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 5시간 ·
2023.12.18 #손혁재_정치이야기 #선거 #4대총선 #4대국회 #이승만 #부정선거
민주주의 후퇴시킨 부정선거
5.2 선거(제4대 총선)에서 정부 여당은 공공연하게 드러내놓고 불법과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내무부장관은 친일 관료 출신의 이근직 장관이었습니다. 조선총독부에 근무했던 이근직은 해방 후에도 승승장구해 경상북도 지사 재임 중 내무장관에 임명됐습니다. 전임자는 제3대 국회의원으로 제4대 총선에 출마할 장경근이었습니다.
공명선거를 위해 노력해야 할 선거 주무 장관임에도 이근직은 중립을 지키기는커녕 부정선거에 앞장섰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경찰서장과 군수들에게 자유당 지지를 지시했습니다. 중고등학교 교장들을 모아놓고 공개적으로 자유당 지지를 강요했습니다. 장관이 앞장서니 공무원과 경찰들도 부정선거의 하수인이 되었습니다.
곳곳에서 폭력사태와 여당 후보들의 매표행위가 저질러졌습니다. 야당 후보의 운동원들은 경찰에게 두들겨 맞고 경찰서로 끌려가는 게 예사였습니다. 전북 이리(지금의 익산)에서는 투표함을 증거 보전하려는 집달리가 두들겨 맞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여당 후보의 불법에 눈감았습니다. 전남 담양에서는 경찰이 매표 행위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선거가 끝난 뒤 여당 후보 낙선 지역에서 불법건축물이라며 판잣집을 철거하는 등 정치보복으로 보이는 사례도 나타났습니다. 제4대 국회가 개원하자 야당은 선거과정의 매표행위, 개표과정의 부정개표와 위조표 등 제4대 총선의 불법 부정선거를 강력하게 따졌습니다. 자유당의 저지로 진상을 제대로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성과도 있었습니다.
민주당은 한국산업은행이 국회 동의 없이 불법 대출에 간여하도록 해서 그 리베이트 자금을 자유당이 선거자금으로 받아 쓴 것도 밝혀냈습니다. 산업은행이 시중은행에게 동양사료 대한중공업 등 12개 기업에게 융자를 해주도록 알선했습니다. 리베이트 자금은 융자금의 20%로 자유당이 받은 리베이트 자금은 15억 환에 이르렀습니다.
제4대 국회에서 심의한 1959년도 정부예산이 3,898억 환이었으니 자유당의 불법 리베이트 자금은 정부예산의 0.38% 정도가 됩니다. 윤석열 정부가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이 657조원인데, 657조원의 0.38%는 약 2조5천억 원 정도가 됩니다. 단순비교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시 15억 환이 얼마나 큰돈인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1958년 6월 7일 제4대 국회가 개원했습니다. 의장단을 선출하고 상임위원회 구성을 마치자마자 6월 16일 민주당이 내무·법무·국방·문교부장관 출석을 요구했습니다. 5.2총선의 부정과 불법을 따지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6월 17일 민병기 충남도지사를 이근직 후임으로 임명했습니다. 다른 장관은 그대로 두고 내무장관만 바꾼 겁니다.
이근직에 대해서만 원포인트 개각을 한 건 부정선거 진상을 숨김과 동시에 2년 뒤 실시될 제4대 대통령선거에서 써먹기 위해 이근직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9년 3월 제4대 대선을 대비해 국무위원 6명으로 ‘6인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이근직을 농림부장관으로 임명하고 6인위원회에 포함시켰습니다.
6인위원회를 주도한 건 갓 마흔이 된 최인규 교통부장관이었습니다. 제4대 총선 때 신익희 국회의장 친동생인 신하균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습니다. 내무장관으로 옮겨간 최인규는 취임사에서 “모든 공무원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며, 차기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기필코 자유당 후보가 당선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4대 총선의 불법·부정·관권·경찰선거를 지휘했던 이근직은 제4대 대선에서도 최인규 홍진기 법무장관 등과 함께 부정선거에 깊숙이 개입했습니다. 부정선거에 앞장선 이들은 4.19 혁명 후 구속됐다가 최인규 사형, 홍진기 사면, 이근직 석방으로 정리됐습니다.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부정선거는 결국 시민의 분노로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