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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4장
그리스도께서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시작하심
(찬송 시편 25편 – 악보는 맨 아래에)
2023-12-2, 토
맥락과 의미
예수님은 3장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다시 세워 인류를 구원하시는 일을 준비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앞으로 메시아, 곧 그리스도께서 오신다고 예언했습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마음을 준비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으셔서 그리스도의 직분을 임명받고 능력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뜻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가 없으신데도 죄인 중의 하나가 되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분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세례는 받는 사람에게 씻어야 할 죄가 있음을 선언합니다. 그 당시의 세례는 침례였습니다. 몸이 물에 완전히 잠겼다가 올라옵니다. 그 의식은 죄인은 죽어야 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세례의식이 보여줍니다. 예수님 안에서 성도가 죽고 살아나는 이 복음을 세례가 전합니다. 마태복음 27, 28장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3장의 세례가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4장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는 일을 시작하십니다. 먼저 마귀를 이기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새로운 인류와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 지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의 치유를 시작하셨습니다.
1. 말씀의 능력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며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1-11절)
2.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제자들을 부르심(12-25절)
1. 말씀의 능력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며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1-11절)
1) 광야에서 40일 금식 후 시험을 받으심(1, 2절)
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려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에 성령은 그분 위에 오셨습니다. 성령님은 이제 예수님을 마귀가 시험하고 공격하는 장소로 인도하십니다.
아담의 가정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마귀의 시험에 진 이래로 인류의 역사는 죄와 고통으로 얼룩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로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인류의 비극의 역사를 그리스도께서 역전시켰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시험받을 때 성령과 그리스도의 도우심이 계속됩니다. 이 말씀을 의지하여 승리합시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간 금식한 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출애굽한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마귀에게 휘둘린 그 비극의 역사를 그리스도께서 역전시키십니다. 아담과 출애굽 때의 백성은 탐욕과 우상 숭배로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오직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분 안에서 한 새로운 민족을 만들고 교회를 새롭게 하십니다.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40 일(낮) 40야(밤)를 거기(시내산)에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출 34:28).
그때 모세와 함께 언약의 말씀을 기록했던 아들 하나님이 이제 사람이 되셨습니다. 모세처럼 백성의 대표로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리스도는 약한 자처럼 되어 수치스러운 마귀의 시험을 다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이기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주신 언약 말씀의 뜻을 더 풍요롭게 드러내셨습니다. 참으로 언약에 신실한 이상적인 백성의 첫 번째 구성원이 되셨습니다.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2) 세 가지 시험(3-11절)
a) 첫째 시험: 돌로 떡을 만들어라.
이것은 식욕에 대한 유혹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의지하지 말고 그분의 말씀도 의지하지 말라는 유혹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유혹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를 의지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혹은 자기를 신뢰하는 교만함에 대한 유혹입니다.
사단은 예수님께 하나님의 허락이 없는데도 돌로 떡을 만들라고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한계를 넘어서라도 자기 스스로 생계나 인생의 문제를 시도하라고 유혹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신명기 8:3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이라는 말씀으로 사단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이 구절은 성경 말씀을 사용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작정, 예정, 섭리의 능력에 관해 가르칩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이것을 믿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먹이신다는 사실에 대해 불신하게 만들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의 능력으로 하나님만 신뢰하며 마귀를 이겼습니다.
b) 둘째 시험: 성전 꼭대기에 뛰어내리라.
마귀는 시편 91:11, 12절의 약속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말씀의 원래 뜻과는 다르게 악의적으로 사용합니다. 이 시편은 성도가 고난 가운데서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이 과연 나를 도와주시는지 보자’ 하게 만들어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일으킵니다.
성도는 일부러 자기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불필요하게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주신 정상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능력을 사용해 자신을 보호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자기 종으로 취급하는 교만한 태도입니다.
우리도 말씀을 그 원래의 뜻과 다르게 사용하면 사단의 함정에 빠집니다. 성경 각 구절의 원래 의도를 잘 깨닫고 나서 그 말씀으로 우리의 무기를 삼아야 합니다.
정말 위기 가운데 있을 때 우리도 하나님을 시험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물이 떨어졌을 때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기적적으로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출 17:7).
예수님은 이번에도 신명기 말씀으로 이기십니다. 신 6:16,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이 말씀으로 이겼습니다.
c) 셋째 시험: 내게 엎드려 절하라.
사단은 예수님께 세상 모든 영광을 보여주며 자기에게 절하면 그 영광을 주겠다고 유혹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실제적으로 이 유혹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분의 감각 속에 세상의 영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유혹을 향해 마음이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사단은 자기의 도움으로 영광을 추구하라는 유혹을 하며 우리를 공격합니다. 거짓, 질투, 탐심 등 사단의 방법으로 영광을 취하라는 유혹이 우리 시대에는 더욱 강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번에도 신명기 말씀으로 마귀를 이겼습니다. 신 6: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우리는 모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의 말씀에서 복을 얻어야 합니다.
둘째 시험은 십자가를 지지 말라는 유혹
둘째 시험에는 십자가를 지지 말라는 유혹도 있습니다. 6절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3, 6절), “뛰어내리라”(6절)는 마태복음 27:40-42에서 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향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하며 한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고 조롱하는 그 음성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성전 꼭대기에서 이미 울려 퍼졌습니다.
당시 대제사장의 영적 상태가 그러하였습니다. 그런 제사장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조롱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고 성도들의 목소리를 통해서도 사단의 음성이 들릴 수 있음을 알고 잘 분별합시다. 아무리 그럴 듯해 보여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부인하면 사단에 속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지고 갈 때, 십자가를 지지 말고 편한 길로 가라고 유혹하는 사단의 음성을 잘 분별합시다.
그리스도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을 정리한 신명기의 세 마디 말씀으로 사단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시내산 언약을 새롭게 하여 새로운 출애굽을 이루셔서 새로운 한 백성을 온 세상에 이루실 분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더욱 더 믿고 말씀과 성령님의 능력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승리합시다.
2.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제자들을 부르심(12-25절)
1) 이방 갈릴리에 복음을 전함으로 온 세상에 전파하기 시작(12-16절)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시험에서 이기심으로 메시아로서 일하실 준비를 끝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북부 변방 지역인 갈릴리와 가버나움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마 4:15, 16). 이사야 9:1, 2의 예언입니다. 이 예언을 예수님이 이루셨습니다.
이사야가 이 예언을 한 기원전 8세기에 갈릴리 지역은 앗시리아의 침략을 받아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갈릴리가 속해 있던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결국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합니다. 그 땅은 어둠의 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흑암의 땅에 구원의 빛을 가장 먼저 비추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남쪽 유다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갔다가 기원전 5세기에 돌아오면서 이 약속은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신 뒤에야 완전하게 그 약속이 성취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 전파와 귀신 추방, 치유 사역을 갈릴리 지역에서 시작함으로써 그곳에 빛을 비추셨습니다.
이사야도 갈릴리를 “이방”(15절)이라고 예언했고 마태복음도 그렇게 인용합니다. 이스라엘 지역이지만 워낙 변방이라 이방이 된 갈릴리 지역에서 그리스도의 주요 사역이 이루어집니다. 바로 온 세계 이방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시작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마태 사도는 하나님이 구약에서 하신 약속을 성취하는 분임을 잘 보여줍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마 1:23)라는 이사야 7장의 예언(14절)이 이루어졌음을 마태복음 1장에서 말했습니다(21절). 그리고 다시 이사야 9장에서 한 갈릴리에 대한 약속의 예언을 예수님이 이루고 있음을 마태복음 4장에서 말합니다.
2) 그리스도가 일하실 때 천국이 오고 제자들이 따라감(17-25절)
17절에서,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사기 13:5에서 “나실인” 삼손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라고 예언한 대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사렛이 있는 갈릴리 지역에서부터 구원하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전한 그 복음을 계속하여 전하십니다(23절). 예수님이 오심을 통해서 천국이 왔습니다. 그 영적인 나라가 시작된 것에 대한 증거로서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복음을 전하면서 동시에 믿는 자의 죄를 용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면서 회개하고 의로운 삶을 삽니다.
우리가 열망할 것은 기적적으로 병을 고치는 것이나 물질적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잘 배우고 회개하며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기적을 체험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잘 배우고 회개하면서 천국에 들어갑니다.
4명의 제자를 부르심,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좇은 제자들
그리스도는 복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이어갈 사도를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다 버리고 그분을 따랐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안정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고향 “나사렛을 떠나”(13절)는 일을 했습니다. 떠난다는 말은 버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든 것을 “버려 두고”(마 4:20)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생업을 버리고 복음 사역에만 헌신했습니다.
과거에 사도를 사용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은 목사를 세우셔서 복음을 전파합니다. 복음과 함께 빛과 새 나라를 이루십니다. 그래서 목사도 자기 생업을 버리고 복음에 헌신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성도에게도 해당됩니다. 성도도 자기 생업에 종사하되 영적으로는 항상 “버리고 따라야” 합니다. 주님이 버리라고 하면 언제든지 버리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주어진 생업이나 직장 일을 하고 학교 생활을 합니다.
현재의 직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버릴 수도 있지만 다른 결정을 하기 전까지는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면서 생업을 계속합니다. 세상의 변하는 물질에 소망을 두지 않고 그것을 오직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는 전에 하던 것을 버립니다. 결혼을 하는 부부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가정을 세우라고 부르신 것을 이루기 위해 부모님을 버리듯이 떠나야 합니다(마 19:5).
믿고 복종할 일
예수님께서 마귀와 그의 유혹 앞에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여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우리도 마귀나 죄의 유혹을 두려워하지 말고 항상 예배와 개인 성경 읽기를 통해 우리 자신을 말씀으로 무장합시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죄와 마귀를 항상 이깁시다. 지금도 그리스도는 말씀의 능력과 성령님의 일하심을 통해 우리에게 계속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자기의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듯이 우리도 매일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시다. 하나님 나라를 즐깁시다. 버려야 할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버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좋은 것을 얻습니다.
우리가 주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때로는 위험한 지경에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큰 기적과 은혜로 우리를 돕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버릴 것을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기뻐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3절,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아나-코레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14회 나오는데 그중 열 번은 마태복음에 나옵니다. 2장에서 동방박사는 헤롯왕의 궁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길로 떠났습니다(2:12, 13). 요셉은 예수님과 마리아를 데리고 헤롯을 피하여 이집트로 물러갔습니다(2:14). 이후에 헤롯의 왕위를 이은 잔인한 왕 헤롯 아켈라오를 피하여 갈릴리로 떠나서(아나-코레오-2:22) 거기서 살았습니다 (카타-오이케오).
이제 4장에서 예수님은 다시 고향 갈릴리를 떠나 가버나움으로 가셔서 거기서 사셨습니다(4:13). 이후 예수님은 종종 바리새인과 대중을 피하여 한적한 곳으로 떠나가셨습니다(12:15, 14:13, 15:21).
고향을 떠나고 대중을 떠나는 일은 일반 사회에서도 독립적으로 인생을 개척하는 사람이 당연히 겪어야 할 과정입니다. 더구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세상에서 구별되어 선택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우리는 영적으로 계속 떠나야 합니다. 세상 가운데 살지만 세상의 영적인 경향에 섞이지 맙시다. 고독의 공간으로 갑시다. 거기서 하나님과 깊은 친교의 시간을 가집시다.
<참고> 13절,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카타-오이케오)
역대상 9:2은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혀 갔다가(아포-오이케오) 돌아온 사람 중에 먼저 제사장, 유다 백성,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거주하였다(카타-오이케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족보가 “왕조실록”(비블리온)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대상 9:9).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사신 것도 포로에서 돌아와 사신 것으로 묘사합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이 바벨론 포로의 후손으로서 바벨론에 살고 있는 것으로 말합니다(메타-오이케오, 마 1:11, 12, 17, 17). 과거 포로기 백성이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듯이, 예수님도 가버나움에 거주하셨습니다(카타-오이케오).
역대상에서 예루살렘에서 다시 시작하여 생육하고 번성한 “그들의 계보”(게네시스, 역대상 9:9)는 이제 그리스도 자신의 “계보”(비블리온 게네시스-번성하는 후손에 관한 책, 마 1:1)에서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은 가버나움에서 그분의 천국 복음 전파와 치유 사역을 통해서 동역자로 부름 받은 제자들의 공동체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고(마 4:20)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는(마 4:25) 일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적 가족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하는 이 땅에 어둠이 짙게 깔려 있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에 연합되어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분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계보”를 우리를 통해 이루어 가십니다.
어둠의 땅 가버나움에 거주하신 그리스도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 거주하십니다(롬 8:11, 엔-오이케오). 우리의 가정과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말씀에 순종함을 통해 반드시 생육하고 번성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그날까지!
<참고> 그리스도인과 금식
금식은 기도하는 데 많은 유익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교인들은 40일 동안 금식했다고 자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40일 금식’은 모세와 엘리야만 했습니다(열왕기상 19:8). 모세는 율법을 받는 중보자로서 이 일을 했습니다. 엘리야도 이스라엘에 율법과 제사장과 선지자가 거의 무너져 가고 있을 때 언약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금식하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던 구약 선지자와 제사장도 40일 금식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40일 금식은 한 번만 했습니다.
금식의 날수가 많아서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로 필요한 것을 공급하십니다.
<참고> 버리고 떠나는 예수님(18절)과 제자들(19절), 결혼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고향 나사렛을 “떠났습니다”(13절, 카다레이포). 이 말은 버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든 것을 버려두고(20절, 아피에미)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려두고(아피에미-5:11, 카타레이포 5:28) 예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남자가 한 가정을 이루려면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을 떠나듯이 (카타레이포, 마 5:13),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듯이(카타레이포, 눅 5:28) 부모를 버리듯이 떠나야 합니다(카타레이포19:5). 결혼은 전에 부모님의 권위 아래 살던 남녀가 독립적인 가정을 이루라는 부름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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