자신의 후손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이어가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이 지금 이렇게 용기를 내서 기도한 이유를 25-27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종을 위하여 왕조를 세우실 것을 이미 듣게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주 앞에서 이 기도로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주의 종에게 허락하시고 이제 주께서 종의 왕조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두시기를 기뻐하시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하니라”(대상17:25-27)
뭘 듣게 하셨습니까? 어떤 말씀에 용기를 내어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본문 14절에서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나라를 다윗 왕조와 연결시키셨습니다. “내가 영원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대상17:14)
이 엄청난 약속 앞에서 다윗은 감사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 영원한 왕국에 대한 약속은 다윗에게만 뜨겁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역대기 말씀을 읽고 듣는 그의 후손들, 저 유다지파 사람들에게 역시 가슴 뜨겁게 용기를 낼 수 있는 말씀이었던 것이지요.
이스라엘 자신들의 처지가 지금 어떻습니까?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고, 제국의 주인이 바뀌어 페르시아아 치하에서 포로가 잠시 귀환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뭐하고 계실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당연히 떠오를 수밖에 없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포로로 끌려갔던 바벨론 강가에서도, 페르시아 지배 아래에서도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이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다윗의 후손을 통해 튼튼하게 세워가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이행해가고 계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약속을 기억해내고 믿을 수 있었던 이유가 오늘 본문에서 등장합니다. 19절 다윗은 말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을 위하여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이 모든 큰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대상17:19)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그것도 당신의 종을 위하여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시는 것을 알려 주셨다고 말입니다.
그래요.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도 알았기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당신의 뜻대로, 당신의 종을 위하여, 이 모든 큰 일을 하고 계심을 믿었기에 견딜 수 있었고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오늘 본문 20-2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하나님이 없나이다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려고 나가사 크고 두려운 일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으시고 애굽에서 구속하신 자기 백성 앞에서 모든 민족을 쫓아내셨사오며 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대상17:20-22)
정말로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지금의 이스라엘을 있게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구해주셨으며 모든 민족 속에서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역대기 이후의 이야기도 알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에게 약속했던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성전은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또다시 세워지고 회복되어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고 성전된 교회와 성도들은 오늘도 사명을 감당하며 세워져 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갈 길이 멉니다. 어느 새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되어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늘, 교회가 편의점보다 많은 이 시대, 참으로 지독하고 악한 범죄들이 이 땅을 뒤덮고 있습니다. 전 세계 해뜨는 데부터 해지는 데까지 교회가 세워지고 예배가 드려지고 있지만, 오히려 기후위기와 자연재해가 심각해지고,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부정과 부패와 비리와 악행이 만연합니다. 우리의 영적이며 도덕적인 해이함이 이 시대를 말세로, 돈과 자기만 사랑하는, 쾌락과 탐욕만 쫓는, 원통함을 풀지 않고 모함하고, 절제하지 못하고 사나운, 무정한 시대, 감사와 거룩이 사라진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지요.(딤후3:1-5)
그래요. 우리의 상황이 환경이 녹록치 않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기도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니 더욱 말씀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정결하게 세워져야 합니다. 오히려 상황은 포로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윗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었습니다. 당신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소망하였습니다. 당신께서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일하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오직 한 분 하나님께 예배하고 말씀 들으며 회복을 귀환을 그리고 다시금 회복하실 영광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윗이 들은 것보다, 그리고 저 포로공동체가 경험한 것들보다 훨씬 더 많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성경을 통해서 배우고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당신의 사랑을 확증해주신 일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사망권세마저 이기시고 부활하셨고 우리를 위해 권세와 능력의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놀라운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가 역대기의 다윗과 저 포로공동체보다 믿음이 약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도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를 둘러싼 부정적 상황들로 인해 피하고 숨고 불평만 하는 기드온이 되지 말고, 길에는 사자가 돌아다닌다고 말하며 문 걸고 이불 속에 들어앉아 사명을 내려놓는 게으른 이들이 되지 마시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하나님의 지키심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며, 오늘도 우리에게 주신 시공간 속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내시길 축복합니다.
이런 저런 작은 이유들을 핑계삼아 작디작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평가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지 않으려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일하고 계셨고 지금도 일하고 계시고 앞으로도 일하고 계실 겁니다. 어제도 계셨고, 오늘도 계시며, 이제 곧 다시 오실 우리 왕이십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의 일하심을 듣고 볼 수 있는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붙들고 믿음의 길을 걷는, 특별히 우리에게 주시는 복을 영원히 누리시는 주의 종들 우리 모두가 되시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윗을 세우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저녁에는, “우리 주 하나님” 함께 찬송하고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