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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학 총론
1. “성경 해석학”의 개념 정의
'해석학'(hermeneutic, hermeneutik)은 그리스어 명사 'hermeneia'라는 단어에서 유래한다. 'hermeneia'의 의미는 "해석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 hermeneuein(라틴어 interpretari와 상응)에 의해 결정된다. 'hermeneia'는 '해석'(interpretation)을 의미하며, 불분명한 것을 분명함으로 가져오는데 널리 적용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hermeneia'는 신들의 메시지에 적용되었다. 그 신들의 메시지는 신비적인 것이고, 불분명 하므로 해명, 즉 해석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원래 'hermeneia'라는 해석학의 어원의 뜻은 신의 소식을 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어원적인 유래를 감안해 볼 때 “성경 해석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학문적으로 해석(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기술적인 원리와 법칙을 이용해서 성경의 진리를 해석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성경해석학(Hermeneutics 또는 Biblical Interpretation)은 성경을 대상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본문의 뜻을 쉽게 풀어 이해시킴과 동시에 본문 이해를 바탕으로 삶에 적용케 하는데 따른 여러 가지 원리와 실제적 방법들에 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종합한 학문이다.
성경해석학은 학문적으로는 주경 신학(Exegetical Theology)의 한 기초 과목이지만, 모든 신학이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에 사실은 모든 신학을 하기 위한 기본 준비로서 필요한 것이다.
성경해석(Interpretation)이란 성경해석학에서 다루는 내용으로서 용어의 정의로는 성경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이해하는 내용에 있어서는 성경 본문의 뜻을 정확하게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자가 읽고 이해한 본문을 자신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키기 위한 원리와 방법들까지 총괄하는 것이다.
2. 성경 해석의 필요성
1) 성경해석의 필요성
성경이 명백하다면,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는가? 성경은 명백하지만 인간은 죄 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명백한 성경 내용을 오해한다. 따라서 성령의 조명으로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명백한 성경의 풍부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피상적으로 보면 오해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니고데모가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오해했고, 제자들이 "나사로가 잔다."는 말씀을 오해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피상적으로 보지 말고 깊이 연구 해석할 필요가 있다(시 119:18).
해석이 어떤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성경해석은 당연히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또한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은 성경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곧 성경을 읽는 자는 성경의 해석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기 전에 올바른 성경해석방법부터 아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법대로 성경을 해석하면서 그냥 무턱대고 성경을 읽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그러한 성경 읽기는 올바르고 건전한 해석방법을 통하지 않고서 자신의 잣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므로 사실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성경의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이 왜곡되기도 하며,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보다는 인간의 생각이 더 많이 지배하게 되는 상황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단(異端)들을 봐도 한결 같이 성경을 인용하는 것을 보면 똑같은 성경을 두고서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잘못된 신앙도 잘못된 해석이나 잘못된 해석에 입각한 잘못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올바른 성경해석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2) 성경해석이 필요한 이유
성경해석이 필요한 구체적인 이유는 첫째는 언어적인 차이(Language gap)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언어에는 문화와 역사, 사상과 관습 등이 담겨 있으므로 성경의 기록 당시와 독자들 간에는 서로 다른 언어로 인하여 엄연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둘째는 시간적, 공간적 차이(Chronological and Regional gap)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과거의 문서인 성경과 우리 사이에는 과거와 현재라고 하는 시간적 차이가 있으며, 성경의 배경이 된 팔레스타인과 근동 지역 그리고 헬라 반도와 로마 등에 대하여 생소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의사소통의 차이(Communication gap)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성경 기록자들과 우리들 간에 지식, 경험, 문화, 상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본문의 의도를 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것이다.
넷째로는 표현의 차이(Expressional gap)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성경은 많은 문학 장르를 포함하고 있다, 내용과 표현법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해석학은 필요한 것이다.
3. 성경해석의 역할과 목적
1) 성경해석의 역할
성경해석의 역할은 성경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성경의 본래의 의미를 잘 깨닫도록 이끌어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모르는 길을 처음 갈 때 도움을 받지 못하면 실패하거나 고생하면서 시간과 정력을 많이 낭비할 것이다. 길을 잘 아는 사람에게 미리 자세히 물어보고 또 지도를 보면서 간다면 훨씬 쉽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성경해석은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2) 성경해석의 목적
① 시간적·공간적 또 언어적, 문화적, 종교적 격차를 좁힐 수 있도록 안내함으로써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최대한 정확하게 드러내어 읽는 자로 하여금 말씀이 의미하는 바에 도달하도록 함이다.
② 깨달은 것을 자신의 삶에 효과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의 삶 가운데 살아 역사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③ 하나님께서 다양한 시대에 다양한 사람을 통하여 다양한 사람들과 배경 속에서 주신 계시를 보다 올바르고 풍성하게 이해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순종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함이다. 사실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로 알아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고 경배하게 하는 데 있는 것이다.
4. 성경해석의 특수성
1) 이해와 적용의 양면성
'성경해석'은 성경 본문의 뜻을 쉽게 풀어서 이해시키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표현하면 '성경해석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해석에 있어서는 단순하게 뜻을 아는 것으로써 해석이 끝났다고 말할 수 없는 무엇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이 세상의 다른 책들과는 구별되는 신앙을 위한 책이기 때문이다.
성경 역시 인간의 글자로 내용이 표현된 점은 다른 책과 다를 것이 없으나,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지식이 아닌 '계시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은 이해과정으로 그치지 않게 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였다면 나의 삶에 어떤 교훈이 있는지를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다.
2) 성령의 안내
또한 성경해석은 통상적인 해석학의 지식으로써만 해석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경에는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초월한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인간(물질과 현상계 속에서 제한적으로 삶)은 하나님(보이지 않는 세계에 초월적으로 계심)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해석에 관한 이론과 방법을 알고, 동시에 성경의 원 저자이신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이다.
이를 성령의 조명(Illumination)이라고 부르는데, 성경해석학에서 본다면 성령께서 주시는 독해력(Comprehension)이라고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성경을 읽을 수는 있지만, 해석을 하지 못하는 까닭 은 그들이 일반적인 독해의 기술은 가질 수 있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독해력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가 아닌 자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므로 읽어도 그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경의 기적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로 이성과 합리주의 정신에 의존하여 성경을 읽고 이해한 것들은 진정한 해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을 직통 계시 같은 신비적인 현상에 의존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 것이다. 성령의 안내란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지혜와 인격을 건전하게 사용하여 말씀을 이해하되, 그러한 방법들에 과오가 없도록 기도하면서 지혜가 부족하지 않도록 위로부터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해석 원리와 성령의 인도 사이에 균형이 필요한 것이다.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대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것과 여러 가지 연구된 건전한 이론과 방법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동시에 요구되는 것이다.
5. 성경해석의 목표
1) 저자가 1차 독자에게 의도한 의미를 찾으리라
성경을 해석하는 아주 중요한 규칙 가운데 하나는 성경 한 부분의 의미를 저자가 본래의 1차 독자에게 의도했던 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연구하려는 책 전체를 시간을 들여 여러 번 통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성경 사전을 통해서 배경 지식을 알 필요도 있다. 원래 저자의 상황을 잘 이해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그것을 기록하게 하셨는지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2) exegesis(引出) 하리라
성경을 해석하는 것과 관련된 두 가지 전문적인 용어가 있다. 주해(exegesis)란 말은 본문으로부터 의미를 끄집어내는 것을 의미하고, 외삽(外揷 eisegesis)이라는 단어는 본문 안으로 의미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는 반드시 주해(exegesis)를 해야지 외삽(eisegesis)을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생각을 본문 안으로 주입시키는 대신 오히려 본문으로부터 의미를 도출해 내야 한다.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성경 해석학은 외삽을 제거하고 본문의 본 뜻을 도출하는데 목표를 두는 것이다. 성경의 한 본문에는 오직 한 가지 의미만 있기 때문이다.
성령님께서는 어떤 본문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의미로 깨닫도록 성경을 기록하지는 않으셨다. 성령님께서는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진리의 하나님이시기에 스스로 모순을 일으킬 수 없으시다. 만일 성령님께서 본문의 의미를 마음대로 변화시켜 버리신다면 우리는 그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진리의 표준이 없게 되므로 세상에 있는 많은 영(靈)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는지를 시험해 보라고 하신 말씀을 실천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한 본문을 가지고 수많은 적용을 할 수 있지만 분명히 해석은 하나만 있다.
6. 성경해석에 관한 용어들
성경해석은 주석(註釋), 석의(釋義), 주해(註解), 주경(註經), 강해(講解), 해석(解釋), 해석학(解釋學) 등의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들 용어들은 얼핏 보면 모두 비슷한 말 같아서 많은 경우에 혼용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해석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 관련된 용어들의 개념을 정리해본다.
1) 해석학, 해석
성경해석 관련 용어들의 상관관계는 주석에서부터 석의, 주해, 강해, 해석, 해석학의 순서로 그 의미가 확대되어 간다.
먼저, 해석학(Hermeneutics, Biblical Interpretation)은 해석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가장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앞에서 말했듯이 해석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해석(Interpretation)은 광의적으로 해석에 관한 모든 것들을 말하므로 다시 주해와 강해로 구분한다.
주해(註解)가 본문의 뜻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면 강해(講解)는 본문을 적용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들을 나누는 것은 앞에서 성경해석의 목적이 나눠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해석의 개념은 학문적으로 정의할 때와 일반적인 의미에서 다르게 사용된다. 학문적인 정의로는 위에서 말한 대로 해석이란 주해와 강해를 포함한 포괄적인 개념이 되지만, 일반적인 해석의 개념은 적용(Application)에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단순히 뜻을 아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즉,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주해를 가리키는 협의적 개념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2) 주해
주해는 주경(註經)이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Exegesis 라고 하는데, 어원은 '길을 안내하다, 설명하다, 나타내다'의 뜻을 가진 헬라어 엑세게오마이에서 비롯되었는데 From 이란 뜻의 전치사와 인도하다라는 뜻의 동사가 합성하여, ∼로부터 인도함을 받는다는 뜻이다.
만일 성경을 해석할 때 자기 사상을 개입시키면 주해가 아닌 외삽(外揷)이 된다. 외삽은 Eisegesis라고 하는데, 사람 생각을 가지고 성경본문 속으로(Into)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주해는 말뜻에서 보듯이 Into가 아닌 From의 정신으로 해야 한다.
즉, 주해의 원리는 경험, 가치관, 철학, 신조, 교리 등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성경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안 된다. 오직 성경에서 비춰져 나오는 빛을 겸허하게 받겠다는 정신으로 성경을 대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3) 주석, 석의
주해는 다시 세분하면 주석과 석의로 나뉘어 진다. 주석과 석의라는 용어는 서로 많이 혼용되지만, 실제로 의미상에 차이를 구별할 수 있다.
주석이 일반적으로 석의라는 말보다 좁은 의미로 쓰인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주석(註釋)이란 영어로는 Explanation이라고 하며 무엇에 대하여 설명한다는 뜻이다. 곧 주석은 어느 일정 본문 내에서 단락 내지는 어느 일부 구절들을 택하여 뜻풀이를 하는 진행하는 과정이다. 즉, 본문 전체가 아닌 한 구절씩을 어귀의 뜻풀이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 전체를 해석하는 석의보다 좁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 주해이다.
반면, 석의(釋義)는 Commentary인데, 주석을 통해 구절들의 뜻풀이를 모아서 본문 전체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석의는 주해와 비슷한 개념으로서 두 가지 용어는 흔히 동의어로 사용된다.
강해가 말씀을 적용하는 측면이라면 석의나 주해는 성경 본문의 최초의 의미를 알아내려는 작업으로 이해하면 된다.
주해와 주석과 석의의 관계를 요약하면 주해는 강해에 대조되는 큰 개념으로 볼 수 있고, 주해의 세부내용은 다시 어귀 해석의 주석과 본문 해석의 석의라는 개념으로 구분한다고 보면 된다.
4) 강해
강해(講解)란 영어로 Exposition인데, 뜻풀이에 그치지 않고 실제의 삶에 적용하도록 설득시키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즉, 강해 설교(Expository Message)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주해가 본문의 최초 의미를 드러내는데 주력하고,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역사적 이해(Historical Particularity)를 추구하는데 있다면, 강해는 본문의 최초 의미를 파악한 것을 바탕으로 해서, 그 본문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찾아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곧, 강해는 본문과 나와의 관련성(Contemporary Relevance)을 발견하고 현재 나에게 어떤 교훈이 있는지를 찾아내어 적용시키는 실존적 이해를 다루는 것이다.
주해와 강해의 관계를 본다면 결국 주해도 해석이고 강해도 해석이라는 뜻이나, 주해는 단순히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자 하는 협의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고, 강해는 주해를 바탕으로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광의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주해가 성경 말씀을 가능하면 성경이 기록되어진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입장으로 해석하는 것이라면, 강해는 역사를 초월하여 모든 성도의 현재적 삶의 문제와 관련지어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해를 위해서는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연구가 수반되지 않을 수 없으며, 강해는 그러한 주해를 바탕으로 삶의 증거들과 연관지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석은 이론적이라고 할 수 있는 주해와 실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강해를 모두 포함하여야 완벽한 해석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면 평형을 잃게 되며, 건전한 해석을 기대하기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주해 쪽으로 기울게 되면 본문의 뜻을 아는데 그치고 실천이 약한 '지식적 그리스도인'을 양산할 것이며, 강해 쪽으로 기울게 되면 본문의 의도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에 따라 신앙의 기복이 심한 '감각적 그리스도인'이 많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건전한 해석은 주해와 강해를 병행하면서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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