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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이데올로기』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 발제문 2차[박재희 번역서 51~81쪽, 김대웅 번역서 63~87쪽]
Ⅱ
1. 인간의 실제적 해방을 위한 전제 조건들
• ‘인간의 현실적인 해방’이란 오직 현실 세계 내에서 그리고 현실적 수단-적절한 양과 질의 음식과 의복, 주택-의 획득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해방’이란 정신의 행위가 아니라 역사적인 행위이며, 해방은 공업, 상업, 농업, 교류 등의 발전 수준이라는 역사적 조건에 의해, 그리고 그것들의 각기 다른 발전 단계에 조응하면서 이루어진다.
증기기관 및 뮬 방적기의 출현으로 노예제가 해체되고, 농업 증산으로 농노제가 해소되었듯이 인간 해방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조건이 필요하다.
2. 포이어바하의 관조적이고 비일관적인 유물론
• 실천적 유물론자들은 현 세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즉, 기존의 사물들을 실천적으로 파악하고 실제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과제로 삼는데, 포이어바하에게서는 그러한 견해가 우연적인 것에 불과하며, 감성적 세계에 대해 단순한 관조적 태도를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그는 ‘현실적인 역사적 인간’ 대신에 ‘인간이란 것’을 말한다.
• 그런데 감성적 세계에 대한 관조에서 그의 의식 및 감정에 모순되는 사물들에 직면하게 되며, 특히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교란시키는 사물들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교란을 해결하기 위한 도피처로 그는 이중직관 즉, ‘언뜻 보기에 명백한 것’만을 간취하는 세속적 지각과 사물의 ‘참된 본질’을 간취하는 고차원적인 철학적 지각을 제시한다.
• 또한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감성적 세계가 예로부터 주어져 영원히 항상 같은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생산물이고 사회 상황의 생산물 곧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기 때문에 사물을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그대로 파악하게 되면, 모든 심오한 철학적 문제가 아주 단순한 하나의 경험적 사실에 그치고 만다.
포이어바하는 자연과학의 인식 지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순수’한 자연과학조차도 오로지 상업과 산업을 통해서 즉, 인간이 감성적 활동을 통해서만 자신의 목표와 연구 소재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다.
• 포이어바하는 인간 역시 ‘감각의 대상’임을 통찰하고 있지만, ‘감성적 활동’으로서 이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론과 사유의 영역에서만 인간이라는 대상을 이해할 뿐, 주어진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또한 실제로 존재하고 활동하는 인간에 도달하지 못하고, ‘인간’이라는 추상에서 멈추어 버렸으며, 다만 ‘현실적인, 개별적인, 육체적인 인간만을 감정적으로 인식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는 공산주의자들이 산업뿐만 아니라 사회구조를 변혁해야 할 필요성과 조건을 발견하는 바로 그곳에서, 곧바로 관념론으로 전락해 버린다.
3. 근원적인 역사 관계들, 혹은 기본적인 사회 활동 양태들: 생존 수단의 생산, 새로운 욕구의 생산, 인간의 재생산(가족), 사회적 교류, 의식
• 인간적 실존의 전제
① 첫 번째 전제 : 생존 수단의 생산
‘역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인간은 우선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의 생산, 물질적인 생활 자체의 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일체의 역사 이해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기본적인 사실을 그것의 모든 의미와 그것의 모든 관련 속에서 고찰하고, 그것에 정당한 의의를 부여하는 일이다.
② 두 번째 전제 : 새로운 욕구의 생산
생존 수단의 생산은 새로운 욕구를 유도해 낸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욕구의 창출이야말로 최초의 역사적 행위이다.
③ 세 번째 전제 : 인간의 재생산
자신들의 삶을 매일매일 재생산하는 인간은 자신들의 종족을 번식시킨다. 처음에는 유일한 사회적 관계였던 가족은 나중에 증대된 욕구들이 새로운 사회 관계를 낳고, 증가된 인구가 새로운 욕구를 낳으면서 종속적인 위치로 떨어졌다.
• 사회적 활동의 세 가지 양태는 각각 개별적인 세 가지 단계가 아니라, 역사상에 엄연하게 존재하는 세 가지 계기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최초의 인류 이래 동시에 존재해 왔으며,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역사상에 엄연하게 존재하는 세 가지 계기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노동을 통한 자기 삶의 생산과 생식을 통한 새 생명의 생산은 자연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포함한 이중의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사회적이라 함은 어떤 조건, 어떤 방식, 어떤 목적으로 하든지 간에 여러 개개인들의 협업이라는 의미에서이다.
•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특정한 생산양식 또는 산업 단계는 언제나 특정한 협업 양식 또는 사회 발전 단계와 결합되어 있으며, 그리고 이 노동 협업 양식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생산력’이라는 사실, 그리고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여러 생산력들의 총합이야말로 곧 사회의 상태를 결정한다는 사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는 항상 산업 및 교환의 역사와 관련지어서 연구되고 서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④ 네 번째 전제 : 인간 상호 간의 유물론적 관계
• 인간의 욕구와 생산양식에 의해 규정되는 인간 상호 간의 유물론적 관계는 예로부터 존재해 왔고, 항상 새로운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을 특별히 결속시킨다는 그 어떠한 정치적인 혹은 종교적인 넌센스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하나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근원적인 역사 관계들의 네 가지 측면들을 고찰한 뒤라야 비로소 인간이 ‘의식’ 또한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⑤ 다섯 번째 전제 : 의식
• 그런데 ‘의식’은 ‘순수한’ 존재는 아니고, ‘운동하는 공기층=음성’이라는 ‘물질’인 ‘언어’ 형태로 표상(表象)화된다. 언어란 의식만큼이나 오래 전부터 있어온 것이며, 언어란 타인에 대해 존재하는,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해서도 또한 존재하는 즉,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의식을 표상한다. 결국 언어로 표현되는 의식이란 바로 그 첫 순간부터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며, 무릇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언제나 그러하다.
의식은 처음에는 단지 인접한 감성적 주위 환경에 대한 의식과, 자아를 인식하기 시작한 개인이 자기 외부에 존재하는 타인들 및 사물들과의 제한된 관계에 대해 갖는 의식에 불과했다. 인식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은 낯설고 전지전능하고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그에 대해 인간은 동물적으로 행동하며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순간에 인간은 자기 주위의 개인들과 연합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자신은 사회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 맹아적 의식은 동물적인 것으로 단순한 무리의식에 불과한 것이었다. 여기서 인간을 양(羊)과 구별짓는 것은 단지 인간에게는 의식이 본능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 혹은 인간의 본능은 하나의 ‘의식된 본능’이라는 사실뿐이었다.
• 이러한 무리의식은 생산성 상승, 욕구 증대, 인구 증가를 통해 더욱 발전되고 확장되며, 이와 더불어 노동 분업이 발전한다. 분업은 최초에는 성적 차이에 의한 분업에 불과했으나, 그 다음에는 자연적 소질[체력 등], 욕구, 우연 등등에 의해 저절로 또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노동 분업이었다.
진정한 분업은 육체적 노동과 정신적 노동의 분화가 나타난 순간부터였는데, 이 순간부터 의식은 자신을 현행 실천에 대한 의식이 아닌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자신을 현실 세계로부터 해방된 위치에 올려놓고, ‘순수’ 이론, 신학, 철학, 도덕 등등을 계속 만들어 내게 된다.
• 그러나 설령 이러한 이론, 신학, 철학, 도덕 등이 현존하는 관계와 모순되더라도, 이것은 오로지 현존의 사회관계가 현존의 생산력과 모순될 때만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사태는 한 국가의 국민적 의식과 일반적 의식[세계적 의식] 사이에 야기될 때 일어날 수 있다.
나아가 의식이 스스로 무엇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다. 왜냐면 분업이 시작되면서 정신적 활동과 육체적 활동, 향유와 노동, 생산과 소비가 이 모든 것들과 전혀 무관한 개인들 몫으로 돌아갈 가능성, 아니 그러한 현실성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세 가지 계기, 곧 생산력·사회상태·의식은 모순에 빠질 수 있고, 또 반드시 빠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들이 모순에 빠지지 않게 될 유일한 가능성은 분업을 재차 지양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4. 노동의 사회적 분업과 그 귀결: 사유재산, 국가 및 '소외된' 사회 활동
• ① 노동 분업은 노동과 노동생산물에 대해 양적·질적으로 불평등한 분배를 내포하고 있으며, 처와 자식이 남편의 노예인 가족에게서 이미 그 최초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 ‘소유’ 역시 내포하고 있다. 가족 내에서의 잠재적 노예제는 최초의 ‘소유형태’였으며, 이 단계에서의 소유는, ‘타인의 노동력을 자기 뜻대로 처분할 수 있는 힘’이라고 한 근대 경제학자들의 정의와도 완전히 일치하고 있었다. 결국 분업과 사적 소유는 동일한 표현이다. 결국 노동 분업과 사유재산제는 동일한 것에 대한 다른 표현방식일 뿐이다. 즉 똑같은 것이 한편에서는 그 ‘활동’에 관하여, 다른 한편에서는 그 ‘활동의 산물’에 관하여 일컬어지고 있는 것이다.
• ② 또한 각 개인 또는 한 가족의 이익과, 서로 교류하고 있는 모든 개인들이 갖는 공동 이익의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 공동 이익이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현실 속에서 서로 노동 분업을 행하고 있는 여러 개개인들 간의 상호 의존 관계로 존재하고 있는데, 그것은 ‘국가’라고 하는 독자적인 형태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국가’는 계급을 존립 기반으로 하는 조직인데, 이때 계급은 이미 노동 분업 속에서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모든 인간 집단을 분열시키며, 그중 하나의 집단이 다른 모두를 지배한다.
따라서 국가 내부에서의 온갖 투쟁들 즉, 귀족제나 군주제, 민주주의 사이의 투쟁, 참정권을 쟁취하려는 투쟁 등등은 단지 환상적인 형태들에 지나지 않으며, 그 환상적 형태 속에서 실제 진행되고 있는 것은 각기 다른 계급들 간이 현실적 투쟁이다. 그러므로 지배권을 획득하려고 하는 그 모든 계급은 무엇보다고 먼저 정치권력을 장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 ③ 노동 분업은 인간이 자연적으로 진화된 사회에 살고있는 한, 즉 특수 이익과 공동 이익 간의 분열이 존재하는 한, 그래서 활동이 자유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행해지고, 또 활동이 분화되어 있는 한, 인간 자신의 활동은 그 인간에 대한 적대적인 하나의 소외된 힘으로 되게 마련이며, 인간은 이 힘을 지배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힘의 노예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에 비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도 하나의 배타적인 활동 영역을 갖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그가 원하는 분야에서 자신을 수양할 수가 있다.
5. 공산주의의 물질적 전제 및 생산력 발전
• 노동 분업으로 인한 ‘소외’에 대항하여 인간이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될 힘으로 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를 전제로 한다.
① 반드시 광범한 대중을 완전한 ‘무산자’ 상태에 처하게 함
② 그들로 하여금 현존하는 부(副) 그리고 문명 세계와 모순에 처하게 되는 상태로 빠지게 하는 것.
위의 두 가지는 다시 ‘생산력의 고도의 발전 수준’을 다시 그 전제로 한다. 그 이유로 첫째는, 생산력 발전 없이는 단지 궁핍만이 일반화될 뿐이고, 따라서 궁핍과 함께 필수품을 둘러싼 투쟁이 시작되지 않을 수 없어, 온갖 해묵은 더러운 일들이 다시 발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생산력의 세계적 발전과 함께 비로소 인간이 보편적 교류가 확립되고, 따라서 한편으로는 ‘무산자’ 대중이라는 현상을 모든 국가 속에서 만들어 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 국가는 다른 국가의 혁명적 변화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결국에는 지역적으로 국한된 개개인들을 세계사적이며 동시에 경험적으로도 보편적인 개인들로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6. 유물론적 역사관의 결론들: 연속적 과정으로서의 역사, 역사의 세계사로의 발전, 공산주의 혁명의 필요성
• 역사란 각 세대가 물려받은 활동을 완전히 달라진 환경 밑에서 계속 수행해 나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완전히 달라진 새로운 활동에 맞춰 기존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작용하는 개개의 영역이 더욱 확장되면 될수록, 또한 발달한 생산양식과 교류, 그리고 그 결과로 여러 국가들 사이에서 자연성장적으로 전개되는 노동 분업 등에 의해 각 국가의 본래의 고립성이 파괴되면 될수록, 그만큼 역사는 세계사로 되어간다. 이처럼 역사의 세계사로의 전환은 물질적이고 경험적으로 확인 가능한 행위이다.
• 분명한 것은 개인의 현실적인 정신적 부(富)야말로 전적으로 자신의 현실적 관계들의 부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오직 이것만이 각 개인을 온갖 국가적, 지역적 한계들로부터 해방시켜, 그들로 하여금 전 세계의 생산물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도록 해 준다. 개인들의 다양한 활동들의 세계사적 협동 형태는, 저 공산주의 혁명에 의해 인간 상호 간의 작용에서 생겨났지만 지금까지 완전히 낯선 힘으로서 그들을 억압하고 지배해 왔던 힘들에 대한 통제와 의식적 지배로 전환될 것이다.
• 유물론적 역사관으로부터 얻은 결론
① 생산력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단계가 도래하는데, 그때 생산력 및 교류 수단이 생산적이지 못한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함으로써 하나의 계급이 부상하게 되는데, 이 계급으로부터 근본적인 혁명의 필연성에 대한 의식 즉, 공산주의 의식이 발생된다.
② 어느 특정한 생산력의 활용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란 곧 사회의 어느 특정한 계급의 지배를 가능하게 해 주는 조건으로, 그 계급의 사회적인 힘은 그 각각의 국가 형태 속에서 ’실천적‘-관념적으로 표현되는데, 따라서 모든 혁명 투쟁은 그 당시까지 권력을 지녀온 계급에 대항하여 수행된다.
③ 지금까지의 모든 혁명은 활동의 양식은 변화시키지 않은 채, 단지 그 활동의 새로운 분배만을, 즉 다른 사람들에게 노동을 새롭게 분배하는 것만을 문제로 삼아 왔는데, 공산주의 혁명은 지금까지의 ’생산 양식‘에 반대하며 ’노동‘을 없애 버리고 온갖 계급의 지배와 더불어 그 계급들 자체를 없애 버린다.
④ 이러한 공산주의 의식이 대규모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도, 또한 그 목적 자체의 승리를 위해서도 광범위한 인간 변혁이 필요한데, 이 변혁은 오로지 실천적인 운동 즉 ’혁명‘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8. 관념론적 역사관 일반, 특히 헤겔 이후 독일 철학의 비일관성
• 기존의 모든 역사관은 실제적 토대를 완전히 무시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역사 밖에 있는 기준에 따라 서술되고, 초현세적인 것들이 역사적인 것으로 제시되었다. 또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 역시 역사로부터 배제되었으며, 그럼으로써 자연과 역사 간의 대립이 설정되었다.
• 독일인들은 ’순수정신의 영역 속에서 방황하면서 종교적 현상을 역사의 추진력으로 만들어 버린다. 관념론적 역사관은 종교적 인간을 모든 역사의 출발점인 원형적 인간으로 가정하면서, 자신들의 상상에 의해, 생활 수단 및 생활 자체의 현실적 생산의 자리에 종교적인 공상의 생산을 가져다 놓았다.
9. 관념론적 역사관과 포이어바하의 의사(擬似) 공산주의
• 포이어바하는 특정한 혁명적 당파의 소속한 공산주의자의 관심이 기존 사물 질서를 뒤엎는 데 있다는 것을 도외시하고, 단지 현존하는 사실에 관한 올바른 인식만을 만들어 내고자 할 뿐이다. 그는 하나의 사물 혹은 한 인간의 존재는 동시에 그 사물 혹은 인간의 본질이라고 여기며, 동물 혹은 인간 개개인의 특정한 생존 혹은 생활 양식 및 활동 속에서 동물이나 인간 개개인의 ‘본질’은 만족을 느낀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