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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리스바의 운명과 말없는 항거 (삼하 21:10-12)
설교를 하라는 정대현 교수님의 부탁을 받고 고민을 하다가 새길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최근에 새길교회에서 한완상 선생님이하 여러분들이 자주 여성에 관해 설교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주제가 아니라 무슨 다른 주제로 설교를 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주혜란·임창렬 경기주사 부부의 일과 신창원의 도피 뒤에는 역시 여자가 있다는 보도를 보면서 나름대로 우리 사회의 여성 문제를 다시 한 번 짚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제가 작년부터 이화여대의 입학에 관련된 일을 맡게되어 여자대학의 좋은 점을 자주 강조하고 다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모이시는 자리에서 여자대학의 좋은 점을 이야기를 하면, 가끔 선생님들 중에 몇 분들이 사모님들의 고급 옷 사건이나, 학부모들의 과열 과외 현상이나, 우리 사회에 만연된 여러 가지 무질서와 이기주의가 모두 어머니들의 잘못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냐고, 그리고 한국 여성의 교육을 담당해온 이화여대가 교육을 잘못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시곤 합니다. 그런 지적을 받을 때마다 물론 저는 할 말은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왜 고위 공무원들의 뇌물들이 모두 부인들에게 전달되며 그리고 부인이 그렇게 거액의 뇌물을 받아도 남편들은 하나같이 몰랐다고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나쁘고 모자라는 것이 여성이고 부인을 잘못 둔 남성들이 피해자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여인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든 잘못을 뒤집어쓰고 속죄양이 되는 것이 관행이어서 신문이나 언론에서 그렇게 보도하는 것이 관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후자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손숙 전 장관이 한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 언론은 특별히 여성 장관들에게는 혹독하다는 것이지요. 남자 장관들이 했으면 괜찮을 일도 여자 장관이 했을 때는 대문짝만한 크기로 신문에 대서 특필되어 마치 당신이 며칠이나 버티겠는지 두고 보자는 식으로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일차적으로는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성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에너지를 쓸데없는 곳에 쓰지 말고 자신과 사회의 발전을 위한 에너지로 쓸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고등학생이 제일 먼저 나가고, 남편이 나가고, 초등학교 유치부 아이들마저 나가버린 빈 집에서 할 일 없는 주부들끼리 줄을 지어 백화점 차를 타고 쇼핑을 하러가고, 산 물건을 입어보고, 어디가 싸고 어디가 비싸고, 누구 남편은 어떻고 누구네는 어떤 외제를 사서 얼마를 절약하고 등등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사회의 눈총받는 아줌마 부대가 되기 십상입니다. 사실 집안 식구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또 능력있는 여성들이 사회문제나 시대의 흐름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에너지를 잘못 처리하기 때문에, 쉽게 치맛바람이나 일으키고 또 사회의 소비풍조를 조장하는 몰지각한 여편네들로 혹평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식들을 위해 희생을 하지만 자식들에게서도 존경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머리를 쓰되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고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머리를 써야지 자기 집안 식구만을 생각해서는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사회의 큰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배우는 식으로 자신을 계속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교양도 있고 얼굴도 예쁘고, 옷맵시가 나는 여성이라 할지라도 남에게 존경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직장이 있거나 없거나 사회와의 관련을 긴밀히 갖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우리 나라가 크게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도록 키우지 못하고 자기 집안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갖도록 양육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여성들은 이 점에서 정말 반성을 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두번째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사회 전체가 여성들에게 평등한 대접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점을 특히 언론에 부탁하고 싶습니다. 언론은 여성에게 섹시하고, 순종하고, 그리고 살림을 잘 하라고 주문합니다. 그러니까 여성들은 모두 소비에 앞장서게 되고 모양내는 일에 신경을 자꾸 쓰게 됩니다. 그리고 자꾸 세일한다는 곳에 모여들게 되는 것이지요. 매일 연속극을 봐도 여성은 언제나 시끄럽고 얌체로 그려지고, 또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식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여성상을 자꾸 비하해서 그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편 여자가 조금이라도 능력이 있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려고 하면 언론은 그녀를 아주 악녀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그런 능력있는 여성은 아주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저는 왜 언론에서 화성군의 복지계장 이장덕씨같은 휼륭한 여인들의 이야기는 그냥 가볍고 당연하다는 식으로 넘어가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40세 밖에 안되었는데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이 죄라도 되듯이 직장을 그만 두어야 되는지도 이해가 안됩니다. 양심적으로 그렇게 비리에 시달리면서도 정직하게 처리하려고 고민을 했다면 사회에서 큰 표창장이라도 주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요? 훌륭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자주 언론에서 부각시켜 주어야만 한국의 남성 중심적 사고가 바뀌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세 번째로 구체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우리 주변의 훌륭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발굴하고 알리는데 앞장서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사회적으로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선하고 아름다운 우리 주변의 훌륭한 여성들이 너무도 많지 않은가요? 교회에서도 룻이나 한나와 같이 자식을 얻지 못해 고민하다가 어렵게 자식을 얻어 집안의 대를 이은 이야기나, 외아들의 죽음에 미친 듯이 기도로 매달린 여인이 자식을 구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이제 여성문제 해결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좀 더 용감하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는 그런 여인들이 소개되는 것이 여성상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다행히 성서에는 이렇게 열심히 기도해서 자식을 얻어 칭송받은 여인들만 소개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서에는 자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사회 전체의 지도자의 역할을 했던 미리암, 드보라, 무명의 지혜의 여인 등 훌륭한 여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서 속의 이런 여성들을 발굴하고, 동시에 오늘날의 작지만 훌륭한 모습의 여성들을 개발하고 밝혀 내는 일이 여성의 이미지를 바꾸고 예수의 여성관을 지지하는 그리스도교인들의 태도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오늘 성서에 나타난 왕국 초기에 기구하고도 한 많은 운명을 지고 살았던 여인, 그러나 그 당시 사회의 비인간적인 처사에는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항거하였던 여인, 리스바에 관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리스바는 아주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아야의 딸로서 사울의 후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울과 리스바 사이에서는 두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들은 아르모니와 므비보셋입니다. 잘 아시지만 사울과 다윗은 처음에는 사이가 좋았지만 나중에는 사이가 차차 나빠져서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는 등 둘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맙니다. 결국 사울은 패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뒤에 사울의 진영에서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과 군대장관 아브넬이 세력을 잡게 되는데, 군대장군 아브넬이 사울의 후궁 리스바를 자기의 첩으로 삼았습니다. 아브넬이 이렇게 사울 왕의 후궁을 자신의 첩으로 삼는 것은 그 당시의 관습으로 보면 사울의 왕위를 자신이 이어받겠다고 나선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크게 노합니다. 결국 아브넬은 이스보셋에게 "나를 개 대가리로 아시오? 이날까지 나는 당신의 선친 사울의 왕실과 그 동기간과 동지들에게 충성을 바쳐 당신을 다윗에게 넘기지 않고 있었는데, 당신은 오늘 하찮은 여자 일로 나를 책잡으시오?"(삼하 3:7-8) 하면서 사울 집안을 떠나 다윗에게로 옮겨갑니다. 사무엘하 12:7-8에 보면 그 이후 다윗이 사울의 집, 후궁, 재산 등을 모두 차지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리스바는 아야의 딸로 사울의 후궁이었다가, 아브넬의 첩이 되었다가 다윗의 소유물로 처리된 비극적인 운명의 소유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 때문에 이스보셋과 아브넬이 싸웠고 또 아브넬도 그 결과 다윗에게로 넘어갔다가 다윗에게 살해당하는 운명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리스바가 서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혹한 운명의 마지막이라도 장식하듯 다윗은 사울과 리스바 사이에서 난 아들 둘을 사울의 딸이 낳은 아들 다섯과 함께 기브온에게 넘겨주어 모두 나무에 매달아 죽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시체는 아무도 거두어 장례를 지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 설화의 배후에는 사울과 다윗 집안의 반목, 그리고 사울과 기브온 족속과의 관계가 복잡하게 엉키어 있습니다. 삼하 21:1-2과 여호 9장에 의하면 기브온 사람은 원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아모리 족속의 잔류민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살려 두기로 한 족속입니다. 그러나 그당시 기브온 족속이 이스라엘을 속였다는 이야기가 여호수아 9장에 담겨 있는 것으로 보아 두 민족의 사이가 좋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삼상 22장에 보면 사울과 다윗의 반목이 극심하였을 때 다윗을 밀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울이 기브온 근처 기브아에서 놉의 제사장 85명을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울의 행동은 기브온의 복수심을 자극하였고 또 이를 잘 알고 있는 다윗은 정권을 잡고나서 가뭄이 계속되는 것이 기브온의 한에 의한 것이라고 하여 사울의 가족중의 7명을 기브온 족속에게 넘겨 준 것입니다. 이로써 다윗은 기브온의 인심을 얻으면서 동시에 사울의 후계자로 나설만한 후손을 모두 전멸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리스바 자신은 한마디의 말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아까 읽어주신 본문에서 일체 말이 없던 리스바가 "상복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 펴놓고 그 위에 앉아, 추수가 시작될 때부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질 때까지 주검을 지켜, 낮에는 공중의 새가 내려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달려들지 못하게 하였다"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리스바의 행동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서는 리스바가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대하여 얼마나 슬퍼했는지, 또 어떤 생각으로 살아갔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아들들이 무고하게 죽었을 때 보여준 무언의 행동은 우리들에게 상당히 많은 부분을 짐작하게 하여 줍니다.
제 생각에는 리스바가 우선 죄없는 사람이 조상이나 다른 사람의 죄로 처벌받는 것에 대해 항거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또 리스바는 전통적인 피의 복수에 대하여 항거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귀에는 귀"라는 동형 복수법 제도는 계속해서 보복의 피를 흘려야 하는, 죄 없는 사람의 피마저도 요구하는 참으로 가혹한 제도였습니다. 원수를 보복으로 갚는 일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같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피의 보복에서 죄 없는 후손마저도 목숨을 내어놓아야 되는 일은 정말 잔인합니다. 하나님은 왜 죄 없는 리스바의 아들과 사울의 외손자들을 주게 하셨을까? 사울과 다윗의 반목이 사울의 후손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아마도 리스바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소리없이 항거하였을 것입니다. 리스바가 제기한 이런 문제는 예언자 예레미아와 에스겔에 의해서 다시 한 번 신랄하게 비판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는데 자식의 이가 시다"는 논리와 같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이지요. 리스바가 항거를 시작한 연좌제의 폐지는 결국 예레미아 31:29-30 과 에스겔 18:2 이하에서 성취되어 죄지은 사람만 처벌받는 것으로 굳어졌습니다.
두번째로 리스바는 속죄제물로 바쳐져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방치되는 것에 대해 항거하였다고 보여집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죄가 있든지 없든지 특별히 한 맺힌 사람이나 그 가족들에 관해서는 시체를 성벽에 매달아 두거나 들에 방치해 놓은 채로 계절을 넘기도록 되어있었습니다(비교. 삼상:31:8-13). 그러나 이러한 고대 이스라엘의 관습은 얼마나 비인간적인 제도입니까! 리스바는 이러한 관습에 관하여 말없이 그러나 분명히 항거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리스바의 항거는 시간은 걸렸지만 해결되었습니다. 신명기에 보면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을 처형하고는 나무에 달아 효시할 경우가 있다. 이렇게 나무에 달린 시체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니, 그 시체를 나무에 단 채 밤을 보내지 말고 그날로 묻어라. 그렇게 두어서 너희 하나님 야훼께 유산으로 받은 너희 땅을 더렵히면 안 된다" (신 21:22-23)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리스바가 상복을 펴놓고 말없이 항거한 기간은 추수가 시작되는 봄부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가을에 이르기까지 약 7개월 정도였다고 합니다. 다윗은 리스바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사울의 뼈와 요나단의 뼈를 가져오고, 리스바의 아들들의 뼈도 모아 사울의 아버지 키스의 무덤에 합장하는 예우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이일을 보신 후에야 다윗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나라를 돌보아 주셨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리스바의 말없는 항거는 그 당시 관행으로 여겨지던 불합리한 습관들을 수정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어머니들도 리스바처럼 사회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억울하게 당한 일을 고발하고 항거하고 고쳐 나가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이런 일을 한 어머니들도 많이 계십니다. 화성군의 복지계장 이장덕씨도 참 훌륭한 일을 해내신 분입니다. 그리고 정신대 사건을 폭로하신 분들, 민가협의 어머니들, 숨어서 장애인들과 소외당한 사람들의 팔이 되어 주시는 분들, 그리고 사회봉사에 전념하시는 분들... 저는 여성들의 사랑과 능력이 무한하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에너지가 올바른 방향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고 무척 안타깝습니다. 여성들의 사랑과 에너지가 사회 전체를 보고 살리는 에너지로 바뀔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때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여성들 스스로가 많은 노력을 해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언론이나 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는 힘들이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시선으로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여성들의 에너지와 힘이 개인의 평안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위한 힘으로 작용할 때, 우리 사회도 남녀평등이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에 가까워 질 것입니다.
이경숙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