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경가회 공부방에서는 서울대교구 성소국장이신 고찬근 루카 신부님의 미사와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배미향 에밀리아 수녀님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수녀님은 영원한 도움의 수녀회 출간되는 월간지 "성서와 함께"의 편집차장 이십니다.다음은 신부님의 미사강론과 배 미향수녀님의 강의내용입니다.)
<미사강론>
오늘복음의 주제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달라는 자식에게 돌을 주거나 생선을 달라는 데 뱀을 주는 부모가 없는데 사람들 보다 무한히 선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겠느냐고 하십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건강과 행운과 성공 등 좋은 것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것을 받을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도 있습니다. 건강을 잃었을 때 건강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실패했을 때나 불행을 겪었을 때 불행한 많은 이웃들을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게 되며, 승승장구 하던 사람으로서는 결코 얻기 어려운 겸손이란 덕을 얻을 수 도 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며 하느님께 희망을 갖게 되며 하느님을 향하면서 하느님을 찾게 됩니다. 죽음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요인이며 인생최고의 선물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이웃과 더불어 살도록 창조하셨기에 더불어 살면서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며 그분의 질서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세상의 가치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 과 그 질서를 깨닫고 그에 순응하도록 해 주시기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하느님의 질서에 동참하기 위하여 는 다른 이를 알고 배려하며 나누어야 하는데 이 나눔이 처음에는 아픔이 되겠지만 결국에는 하느님이 주시는 참 행복을 얻을 것입니다.
<성경을 대하는 새로운 자세>
창세기의 2-3장을 읽을 때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잘못이고 그일 때문에 까마득한 옛날 머나먼 촌수인 그분들의 잘못에 연루된 적이 없는 나에게 까지 원죄라는 이름으로 대물림 되었다는 성경의 신화적 요소에 거부감이 내재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에 감히 반항하는 불경스러운 자가 되므로, 발설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느낀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즉 사실(fact)과 진실(truth) 이라는 두 가지 개념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진실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이며 사실은 그 진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된 이야기의 내용일 것입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가 있습니다. 토끼가 마음 놓고 자다가 쉬지 않고 열심히 경주한 거북이에게 졌다는 이 이야기는 “성실한 노력의 중요성”이 전하고자 하는 message 이지만 “사람은 모름지기 성실해야 성공 한다”고 한마디로 말하기보다 훨씬 공감하고 기억에 남게 하기 위하여 우화로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토끼와 거북이가 어느운동장에서 경주를 하였다거나 토끼가 어디서 잤는가 등의 사실보다 전하는 message 가 더 중요합니다.
성경은 BC20C 이래로 구전되어오던 내용이 BC10C 유다 왕국의 솔로몬 왕 시대에 기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문화에서 유행하던 문학형식인 서사시나 이야기 형식안에서 진리, 즉 메시지를 전하기 위하여 사건을 우화형식( 사실, fact)로서 꾸며 놓은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좋은 말씀이라고 피상적으로 말하는 것 보다 의문을 갖는것이 정상입니다. 창세기 38장의 유다와 타마르의 이야기는 일찍 과부가 된 유다의 며느리 타마르가 수혼법에 의하여 친정에 가서 시동생과의 결혼을 기다리다가 시아버지인 유다에게서 소식이 없자, 당시 여인들에게는 아들을 낳는것 만이 살길 이었으므로 남편의 가계에서 혈통을 얻고자 창녀로 가장하고 시 아버지 유다와 동침하여 아들을 얻는 이야기 인데 ,오늘의 시각에서는 매우 혐오스러운 이야기 이지만 죽음을 각도하고 감행한 타마르 의 행위(당시에는 간음으로 목숨을 잃을수도 있었음)는 소생을얻고자 최선의 노력을 한 용감한 여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녀의 아들 페레스와 제라 중 한사람이 다윗왕의 선조가 되며 예수그리스도의 탄생과 연결되어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거룩한 단어만으로 되어있지 않고 왜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는가? 그것은 성경이 삶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며 삶은 모범적인 사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삶 안에는 치사하고 오염되고 물밑작업이 있고 간음, 시기, 질투 교만 욕심 아집 등이 들어있습니다. 그리하여 구체적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삶의 자리에 가서 text를 녹여야 담고 있는 진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삶을 투사해 봅니다. 2장 15절에서 하느님은 사람을 데려다 에덴동산에 두시어 일구고 돌보게 하셨습니다. 성경본문을 고기국먹듯이(속독) 해서는 맛을 제대로 알수 없고 steak 먹듯이 잘게 썰어서 진하게 먹어야(즉 정독하여야) 진리를 이해합니다. 에덴에서 일구고 돌본다는것은 삶의 일터란 뜻이며 삶의 일터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동산의 한가운데는 삶의 중심이란 의미이며 선과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금하신 이야기에서 하느님이 먹지말라고 하셨으나 인간은 결국 삶 안에서 그것을 따먹고 소유합니다. 그것을 먹고 선과 악을 알게 될것으로 희망했지만 ...과연 가능한 일이었나요?
어느 국회의원이 노인들을 위하여 교회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였는데 객관적으로 보아 선행임이 분명하지만 그 때가 선거기간이 임박한 시기 이었다면, 과연 그가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일수도 있고 표를 의식한 이기적 동기가 개입되는 미묘한 마음의 흐름은 본인과 하느님 만이 알며 선악은 하느님만이 아십니다. 이처럼 인간의 인식(perception) 은 불완전하고 선악에 관한 인간의 관점은 절대적이 아니고 장소와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판단은 궁극적으로 하느님만의 것이며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있어야할 불가침의 경계이므로, 선과 악의 판단은 하느님만의 몫이며 함부로 선악을 판단하지 말라는 message를 선악과를 따지 말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 판단을 하느님께만 돌릴 때 인간이 하느님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탈출기는 어중이떠중이가 모여 탈출한 것인데, 그들이 홍해바다 사건을 통하여, 죽음에서 구원되는 강렬한 체험, 공동의 체험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들은 유목민족으로서 정착생활을 하지 않았으므로 요르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갔을 때 그곳에 정착하여 있던 가나안 사람들은 농경민 들로서 비 바람이 풍작에 영향을 미쳤으므로 비와 바람을 관장하는 그들의 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으며 다산을 상징하는 뱀 모양의 타콘신도 섬겼는데 창세기를 기록자가 그들 우상중 하나인 뱀을 유혹자로 삼아 서술한 것인데 , 뱀 자체가 악이 아니라 뱀을 섬기는 우상숭배를 폄하하기 위한것 이였습니다. 유혹자 뱀은 과장하여 말하는데 인간은 판단은 안하더라도 식별은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만의 영역인 선악의 판단... 그러나 인간은 살면서 부단히 판단하고 있으며, 자기식으로 선악을 판단하는 경향성을 인간의 본성으로 가지고 있으며, 이본성은 보편적이고 영구적 이어서 아무리 고매하고 심오한 인격자라 하여도 그런 경향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인간의 원초적 죄의 경향성이 원죄입니다. 처음에는 “....인가?” 라고 하다가 “... 임을 내가 안다” 고 확신하는 내심의 판단을 하는 틀 “ 안다” 는 판단이 관계를 단절하는 원인이 됩니다. 모든 것을 아는것은 전지하신 하느님의 영역 이므로 내삶 안에서 겸허하여야 합니다. 사소한 언어에서 판단과 꼬임이 일어나 관계가 단절 됩니다. 창세기는 우리 삶 안에서 오늘의 나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3장의 알몸 이야기에서 우리는 어릴 때 어머니 앞에서는 알몸이어도 완전한 신뢰안에 있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에덴 에서는 완전한 신뢰관계 안에 있었으므로 알몸으로도 편안하였으나 하느님을 거역하여 선악을 아는 나무열매를 따먹어서 신뢰가 파괴되어 알몸은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의 불안과 수치심을 포함하게 됩니다.
첫댓글 해학 있는 좋은 강론을 해주신 고 루카 신부님과 성경을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새롭고 신선한 가르침을 주신 배 에밀리아 수녀님께 큰 감사를 드리며 두분 하시는 일에 주님의 도우심이 항상 있으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강론과 강의에 더하여 이처럼 정성스럽게 정리해주시는 선배님이 계셔서 언제라도 다시 되새길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유 선배님,어제의 신부님, 수녀님 말씀을 다시 듣듯이 꼼꼼히 올려주시느라 수고 하셨고, 감사 드립니다.
유 선배님은 아무리 난해한 것일지라도 투명하게 핵심을 정리하여 반사해 주시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성품도 차분하시겠고(저는 급해서 1, 2, 3 번호 매겨서 중요한 단어만 차례대로 나열할 것 같아요), 아마도 기도하시는 마음으로 정리를 하시나봐요. 그분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