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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길로 (이현래 목사)
오늘은 좀 이상한 제목을 걸어놓았다. ‘쉬운 길로’ 이 복음을 전하다 보니까 어찌 그리 모두 어려운 길만 제출하는지 모르겠다. 쉬운 것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가지고 와서 계속 얘기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어제 저녁에 김윤동 형제가 얘기하는 것을 들으니까 ‘성경대로’ 이 말이 참 좋은 말이기도 한데 또 함정도 컸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 성경대로 이렇게 했다. 신약 성경은 대부분 그런 말을 중요한 말로 이해하고 있다.
‘성경대로‘ 이 말이 쉬운 것 같지만 굉장히 어려운 말이다. 거기서 말한 성경대로는 구약 성경을 얘기하는 것이니 일단 구약 성서에 통달해야 한다. 성경대로 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1700독을 했다고 선전하는 사람도 있던데, 한 번 보기도 어려운데 1700독을 했다고 한다. 그러려면 형무소 들어가서 독방에 앉아 밥 먹고 성경만 보면 모를까 어떻게 1700독을 하는가. 그 사람은 그러다가 결국 감옥에 갔다.
사람들이 왜 그 어려운 길을 택하는지 모르겠다. 쉬운 길을 아무리 말해도 어려운 것만 계속 가지고 와서 얘기한다. 어젯밤에 얘기를 들으면서 든 생각이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런 방법이 있겠구나.
그 성경대로 보다 그냥 눈앞에 있는 현실로, 인생 문제로, 사회 문제로, 직접 보고 만질 수 있는 일로 얘기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성경대로, 아니면 신학대로, 아니면 위대한 사람들의 말대로, 삶대로, 생각대로, 이것이 지금 우리 종교 안에 꽉 붙어있다. 이것은 비단 어떤 종교만이 그런 것이 아니고 다 그렇다. 다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종교다.
가장 쉬워야 할 길이 가장 어려운 것이 되었다. 가장 쉬워야 할 길이 가장 어렵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발달하고 문명이 커지니 더 복잡해진다. 끝이 없는 것 같다.
인간 문제는 끝이 없다. 그것을 해결하려고 나선 것이 더욱 혼란을 가중시키고 말았다. 그러니 무슨 문제를 가지고 말해도 마찬가지다. 똑같다. 할 말은 세상 속에 수없이 많다. 누구든지 만나서 ‘성경대로’ 그러면 어려우니까 아예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를 것이고 안다는 사람은 또 혼란스러울 것이다.
어떤 유명한 사람들은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더 혼란스럽고, 모르는 사람은 아예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종교 안에서는 유명하지만 바깥에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 그것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접어놓으면 너무 쉬운 것이 있다.
‘인생 문제가 너무 복잡하고 참 어렵다’ 이렇게 말하면 누구나 다 공감한다. 공감 안할 사람 아무도 없다. 그러면 말이 된다. 대화를 열기 위해서 ‘인생 문제가 참 복잡합니다. 나도 살려고 하니까 참 어렵대요.’ 이러면 그냥 공감이 된다.
‘참 잘 살아보려고 애를 썼는데 할수록 더 어렵대요.’ 이러면 공감이 더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접근하면 제일 쉬운 길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저녁에 예를 든 것을 들어보니 얼마나 많은지 다 기억도 못하겠다. 철학도 많고 신학은 더 많고 종교는 더 많고 끝이 없다. 그것보다 쉬운 길로 가는 게 좋겠다. 그냥 넘어가고 다 넘어가서 어차피 다 모르니까, 지금 현장에서 그냥 모르는 걸로 하고 다 넘어가는 것이다.
정치가도 유명한 정치가는 실사구시(實事求是)한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 정치 노선이 실사구시다. 그래서 이랬다저랬다 한다. 그렇게 하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지조가 없다느니 이랬다저랬다 한다느니 하지만 그게 정치다.
그 나라 형편대로 해야 한다. 그 시대 형편대로 해야지 무슨 고상한 이상, 주의, 사상 이렇게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나는 그분이 참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도 나름대로 자기 생각이 있었고 평소의 주장이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보니 현실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늘 주장했던 걸 취소하고 다른 방향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것이 참 정치 아니겠는가?
우리도 ‘내가 아는 성경대로’ 이러면 딱 고정이 되어서 빼도 박도 못하게 된다. 또 아무개대로 그것도 어렵다. 루터가 한 대로, 칼빈이 한 대로, 그러면 그것도 어렵다. 왜냐면 그것이 다 유명한 사람들이 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사람일수록 더욱더 어렵다. 그분들대로 따라가려면 너무 힘들다. 또 힘들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다 천재들인데 그 사람을 어떻게 따라가겠는가?
그런대 그 많은 문제들에 대해 아주 쉬운 답이 있다. '쉬운 답이 있습니다' 하면 물을 것이다. '그게 뭡니까?'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러면 다 아는 것이니까 쉽다. 누구나 다 죽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서로 다 다른데 그 자리에 가면 다 같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냥 공감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진짜로, 진짜로 죽음 중에서 아주 쉬운 죽음이 있습니다. 그 죽음은 십자가에 끌려와서 달려 내려오지 못하고 죽은 그런 죽음입니다.
끌려온 사람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끌고 간 사람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예수님이 그러셨다.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아니라고 하면 참 쉬울 것 같은데 그분에게는 아니다가 어려운 것이었다. 아니라고 할 수 없어서 그렇다 라고 대답한 것 아니겠는가?
그분에게는 어려운 말이 아니었다. 우리가 볼 때나 베드로가 볼 때는 아니 왜 하필이면 저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하나? 이랬겠지만 예수 그분은 그것이 자기에게 쉬운 길이었다. 아니라고 말하기가 더 어려웠던 것이다.
앞일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르지만 알지 않았겠는가?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그렇다. 그러니 제사장도 참 쉬워졌다. 더 물어볼 게 없는 것이다. 그게 보통 일이 아니다.
제사장은 예수를 데려올 때 상당히 심각하게 데려왔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람이라니 믿을 수 없긴 없지만 그래도 그 사람을 불러다가 심문해서 잘못되면 자기는 큰일 나는 것 아닌가? 그러니 조심조심해서 어렵게 데려다 놓은 사람이다.
그런데 대답을 들어보니까 너무 쉽다. 소문대로 맞구먼. 뭐 물어볼 것도 없구먼. 당시의 제사장 가야바는 아주 쉽게 예수를 넘겼다. 자기가 사용할 수 있으면 하는데 자기에게 그런 권리가 없으니 당시의 집행관이던 빌라도에게 넘겼다.
빌라도는 조사해 보니 예수에게 자기가 찾는 죄가 없다. 그래서 죄가 없다고 했는데 그것도 아주 쉬운 일이었다. 자기에게 해당되는 것만 찾았기 때문이다. 죄인이다, 민란을 일으키고 백성을 소요케 한 사람이니 이런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고 대제사장이 보냈는데 대제사장이 보냈거나 말거나 자기는 자기 일만 하니 쉽다.
자기는 정치가다. 예수를 검사해 보니 죽일 죄가 없다. 그래서 죄가 없다고 그랬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우성치면서 만일 이 사람을 그냥 살려두면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다. 해서 또 가서 찾아보니 그래도 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손 씻고 나오면서 하는 말이 나는 이 사람의 죄, 그 피에 대해서 책임을 못 지겠다고 말했다. 이것도 아주 쉬운 말이다. 빌라도로서는 제일 쉬운 말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예수는 처형자들에게 넘겨졌다.
이 사람들은 하는 일이 그것이니 신난 것이다. 옛날에 망나니들이 사람의 목을 베는데, 사람이 사람의 목을 베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런데 그게 이 사람의 일이다. 그러니 신나게 춤을 추면서 목을 베는 것 아니겠는가.
다 쉬운 길로 갔다. 임금은 각본에 짜인 대로 공무해보고 능지처참하라 이르고 들어 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다 쉬운 길로 왔다.
예수는 할 수 없이 끌려가서 그 망나니들에게 못을 박혀서 십자가에 매달렸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와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뛰어내려봐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다. 그것도 자기들로서는 참 쉬운 말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할 때는 사람을 매달아 놓고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어렵게 생각하지만 그 사람들은 아주 쉬운 말이다. 하나님 아들이 아니면 너는 거짓말쟁이 아니냐?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 물어보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아우성쳤다. 예수님은 아무 말도 못 하셨던 것 같다.
가상칠언(架上七言)이니 꾸며서 굉장하게 부풀려서 말하지만 예수는 거기서 안 할 수 없는 말만 했다. 자기 어머니까지 부탁했다.
거짓말도 자기 말로 하면 아주 쉽다. 거짓말 잘하는 사람에게 왜 거짓말 하냐고 하면 자기더러 거짓말 한다고 놀란다. 자기는 거짓말을 안 한 것이다.
자기 입장을 세우기 위해서 늘 하던 습관대로 하는 것이니 아무 어려움이 없다. 내가 그런 사람에게 아주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레 한번 물어봤다. 넌 사람이 너무 좋고 흠잡을 데가 없는데 그 거짓말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했더니 완전히 내 생각과 다르게 반응해서 놀랐다. 얼굴이 붉어지면서 내가 언제 거짓말 했냐고 하는데 너무 놀랐다.
아하, 거짓말도 자기로 말하면 쉽구나. 개가 짖는 게 쉬운 것처럼 소가 풀을 뜯기가 쉬운 것처럼 일상적인 것이니까 그렇게 쉬운 것이다.
나도 어려운 것을 잘 못한다. 의지가 약해서 아무리 결심해도 소용없다. 그러니 어찌하면 내가 결심하지 않아도 될 그런 것이 없나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칼을 품고 결심해야 될 일 같으면 난 아예 안 되고 못하니까 처음부터 시작을 못한다.
그런데 그런 나를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늘 쉬운 길만 주셨다. 다른 사람은 굉장히 어려운 일을 맡은 모양이던데 나는 어려운 일을 맡아본 적 없었다. 항상 그분이 먼저 해주고, 구하기 전에 주시고, 두드리기 전에 열어주시니 내가 힘쓰고 애쓸 일이 없다. 나는 힘쓰고 애쓰라면 못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것을 너무 잘 아신다. 그러니 나대로 쓰신 것 같다. 무엇을 잘하는 사람은 잘하는 대로 쓰시고 못하는 사람 못하는 대로 쓰신다. 키가 큰 사람은 큰 대로 쓰고, 작은 사람은 작은 대로 쓰니까 하나님도 쉽지, 하나님도 기준 정해놓고 쓰려면 참 어려울 것 같다.
이놈의 인간이 어디 똑같은 인간이 있는가? 하나님이 기준을 가지면 너무나 어려울 것이다. 나도 우리 교회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면 그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어렵다. 다 안 맞는다.
내 기준에 맞춰도 안 되고 객관적인 기준에 맞춰도 안 되고 하여튼 기준에 맞추려면 너무나 어렵다. 그 사람 되는 대로 쓰니까 쉬운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된 대로 쓰신다. 십자가에 못 박아도 할 수 없이 박힐 사람을 못 박지, 아무나 십자가에 데려다 못 박겠는가? 나는 젊었을 때 이미 그렇게 기도했다. ‘나는 도저히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내가 자원해서 가기는 너무 불가능합니다. 억지로라도 끌고 가시면 할 수 없이 가겠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해놓았다. '저는 너무 어려우면 못 합니다. 그렇게 아십시오' 그랬더니 한 번도 그렇게 어려운 일을 안 주신 것 같다. 물론 어려운 고비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내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해결해 줬다.
충주에 있을 때인데 엑스폴로 74룰 준비했다. 다 아시겠지만 그 지역이 굉장히 넓다. 내게 맡겨진 구역이 충주, 중원, 제천, 단양 등 지역으로 말하면 충청북도 거의 전부다. 그 충청북도의 북부 쪽이 거의 다 내 관할 구역인데 두 교회를 방문해보고 그만뒀다.
한 교회 가는데 하루 종일 갔다 와야 한다. 단양, 제천까지 갔는데 강하나 건너면 단종애사가 감춰져 있는 바로 거기다. 그런데 가서보니 거기 갔다 올 시간이 없다. 그래서 강만 보고 왔다.
그렇게 한두 군데 갔다 오니 아이고 틀렸다. 내 임무는 다 틀렸다고 포기했다. 그리고나서 충주 시내에서 교회 청년들을 모아놓고 순장 교육을 한 두 번 하고 그것으로 끝마쳤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가니까 어느 국민학교를 빌려서 충청북도 전체가 모여 있었다. 거기서 정유주 간사가 날 보고 하는 말이 '아이고 목사님, 목사님 지구에서 3천 명 왔습니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놀라고 다른 사람들도 놀랐다.
도대체 내가 한 일이 없는데 어떻게 3천 명이 왔는가? 미리 하나님이 다 길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충주 제일감리교회가 그 지역 전체의 모교인데 그 교회 목사가 나에게 6개월간 강단을 맡겨놓고 토론토에 갔다 오지 않았는가.
그쪽은 완전 감리교 판인데 누구도 나에게 어느 교단 출신이냐고 물어본 사람이 없었다. 자기들이 다 동원해서 오니까 3천 명이 왔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많이 모은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 갑자기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원래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은 의정부 쪽이었는데 그쪽으로 갔으면 혼났을 것이다. 그쪽도 굉장히 광활한 지역인데 내가 감당하겠는가? 감리교만 있는 지역을 가보니 너무 쉬운 것이다. 그쪽에 장로교는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큼 교회 숫자가 몇 안 되고 다 감리교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쉬운 분이다. 자기도 쉽고 남도 쉽다. 보니까 자기도 어려운 것은 못 하는 분인 것 같다. 그 큰일을 어떻게 자기 혼자 다 하겠는가? 맡길 사람이 필요하니 사람을 지어놓은 것 아니겠는가?
“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으로 지어진 피조물이다.” 이 한마디인데 이 속에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사람은 어떤 것인지 다 들어있다. '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으로 지어진 피조물이다.' 그 특별한 목적이 다른 게 아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면 내려오지 못한 그 사람이다. 그런데 그것도 아무나 집어넣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아주 쉽게 말하면 우리 인생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 분이 여기 하나 있습니다. 그가 누구냐면 이 사람입니다. 그러면 다 놀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사람을 만나서 말하면 아주 쉬울 것 같다.
묻는 대로 대답하면 되니까, '나는 여기서 해답을 얻었습니다.' 하면 너무 쉬운 것이니 계속 물어보지 않겠는가? 그렇게 물어오면 또 대답하고 또 대답하고... 그렇게 접근해야 할 것 같다.
너무 복잡한 얘기를 듣다 보면, 누가 저것을 다 알고 가겠는가? 언제 공부를 해서 저만큼 알고 가겠는가? 목회자들이 저렇게 공부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없다. 대강 안다 해도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 김윤동 교수는 밥 먹고 잠자는 것 외에는 책만 보고 있다. 철학 교수로 평생을 있다 나온 사람인데 이것을 연구하느라 종일 책만 보고 있다. 눈도 안 좋아서 아주 두꺼운 안경 끼고 다니는데 너 눈 안 아프냐? 물으니 책 볼 때는 안경을 벗어야 한단다.
나는 안경을 끼면 눈이 아픈데 안경을 빼고 책을 보는데 눈 아픈지 모르겠다고 한다. 참 묘한 일이다. 그러니까 저렇게 연구를 하지, 눈도 나쁜데 그것 비집고 보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에게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일인데 김 교수에게는 그게 쉽다. 2주에 한 번씩 밤에 나에게 와서 간병을 하는데 아주 곤하게 자는 걸 깨우기가 너무 미안하다. 그 시간밖에 못 자는데 내가 불러대면 잠을 잘 못 잔다. 내가 시간마다 깰 때가 있다. 나도 어쩔 수 없어서 깨우는데 깨는 사람보다 깨우는 내가 더 어렵다.
일은 다 할 만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할 수 없는 사람은 못 한다. 교회에서 사무실 하나를 윤동 형제에게 내놨는데 순모임 방을 사무실용으로 아주 내놨다. 혼자 독방으로 대학 교수 시절 때보다 더 좋은 방이다. 공기 좋고 조용하고 방 널찍해서 마음 놓고 책을 보고 있다.
그렇게 많이 연구했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질리게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들으면서 와, 와, 감탄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지금도 관계된 서적을 나가서 다 사와서 읽는데 책방에 책 사러 나가야지 그 책을 다 읽어야지 바쁘다.
쉬운 길이 있는데 사람이 어렵게 살고 있구나, 그렇게 알아진다. “사람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다.” 이렇게 제시하면 너무 어렵지만 사람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모르지만 그 사람의 문제를 가지고 얘기하면 아주 쉽지 않겠는가
엊그제 그런 사람이 하나 왔다. 여자분인데 정말 그런 여자가 없다. 어느 정도냐면 혼자 계신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에 별 얘기를 다 한다. 시아버지는 어디가 얘기하느냐면 자기 애인 만난 얘기까지 다 한다고 한다. 그 정도로 허물없이 사는 며느리이다. 누가 그 정도로 하겠는가. 아무나 못한다.
그래서 그 자매에게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까지는 내가 그런 얘기를 안했다. 하도 유명한 자매인데 김성식 약사를 통해서 우리 집에 왔다. 나를 좋아해서 어떻게 나한테 잘해주려고 애를 쓰는데, 보니까 돈도 없는 것 같고 돈벌이도 특별히 없는 것 같다.
그제는 왔기에 김성식 형제도 있고 해서 시간도 별로 없는데 한번 벗겨보자고 크게 마음을 먹었다. 당신은 참 훌륭하고 다른 사람과 다른 게 참 놀랍다. 놀랍지만 그게 너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아니 태어날 때부터 그랬냐? 물으니 극구 변명한다. 그게 자기라고 한다.
그래서 그것은 네가 아니고 보고 듣고 배운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네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너라고 하냐. 내가 목 조르듯이 쪼았다.
그랬더니 마지막에는 말을 못하더라. 그래서 갈 때는 좀 풀어줘야 해서 다음에 또 나에게 안 올 거지? 물으니 아니요 며칠 후에 또 올 겁니다. 해서 '그래' 하고 보냈다.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더니 김성식 형제는 자기가 이제 할 말을 찾았다고 좋아한다.
왜냐면 그 자매를 만나면 자기가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너무 훌륭하고 착하다. 김성식 형제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자기는 그렇게 하고 싶은데 안 된다. 그래서 항상 어려운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사람대로는 안 되고 하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니까 항상 어렵다. 교회 와서도 감사 찬송을 잘 못한다. 안타깝다.
하고 싶은데 못한다. 못하는데 하고 싶다. 이것이 시지프스의 신화다. 큰 바윗돌을 굴려서 산꼭대기에 올려놓으라는 것이다. 거기에 올려놓는다면 위대한 일이다. 히말라야 몇 천 미터 빙산 위를 올라간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죽으면서도 간다. 형제가 다 죽어도 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내가 빙산에서 죽거든 내 시체를 찾으려 하지 마라. 나는 얼음 속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그렇게 유언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 시체가 얼어서 몇 천 년을 지날지 모른다. 그 빙산이 녹아내려서 밖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안 없어질 것이다. 땅에 묻으면 금방 썩을 것인데 이것은 썩지 않는 냉동고에 들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쉬운 길이 있다. 너무 쉬운 길이다. 예수 죽은 것을 보고 나도 죽는구나. 그러면 된다. 사람은 별수 없네. 저것이 사람이구나. 이러면 된다. 지금까지는 남이 그런 줄 알았는데 이 자리에 오면 내가 그렇다.
말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나도 싫었는데 볼수록 나인데 어떻게 합니까? 볼수록 나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 붙잡혀 있습니다. 도망가고 싶어도 못 도망가고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있어보니까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러면 되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허 목사님 새로운 곳으로 갔는데 그렇게 해보라. 어렵게 하려고 생각하지 말고 쉽게 가장 쉬운 길로 가보라. 쉬운 것이 싫어서 안 하겠다는 사람은 어쩔수 없지만 결국은 돌아올 것이다.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한번 얻어맞으면 언젠가는 돌아오지 않겠나.
내가 밤에 간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간식으로 유과가 있는데 그것을 몇 개 먹는다. 베지밀 두 개에 적셔 먹는다. 그런데 베지밀 속에 넣어놓고 그게 물러질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그러면 한 개 먹고 나서 또 한 개 먹으려면 이것이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모르겠다. 드문드문 먹으니까 끝도 없이 먹을 것 같다.
그래서 유과를 손으로 주물주물해서 넣으면 금방 부드러워진다. 이놈이 한방 맞으니 쉽네.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방 맞으니까 쉽다. 사람도 그렇다. 한방 맞고 나면 쉬워진다. 한 번도 안 맞아봐서 그렇지 한번 맞고 나면 쉬워진다. 그러니까 한방 때려놓고 안되면 그냥 둬라. 결국 돌아온다. 안 돌아올 수 없다.
이 복음이 만민을 위한 복음이라는 것이 이제는 너무 자랑스럽다. 나뿐 아니고 모든 사람이 다 그러니까 여기서 내 과거가 다 청산된다. 좋은 것도 청산되고 안 좋은 것도 청산된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좋다는 것도 사실은 잘 모르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타고난 것도 있고 환경도 있고 이런 것과 섞여서 좋게 보인 것이다.
겉으로 나타난 것밖에 모르니까 사람들이 나를 다 모른다. 이런 나를 보고 따라온 사람들은 나에게서 안 좋은 것이 보이면 그냥 뒤돌아서버린다. 어차피 나는 한 사람인데 어떤 때는 좋다고 했다가 어떤 때는 뒤돌아 서버린다.
여러분도 경험해 보시면 안다. 목회를 하면 정말 좋아하던 사람이 내가 조금 잘못하면 돌아서 버린다. 그런데 사람이 잘못을 전혀 안 할 수 있겠나. 또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가? 백번 죽어도 안 그런다는 사람도 많지만 백번 죽어도 안 그럴 사람도 사람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결정적인 순간에 가면 어찌 될지 모른다. 자기를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앞에서 밖에는 진실이라는 것이 없다. 예수 앞에서 밖에는 진실이 없다. 내가 진실 되지 않으려 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진실 되고 싶은데 안 된다.
내가 어느 종교인이냐 이게 상관없다. 기독교인이냐 아니냐? 이것도 상관없고 또 어느 파에 있냐. 이것도 상관없다. 사람은 다 똑같다. 파는 다르지만 인간은 하나다. 태어날 때부터 내가 장로 교인인가? 태어날 때부터 내가 감리 교인인가? 아니다.
하도 궁금해서 그때 (충주감리교회) 그 목사를 좀 만나보고 싶었다. 내가 교회생활지를 보내도 일체 반응이 없다. 그래서 사람이 무심하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궁금해서 알아보려고 검색해보니 마지막 설교인 것 같은데 토론토에 갔다 와서 그렇게 말했더라.
온갖 방법으로 교회를 좋게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세상은 변하는데 교회는 안 변하더라는 것이다. 교회가 변화되어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텐데 교회가 변화되지 안더라는 것이다. 그 얘기를 마지막으로 하고 끝내더라.
자기가 6개월 동안 토론토에 가서 배운 것이 그것이었다. 예배를 어떻게 드리면 좋으냐? 사람을 어떻게 대하면 좋으냐? 이런 것을 6개월 동안 배웠는데 해봐도 교회가 안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가 안 변하고 어떻게 세상을 변화 시키느냐고 하더라.
내가 저때 만나봤으면 좋겠다 하고 연락했더니 벌써 10년 전에 죽었다고 한다. 지금은 저 사람과 말이 되겠네 했는데 그 말을 하고 자기는 먼저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게 그 사람의 마지막 말이다. 그 사람은 문제는 알았는데 답을 알지 못하고 갔다.
그 사람이 설교 할 때 보면 정말 깔끔하다. 설교를 15분~20분밖에 안 한다. 그런데 한 설교에 딱 알맞은 예화 하나를 꼭 들어서 앞뒤를 맞추는데 15분~20분 내에 완전하게 설교를 한다. 놀랐다.
나는 그렇게 못한다. 더구나 CCC 김준곤 목사님 스타일로 하니까 40분이 보통이다. 설교하고 나오니 90 넘은 노인이 말하길 내용은 좋은데 잔소리가 많아. 그러더라.
그런데 노인네가 그렇게 말하니 그것이 참 다정하게 들렸다. 자기 아들도 장로고 손자도 장로인 그런 영감님인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말씀은 너무 좋은데 군더더기가 너무 많아. 그러니 깔끔한 설교를 듣다가 내가 40분이나 떠들어 놓았으니 어쩌겠나. 나가란 말도 못하고 들어가란 말도 못한다.
그 교회에는 참 점잖은 사람만 모였다. 충주 시내 유지가 다 모였다. 학교 교장, 서장, 판사등 기독교인인 사람은 다 그 교회를 나간다. 모든 기독교 간판이 그 교회에 다 붙어 있다. YMCA,YWCA,RCY 별것이 다 붙어 있다.
그 지역에서 대표적인 교회다. 거기서 가장 오래된 장로님이 그했다. 그 교회 마당에 가면 큰 은행나무가 있는데 거기 교역자가 죽으면 관을 하려고 심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최고인 교회이다. 그런 교회에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6개월간 설교를 했겠는가.
그렇게 미리 준비해 놓으니 엑스플로에 3천 명이 간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그렇게 준비해 주셨다. 그러니 하나님도 사람을 알아서 쓰지 무대포로 억지로 잡아 놓고 돼지 멱 따는 소리 하는 놈을 잡아다 놓고 쓰지 않는다. 그대로 다 쓴다.
그러니 하나님도 참 쉬운 분이다. 너무너무 쉬운 분이다. 우리가 알기를 하나님은 너무 어려운 분으로 알고 있다. 어려운 사람에게는 어렵고 쉬운 사람에게는 아주 쉽다.
이 복음이 어려운가? 쉬운 복음이다. 누구라도 참여 가능한 복음이니까 이보다 쉬운 복음이 없다. 지식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명예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돈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사람이 좋아도 되고 안 좋아도 되고 누구라도 다 참여되는 복음이니 이보다 쉬운 복음이 어디 있겠나.
교회를 다니려면 그것도 보통 사람은 못 다닌다. 교회가 요구하는 조건을 다 맞추려면 교회 다니기도 어렵다.
우리 교회가 그래도 참 편안하고 세상 앞에 자랑스러웠던 것이 아무 조건 없이 오라고 하니까 좋았던 것이다. 나도 조건 없이 온 사람이니까 사람에게 조건 붙이기 싫었다. 그렇게 조건 없이 부르니 다 좋아했던 것이다. 조건을 붙이고 오라고 하면 올 사람도 많지만 못 올 사람도 많다.
조건을 붙여 놓으면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면 내가 무엇을 성취해야만 자기 의가 생긴다. 사람은 그렇다. 자기가 무엇을 성취해야 자기 의가 생긴다. 자기가 아무것도 안하면 자기 의가 없어진다.
노인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앉아 계시라 하면 제일 싫어한다. 일감을 주면 좋아하지만 가만히 계세요 하면 참 좋아할 것 같은데 아주 싫어한다. 자기가 소외되니까 그렇다.
사람에게 가만있으라, 가만있으라. 그러면 쉬울 것 같은데 쉽지 않다. 아담에게 네가 동산을 네가 관리하고 네 맘대로 살아라. 했는데 그것이 괴롭다.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제일 괴롭다.
안식일이 제일 어려운 계명이다. 내가 다 이루었으니까 너희도 안식하라는 것인데 그러면 얼마나 쉬운가? 그런데 안식일이 그렇게 어려운 계명이다. 열 가지 계명 중 가장 어려운 계명이 안식일이다. 하지 말라는 것이 가장 어렵다. 하라는 것은 가장 쉽다. 그러니 거꾸로 된 것이다.
하나님이 안식하시고 그 날을 복주어서 거룩하게 했다. 아니 자기가 다 이루어서 편안하니 너희도 같이 이 안식에 참여해라. 이 말인데 세상에 그렇게 좋은 것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사람은 자기 이름이 안 나니까 그게 마땅치 않다.
안식일이 가장 좋은 복음이고 가장 어려운 복음이다. 우리도 가만히 있기가 참 어렵다. 꼭 무엇을 해야 하는데 생각하면 가만히 있기가 정말 어렵다. 가만히 있으려면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하니까 어렵다. 가만히 있으려면 참아야 하고 일 하려면 오히려 좋다.
이게 말이 되는지 모르겠는데 안식일보다 좋은 계명이 없고 안식일보다 어려운 계명이 없다. 그게 사람이다. 그러면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면 되는가? 그것이 더 어렵다. 어디까지 일하고 어디까지 쉴 것인가 그것도 어렵다.
그래서 중국 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첵이 중용이다. 중용 다음에 대학이다. 그러니 제일 어려운 책이 중용이다. 1/2이라고 하면 쉬운데 1/2이 아니다. 가장 적당한 것이 중용이다. 그러니 가장 적당히 하는 그것이 어렵다.
적당히 해라. 그러면 쉬운 것 같은데 아주 어렵다. 1/2 해라 그러면 쉬운데 1/2이 아니고 적당히 해라. 알아서 해라. 그러면 제일 어렵다.
나는 말할 때 '알아서 해라' 그러면 자유를 주는 말인데 듣는 사람은 어렵다는 것이다. 알아서 해라는 말이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내가 해보면 누가 '알아서 해라' 그러면 그냥 순진하게 내가 알아서 하면 되는데, 다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어렵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아주 어렵게 생각한다.
내가 알아서 하라고 했을 때는 다음에 왜 이렇게 해 놓았느냐고 묻지 않는다. 그런데 내 속을 아는 게 아니라 모른다. 그래서 항상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이 내 가까이 있는 사람이었다. 1/2 하라고 하면 잘할 사람인데 항상 알아서 하라고 하니까 나는 자유를 주느라고 하는 말인데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 놓고 나 때문에 종살이 했다고 한다.
누가 종살이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할 수 없으니까 알아서 하라고 한 것이다. 그러니 좌우간 이렇게 했든지 저렇게 했든지 내가 할 수 없어서 맡긴 것이니, 맡겨 놓고 왜 이렇게 했냐고 한 번도 말 안 했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 아주 어려운 것이다.
일을 하면 아주 깔끔하게 잘한다. 그런데 내가 중간에 알아서 하라고 하면 안 된다. 하여간 살다 보니 별일이 다 많다. 누구든지 나와 있으면 알겠지만 알아서 하라는 말을 잘한다. 그게 내가 못해서 하는 소리다. 내가 할 수 없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데 듣는 사람은 그렇게 듣지 않는다.
이 복음은 알고 보면 알아서 하라는 복음이다. 이렇게 됐으니 알아서 해라. 그 말이다. 사실이 이렇다. 그러니 네가 알아서 하라는 그 말이다. 이것이 그렇게 어렵다니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 교회에서 직접적으로 그런 말을 들었다. 내려오지 못했다는 말을 꼭 해야 하나? 그 말을 안 하면 좋겠다. 또 그 말만 뺏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있다. 그 말만 뺐으면 좋겠다 해서 나는 그 말을 듣고, 너 때문에 한다. '내려오지 못하면' 이라는 말을 안 하면 좋겠다고 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내가 계속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없으면 할 필요가 없는 말이다.
알아서 하라고 다 맡겨 놓았는데도 그래도 못하겠다고 하니 계속 알아서 하라는 말을 한다. 이것이 네 개인의 것이니까 너 알아서 해랴. 이 말을 다 믿을 때까지 해야 한다. 그런다고 포기하겠는가.
나는 지금 안하면 안 될 말만 하고 있다. 다 아멘하면 더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다 아멘이 안 되니까 내가 계속 말을 해야 한다. 할 말이 계속 있다.
신기한 것을 발견하고 있다. 하나님이 나에게 못 하는 데로 못할 사람에게 일을 맡겨 놓았다. 내가 좀 잘났으면 다른 사람 고생을 많이 시킬 것이다. 사람을 잡을 것이다. 못하니까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하는 것이지 내가 잘하면 편하게 못한다. 잘난 사람은 다 밑에 사람을 괴롭힌다. 이것도 못하냐? 이것도 못하냐? 한다.
우리 교회에 그런 사람이 하나 있다. 아들들이 다 서울대 나왔는데 한 아들만 못 나왔다. 그 아버지가 서울대 나온 아들은 하나님 받들 듯 받드는데 서울대 못 나온 아들에게만 맨날 뭐라고 한다.
아버지가 무슨 공장을 하는데 자기 공장에 와서 일하는 사람은 그 못난 아들만 한다. 결국 그 공장을 맡기려면 그 아들 외에는 맡길 데가 없다. 서울대 나온 아들들이 그것을 하겠는가. 아무도 안 한다. 줘도 안한다.
그래서 내가 그 자매에게 참고 있어라. 참고 있으면 너희 것이 되니까 참고 있으라고 했다. 시간만 지나면 너희 것이 된다.
그러니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 운행하는 모든 것을 누구에게 맡기겠는가.
가장 못난 아들에게 맡길 것이 아니겠는가. 가장 못난 놈에게 맡긴다. 잘난 놈은 안 맡을 것이니 가장 못난 놈에게 맡겼다. 누가 상속자가 될 것이냐? 똑똑한 놈이 될 것 같지만 하나님 나라는 반대다.
예수 왜 그렇게 되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모세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 80세의 노인, 아무것도 못할 사람, 완전히 절망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서 모세를 부른 것이다. '내가 너를 바로 앞에 신이 되게 하겠다'고 할 때까지 왜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예수를 왜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는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자지만 예수가 만일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면 인류를 구원할 자로 왔다. 그러니 '가라. 내가 너로 인류를 구원할 사람으로 만들겠다' 이래서 보낸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목적은 이 사람을 주는 것이다. 이 사람을 통째로 세상에게 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무슨 자격으로 그것을 받았는가? 하늘에서 그렇게 왔다고 하면 알 길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쉽더라. 아.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구나. 위임을 했구나. 우리가 똑똑해야 위임을 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볼 때 자기가 지은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어야 아들을 삼을 것이다.
하여간 나는 이 복음을 말한 이후부터 너무 놀라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너무 놀라운 세계다. 사람이 많이 와서가 아니고 적게 와도 그것마저도 쪼개져서 반쪽이 너소 네 조각으로 갈라졌다. 각자 지금 딴소리 하고 있다. 들어보면 재미있다. 다 딴소리 하는데 재미있다. 그래서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버린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도리깨가 뭔지 모른다. 도리깨질하면 사정없이 두드린다. 사정 안 보고 두드린다. 그래도 콩은 곡식으로 살아서 따로 나온다. 생명은 사정없이 두드려 맞는 것 같은데 살아있다. 쭉정이는 살아있는 것 같은데 죽는다.
이것은 절대로 안 없어질 것이다. 없어질 수 없기 때문에 안 없어질 것이다. 천지는 없어진다 해도 내 말은 변치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그런 말씀이니 이것은 천지가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어제 저녁에 김교수 말을 듣다가 번쩍 이 생각이 났다.
쉬운 것을 놔두고 이렇게 어렵구나. 언제 저것을 다 공부해서 내가 다 갈라내겠는가. 쉬운 길이 있는데 사람들이 저렇게 찾고 있구나. 저렇게 가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쉬운 길로 쉬운 길로 가보자. 제일 쉬운 길이 제일 어려운 길일 수도 있고, 제일 어려운 길이 제일 쉬운 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