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
정 규 준
“여기 홍성의원인데요, 정규준 님 되시죠? ○○○ 님이 어머니 맞나요? 지금 이곳에 계신데, 아드님을 찾으시네요.”
내 옛 주인은 깜짝 놀랐어. 부여에 사시는 어머니가 왜 홍성에 계신 건지, 그것도 병원에 말이야. 발바닥에 불붙은 것 마냥 달려갔더니, 어머니 맞는 거야.
“아니 엄니가 왜 여기 계셔? 어디 아프셔?”
간호사의 설명인 즉, 부근의 양잠농가에서 뽕 따는 일손이 필요하다 하여 인력사무소 차를 타고 와서 뽕을 따다가, 기운이 떨어져서 여기 와서 치료받고 있었다나. 주인은 실소를 하였지. ‘노인네가 자식 보고 싶어서 오셨구먼.’ 집으로 모셔다가 며칠 봉양하고 보내드렸지. 그런데 어머니 말씀이 당신은 한사코 뽕을 따러 왔다는 거야. 뽕을 따면서 평생을 바쳤던 누에치기를 한 번 느껴 보고 싶었다는 거지.
벌써 사오십 년 전의 얘기야. 어린 시절부터 주인댁에서는 양잠을 하였어. 당시 누에치기는 가난했던 시골 동네에 큰 소득원이 되고 있었지. 봄, 가을로 치는 누에는 농가에 목돈을 안겨주곤 하였어.
보리 이삭이 패는 시절이 오면 온 동네는 우리 뽕나무들로 뒤덮였지. 우리는 어른 키 한 배 반 정도로 자라고, 몸통은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빼곡히 잎으로 들어찼어. 반면에 하반신 쪽으로는 서로 간에 고랑이 형성되어 허리 숙이고 다닐 만한 공간이 생겨났지.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말 있지? 어느 날이었어. 뽕 품을 팔러 왔다는 젊은 남녀가 뽕은 안 따고 고랑 깊숙이 들어오는 거야. 그리고는 옷매무새를 흐트러트리더니 남우세스럽게도 하나가 되더라고. 에고 망측해라,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난 너무 당혹스러워 눈 둘 곳을 찾지 못하다가 하늘을 쳐다보고 말았어. 남들은 몰카까지 동원해 그걸 보려고 난리들이라는데, 나는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게 되었으니 이걸 복이라고 해야 할지?
‘뽕’은 모 유명 작가의 글제로 간택되었다가, 이른바 ‘뽕 시리즈’ 영화로 제작되어 흥행하면서 농염한 애정행각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어. 나는 생각지도 않은 사이에 은밀하고 후끈한 치정 담을 주도하는 불명예스런 자리에 앉게 되었던 거지. 요즈음은 ‘뽕’이라는 단어가 뽕브라, 엉덩이뽕이라고 하여 작은 걸 크게 한다는 의미로도 쓰이고 있더라고. 글쎄, 그게 남정네들 눈을 즐겁게 해줄 수도 있다니 굳이 나쁘다고까지야 할 수 없겠지만, 왠지 속인다는 느낌이 들어 께름칙한 건 사실이야. 이렇게 본의 아니게 오명을 뒤집어쓴 심정을 사람들은 알까?
사실 나는 세상에 유익하다는 얘길 꽤나 듣고 사는 입장이거든. 나는 뿌리에서부터 가지, 잎, 열매까지 버릴 게 없는 나무로 알려져 있어. 옛날부터 당뇨병, 혈압에 좋은 약재로 쓰여 왔고, 요즘은 웰빙 식품으로도 많이 애용되고 있다네? 아마 그게 뿌리 때문이지 싶어. 한 개의 원뿌리와 다수의 잔뿌리가 있는 보통 나무들과는 달리, 나는 여러 개의 굵은 뿌리들이 땅속 사방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거든. 언젠가 주인댁 어른이 새 묘목을 심는다고 오래된 나무들을 캐는데 뿌리 때문에 고생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해. 그래서인지 각종 영양소와 땅의 기운을 잘 흡수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러나 내가 가장 좋을 때는 역시 누에의 먹이로 쓰일 때야. 내 잎들은 줄기에서 훑어져 부대에 담겨 잠실로 옮겨지지. 잎들이 잠실에 뿌려지는 순간, 아, 냄새를 맡은 누에 녀석들이 고사리 손 같은 고개를 휘저으며 흥분하기 시작하지. 녀석들이 내 지체들을 먹어줄 때의 쾌감과 전율이란…. 쏴아 - 비 내리는 소리와 함께 세상은 일순 멈춰버린 듯 하지. 그 귀여운 것들이 상하로 고개운동을 하며 눈썹달만큼씩 먹어 들어오는 모습은 고혹적이다 못해 숭고하다는 느낌까지 들더라고. 엄마의 젖을 빠는 아이 같다고나 할까. 혼신의 힘을 다하여 생명활동에 몰두하는 경이로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까. 그런 녀석들에게 몸을 내어주면서 나는 할 일을 다 한 후의 카타르시스 같은 걸 느꼈어.
누에 철이 되면 주인댁 가족은 전투태세에 돌입했어. 마지막 넉잠을 자고 나서 먹는 양이란 엄청났지. 아마존 우림이 개발로 인하여 빠르게 사라지듯 우리는 순식간에 발가벗겨졌어. 안방, 건넌방, 사랑방, 별채의 창고까지 잠실로 변하고, 이미 길목까지 차지한 누에채반 때문에 새우잠을 자는 주인에게 깔려 일부 녀석들은 생을 마감하기도 했어.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깔깔거려서 살펴보면 주인의 몸에는 여지없이 한두 마리의 누에가 붙어 있었어. 거주 공간을 이탈하여 학교까지 간 누에는 아이들의 실습교재가 되기도 하였지.
주인댁 어머니는 누에를 가지고 볼에 비비기도 하고 어깨에 올려놓고 덩실 덩실 춤을 추기도 했어. 자식들은 많고 뭐 한 가지 해 준 게 없는 그분한테는 누에는 최고의 선물이었지. 고치를 판 돈으로 살림도 보태고 자녀들 옷도 사주고 학비로 쓰기도 했어. 가난했던 집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였던 거야.
정성들여 길러진 주인댁 누에고치는 때깔이 참 고왔어. 그런데 질이 떨어져 보이는 인근 농가의 고치는 특등급을 받고 주인댁은 일등급을 받은 거야. 아마, 특등을 받은 사람과 검사원이 친구 사이였던 모양이야. 큰형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며 따지고 들었지. 한번 매겨진 등급은 바뀌지가 않더라고. 결국 더 불이익만 당하고 형은 물러나고 말았어. 하긴 지금도 전 세계인의 눈이 지켜보던 올림픽 경기에서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을 도둑질해 가는 심판진이 있는 마당에, 그 정도는 대수도 아닌 셈이지.
모처럼만에 목돈을 만진 농부들은 기분이 좋아져 선술집에 모여 약주를 한잔씩 기울이게 되지. 그들이 하는 얘기란 한 결 같이 누에에 관한 얘기였어. 누에가 좋아서 특등급을 받았다느니, 병약하여 하품에 머물렀다느니, 온갖 공이 누에한테로 돌아가고 있었지. 나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어. 사실 내가 아니었으면 누에가 어떻게 자랄 수 있었겠어? 내 잎들이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서 누에가 실하고, 허하고가 결정되는 거 아니겠어? 그런데 내 얘기는 하나도 안 나오지 뭐야. 월계관의 주인공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세상 이치더라고.
그러다가 한쪽 구석에서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술만 마시는 큰형을 발견하게 되었어. 드러나지 않은 공로를 가지고도 이렇게 생색을 내고 싶은 게 마음인데, 땀을 흘리며 노력한 결과를 허무하게 빼앗긴 심정은 어떻겠어? 내 서운함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면서 곧 마음을 정리하게 되었지.
‘그래, 네가 어차피 누에가 될 수는 없는 일. 뽕으로 태어났으니 너의 할 일은 누에의 먹이가 되어 그것들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잖아? 네 지체들은 사라졌지만 아주 없어진 건 아닐 거야. 누에의 몸이 되고, 사람의 옷이 되어 세상을 나들이한다고도 볼 수 있지. 중국에서 로마까지 동서양 문물교류의 주역이 되었던 실크로드도 바로 네 몸이 변하여 만들어진 비단을 거래하는 데서 생긴 이름이라잖아? 넌 역사의 한가운데 우뚝 선 영광의 주인공이었다고 할 수 있어.’
그러고 보니 행복했던 시절도 많았던 것 같네. 우리가 새싹을 내밀고 나올 때 농부들이 축복해 주었고, 잘 자라도록 거름도 주고 땀을 흘리며 사랑해주었지. 진초록 옷을 입으니 청춘남녀들이 노니는 장소가 되었고, 장수벌레․노린재 등 각종 곤충의 거처가 되었지. 농밀한 이야기들이 그 터전에서 만들어졌어. 다른 생명체에게 삶의 무대를 제공해주고 먹이가 되며 때가 되어 비워지는 삶, 참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까? 벗은 몸에 불어오는 산들바람, 건들대는 자유로움, 다리 밑까지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축복을 누리는 기분이 이런 것 아니었던가.
그러나 흐르는 세월 속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 화학섬유가 나오고 명주실의 가치가 떨어지자 우리의 영화도 어느덧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지. 우리는 뽑히고 불에 태워져 몇몇 그루들만 밭둑을 지키며 목숨을 부지하는 신세가 되었어. 고목이 되어 수많은 팔들을 두서없이 뻗어대고, 칡넝쿨과 섞여서 산발한 광인같이 되어버렸지.
가난했던 시절에 우리에게 매달렸던 절실함을 세상은 더 이상 기억하지 않아. 자작나무나 메타세쿼이아 같은 공원수에 관심이 가버린 지 오래지. 가끔 치매기가 있는 노인이 와서 옛날을 그리워하는 나무로 우리는 밀려나고 말았어. 그나마 요즘 웰빙 식품 붐으로 우리를 찾는 사업가들이 있다고는 해. 주인댁 어머니가 홍성에 와서 누려봤다는 체험도 그런 것이었나 봐. 다시 꿈을 꾸어봐야 하는 걸까. 옛날처럼 국가적 장려수종으로 간택 받아 수천 그루씩 심기어지고 대우받는 나무로 다시 태어나는 꿈 말이야.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절하게 와 닿지는 않네. 외로울 때 찾아 와서 가난했던 날의 행복을 추억해보는 노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 좋아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