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화북(華北) 대평원과 북방의 산간지대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서 역사상에 등장하였다. 베이징은 처음에는‘계’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그 고대취락의 위치는 현재 루거우차오[蘆溝橋]가 있는 곳, 즉 예로부터 융딩강의 도하지점(渡河地點)이 되어왔던 곳에 인접한 지추라는 작은 언덕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생산력의 증대에 따라 평야지대와 산간지대 사이의 교통이 빈번해지자 그 교통로의 요충을 차지한 고대취락이 점차 발전하여, 주대(周代) 초에는 연(燕)나라의 도읍(都邑) 계성이 그곳에 조영되었다.
진(秦)/한(漢) 이후 당(唐)나라 말기에 이르는 기간에는 대체로 유주(幽州)의 치소(治所)로서 동북변방(東北邊方)의 정치/군사상의 요지가 되었다. 2차에 걸쳐 실패를 거듭한 한민족(漢民族)의 고구려(高句麗) 침략, 즉 수양제(隋煬帝)와 당태종(唐太宗)의 고구려 원정 때에는 다같이 계성을 그 원정의 전진기지로 삼았고, 당태종은 고구려에 패한 뒤 전몰장사(戰歿將士)의 넋을 애도하여 민충사(憫忠寺:지금의 베이징 외성에 있는 法源寺의 전신)를 건립하였다.
오대(五代)에 이르러 요(遼)나라는 938년에 이곳을 부도(副都)로 삼아 남경(南京)이라 하고, 요나라를 물리친 금(金)나라는 처음 연경(燕京)으로 부르다가 1153년에 이곳으로 천도하여 중도(中都)라고 고쳤다.
다시 몽골족이 남하하여 중도성(中都城)을 빼앗은 뒤 쿠빌라이(世祖) 때에 신성(新城)을 건설하고 국도로 정하여 대도(大都)라고 명명하였다.
몽골족이 중국을 통일하여 원(元)나라를 세우자 대도는 중국 전역을 지배하는 정치중심지가 되었고, 마르코 폴로는 칸발릭(Khanbalik)이라는 도시명으로 그 호화로운 번영상을 기록하고 있다. 명대(明代)에는 처음 국도를 지금의 난징[南京]에 두었다가 1420년에 영락제(永樂帝)가 이곳을 국도로 정하고 북경(北京)이라 하였는데, 베이징이라는 명칭은 이때에 비롯되었다.
명대에는 남문(南門) 밖에 외성(外城)을 구축하고 북부의 성역(城域)을 대도 때보다 축소하여 내성(內城)이라 불렀는데, 그 내/외성이 지금의 베이징성의 규모를 이루고 있다.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淸)나라도 1644년 이후 멸망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국도로 하였는데, 만주족과 한민족의 거주지역을 구분하여 내성에 만주족, 외성에 한민족을 살게 하였다.
중화민국(中華民國) 시대에도 계속 이곳을 국도로 삼았으나 북벌(北伐) 완성 뒤 난징으로 천도하여, 이곳을 베이핑[北平]으로 개칭하였다.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다시 그 수도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모두 아는바와 같이 2008년 제29회 하계올림픽 경기대회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경제 종래 스징산 제철소의 중공업 외에 소비재공업이 활발하였으나, 역시 소비도시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공산정권 수립 후 계획경제가 실시되어, 시역(市域) 서부에 종전의 스징산 제철소 및 징시탄전[京西炭田]을 바탕으로 대규모 철강콤비나트가 형성되고, 동부/북동부/남부에도 새로운 공업지대가 형성되어 기계/전자제품/철도차량/전기기기/합성섬유/플라스틱 등 중화학공업, 면방직/모방직/식품 분야로 발전하였다. 경태람(景泰藍:七寶)/옥기(玉器)/상아조각(象牙彫刻)/칠기 등 전통 수공예공업도 이루어진다. 징시탄전은 매장량 20억t의 풍부한 무연탄전으로, 스징산에는 그 무연탄을 연료로 하는 화력발전소가 있고, 또 융딩강 상류의 관팅댐 외에도 차오바이강 상류의 미윈댐, 원위강[溫楡河] 상류의 스싼링[十三陵]댐·화이러우[懷柔]댐 등 다목적댐 축조에 의해 건설된 발전소에서도 전력이 공급되고 있다.
교통 주요 간선철도의 기점이 되어, 그들 철도에 의해 티베트/윈난성[雲南省]을 제외한 모든 성(省)/자치구의 중심지와 연결되어 있다.
베이징을 기점으로 산하이관[山海關]/광저우[廣州]/바오터우[包頭]/청더[承德]/퉁저우[通州]/상하이[上海] 등지로 철도가 방사상으로 뻗어 있다. 한편 모스크바/울란바토르/평양(平壤)/하노이 등지에 이르는 국제열차가 있고, 둥청구 남동쪽에 1956년에 새로운 베이징역(驛)이 건설되었다.
공항은 시가지 북동쪽 50km 거리의 순이현에 있으며 국내선과 국제선이 열려 있다. 베이징의 외항인 톈진신강[天津新港]에서 중국의 연안 각성(各省) 및 아시아/유럽 제국과 해상교통이 열려 있다. 시내교통은 주로 트롤리버스와 버스에 의존하고 있는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1970년에는 전장 23km의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학술 중국 최대의 학술/문화 중심지이다. 중국과학원의 각 연구소를 비롯하여, 베이징대학교/칭화[淸華]대학교/베이징사범대학/중국인민대학/중국민족학원 등 20여 개의 대학/전문학교가 있다.
또 전국 최대 규모의 베이징도서관/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 및 민족문화궁(民族文化宮)/혁명박물관/역사박물관/중국인민혁명군사박물관 등 문화시설이 많다. 고궁박물원은 옛 명(明)/청(淸)나라의 왕궁이었던 자금성(紫禁城)을 박물관으로 전용(轉用)한 것이고,
역사박물관/혁명박물관은 톈안먼[天安門] 앞 광장 동쪽에 1959년에 완공한 건물로, 같은해에 그 맞은편의 광장 서쪽에 건립한 인민대회당(人民大會堂:국회의사당) 등과 더불어 중국이 자랑하는 10대 건축에 포함된다.
고도(古都) 1000년의 역사를 가지는 고도(古都)인 만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명승·고적이 시역 안에 산재한다. 성구(城區)의 중심을 이루는 옛 왕궁 자금성은 현재 박물관이 되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고궁 안의 여러 전(殿)·당(堂)·궁(宮) 등이 진열실로 이용되어, 중국 역대의 채도(彩陶)/청동기/칠기/직물/조각/회화 등 예술품을 진열하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그 문루에서 1949년 10월 1일 중공정권의 수립을 선언하였고, 또 1966년에는 홍위병(紅衛兵)을 열병한 바 있다. 외성 안 남동부에는 본래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는 장소였던 톈단[天壇]이 있는데, 현재는 공원으로 체육장, 기타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성내 북동쪽에는 현재 수도(首都) 도서관으로 이용되는 국자감(國子監) 및 공자묘(孔子廟)/융허궁[雍和宮:라마교 사원] 등이 있다. 이허위안[和園]·샹산[香山]공원·워포절[臥佛寺] 등은 특히 수려한 경치로 알려져 있고, 또 명(明)나라의 스싼링과 지하궁전도 유명하다. 북방의 만리장성(萬里長城)과 쥐융관[居庸關]·팔달령[八達嶺] 등의 유적지도 시역에 위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