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가정에까지 종교적 금욕이 파고 들어가 있는 나라다. 성에 관한 한 철저히 폐쇄적인 이 나라에서 그 체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결혼 밖에 없을 것이다. 이해가 갔다. 다음날 저녁 무렵, 우리는 아쉬람 밖 시내 한 지점에서 만났다. 릭샤를 타고 얼마를 간 후, 나는 그를 따라 작은 여관 비슷한 곳으로 들어갔다. 거울 하나 걸리지 않은 방 한쪽엔 옹색한 세면실이 딸렸는데 수도꼭지 하나와 찌그러진 양동이 하나만 달랑 놓여 있었다.
그는 준비해 온 향불을 피운 다음 전등을 끄고 대신 촛불을 켰다. 조금씩 나오는 수돗물에 몸을 씻고 나온 그는 긴 천 하나로 몸을 감더니 가부좌를 하고 벽에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는 명상에 들어갔다. 나도 몸을 씻고 나와서 그에게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는 곧 바잔을 부르기 시작했다. 종교적이고 성스럽고 평화로운 가락, 나도 그를 따라 흥얼거렸다. 그렇게 바잔 만을 부르는 상태로 꽤 긴 시간이 흘렀다. 두 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그가 이상하게까지 생각되었다. 나는 가락에 취한 척 열심히 바잔을 흥얼거렸지만, 머리 속에는 이런 남자도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이 오가고 있었다. 어느 새 나는, 남자는 다 어떻다는 식의 통념의 잣대로 그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오히려 순수하지 않은 상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슬며시 부끄러웠다. 어디까지나 그는 성의 체험을 신성한 종교적 체험으로 끌어가고 싶은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도 그것이 아닌가.
이윽고 그가 나에게 다가왔다. 희미한 촛불 사이로 우리는 서로의 두 눈만을 응시하였다. 그 곳에 남자와 여자는 없었다. 한 인간과 또 다른 인간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눈빛에서 남자를 초월하고 여자를 초월한 어떤 교감을 보았다. 성이 잊혀진 것이다. 그런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서로 손을 꼭 잡고 천천히 누웠다.
잠시 후 다시 일어나 앉은 그는 내 몸을 조심스럽게 훑어보았다. 그는 여자의 알몸을 처음 보는 것이라며, 여자의 몸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지 몰랐다고 속삭였다. 한두 개의 손가락으로 찬찬히 나의 팔을 , 나의 어깨를, 나의 가슴을 느껴 본다. 떨리는 그의 손끝이 그의 온몸에 실린 전율을 전해 오고 있었다. 나는 수동적인 상태로 그의 손길을 받아 들였다. 그의 애무가 점점 짙어진다 싶은 순간이었다. 그는 거친 호흡을 한번 한 뒤, 모든 것을 중단하고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천을 다시 몸에 두르고 아까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욕정이 그를 엄습해 왔고, 그것에 휩쓸리고 있는 자신을 감당할 수 없어지자, 그는 물러나 버린 것이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로 다시 바잔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구원을 바라는 듯, 잔잔하지만 간절히 무엇인가를 애원하고 있었다.
나도 마음을 가다듬고 일어나 앉았다. 우리는 다시 거리를 두고 그렇게 마주 앉은 채 바잔 만을 불렀다. 약간 어수선하고 미묘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서 희미한 촛불과 함께 일렁이고 있었다. 둘은 말없이 끝내 바잔 만을 불렀다. 천천히 새벽이 오고 있었다.“
밀교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를 미스K는 K교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흥미있게 들었다. 밀교에 심취한 인도 청년의 기이한 청을 들어준 홍신자씨는 평범한 여성은 아니었다. 실험정신이 강하다고 말할까? 자유인이라고 부를까? 우리에게 익숙한 유교적인 고정관념으로 보면 파격적인 여성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밀교 이야기가 끝나고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K교수가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이번 일요일에 저녁 식사를 여기서 할 수 있나요? 대학 동창들과 K리조트 골프장에서 골프 모임이 있는데, 골프가 끝나고 친구들에게 은경씨를 자랑할 겸 식사를 하면 좋겠는데요.”
“원래 일요일에는 주방장이 안 나와서 차 종류만 하는데,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니 제가 간단한 식사를 준비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일요일 오후 6시쯤 8명이 오겠습니다.”
밀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새벽 1시가 넘었다. 이제는 아쉽지만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미스K가 먼저 말했다. “오늘은 너무 늦었는데, 집에 가셔야죠. 사모님이 기다리실 거에요.” 미스K는 그랜져를 운전하여 K교수를 수기리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다.
K교수는 그날 밤 알코올의 힘을 빌어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미스K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는데, 거절을 당한 셈이다. 미스K가 가는 곳마다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일 것이다. 예쁜 꽃에 벌과 나비가 날아들 듯, 수많은 남자들이 미스K를 향해 끊임없이 날아들었을 것이다. 남자에 관한 한 미스K는 산전 수전 다 겪었을 것이고, 남자의 심리를 꿰뚫고 있을 것이다. K교수가 큐피드의 화살을 쏘아서 단 한 번에 데이트 성공을 기대했다면, 그것은 여자를 잘 모르는 대학 교수의 순진한 욕심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쉬운 일은 없다. 그러니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