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이념이 다르고 정책도 다른 정당이 한 지붕 아래 머리를 맞대고 살면서 섶을 풀어놓고 얘기꽃을 피워 어우렁더우렁 빚어가는 독일 정치는 한국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손에 꼽는 몇 되지 않는 정치숲이다. 서로 엇나가는 여러 정당이 한 정부 안에서 머리를 맞대고 엇갈리는 이해를 녹여 빚은 결이야말로 우리가 가닿으려는 곳이 아닐까.
| | | ▲ 독일 사람들이 무티Mutti(엄마)라 부르는 메르켈 총리 |
독일 사람들 엄마(무티Mutti)
앙겔라 메르켈Angela Dorothea Merkel(1954-) 독일 총리에게 늘 붙어 다니는 외마디 낱말이 있다. ‘첫’ 2005년 독일 첫 여성 총리이자, 첫 동독 출신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은 독일 역사에서 가장 어린 총리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런데 메르켈 총리는 지난 9월 22일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 기독교민주당과 기독교사회당 연합인 기민련이 승리를 거두면서 세 차례나 연임을 하게 됐다. 이로써 메르켈은 콘라트 아데나워, 헬무트 콜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지나고 나서 세 차례 연임을 이룬 세 번째 독일 총리가 됐다. 2017년 별 탈 없이 임기를 마치고 나면 메르켈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킨 여성 총리로 자리매김한다.
메르켈은 1989년 동독민주화운동단체 ‘민주개혁(Demokratischer Aufbruch)’에 뛰어들면서 정치에 발을 내디뎠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된 뒤 민주개혁이 기독교민주당과 합쳐져 메르켈이 기민당원이 되면서부터 ‘첫’이 따라붙었다. 1991년 가장 어린 여성·청소년부 장관, 1998년 첫 여성 기민당 사무총장, 2000년 첫 여성 기민당 당수가 됐다. 통일 주역 헬무트 콜 전 총리는 ‘마인 메트헨Mein Madchen(내 소녀)’이라고 부르며 메르켈을 아꼈다. 그런데 묘하게도 메르켈은 저를 그토록 아끼던 헬무트 콜 총리 잘못 때문에 위기관리 능력이 석류가 벌어지듯 터져 나온다. 콜이 법을 피해 정치자금을 모은 사실이 드러나자 메르켈은 독일 신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기민당에 큰 피해를 줬다’면서 콜이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꼬집었다. ‘친아버지를 죽였다’고 비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메르켈은 나라 사람들에게 크나큰 믿음을 안겨줬다.
메르켈이 세 차례나 연임할 수 있는 비결은 어디 있을까? 총리 재임 동안 메르켈은 좋아하는 정치인을 묻는 이런저런 여론조사에서 한결같은 인기를 누렸다. 독일이 통일한 뒤 가장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정치인으로 손꼽힐 만큼. 그러나 올해 초까지만 해도 메르켈 3선에 붉은 신호가 켜지지 않았느냐는 소리가 잦아들지 않았다. 메르켈 소속 정당인 기민당 인기가 메르켈 인기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일 정당정치 특성으로 보아 총리 인기만으로는 3선을 장담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독일 정치 전문가들은 지난 1월 20일 치른 니더작센 주 의회 선거 결과를 메르켈이 3선을 가늠하는 풍향계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민련이 사민당과 녹색당으로 구성된 좌파 연합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래서 만만치 않으리라 여겼던 총선 고비를 무난히 넘어서며 승리를 거머쥔 메르켈. 온 세계 사람들 눈길은 독일 국민이 메르켈을 다시 고른 까닭에 쏠렸다. 해외 언론들은 메르켈이 유로존 위기 속에서도 독일을 유럽 강자로 일으켜 세운 점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당 김현미 의원은 메르켈 당선을 가리켜 “우파 승리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면서 사회를 보듬는 시장경제라는 ‘새 비전’을 실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사 주간지 <시사인>은 독일 총선에서 시장이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했던 자유민주당은 의회에 발도 디디지도 못하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며 김현미 의원 말에 힘을 실어줬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메르켈은 카리스마 없이도 얼마든지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는 지도자다”라 했다. 사민당은 말 할 것도 없이 녹색당 이슈와 공약까지도 제 것으로 되새김질해 내놓는데 주저하지 않을 만큼 귀가 열려 있고 널찍한 품을 가진 소탈한 리더십 때문이다. 속옷 회사 광고에 기꺼이 나올 만큼 누구에게나 다사로이 다가서는 메르켈을 가리켜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유럽이 불안하기에 유권자들이 ‘넉넉하고 너그러운 품’을 바란다는 걸 메르켈처럼 꿰뚫어 읽은 정치인은 없다”라고 적바림했다.
| | | ▲ 총선에 승리 3선을 확정하고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답하는 메르켈 |
일관성을 내려놓은 까닭은
정파에 얽매이지도 균형을 잃지도 않는 바람직한 총리라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메르켈이 인기몰이를 하는 포퓰리즘 공약도 내걸지 않고 야당 어젠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바람에 야당이 맥을 추지 못한다. 이번 총선을 석 달 앞두고 사민당과 녹색당이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고 나섰다. 그런데 기민당은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는데 반대했다. 이때 메르켈은 부자 세금을 늘리지 않는 틀은 지키되 임대료를 더 받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고, 전에 없던 최저임금제를 받아들여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아동수당 올리는 야당 정책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야당 칼끝을 무디게 만들었다. 2005년 처음 총리가 됐을 때 메르켈은 첫 의회 연설에서 “슈뢰더가 개혁을 추진하는 과단성 있는 용기를 지녔다”라고 추켜세우며 사민당 출신 슈뢰더 전 총리가 하던 대로 복지를 줄이고 고용유연성을 늘리는 정책을 이어갔다.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이 적장 칼을 내 칼처럼 잘 쓰는 메르켈은 2008년 “핵발전소 없이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어렵다”며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막자’는 사민당 얘기에 손사래 쳤다. 그러나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터지자 “핵에너지를 보는 눈길을 바꿨다”며 사태가 일어난 지 사흘 만인 2011년 3월 15일, 1980년보다 앞서 세운 핵발전소 7기를 잠깐 문을 닫는다고 했다. 평소 지나치게 신중해 카리스마가 없는 것이 카리스마라는 소리를 듣던 메르켈답지 않게 발 빠른 발표에 독일 국민 열에 일곱은 ‘지방선거 때문에 꼼수를 부린다.’고 비아냥댔다. 그러나 메르켈 정부는 바로 그달 말, ‘안전에너지공급윤리위원회’를 구성해 9주 동안 연구해 보고하도록 했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메르켈 총리는 “독일 핵발전소 17기를 2022년까지 모두 없애겠다.”고 했다. 언제나 나라 사람을 중심에 두어 통치가 아닌 정치를 하려는 메르켈을 독일 사람들은 ‘무티Mutti(엄마)’라 부른다.
이 말을 들으면서 자연스레 마하트마 간디 말씀이 떠올랐다. “진리를 다루면서 많은 생각을 버려야 했고, 새로운 것들을 배웠다. 나이는 비록 많이 들었지만 성장이 멈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몸이 흩어진다고 해서 더는 넋이 자라지 않으리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나는 일관성을 지키려고 들지 않았다. 지난날 내가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얘기했던지 따지지 않고, 바로 이제 느끼는 얘기를 하면 된다고 믿는다. 날마다 눈은 더 맑아진다. 깊은 생각 끝에 문제를 바라보는 눈길이 바뀌면, 내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은 누구라도 바로 느낄 수 있도록 오롯이 겉으로 드러난다. 나는 내가 앞서 했던 말과 일관성을 지키려하기보다는 진리가 바로 그때 어떻게 모습을 드러내는가를 밝히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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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스님, 퍽~ 감명있게 읽었습니다
불법의 중도를 떠올렸습니다
메르켈은 주어진 상황속에서 시대적인 과제를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그 시대의 언어로 나라사람(불법)을 중심에 두는 정치를 구현해내는 지도자가 아닌가하는 견해를 가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