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싶은 길 / 담양 녹색 오방길
죽녹원-관방제림-메타쉐콰이어‘명품숲길’걷다
전남 담양은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에 지정(창평 삼지천마을)된, 느림의 미학을 온전히 담고 있다.
영산강 발원지이자 선비정신을 나타내는 시가문화가 올곧이 녹아있고, 대나무로 잘 알려진
이 고을에 호모 워커스(Homo Walkers:신인류 문화건강족)를 위한 ‘담양 녹색 오방길’이 열렸다.
담양을 다섯으로 나누고 자연의 미학을 표방하면서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람과 마을을 수평으로 재구성한 이 길은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소담스런 공간이다.
동시에 자연과 문화를 재정립하고 문화와 문명의 근원을 탐구하는 문화자본을 넉넉하게 쌓아가는 아름다운 길이다.
프랑스 시인 라퐁텐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주장한 것이나,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고 고백한 것은 이 때문이리라.
동쪽 청색길 : 슬로시티 삼지천 따라 ‘사목사목 돌담길’
남쪽 홍색길 : 소쇄원∼식영정 잇는 ‘가사문학 누정길’
서쪽 백색길 : 면앙정∼태목리 대숲 ‘생태하천 습지길’
북쪽 흑색길 : 추월산∼담양호∼가마골 따라 ‘산막이길’
중앙 황색길 : 죽녹원∼관방제림∼가로수길 ‘명품 숲길’
장마가 걷히고 더위가 기승을 부릴 즈음
담양 녹색 오방길 가운데 중앙 황색길인 ‘죽녹원-관방제림-메타쉐콰이아 가로수길’은 명품 숲길이다.
'사람도 절로 푸르러 진다'는 이 길을 걸으려 먼저 향교리에 있는 ‘죽향문화체험마을’을 찾았다.
사계절 편안함이 머무는 죽향문화체험마을은 지난 겨울 KBS 인기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을 촬영한 여파로
이제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 대표적인 명소가 됐다.
8만여㎡ 터에는 면앙정 식영정 광풍각 송강정 명옥헌 같은 담양의 대표 정자 5동을 재현해놓고
주변에는 연못과 정원, 시비공원, 산책로를 배치했다.
대숲의 맑은 이슬을 먹고 자란 죽로차를 맛보는 죽로차 체험교육장에서는 호남사림문화 정취를 앉아서 즐길 수 있다.
한편 식영정에서는 가야금 뜯는 모습이 연출되고 우송당 앞마당에서는 판소리를 공연하여
세계문화유산인 우리 소리문화의 정수를 눈과 귀로 즐기는 호사를 누린다.
지게 다듬잇돌 절구통 연 엿장수 멍석에 그려진 윷판이 준비되어
옛날 생활과 놀이까지 즐길 수 있고, 전통한옥에서는 언제든지 민박이 가능하다.
대숲으로 간다
대숲으로 간다
한사코 성근 대숲으로 간다
자욱한 밤안개에 벌레소리 젖어 흐르고
벌레소리에 푸른 달빛이 배어
흐르고
대숲이 좋더라
성글어 좋더라
한사코 서러워 대숲은 좋더라
꽃가루 날리듯 흥근히 드는 달빛에
기적없이 서서 나도 대같이 살거니
- ‘대숲에 서서’ 신석정 -
이제 대나무를 맛볼 차례다.
죽향문화체험마을에서 작은 언덕을 살짝 넘으면 푸른 대숲이 장관을 이룬 ‘죽녹원’이다.
자연 그대로 상쾌함을 간직해서 ‘죽향’이란 이름까지 얻은 이곳 성인산 일대는 불모지나 다름없었으나
담양군이 25만여㎡의 야산을 사들여 이중 17만㎡에 송대(분죽) 왕대 맹종죽 해장죽을 심고
대숲으로 가꾸어 2003년 5월 문을 열었다.
대통 굵기가 7∼10㎝, 높이는 15∼20m에 이르러서 하늘을 가릴 만큼 빽빽하다.
인공폭포와 생태연못, 야외무대를 갖추고 대숲에는 조명까지 설치했다.
‘추억의 샛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철학자의 길’, ‘운수대통 길’, ‘죽마고우길’, ‘선비의 길’ 등
여덟 개 코스로 나눈 2.2km 산책로는 가족은 물론 연인들이 데이트 장소로 손색없다.
대나무 마디마디마다 새겨진 이름 모를 이름과 암호 같은 그림에 눈길을 보내며
새삼 필부들의 낙서욕(慾)에 감탄한다.
영화 ‘알포인트’와 ‘일지매’ 찍은 곳을 지나니
순간 대숲 사이를 스쳐지나온 시원한 바람, 사각거리는 댓잎 사이를 뚫고 나오는 가녀린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일 또한 신선한 경험이다.
숲 1ha는 광합성을 통해 1년간 이산화탄소 16t을 소비하면서 12t의 산소를 만든다.
사람 40여명이 1년간 숨 쉬는 양이다.
이런 까닭에 대숲 속을 걸으면 머리가 맑고 깨끗해진다.
다른 곳보다는 기온이 평균 4∼7℃ 정도 낮으면서 산소량과 음이온 치수는 훨씬 높고
알파파까지 덤으로 뿜어내기 때문이다.
전망대를 지나 죽녹원 입구를 거꾸로 나오면 대나무국수로 유명한 국수거리,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면발이 고른 국수 한 그릇과 삶은 계란을 먹는 것은 일종의 통과의례다.
적당히 배를 채우고 다리를 건너 담양천에 쌓은 관방제림으로 향한다.
해마다 여름이면 홍수로 피해를 입는 상습 침수지역이었기에
조선 인조 26(1648)년 부사 성이성이 담양천변에 제방을 쌓고
무너지지 않도록 둑에 나무를 심어 홍수를 막았다.
철종(1854) 때는 부사 황종림이 연간 3만여 명을 동원, 둑과 나무를 재정비하고 관방제라 불렀다.
이후 부임해 오는 관리들은 사재를 털면서까지 둑을 지켜내 지금의 숲이 되었다.
당시는 약 7백여 그루의 낙엽활엽수가 있었다는데,
현재 천연기념물 제 366호로 지정된 1.2㎞ 구간에는 200∼300년 된 벚나무 팽나무 은단풍 느티나무
푸조나무 엄나무 곰의말채나무 개서어나무 등 180여 그루가 빼곡하게 들어서
각각의 이름표를 달고 있다.
이곳에 딱 한 그루 남은 아름드리 엄나무(1번)부터 도마 만드는 데 으뜸인 팽나무(177번)까지
모두 예사롭지 않은 자태를 뽐낸다.
이중 절반 이상은 흔히 해안방풍림을 조성할 때 쓰는 푸조나무이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함인가.
늙은 나무들은 비스듬히 굽어있고 마치 침묵을 속삭이는 듯
늘어트린 가지들은 범접하기 힘든 기운이 감돌아 마치 신기들린 당목처럼 느껴진다.
수백 년 동안 숲도 아니면서 숲이라고 불리며 마을을 보호해 온 관방제림은 대표적인 풍치림,
원형을 잘 보존한 덕에 2004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을 차지했다.
둑길은 생각보다 넓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담양천을 내려다보며 쉬고 있다.
삼삼오오 자전거를 타고 분주히 오가는 젊은이들을 보노라면
차라리 어느 한적한 시골길에 있는 기분까지 든다.
제방 아래서는 국궁을 즐기고 조각 공원을 거닐며 나름 느림의 미학을 찾는 발길 또한 여유롭다.
발길은 다시 제방에 세운 한 무리 장승의 사열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메타쉐콰이어 가로수 길로 이어진다.
멀리서 보면 원뿔 녹색고깔을 쓴 것처럼 늘씬한 자태가 도드라진다.
일명 수삼나무로도 부르는 메타쉐콰이어는 아득한 옛날
그 뾰족한 바늘 모양 잎으로 수많은 초식공룡들을 키워냈으나
마지막 빙하기(4천만 년 전∼3백만 년 전)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화석으로만 전해왔다.
이후 1940년 중국 양쯔 강 상류 쓰촨성에서 수천 그루가 발견되면서 다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담양읍 남산리에서 순창군 금과면 경계까지 8.5km 거리를 곧게 뻗은 메타쉐콰이어 길은
1972∼1973년에 걸쳐 정부가 가로수 조성시범사업 일환으로 만들었다.
독특한 외양과 시원스런 모습은 많은 영화와 광고 배경으로 촬영되어 우리 눈에는 이미 익숙하고 친근하다.
이 때문인지 남산리∼금월교 구간 1.5km는 아예 차량통행을 금지하고 사람들만 다니게끔 개방했다.
2002년, 생명의 숲 가꾸기 국민운동본부는 ‘가장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뽑았다.
길이란 어떤 곳을 향해 가는 단순한 통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 모르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기도 하고, 또 한 곳을 향해 같이 간다는 면에서 동질감마저 공유한다.
40살 먹은 거목들이 서로 마주보고 줄지어 선 공간 사이로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출렁인다.
어린 딸아이를 무동 태우고 가는 젊은 아빠의 잰 발길과 손을 맞잡은 연인들의 표정이 경쾌하다.
뒷짐 지고 생각에 잠긴 채 홀로 느릿하게 걷는 사람은 뒤태마저 황홀하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은 아름다운 메타쉐콰이어 숲의 풍광을 보고 듣고 맑은 공기 담뿍 마시며
각자 편한 자세로 추억을 쌓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간다.
하늘로 솟구친 메타쉐콰이어의 거대한 몸통을 안아본다.
두 팔 벌려 가득 안은 커다란 나무,
위아래로 얇게 벗겨지는 적갈색 나무껍질 속에서
아득한 옛날 공룡들이 내는 거친 발자국과 가뿐 숨소리가 천천히 귓전을 간질이는 듯하다.
첫댓글 낼 새벽에 공항에 나가시려면 짐정리도 빠듯하실터에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못가서 섭섭하고 죄송스럽습니다. 부순형님 좋은시간 되십시요
곧 푸른 대와 메타쉐콰이어의 도열이 장도에 오를 님들의 사열을 보는 듯 합니다....
부디 아름다운 산행으로 동인랑의 족적을 남기시고 오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