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소식이다. 지난주 지리산둘레길을 함께 걸었던 허병영선배께서 사고(감전사)로
별세하였다. 일주일 전에 같이 웃었던 분이 고인이 되다니.....
아침엔 날이 흐렸다. 내일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예보라면 하루내내 흐리겠다.
오후엔 날이 맑아진다. 아쉬움이 드는 토요일이다.
집을 나왔다. 해반천이라도 걸으려고.
오랜만에 임호산으로 향했다.
조박사냉면, 아들 한솔이가 냉면을 좋아한다. 나를 닮아서 음식을 가리는 것은 없다.
열살무렵부터 이곳에 자주 와서 냉면을 먹었다. 육수가 좋다. 다른 집보다 이 집을 선호하였다.
이제 스물한살, 3월13일 입대를 한다.

1~2년만에 오는건가? 작은골에 텃밭이 여럿 있었는데 이렇게 전원단지가 조성되었다.
바라보는 방향은 서쪽이다. 남향으로 집을 지으려면 가로로 놓여진 땅의 활용도가 떨어진다.
서쪽으로 지으면 보이는 것은 아파트뿐이다. 그렇게 좋은 터는 아닌 것 같다.

함박산 아래, 산중턱에 운동시설이 있다. 잠시 근력운동을 하고 함박산으로.

167m 함박산 정상, 내가 사는 곳에서 함박산과 임호산, 그 능선이 훤히 보인다.

보이는 봉우리가 임호산이다.

김해평야,,,사진 가운데 저 멀리가 아마 부산 다대포일거다.

사진 한장, 셀카~!

함박산에서 임호산까지 10여분 걸릴까? 임호산은 몇 m일까? 아마 함박산과 비슷하겠다.
임호산(林虎山). 이름만 봐서는 이곳 수풀이 우거지고 호랑이가 출몰하였던 것 같다.
산 아래 흥부암의 안내판에는 호랑이 닮아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되어 있다.
임호산은 유민산, 가조산, 호구산(虎口山), 안민산(安民山), 봉명산(鳳鳴山), 임어산(林魚山),
악산(岳山)이란 별칭이 가지고 있단다.
한자는 내가 임의로 붙였다. 호랑이를 닮았다고 하니 호구, 이 산이 마을사람들을 평안하게 하여
준다고 했으니 안민, 봉명은 호랑이와 봉황은 같은 의미이니까. 봉명초,중학교가 김해에 있다.
임어는 신어(神魚)산에서 유추하였다. 악산은 임호산 정상 부분이 바위이다.
흥부암도 절벽 아래 지어져 있다. 아주 옛날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지 않았을까?
파사석탑과 함께 배를 타고 온 허황옥의 역사를 생각하면.

2008년 농협에서 지어 기부한 정자, 임호정이다.

내가 1989년 김해에 왔을 땐 이 아파트단지가 논이었다.
1990년경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기억되어진다. 뜨란채아파트 314동 15층은 내가 사는 곳.
경운산도 자주 간다. 군부대가 있었던 삼계동도 모두 아파트단지가 되었다.
내가 김해읍을 처음 왔던 것이 1985년경이었을 것이다.
보수교회 어느 장로님께서 김해중앙교회 목사님 따님과 선 보라고 하여서.
장로님, 모친하고 일요일 오후 김해로 왔다. 담임목사는 만났지만 나는 그 딸을 만나지 못했다.
엄청난 모욕감을 느꼈다. 김해에 살면서 나는 이 교회에 대한 지독한 불쾌함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 목사님의 태도나 그 딸의 태도는 오만방자한 것이고 이것이 나로하여금 기독교인과 목사에 대한
반감에 도움을 주었다. 지금도 김해중앙교회에 대해서는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얼마전 대형건물을 지어서 이전하였다. 100여년된 건물은 없어지고 그 부지는 팔은 것 같다.
그때는 김해군 김해읍이었는데 김해시로 언제 승격되었지?


분성산성 아래와 김해 남산 주위가 예전 읍의 중심지였다.



흥부암(興府庵). 흥부전의 흥부가 아니다. 마을을 흥하게한 절이라고 한다.
범어사 말사이다.
안내판엔 서기 14년에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지만 기록엔 없다.
이 땅에 불교가 언제 전래되었는지 학술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내가 교과서에서 배우기로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서기 372년) 중국의 승려 순도(順道)로부터.
가야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식민사관에 따른 것이 아닐까?
인도에서 온 허황옥의 오빠 허보옥(장유화상)이 불교를 전래하였다고 인정하면 우리나라 역사는
바뀐다. 김해시 장유면도 이 장유화상과 연계되어 있다.
지리산 칠불사도 이와 연계되어 있다. 어쩌면 이 땅에 불교가 언제 전파되었는지 정확히 모른다.
다만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소수림왕 2년으로 보는 것이다. 요즘 가야국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지고 있다. 고고학적 물건들도 다수 발견되고 있다.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던 가야사가 밝혀진다면
우리나라 역사서는 다시 써야한다. 주체적 시각에서.

대웅전 머리에 절벽이 있다.

18세기 제작된 석조(石造)불상에 금박을 입혔다. 주불이 아닌 협시불로 보인다고 한다.

산령각(山靈閣)과 영산전, 범종이 있다. 범종은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절벽 아래라 불사를 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아침에 해가 들고나면 오후내내 볕이 들지 않는다.
산 아래서 보면 그런대로 운치는 있는 곳이다.

오후2시경 집을 나와서 함박산, 임호산을 돌고 신세계백화점으로 갔다.
이곳에 들어선지 2년이 넘은 것 같은데 나는 처음으로 와본다. 이마트도 같이 있다.
백화점 자체를 아주 오랜만에 온 것 같다.
6시에 한솔이와 약속하였지만 1시간 당겼다. 기름에 튀긴 통닭 한마리와 500cc 맥주 한잔.
3월13일 군입대를 축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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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군 고금도면/고금도에서 본 장보고대교.
장보고대교는 고금도와 신지도를 잇는 다리로 2017년12월 완공되었다.
김해서 승용차로 완도항을 가려면 강진, 장보고대교, 신지대교로 가면 빠를 것 같다.

신지도와 고금도를 오갔던 배의 선착장, 상정리(고금도)에서 본 일몰. 해가 지는 방향은 완도읍.

장보고대교 위에 달이 떴다. 음력1월12일이다.

장보고대교, 건너 보이는 곳이 신지도(완도군 신지면)

신지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이곳 '신지명사십리해수욕장'이다.


신지도에서 본 장보고대교 야경

신지도 강독마을선착장에서 본 신지대교 야경.
신지대교는 완도읍과 신지도를 연결하는 연륙교로 오래 되었다.
10여년전 가족여행 왔을 때 신지대교가 있었으니까.

강독마을선착장에서 본 완도읍 야경

저 전망타워 아래가 완도항, 완도여객터미널이 있다.


2월28일, 해남 달마산을 가려는 계획은 강한 바람과 비로 체념.
해남 다산초당으로 갈까 했지만 비가 많이 온다. 꼼짝없이 차 안에 갇혔다.
완도읍 화흥포여객터미널.
소안도 가는 배는 대한호, 민국호, 만세호가 있다고 한다.
올해는 꼭 소안도(소안면), 노화도(노화읍), 보길도(보길면)를 가야겠다.
화흥포에서 승용차를 싣고 소안도로. 소안도에서 배로 노화도로. 노화도와 보길도는 다리가 있다.
2박3일 일정으로. 노화도에서 완도나 해남으로 나가면 된다.

바다 건너편은 해남군이다.

오후에 비와 바람이 더거세져서 영화를 봤다. 블랙펜서.
6,000원인데 마지막주 수요일, 문화의날이라고 5,000원.
읍단위에 이런 영화관이 있다니 좋다.
작은영화관, 1, 2관이 있으며 내가 들어간 1관의 좌석수는 50개. 장애인석 포함.
나를 포함하여 5명이 영화관람을 하였지만 해남군이나 완도군에 사는 영화팬들은 이제
목포나 광주까지 않아도 된다. 사회적기업으로 자치단체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 같다.

오후8시쯤 되니 바람은 그대로이지만 비는 멎었다.
완도읍을 한바퀴 도는데 1시간 걸렸다.
음식거리....

야트막한 능선에 있는 집들...지금은 빈집이 많은 것 같다. 풍경의 느낌이 좋다.

신지도에서 본 장보고대교, 야경을 봤던 곳이다. 다리 건너 좌편이 고금도.

신지도는 길쭉하다. 방죽포항에서. 건너 보이는 섬은 약산도(완도군 약산면)
10여년전 가족여행 때는 완도대교를 통하여 들어왔다.
완도읍을 한바퀴 돌고 신지명사십리, 이곳 방죽포항까지.
다음날엔 해남 땅끝마을로 하여 진도로 하여 귀가하였다. 옛생각이 난다.


신지도 동고리에서 본 풍경

동고리, 동고리해수욕장. 명사십리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동고리에서 본 풍경,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섬은 생일도(완도군 생일면)



동고리에서 독고재에서 본 신지면 소재지. 좌는 명사십리해수욕장.



신지도에서 고금도로 넘어가는 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