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에도 구조가 있다.
수필쓰기를 할 때 의미를 담는데 너무 경도되면 글이 써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수필의 구조에 짜 맞추기를 한다. 그렇다면 수필에도 구조가 있다는 말인가?
1930년 대에 수필이 우나나라 문학에 처음으로 도입되었을 때는 수필을 문학으로 받아들이는 문제를 두고 고심했다. 그때의 문학 이론가인 김진섭이나 임화의 글들이 문학에서 수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두고 고민을 하는 글을 남겼다. 이후로 조윤제, 백철 등 초기 이론가들은 수필을 교술형이라는 장르로 구분했다. 가르침을 주는 글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구분하지 않는다.
도입기의 우리나라 수필의 기본 이론은 무형식이었다. 수필의 구조를 부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무형식을 말하지 않는다. 수필에도 형식이 있고, 구조가 있다고 말한다. 수필을 무형식에서 형식 또는 구조를 말하는 것은 읽기에 재미를 주고, 의미를 담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필의 구조는 어떤 것일까? 라고 물었을 때 대답이 얼른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수필의 무형식론을 비난만 하였지 수필의 형식에 대해서는 합의된 답을 만들지 않았다. 모호한 답변으로 구성을 말했다.
수필의 문장은 산문이다. 산문은 운문과는 다른 특징을 지닌다. 산문은 문장 구성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단락의 전개도 합리적이어야 한다. 문맥의 흐름도 전체를 하나로 통일하는 조화가 바탕이다. 그렇다면 수필쓰기에서 플롯을 짤 때 합리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필수이다. 나도 수필에도 구조가 있다는 제목을 달아놓고, 막상 글을 쓰려니 막연하기만 하다.
수필쓰기는 시보다는 소설과 친화력이 강하므로 이야기 만들기라는 것이 나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야기 구조가 수필의 구조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기본이 되는 ‘틀’이 있다. 프롭이 러시아 민담을 연구하면서 내린 결론이 수많은 민담이 있지만 몇 가지 기본 구조로 되어 있더라고 했다. 구조는 거푸집이다. 주조물을 만들 때 거푸집을 틀(용범)이라고 한다. 거푸집에 용액으로 된 청동을 붓는다. 굳어진 후에 거푸집을 제거하면(또는 뻬 내면) 청동 주물이 된다 .청동 조각상을 이렇게 만든다.
이야기도 이렇게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거푸집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야기 틀(구조)이다. 기, 승, 전, 결이다. 기,승,전,결 이라는 거푸집은 1500여 년의 역사성이 있다고 하니 그만큼 잘 만들었다는 뜻이다. 서양에서는 도입(시작) - 전개 - 절정(반전) - 결어가 된다. 기승전결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틀이다.
이야기는 처음에 시작(서두)이 있고 마지막에 종결(결어)이 있다. 사건을 이야기로 옮길 때는 우리가 바라보는 경험 세계를 언어로서 내 안의 세계로(내면의 세계) 옮기는 작업이다. 내면의 세계란 우리의 의식이 만들어 낸 세계라고 한다. 수필로 가공되어 나오는 세계도 작가의 의식이 만들어 낸 세계라는 뜻이다. 서두와 결어는 차이가 난다. 그 차이를 나게 하는 과정이 전개이다. 수필은 전개 과정이 독자를 설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야기 구조란 바로 이런 구조를 말한다.
수필이 이야기 형식이라고 못을 박고 나면 이야기의 형식이 구조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야기 형식이 수필의 기본 구조라는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나의 주장일 뿐이다.
수필의 종류는 여러 가지이다. 명상 수필도 있다. 묘사 위주의 서정성 짙은 수필은 이야기 구조라기 보다는 감성적인 문장 표현이, 즉 언어로 표현하는 기법이 더 중요하다. 에세이류의 수필은 또 어떤 구조를 가지는 것일까? 이야기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문학 고유의 형식이라면 내용보다는 외관의 질서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외관을 구성하는 것은 언어이므로 언어의 배치를 말하는 수가 많다. 이럴 경우는 내용을 무시하고 언어의 질서를 중요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필론에서 내용 즉 주제가 최고의 가치를 가진다고 함으로 형식에 메달려서 주제가 흐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야기 구조로 수필을 쓴다는 것도, 주제를 더 명확하게 하는 방법으로 이야기 구조가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명상수필도, 에세이류의 글도, 소설의 기법을 따라서 이야기로 만든다면 주제가 더 명확해 진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수필의 형식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수필의 구조라고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한 번 더 강조해서 말하자면 수필의 구조도 이야기 구조를 본 따서 기승전결로 하는 것이 옳다.
수필이 수필 자체의 구조만을 강조하여 만든다면 형식주의 문학과 다를 바 없다. 수필을 무형식의 형식이라고 하였음을 상기하면 형식주의 문학이 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형식주의 문학으로 치우치지 않게 하는 것은 수필의 또 다른 특성 때문이다. 수필은 화자 또는 작가와 아주 강하게 밀착되어 있다. 작가를 도외시하고는 수필의 내용이나 주제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친밀도가 높다. 작가의 의식 또는 무의식도 수필의 구조에 큰 역할을 한다.
작가의 의식도 구조화되어 있다. 결어도 우리의 기대대로 만들어 진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는 약 2500여 종 이상의 신델렐라 유형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기대가 신데렐라의 해피 엔딩하는 세계를 원하기 때문에 신델렐라 유형의 이야기가 만들어 졌다. 그런 맥락에서 이야기의 구조라는 말이 나온다. 수필의 구조가 눈에 보이는 이야기의 구조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의 문화가 작용하여 만들어 내는 의식 구조도 한 몫을 한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서 나의 개인적인 의식 구조도(개인의 가치관) 관여한다.
기승전결에서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 때 임의대로(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만들 수 있는 부분은 전개와 절정(반전)이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가공을 하여 이야기에 재미를 준다. 가공을 잘하여 재미를 주는 글을 만들면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듣는다. 다음에 더 설명하겠지만 이야기에서는 반전이 재미를 주고, 감동을 주는 가장 큰 요소이다.
이제 수필쓰기를 처음부터 살펴보자. 내가 체험한 대상에서 소재를 구한다.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라는 틀에 넣어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공해 낸다. 그 과정에는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이 강하게 작용한다.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과 구조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앞서도 살펴보았지만 자아 정체성과 공동체 정체성이라는 것이 작용한다. 이런 이유로 이야기 틀로 주조해낸다고 하더라도 작가에 따라서 다른 모양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의미도 달라진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재미 있네’라는 독자의 반응만으로는 미흡하다. 아하. 이런 것을 말하려 하는구나, 라는 정도의 의미가 들어있어야 좋은 수필이다.
수필의 구조에 대해서 결론을 내려보자. 수필은 이야기 형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그러나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이 이야기 만들기에 작용한다.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도 구조화되어 있으므로 작가에 따른 개성 있는 작품이 만들어 진다. 수필쓰기는 산문 문체로 작가가 개성이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다. 좀 더 부연하자면 허구로 만든 이야기 구조인 소설과 구분하기 위해서 작가가 체험한 사실을 소재로 만드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체험한 소재라고 하여 사실 그대로는 아니다. 체험한 소재는 과거의 경험으로 기억으로 저장되는 있는 내용이다. 기억 장치를 염두에 보면 내용은 사실이 변형된 형태이다. 즉 기억 자체도 작가의 구조화된 의식과 무의식이 가공한 형태이다. 이야기 구조에 가공된 사실이 성분으로 사용되면 엄격한 의미에서 소설의 허구와 구분하기가 어렵다. 수필의 구조에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의 구조도 관여함으로 수필의 구조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기억은 사실 그대로가 아니고, 이미 가공된 것이라고, 심리학에서 말한다.)
결과적으로 이야기 구조가 수필의 기본 구조라는 것을 나는 거듭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