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주장로성가단 인도(INDIA) 선교연주여행(23) 바라나시 근교의 사르나트(Sarnath) 사르나트는 바라나시 남쪽 12km 지점에 있는 녹야원(鹿野園 사슴동산)이라는 곳인데, 보드가야에서 직선거리로 2백km가 넘는 거리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정각(正覺)을 이룬 다음, 자신의 도반(道伴)이었던 다섯 명의 비구들을 찾아가서 최초로 설법하여 이들을 제자로 삼았다. 그래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은 부처님이 처음으로 법을 선포한 곳이고 또 다섯 고행자가 귀의한 곳이기 때문에 교법[法]과 승단[僧]의 탄생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곳이 탄생(誕生)한 룸비니와 성도(成道)하고 부처(覺者)가 된 보드가야(Bodh Gaya), 45년간 설법(說法)을 마치고 고향 근처의 당시 큰 나라의 도시인 코살라국의 스라바스티(사위성)로 가던 도중,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열반에 든 쿠시나가르의 땅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로 일컬어지며, 다메크탑(塔)을 비롯한 많은 불교 유적과 사원(寺院) ·박물관 등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 사르나트(녹야원 입구) 이곳 사르나트를 불교역사가 시작된 곳이라 한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후, 혼자만이 그 깨달음을 만끽하면서 전법포교하지 않았다면 불교란 종교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이 최초의 설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면서 사르나트를 불교 4대 성지에 포함시키고 있다. 초전법륜(初轉法輪) 붓다는 이곳 녹야원(鹿野苑)으로 와서 예전에 함께 수행했던 다섯 수행자들을 만나서 최초로 설법을 하였는데, 이 최초의 설법을 일반적으로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한다. 붓다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왕위를 계승하면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서 세계의 통치자가 되고, 출가를 하면 부처님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해탈의 길로 인도할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 자이나교 사원 초전법륜의 내용은 불교의 근본교리인 사성제(四聖諦)를 말한다. 고(苦), 집(集), 멸(滅), 도(道) 네 가지로 인생의 괴로움과 그 원인을 밝히고 그 원인을 없애고 열반을 증득하는 방법을 설해 놓은 것이다. 석가는 이 사성제 법문을 보여주고 권하고 체험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설했다 하여 삼전법륜(三轉法輪)이라 말하기도 한다. 시전(示轉), 권전(勸轉), 증전(證轉)이 삼전이다. 중도는 양 극단을 버린 즉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는 마음가짐이다. 고행을 계속하고 있었던 이들 다섯 비구에게 설한 중도란 고행과 쾌락이라는 양 극단을 버리고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었다. 사성제(사제(四諦)라고도 하며,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뜻이다.)는 이러한 중도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실천방법이다. 즉 고성제(苦聖諦), 집성제(集聖諦), 멸성제(滅聖諦), 도성제(道聖諦)가 그것이다. ▲ 수도원 터(Monastery) 이 사성제야 말로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이다. 부처님은 사성제를 몇 일에 걸쳐 다섯 비구에게 설했다고 전한다. 이윽고 한 비구가 먼저 깨달음을 얻었고, 부처님은 이를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은 이가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네 명의 비구들도 차례차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이로서 석가는 다섯 명의 제자를 얻은 것이며, 이는 곧 불교교단의 출발점이기도 하였다. 부처님과 다섯 비구들은 또 다시 깨달음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 각각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다마라지카 스투파(Dharmarajika Stupa)
다메크 스투파塔((Dhamekh sutupa) 사르나트의 상징이며 최초의 설법을 행한 기념으로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이탑은 2층 형식으로 ‘다르마 차크라 스투파’ 라고도 불리며, 지름이 28.5m이고, 높이가 33.5m로 된 거대한 원형탑이다. 단조롭고 둔탁하면서도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모양이 독특하다. 큰 돌과 벽돌로 만든 이탑의 하단은 ‘마우리아’ 양식으로 꾸며져 있고, 상단은 ‘굽타’양식으로 만들어졌다. 1층 외벽에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중간 중간 감실이 있어 불상이 모져져 있었는데 현재는 없어졌고 빈 감실만 남아 있다. 이 탑 안에서 1835년 영국인 컨닝햄이 법신게(法身偈)를 적은 5세기 말엽에서 6세기 초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증되는 석판을 발견했단다.
▲ 사르나트 발굴 현장도 다메크 스투파는 일부가 복원되어 있는데 진리를 보는 탑이라는 의미라고 하며 스투파의 의미는 ‘알’이라는 뜻이며 그 안에 사리를 모시는 것은 자궁과 같은 곳에 들어있는 사리가 깨어나서 부처님의 말씀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를 기원하기 위해서 스투파(탑)에 사리를 모신 것이라고 한다. ▲ 19C 말 '퍼시 브라운'이 그린 사원 복원도
아소카나무-Ashoka Tree(Polyalthia longifolia Sonn)봄을 상징하고 상서로은 나무로 알려져 있는 아소카 나무 아래에서 마야왕비로부터 부처가 탄생했다. 석가모니의 아버지는 석가족의 우두머리인 정반왕이었고, 어머니는 마야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석가모니는 BC 6세기~ BC 5세기에 석가족의 수도인 카필라바스투(현재 네팔의 룸비니,Lumbini,)에서 태어났다. 후대 아소카 왕이 세운 석가의 탄생을 기념한 비를 통해 석가의 탄생지가 밝혀졌다. 전설에 의하면 부인이 살라나무에 오른쪽 팔을 올려 가지를 붙잡았을 때, 그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석가모니가 탄생했다고 한다. 석가족의 토템인 살라나무 숲은 룸비니라는 지모신(地母神)을 받드는 곳이었으므로 출산의 장소로는 적격이었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는 것은 왕족 계급인 크샤트리아가 신의 양팔로부터 발생했다는 〈리그베다 Rigveda〉 이래의 전승과 관련되어, 석가모니가 크샤트리아 계급의 출신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이해되기도 한다. 아소카 석주(Ashoka Pillar) 아소카 석주는 기원전 250년경에 당시 북인도 대부분을 지배하였던 무라얀 왕국의 아소카왕에 의해 아소카 왕이 정복한 곳곳에 세운 돌기둥으로 높이는 12~15m 정도다. 석주 맨 위에 장식된 동물상은 무라얀 왕국 시절 예술 작품중 으뜸으로 머리 부분은 지혜와 용기의 상징인 사자가 4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네 방향을 바라보는 이 조각은 오늘날 인도의 화폐와 국기에 그려져 있는 인도의 상징물이다. 아소카왕은 인도역사에서 가장 많은 영토를 확장한 왕으로 수많은 정복전쟁을 통해서 아프카니스탄과 인도대륙의 대부분을 자신의 영토로 만들었던 왕이다. 아소카왕이 이 성스러운 지점을 순례하고서 많은 건조물을 세웠는데, 그 중에서도 기운찬 사자 네 마리를 새긴 대접받침(柱枓)의 석주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아쇼카왕이 건립한 석주에는 가끔씩 ‘법의 바퀴’가 등장한다. 또 최초의 설법을 표현하는 불상의 대좌 등에 법륜을 묘사하는 일이 많은 것은 이때 석존이 법의 바퀴를 굴렸다고 하는 전승에 의거한 것이다. 불상의 인계(印契, mudrā) 중에는 양 손가락을 서로 끼고 있는 설법인(說法印)이 있는데, 이것은 ‘법륜을 굴린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다.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이룬 석가모니 부처님은 240여 km 떨어진 바라나시 근교에 있는 사르나드 녹야원으로 걸어 와서 다섯 비구에게 성도후 처음으로 설법을 한다. 이를 초전법륜이라 한다. 부처님이 법을 설했던 곳은 다르마라지카 탑터이다. ▲ 메인 템플 설법장소 고고학박물관(考古學博物館)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은 ‘ㄷ’자형으로 되어 있고, 건물의 가운데 출입구가 있다. 건물로 들어서면 중정이 있고 좌우로 전시공간이 펼쳐진다. 좌측으로 가면 불교 문화유산을 볼 수 있고, 우측으로 가면 힌두교 문화유산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은 불교와 힌두교 전문 박물관으로 볼 수 있다. ▲▼ Archaeological museum Sarnath ‘사르나트 사자상’ 을 비롯하여 다양한 불교 미술품과 불상들이 눈길을 끈다. 1904년에 개관하여, 이 지방에서 출토된 쿠샨왕조 및 굽타왕조 시대의 불교 조각을 중심으로, BC 3세기∼12세기까지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소장품에 BC 3세기 마우리아 왕조 때 연마(硏磨)회색사암으로 만든 조각 '아소카왕 석주(石柱)의 사자 주두(柱頭)', 5세기 굽타 왕조 때 사암으로 만든 '초전법륜불좌상(初轉法輪佛坐像)' 등이 있다. 특히 네 마리의 사자상(獅子像)으로 된 주두는 인도 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마우리아기(期)에 속하는 가장 오래 된 유물이다. 사르나트 고고학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은 인도의 국장(national emblem/國章)인 사르나트 사자상 원본이 있다. ▲(좌)아소카석주(ashoka chakra lion,5세기 굽타시대), ▲(中)초전법륜상(Buddha), ▲(우)11세기에 만들어진 타라(Tara,티벳 불교 설화에 나오는 타라(Tara,多羅)보살이다. 아소카 석주의 네마리 사자상 발 아래 원통에는 네 마리 동물이 새겨져 있고, 그 동물 사이에 4개의 법륜이 있다. 여기서 네 마리 사자, 네 마리 동물, 네 바퀴는 4가지 성스런 진리 즉 4성제를 의미한다. 네 마리 동물은 코끼리, 말, 황소, 사자다. 이들은 불교와 힌두교에서 신성시하는 동물로 법륜을 굴리는 모습이다. 이들 조각 아래에는 아래쪽을 향한 연꽃 받침이 있다. 불교 용어로는 이를 복련(覆蓮)이라고 한다. 기단부를 포함한 사자상의 높이는 2.15m이다. 이것은 기원전 250년 경 아쇼카왕에 의해 만들어졌고,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서도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이것이 땅에 묻혔다가 1904년 말 외르텔에 의해 발굴되어 박물관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 잠발라 (Jambhala,과거불 (過去佛)과 바슈다라(Vasudhârâ,번영과 풍요의 보살)이다. ▲ 붓다의 첫 번째 설법 부조(Buddhas First Sermon at Sarnath),야끄샤(Yaksha)와 야끄시니(Yakshini)는 초목의 신이며, 다산성의 수호신이다, 자인교(Stele with 'yaksha-yakshini' couple and Jinas) ▲ 보살상 덮개 파라솔(좌)과 석가의 일생을 묘사한 조각(우) 왼쪽 두 개의 전시실에는 불교 문화유산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 중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기원 후 1세기 쿠샨왕조 때 붉은 사암으로 만든 파라솔(Chhatra)이다. 이것은 기둥에 고정시켜 보살상의 머리 부분을 덮는 일종의 양산으로, 광배처럼 보살상을 신성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지름이 3m나 되고, 가운데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이 있다. 평면을 크게 스물네 부분으로 나누고, 동식물과 연꽃 문양을 새겨 넣었다. 그중에서도 쌍어문, 화문, 당초문 등이 눈에 띈다. 파라솔 옆에는 같은 시대 만들어진 보살상이 있다. 소위 마투라 불상으로 불리는 것으로, 간다라 불상에 비해 인도적이다. 불상의 높이는 2.5m인데, 얼굴과 오른팔이 상당히 훼손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