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 33)
이왕 떠나는 배에 짐을 좀 더 싣는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3백 명도 넘는 생명이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겼습니다. 늦어진 길 서두르기 위해 평형수를 좀 줄이자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죄 없는 이들이 피어보지도 못하고, 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고, 검은 바닷물에 휩싸였습니다.
배가 기울어가는 동안에도, 아무도 배에서 내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선장은 회사에 미루고, 경찰은 선장에 미루고, 선장도 회사도 경찰도, 위기에 처한 생명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위기의 순간에도 그들은 생명 아닌 그 어떤 것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몇 번이고 구조를 장담했지만,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구명조끼는 넘겨주며 서로를 격려 했지만,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맞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죄 없었지만, 켜켜로 쌓인 세상의 죄가 결국 그들을 죽음으로 내 몰았습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 선진국만 가입할 수 있는 OECD국가. 빠른 경제성장을 자랑하지만, 어느 순간 돈이 생명보다 앞자리에 놓였고, 죄 없는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죽음의 사회, 죽음의 문화로 전락했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또 하나의 충격적 사실은 공권력의 부도덕과 무능입니다.
국민의 공복이어야 할 사람들, 국민은 그들이 생명과 공동체를 지켜 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들은 공권력을 사유화하기에 골몰했고, 정작 국민의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순간에도 영역 다툼, 책임회피에 급급했습니다.
그래서 2014년 대한민국 국민은 이렇게 외칩니다. ‘이것도 국가냐’고.
변해야 했습니다. 변한 줄 알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 광주에서 국민을 향해 총칼을 휘둘렀던 국가 공권력은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겉모양은 변한 듯 했으나, 속성은 여전했습니다.
그들을 믿었던 국민은, 1980년 광주에서 죽고, 2014년 진도 앞바다에서도 죽었습니다.
그 속에서도 희망을 보았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다른 이를 먼저 구한 의인들. 팽목항으로 달려간 시민들, 퉁퉁 불은 시신을 먼저 찾아 미안하다고 말을 잇지 못하는 유가족들.
가진 자, 힘 있는 자들이 죽음의 문화를 만들었지만, 시민들은 생명의 문화를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80년 5․18의 희생이 이 땅에 민주화를 앞당겼듯이, 2014년 세월호의 희생은 이 땅을 생명의 공동체로 만드는 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진실이 밝혀져야 합니다. 세월호라는 20년이 지난 배가 들어와 진도 앞바다에 침몰할 때까지, 잘못된 것은 무엇이고, 잘못한 이는 누구인지 낱낱이 밝혀져야 합니다. 정부라 불리지만, 국민의 억울한 죽음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이들의 잘못도 빠짐없이 밝혀져야 합니다.
그리고 정의를 세워야 합니다.
책임 있는 자들은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누군가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는 일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 책임의 정점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바탕 위에서 생명의 문화를 가꾸어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모습을 본 떠 만드신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세상. 귀와 천, 부와 빈, 남과 여, 나이 듬과 젊음, 피부색과 인종의 차별 없이, 모두가 존중받는 생명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날이 오면 세월호의 희생자들은 또 하나의 십자가가 될 것입니다. 1980년 광주의 희생이 한국 민주주의의 십자가가 되었듯이, 우리의 죄로 죽음을 맞은 세월호의 희생은 또 하나의 십자가로 부활할 것입니다.
세월호의 희생자들이, 80년 5월 광주의 희생자들과 함께, 2000년 전 죄 없는 몸으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품속에서, 평안한 영면에 들기를 기도합니다.
2014년 5월 19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