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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인성교육을 위한 부모의 역할
장 진 호
톨스토이의 단편에 ‘세 가지의 의문’이라는 작품이 있다.
한 임금이 어느 날 문득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첫째, 모든 일에서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인가?
둘째, 일을 함에 있어서 어떤 인물이 가장 중요한 존재인가?
셋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왕은, 세상에 나오지 않고 산속에 숨어 있는 은자를 찾아가서 이 세 가지의 답을 구했다.
그러나 은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밭 가는 일만 계속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숲속에서 한 청년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달려오더니 왕의 앞에 쓰러지는 것이었다. 왕은 자신의 옷을 찢어서 그의 상처를 싸매 주고 정성껏 돌보았다. 뒤에 알고 보니, 그 청년은 왕에게 원한을 품고 왕을 죽이려고 숲속에 숨어 있다가, 왕의 호위병에게 발각되어 그런 상처를 입었던 것이었다.
임금은 다시 은자에게 세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구했더니, 그는 이미 해답은 나왔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알려 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며, 제일 중요한 존재는 자신이 대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대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여 선행을 베푸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나중에 더 좋은 학교에 가고 더 좋은 삶을 살도록 준비시키는 것은 좋지만, 그러한 생각 때문에 지금 이 순간순간들을 살아가는 데 더 소중한 무엇을 묻어버리고, 아이들을 허덕거리게 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이 이야기를 읽고 떠올리곤 한다, 나날이 대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용을 베풀면서, 폭 넓게 오늘을 살아가도록 도우지 않고, 자녀의 가슴을 메마르게 다그치는 부모는 없을까?
지금처럼 자식을 키우기 어려운 시대도 없었을 것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오늘처럼 부모 노릇하기가 어려운 때도 없었다는 말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을 올바르게 키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긴 마찬가지겠지만, 옛날에는 사회적 윤리관이나 가치가 자녀들을 자동적으로 제어하는 기능이 매우 커서, 부모 개개의 노력은 지금에 비하여 그만큼 적었다고도 볼 수 있다.
거기다가 오늘의 새 세대 부모들은 사회제도의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자녀 교육 특히 인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에 따라 ‘부모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생기고, 시중 서점에는 부모학에 관한 책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는 것은 이러한 시대 조류를 반영한 것인바, 그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 할 것이다.
부모는 이제 그냥 부모가 되는 시대가 아니다. 어떻게 부모 노릇을 해야 할지를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녀의 인성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사소한 몇 가지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1. 어머니가 아이의 성격을 결정한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드는 만 두 살까지 어머니의 건전한 사랑을 받은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 어린에겐 어머니의 젖꼭지가 전 우주이며, 어머니가 전 세계이다. 어머니가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신뢰감이 생기기도 하고 불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저명한 정신 의학자 이동식 박사는 이를 비유하여, ‘어머니는 좋으면 천사고 관세음보살이지만, 그의 보살핌이 좋지 못하면 아기를 잡아먹는 악마적 존재가 된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성격 결함이나 양육태도의 잘못이, 훗날 자녀의 정신적 질환을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고 한다. 요즈음 보도를 보면, 어린이의 장신장애가 늘고 잇는데, 그 대부분의 원인이 부모 특히 어머니의 과욕과 무관심에 있다고 한다.
가정 분위기의 중심은 대개 주부가 만드는 것이다. 한자(漢字)의 ‘편안할 안(安)’ 자가 여자가 집에 있는 것을 나타낸 것도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시대적 변화와 더불어, 여성의 역할이 증대됨에 따라 맞벌이 하는 가정이 많아진 것은, 사회 발전의 역동성을 높이는 면에서는 크게 환영할 일이지만, 어린이의 정서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문제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어머니의 보살핌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일수록 머리가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맥길대학 신경내분비학 교수인 마이클 미니 박사는, 어머니의 보살핌은 아기의 뇌에 잇는 신경 연결관을 자극해, 학습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유전자의 활동은 항상 환경의 영향을 받는데, 아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환경은 어머니라고 지적하였다.
요즈음 우리는 ‘아버지가 실종됐다.’느니 ‘아버지 부재시대’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가정에서 차지하는 아버지의 영향력이 약화되었음을 뜻하는 말인 듯하다. 이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제도가 사라지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어머니의 역할이 그 대신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어머니의 지나친 내주장적 주도권은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어머니의 역할은 수행하되, 아버지의 권위를 위축시키지 않는 조화로운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가정에서 어머니가 가정을 너무 휘두르기 때문에, 남자 아이는 이때 생긴 여성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어른이 되어도 25%는 동성애의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마음 약한 남자는 자기를 괴롭히거나 경멸하는 여자들에게서는 사랑할 파트너를 찾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여자를 혐오하고 미워하는 남자는 호모가 된다. 또한 여성을 공격하고 정복함으로써 남자로서의 자기를 확인하려고도 한다.
뉴욕의 성 폭력범들을 조사한 수사관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성적인 굶주림 때문에 여성을 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성을 무기로 하여 여성에게 복수하려는 목적에서 그러한 행위를 저지른다고 하였다. 그들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어머니나 누나, 혹은 주위의 여성에게 머리를 들지 못하고, 때로는 들볶이거나 위축되어 자란 사람은, 이 콤플렉스가 심해져 주변의 여성을 혐오하고, 나중에는 여성 모두를 미워하게 된다고 하였다.
모자라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화가 된다는 이치는, 어머니의 역할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2. 진정한 조기 교육은 태교부터다
인도의 살아 있는 성자라 일컬어지는 라즈니쉬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온갖 번뇌와 욕망에 의하여 태어났기 때문에, 이 세상을 지상낙원과 같은 행복한 곳으로 만들 수 없다고 단언하고, 앞으로의 세상을 그렇게 만들고자 한다면, 태아부터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인간의 성격과 지능 그리고 육체적인 조건들은, 이미 그 부모의 유전자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인데, 외부적인 태교가 뭐 그리 대단한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로 잘못된 생각이다.
한국교원대학교의 모 생물학 교수가, 갈매기를 기르는 과정을 비디오로 보여주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갈매기 알을 주워다가 부화기에 넣고 인공부화를 시키면서, 그 교수는 알에다 대고 ‘갈갈’ 하는 소리를 몇 차례 반복해서 들려주었는데, 그 후 알에서 깨어난 갈매기 새끼들이 ‘갈갈’ 하는 소리만 나면, 자기 어머니인 줄 알고 소리 나는 쪽으로 종종걸음을 치면서 모여드는 것이었다. 부화되기 전에 들었던 소리를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갈매기가 이러하니 사람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껍질이나 몸 밖이 아닌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가, 어머니의 모든 것을 알아듣고 기억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겠다.
우리는 교육의 중요성을 늘 외친다. 특히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언제부터가 조기교육인가? 태어난 후부터 시작하는 것은 벌써 늦다고 생각한다.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이 태교를 해야 한다. 좋은 국민이 좋은 나라를 만든다. 좋은 국민은 좋은 교육을 받을 때 이루어진다. 좋은 교육은 어머니의 태교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젊은 여성의 태교에 대한 인식 제고는 더없이 시급하다.
3.어머니는 동화 구연가가 되라
미국의 단편 작가 오 헨리의 작품에 ‘물레방아가 있는 교회’라는 작품이 있다.
주인공 스트롱 씨는 산골 오두막집에 살면서 물레방아를 돌리는 방아꾼이다. 이 방아꾼의 가장 큰 기쁨은 어린 딸 어글레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밀가루를 빻는 하루 일과를 마칠 때쯤이면, 방앗간으로 아빠를 맞으러 달려오는 어글레어를 덥석 안아 어깨에 얹고, 방아꾼의 노래를 부르면서 오두막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상치 않은 비극이 방아꾼에게 찾아온다. 행복의 전부였던 귀여운 어글레어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세월은 흘러 노인이 된 스트롱 씨는 어느 날 이 물레방앗간을 찾게 되는데, 여기서 우연히 한 처녀를 만난다.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딸을 목에다 얹고 불렀던, 옛날의 그 물레방아꾼의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꿈꾸는 사람처럼 노래를 듣고 있던 처녀가, 갑자기 ‘아빠, 어글레어를 집에 데려다 줘.’ 하면서, 어린 시절을 회상해 낸 것이다. 그리하여 스트롱은 꿈에도 그리던 잃었던 딸을 찾게 되었다.
이 작품의 이야기와 비슷한 예화는 무수히 많다. 숲속에 버려져 동물 속에서 자라나면서, 인간의 자질을 잃어버린 동물 소년이 훗날 사람들에게 잡혀서, 어린 시절 들었던 어머니의 자장가를 듣고 인간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릴 때 들은 말이나 노래는, 그의 마음속에 새겨져 곧바로 그의 마음이 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나 노래는 그대로 아이의 가슴에 각인되어 그의 인격이 된다. 이렇듯 어머니의 이야기는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은, 옛날처럼 할머니나 어머니의 얘기를 듣지 못하고 자란다. 텔레비전이나 책이 그 자리를 메워 줄 것이라 생각하고 미루어 버린다.
그러나 교육은 궁극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지 영상매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따스한 정성과 사랑이라는, 할머니 어머니의 음파를 매개로 하지 않는 이야기는, 가슴에 새겨지지 않는 공허한 물질적 전파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우리의 귀여운 자녀들에게, 가족을 아끼고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어 참다운 사람으로 키워야겠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여, 훌륭한 동화 구연가가 되라.
4. 자녀에게 음식을 맛있게 먹도록 하라
음식 먹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음식을 이것저것 가려먹거나, 조금씩 집어서 맛보듯이 먹는 사람은 틀림없이 성질이 까다로운 사람이다. 반면에 마른 반찬이나 국물 있는 것이나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잘 먹으며, 음식을 숟갈 가득 푹푹 담아서 먹는 사람은 대개가 성질이 무던한 사람이다.
음식 나무라면 복 나간다는 말이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음식 나무라지 않고 이것저것 잘 먹는 사람은 성격이 원만하니, 사람들이 잘 따를 것이요, 하는 일도 자연히 잘 될 것이니, 복을 스스로 짓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음식을 투정하면서 먹는 사람은 성질이 까다롭고 늘품이 없어서, 일이나 대인관계가 좋을 리 없으니, 어찌 유복해질 수 있겠는가?
음식 나무라는 것도 하나의 습관이다. 맛없다고 하는 투정이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는 사람은, 무슨 음식이든지 그쪽으로 평가를 하면서 타박을 하게 되는 법이다. 학교 급식을 자주 나무라는 어느 학모에게, ‘자녀의 육체적 영양보다 정신적 영양의 불균형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니, 돌아가서 자녀에게 남이 다 잘 먹는 밥이니 너도 그 밥 잘 먹으라며 지도하라.’고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어머니가 자녀의 말에 동조하여 자꾸 그렇게 응대하면, 그런 쪽으로 인성이 길러지게 되는 것을 경계하여 한 말이었다.
밖에 나와서 음식을 잘 나무라는 사람은, 자기 집에서는 진수성찬을 벌여 놓고 잘 먹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밖의 음식이 집에서 먹는 음식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인성이 잘못 길들여져, 무슨 음식이든지 그렇게 나무라기부터 먼저 하는 데 그 연유가 있는 것이다.
맛있게 먹는 사람과 같이 식사를 하면 따라서 맛이 나고, 맛없이 집적거리면서 걷어 올리는 같이 밥을 먹으면 덩달아 밥맛이 없어진다. 같은 값이면 나도 맛있게 먹고, 남도 기분 좋게 하는 것이 득이 많은 생활 자세이니, 이를 잘 실천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인성교육의 하나다.
5. 항상 기대를 가지고 대하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Pygmalion)의 이야기는, 우리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겠다는 시사를 주는 대표적인 이야기다.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은 여자들의 결점을 너무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여성을 혐오하게 되어 한평생을 혼자 지내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스스로 아름다운 여인을 상아로 조각해서 옆에 두었는데, 겉모양이 마치 살아 있는 처녀의 모습인양 자연스러웠다.
그는 그 조각을 어루만지고 보듬으면서 사랑했다. 그리고 그는 신들에게 상아 처녀와 같은 여인을 아내로 점지해 달라고 기원했다. 여신 아프로디테는 그의 조각에 대한 사랑에 감복해 마침내 그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
집에 돌아온 피그말리온이 살아 있는 듯한 조각의 입술에 입을 맞추자, 처녀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온 몸에 생기가 돌았다. 이후 이들은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상아로 만든 조각이 마침내 살아 있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이 이야기의 요체는, 사람의 일이란 기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된다고 생각하면 이루어지고, 안 될 것이라 생각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이치를 말해 주는 이야기다.
로젠탈이란 사람은 초등하교 아이들 중 20%를 무작위로 뽑아, 교사들에게 ‘이 아이들은 지능이 높고 학업성적도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8개월이 지난 후 과거에 했던 것과 비슷한 지능검사를 해보았더니, 이들의 지능이 그 전에 유사했던 다른 아이들의 지능보다 뚜렷하게 향상되었다.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로젠탈의 말을 그대로 믿은 교사들이, 그 아이들에게 지능이 높고 학업성적도 향상될 것이란 강한 기대를 걸고 가르치고 대해 왔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현상을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페르시아 꼽추 왕자 이야기’나 ‘맥크럴랜드의 고리 걸기’ 등도, 다 피그말리온 효과와 같은 내용을 말해 주는 이야기요 실험들이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긍정적 기대를 가지고 아이들을 대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즉 자기 충족적 예언(Self fulfillment prophecy)이 실현된 것이다. 교사가 관심을 보여주니 공부하는 태도가 변하고 능력까지 높아진 것이다.
항상 기대를 가지고 자녀를 대하자.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세로 그들을 바라보자. 그리 하면 그들은 틀림없이 성취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6. 작은 일에 감동하게 하라
사람의 마음 가운데 감동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를 일이다.
살다보면 감동할 일이 너무나 많다. 역경을 딛고 인간 승리를 이룬 사람, 병마나 다가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맡은 일을 꿋꿋이 해 나가는 용기 있는 사람, 자기를 희생하면서 오로지 남을 위해 사는 성자 같은 사람들······.
그러나 감동할 일이 어찌 이런 큰 것뿐이겠는가? 살펴보면 우리 주위에는 감동할 작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 감동하지 않는 것은 감동할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사에 잘 감동하지 않는 우리 자신의 마음 자세 때문이다. 돌아보면 잔잔한 감동을 일으킬 일상사는 수없이 많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은데도 휴지를 줍는 학생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피범벅이 된 환자의 치료를 위해 황급히 뛰어다니는 간호사도 우리를 감동시킨다. 입고 있는 일복을 다 적셔 가면서, 열심히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모습도 우리를 감동시킨다.
작은 일에도 감동하는 심장을 갖게 하자. 그 감동의 파동이 또 다른 사람의 가슴에 이어져, 감동을 일으키는 파동이 전해진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가르칠 때 감동하도록 가르치고, 작은 일에 감동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가르치고, 또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친다면, 그 자녀는 언젠가는 아름다운 꽃향기로 가득 찬 가슴을 지닌 인격체로 성장할 것이다.
7. 울 때 울게 하라
눈물이 많아 잘 우는 분이 있었다. 슬플 때도 울었고, 조그만 기쁜 일이 생겨도 울곤 하였다. 이웃집에서 정성스런 음식을 가져와도 고마워서 울었다. 반가운 손님이 올 때면 손을 잡고 울었고, 떠날 때도 멀어져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지었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의 아들도, 어머니를 닮아서 그런지 잘 우는 편이었다. 잘 우는 어머니를 보고 자라면서 그도 어머니처럼 감정이 풍부해져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중학교 때의 교장 선생님 한 분도 잘 우시었다. 그때 그 선생님은 이미 회갑을 넘기셨는데, 어머니날만 되면 교단 위에서 훈화를 하시다가 우시었다. 훈화 도중 당신의 어머니 얘기를 꺼내시고는, 이내 말씀을 잇지 못하시고 아이처럼 훌쩍훌쩍 우시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서 우는 모습을 잘 볼 수가 없다. 감동적인 모습을 보거나, 불쌍한 모습을 봐도 잘 울지 않는다.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남모르게 혼자서 울먹이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는, ‘왜 저리 오래 짜느냐’ 고 하면서 투덜대는 어느 학생 관객을 목격한 일이 있다. 나오는 한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약하게스레 울면 안 된다고 가르친 교육 때문일까? 울 줄 모르는 사람은 감정이라는 인간의 반쪽이 비어 있는 불완전한 존재다. 울어야 할 때 우는 사람으로 키우자. 가슴으로 감동할 줄 알고, 진정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건강한 인격체로 키우자
. 고마울 때 눈물을 글썽일 줄 알고,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고 같이 아파하면서 속눈물을 삼킬 줄 아는 풍부한 정서를 지닌 완전한 사람으로 자녀를 키우자.
8. 깨우칠 때는 명구를 이용하라
정현종의 ‘장난기’란 시가 있다.
내 말보다는 아무래도
세익스피어가 한 말이라고 해야 먹힐 것 같아
나는 장난기가 통하면 가끔 내 말을 세익스피어가 한 말이라고 밀을 한다.
사람들은 긴가민가하면서도 (세익스피어가 안 한 말이 어디 있겠느냐 싶기도 하여) 표정을 고쳐가지고 듣는다.
아무 말이나 해놓고 세익스피어가 한 말이라고 갖다 붙인다는 내용이다. 듣는 이에게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려거나, 설득력을 발휘하고자 할 때, 이 시의 내용처럼 위인들의 말씀을 인용하면, 그 말에 깊이를 더하게 되어 효율성을 한결 높일 수가 있다.
내가 젊었을 때 모셨던 어느 교장 선생님은 훈화 때마다 학생들에게 꾸중만 하시어, 그것을 듣는 학생들로부터 지루함과 더불어 많은 염증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러한 일을 오래 지켜본 나는 무슨 묘책이 없을까 생각한 끝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교장 선생님께 진언을 드리게 되었다.
그 내용인즉, 말하는 이의 말만 하는 것보다는 위인이나 성인 같은 분의 말을 인용하면, 사람들이 귀담아 듣는 법이니, 교장 선생님께서도 아침 훈화 때 명심보감 한 구절씩을 인용하고, 이에 곁들인 예화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하면서, 예화가 함께 실린 명심보감 한 권을 갖다 드렸다.
이를 본 교장 선생님은 매우 반색하면서, 나의 제의대로 실천하시어 크게 효과를 본 일이 있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어렸을 때, 천자문에 나오는 한구절인 ‘망담피단 미시기장(罔談彼短 靡恃己長) :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 자기의 장점을 너무 믿지 말라)이라는 말을 인용하여 타이른 일이 있었는데, 그들이 성인이 된 오늘까지 가끔 그 말을 꺼내는 것을 경험하였다.
아이들을 타이를 때는 물론이요, 평소 때도 성현의 말씀 한두 구절을 준비하였다가 들려준다면, 자녀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심어질 것임은 물론, 부모도 더욱 존경을 받으리라 믿는다.
9. 스킨십을 발휘하라
신은 인간에게만 직립보행의 특권을 부여하였다. 이 덕분으로 인간의 앞의 두 발을 손이라 이름하고, 이로써 문명을 창조하였다.
그러나 이 손이 어찌 물질적인 창조의 기능적 도구로만 씌어져야 하겠는가?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끈으로서의 역할을 이 손이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손은 가장 위대한 손이다. 아픈 배를 먼지면 신기하게 낫는 것은, 어머니의 손끝에서 나오는 신비스러운 사랑의 기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신비스러운 손, 위대한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자주 쓰다듬고 손을 잡아 주어야 한다. 서양에서도 이제 스킨십의 중요성을 깨닫고, 아이를 따로 재우지 않고 일정 기간을 어머니 곁에 재우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인간과 인간의 교류는 따스한 체온의 전달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이것은 비단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이 다 그러하다.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생활에 허덕이다 보니, 자녀들을 손으로 잡아 주고, 쓰다듬어 주고, 안아 주고, 볼에 입맞춤해 주는 기회마저 줄어들고 있다.
자라나는 우리 자녀들에게 자주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손을 잡아주자. 따스한 사랑을 체온에 실어 그들에게 가득 전해주자. 이렇게 사랑을 받은 사람은 커서 남에게도 그렇게 할 것이다. 사랑을 받은 자만이 남을 사랑할 줄 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스킨십을 발휘하여 자녀에게 사랑하고 있음을 행동으로 듬뿍 표현하자.
10.책 읽기 지도는 쉽게 하라
독서의 진정하고도 궁극적인 목적은 바람직한 인성형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성에 영향을 미치는 독서는, 감동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성과 관련한 진정한 독서지도를 위한, 몇 가지 방법을 떠올려 본다.
책 읽기는 ‘책을 읽어라’는 명령형의 직접적 지시보다, 책에 얽힌 이야기, 독서에 관련된 예화를 자주 들려주어, 독서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간접적 권유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 우연히 읽은 한 권의 책이 삶의 길을 바꾼 이야기나,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계기가 된 일화는 너무나 많다.
헛간을 지어 혼자서 거기 파묻혀 책만 읽은 나폴레옹의 이야기, 빌려온 책이 비에 젖어 버려, 대신 노동으로 되갚으려 했던 링컨의 에피소드, 머리칼을 잘라 책을 사다준 어는 어머니의 일화, 형설지공의 주인공 차윤과 손강의 고사, 소를 타고 가면서 책읽기를 즐겨하던 맹사성의 이야기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자녀들로 하여금 은연중 독서에 대한 흥미와 열의를 갖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사다 줄 때는 직접 줄 것이 아니라, 아무 말 없이 자녀의 방문 안에 무심히 갖다놓는 것이 좋다. 자기 방에 들어가다가 발에 무엇이 차여 내려다보니 책이 있다면, 자기도 모르게 이를 주워들고 어떤 내용일까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펴 볼 것이다. 사람은 누가 시키면 좋아하던 것도 싫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특히 독서는 강요로 되는 사안이 아니다. 스스로 흥미를 느끼면서 읽게 해야 한다.
독후감은 독서의 한 과정으로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독후감 쓰기가 독서 뒤에 따라야 하는 필수적 단계는 아니다. 쓰면 좋지만 안 써도 나쁜 것은 아니다. 과제형 독후감 쓰기는 순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기피하는 역기능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꼭 해야 한다면 수준별 독후감 쓰기가 바람직하다.
그리고 서점 견학을 정기적으로 하도록 하자.
이는 독서를 어릴 때부터 생활화 하도록 이끌기 위한 방법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도 이와 같은 취지에서, 수년 전부터 매일 첫째 주 토요일을 ‘가족과 함께 책방 가는 날’로 정해, 국민의 독서 생활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나, 이것이 실천되는 사례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아는 사람조차 드물다.
친구와의 약속은 서점에서 하도록 하자.
서점을 약속 장소로 정하면, 여유 있는 시간을 책을 고르고 책을 읽는 시간으로 메울 수 있을뿐더러, 때로 여유가 있으면 값싼 문고본 한 권을 사서 친구에게 선물할 수도 있다. 이 얼마나 품격이 높고 정감이 넘치는 생활의 자세인가.
자투리 시간을 서점에서 보내도록 하자. 서점에서 이 책 저 책을 보면서 내용을 부분독하거나, 신간의 이름이나 그 서문만 읽어도 많은 이득을 얻는다. 또 외출할 때 책을 들고 나가게 하자. 멋진 액세서리가 될 것이다. 사랑의 고백도 책 선물로 하게 하자. 사랑하는 이에게 춘원의 ‘사랑’이나, 심훈의 ‘상록수’를 통해 그것을 고백한다면, 그 얼마나 격조가 높고 고고한 향내가 두 사람을 감쌀 것인가?
11.예절은 처세의 큰 무기다
필자의 어린 시절 우리 집 사랑방은 두루마기 입고 갓 쓴 노인들로 매일같이 붐비었다. 할아버지를 뵈러 이 고을 저 고을 사람들이 연일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손님 한 분이 올 때마다 어린 나는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왜냐하면, 손님이 올 때마다 나는 사랑방에 불려가서, 오신 분께 큰절로 인사를 드리는 엄격한 예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철도 들지 않은 서너 살 먹었을 때부터 이러한 과정을 겪기 시작하였는데, 마당에서 나대로 땅바닥에 무엇을 그리면서 흥미진진하게 놀고 있는 아이를, 수시로 불러서 인사를 드리게 하니 그 고통은 여간 아니었다. 요새 말로 스트레스를 많아 받았다.
할아버지께서 시키시는 그 짜증스러운 일이 소중한 예절교육이요, 훌륭한 사회생활 교육이란 걸 깨달은 것은 몇 십 년이 지난 뒤였다. 이러한 할아버지의 교육 때문에, 나는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나도 모르게 깨달았고, 남 앞에서 예의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이 소중한 재산을, 나는 아들과 그의 친구들에게도 시행하여 물려주었다. 우리 집에 놀러오는 아이들에게 큰절을 가르치고 인사말과 공수법(拱手法)도 그대로 가르쳤다. 그들 역시 내 어릴 때처럼 스트레스를 받고 고통스러워하였으나, 성인이 된 후에는 모두가 나 때문에 예절을 올바르게 배웠노라고 하면서 고마워하고 있다. 이러한 예절지도는 결코 낡은 것이 아니다. 현대의 사회생활에서도 예절은 사람을 평가하는 하나의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깍듯한 예절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저 사람은 배운 바가 있는 사람이다.’, ‘뼈대가 있는 집안 출신이다’, 혹은 ‘젊은이가 정말 된 사람이다’ 등등의 찬사를 보낸다.
그런데 이러한 인사가 결코 일회성의 겉치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직장이나 소속 사회에서 인정과 신뢰를 받고, 나아가 승진이나 성공의 밑바탕이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예절을 아는 사람은 좋은 인성의 소유자로 인정받게 되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예절은 그야말로 처세의 커다란 무기이다.
자녀에 대한 인성교육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주체가 아버지에서 어머니로 옮겨 가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 땅의 어머니는 위대하였다.
여성의 창조에 얽힌 신화는 대체로 여성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 이브는, 원죄를 저지른 장본인으로 나와 있으며,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라든지 ‘여자는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라는 등의 성경 구절로 보아 남성 우위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그리스 신화나 인도 신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의 단군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 웅녀만은 그렇지 않다. 맛이 쓰디쓴 쑥과 매운 마늘을 먹어 가며, 어두운 동굴 속에서 21일 동안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겪어 내고, 단군이란 아들을 잉태하고 출산한다. 판도라처럼 인내력이 약한 여성이 아니라, 고난을 이겨내고 신의를 끝까지 지키는 굳건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이어받은 한국의 어머니는, 그 어느 나라 어머니보다 강한 미덕을 지니고 있다. 전통은 결코 낡은 것이 아니며 발전시켜야 할 맥박이다. 이러한 전통의 맥락 속에서, 훌륭한 미덕을 이어받은 우리 어머니들이 자녀의 올바른 인성지도를 위하여 적용해야 할 몇 가지 곁가지들을 더듬어 보았다. 이러한 잔가지들이 웅녀를 닮은 우리 어머니들의 손에 의하여, 빛을 받고 수분을 흡수하여 크게 잘 자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