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넥타이를 맨 손님이 명함을 내밀었다.
좌측에 김용金龍이라고 찍었고, 우측 상단에는
사자얼굴에 물고기 몸을 한 멀라이언이 물을 뿜고 있다.
싱가포르는 작지만 큰 나라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시스템으로 무장한 나라로써 그에 못지않게 장사도 잘했다.
정치는 주변국들의 본보기가 될 만하였고 사업은 작은
나라의 생존 전략답게 화이트칼라 쪽이 강하다.
인사가 끝나고 손님은 샘플을 내밀었다.
소나무를 켜서 만든 사각 바구니였다.
구정 선물을 담아 납품할 것이라고 용도를 밝혔다.
난이도가 낮은 제품이라서 가격 줄다리기가 끝나자 계약서를
보내달라는 말을 남기고 김용과 그의 매니저는 돌아갔다.
다음날 계약서를 만들고 있는 공장장에게 물었다.
“마담 하, 어제 김용 사장과 상담할 때 소나무에 청태
(청태: 주변 환경이 습해서 켜놓은 소나무에 끼는
푸른곰팡이)가 조금 낀 것은 괜찮다고 했지요?”
“네에~ 그렇게 했어요.”
“그럼 가격·수량 정확히 기재하시고, 계약서에 싸인 받아오세요.
나는 나무 구입하고, 건조 할 공장을 잡으러 갈 테니까.”
“네에~”공장장이 다시 계약서에 얼굴을 묻었다.
30대 후반 공장장은 사이공 경제대학을 나온 인재로
1-2공장을 모두 관리했다. 1공장 부지를 임대해준 베트남
경찰학교장 ‘안 떠’의 소개로 함께 일하게 되었다. 오토바이로
10분 거리의 2공장은 대학교 땅을 임대해서 목공예 수출품을 만들었다.
구매 한 소나무를 켠 다음 건조하고, 또 제품을 만드느라 모두가
바쁘게 돌아갔다. 공장 한편에는 동구릉처럼 제품들이 쌓여갔다.
제품 주위가 오늘따라 유난히 깨끗하다. 완성품을 납품하기로
약속한 날이라서 제품 검사를 하려고 손님이 오실 것이다.
10시쯤 도착한 김용은 제품 검사를 하면서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청태가 낀 것들을 가차 없이 불량으로 빼냈다. 집어내는 양이
너무 많아서 “우기 때라서 청태가 조금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잖아요.”라고 기억을 살려주었지만, 그의 손은
자석에 못이 달라붙듯이 청태 낀 제품이 쩍쩍 달라붙었다.
1시간 정도 검사를 마친 뒤 불량이라고 빼놓은 제품을 들고
사무실로 향했다. 주먹계산으로도 빼놓은 제품들이 15%는 넘지
않아보였다. 그렇지만 김용이 빼놓은 것들을 모두 불량 처리한다면,
수입이 적자라는 임계점 아래로 떨어질 확률이 높았다.
문제는 야누스적인 김용의 태도였다. 처음 상담할 때 싱글거리던
모습은 깜박 잊고 집에 두고 온 것 같았다. 김용이 제품을 가리키며
오랫동안 툴툴거렸던 속내를 꺼내놓았다.
“이렇게 불량이 많으니까. 15% 이상 디스카운트를 해줘야 겠어요.”
손님 말이 입을 떠나기 무섭게 내가 손 사레를 치며 막고 나섰다.
“청태 낀 것은, 지금이 우기 때문이라고, 처음 상담 때 분명히
양해를 구했는데 무슨 15%가 넘은 배상입니까. 지나칩니다.”
긴 원목 의자에 양팔로 학익진을 펼친 것은 김용이었고,
정면 돌파를 시도하려고 앞으로 몸은 내민 것은 나였다.
김용이 다리를 꼬고 상체를 뒤로 제킨 뒤 다리까지 흔들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랫사람을 타박하는 자세 같았다.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같은 소리만 오가는 자리에서
김용이 별 힘 안들이고 상대를 벼랑 끝으로 내 몰아 버렸다.
“낼부터 상자 속에 상품을 넣어서 납품합니다. 상품 준비는
이미 끝났어요. 그런데 불량으로 인한 수량부족으로 입은 손실,
이것은 어떻게 배상하겠습니까?”
‘엥, 갑자기 불량 율에 대한 손실?’ 처음부터 께름칙했던
실체가 들어나자 뱀을 밟았을 때처럼 온몸에
소름이 돋고 신경이 곤두섰다.
사무실 직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모르게 주먹으로 무릎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먹으로 무릎을 내려치는 버릇이 생긴 것은 20대 초반 쯤 이었다.
첫댓글 싱가포로에서 만난
무역업체와의..계약서등
새로운 세계에 대해
어렴풋이 배우고 갑니다
많은 수고를 하시는 지인님께서
답글까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테스님의 이국 땅에서의 역사적인 삶의 편린들을 들을 수 있어 좋습니다
기대 합니다 ~
맨땅에 헤딩한 삶이었죠.
다른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운선선생님 답글 감사드립니다. _()_
해외 힘든 했군요
해외 힘든 했군요
죄송합니다
글이 계속헤서 연재로 올라오기에 다음에 읽기로 하였습니다
먼 미국에서 사업을 전개하여가시는 내용이 펼쳐지는군요 잘보았습니다
존경하는 만장봉 선배님!
이른 아침에 수고가 많으십니다.
기승을 부리는 이 더위에
건강 잃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멀지 않은 곳에 선배님 계시는데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