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의 안과 밖 강연 시리즈] 근대사상과 과학>시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 ☞ 강연자: 서울대 오세정 교수
오세정 교수는 세계적으로 독자들이 구매 후 완독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책으로 유명한 호킹의 저작 『시간의 역사』를 소개한다. 책은 부제가 시사하듯 ‘빅뱅에서 블랙홀까지’, 즉 우주의 시작과 아마도 있을 종말이 어떤 것일지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에 앞서 오늘의 놀라운 답변에 이르는 과정에 인류가 우주를 어떻게 바라보아왔는지 그 역사를 통시적으로 훑어본다. 즉 프톨레마이오스, 갈릴레이 그리고 뉴턴과 케플러를 지나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거쳐 21세기 물리학의 우주론에 이르는 장구한 역정을 커다랗게 스케치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같은 이론적 진화에 힘입어 인식의 혁명적 변환이 이뤄졌는데, 이제는 공간과 시간이 정적으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역학적인 양이 되었”으며 우주도 “유한한 과거에 시작되었고 한정된 미래에 끝날지 모를” 존재가 되었음을 역설한다. 그럼에도 우리 앞에는 호킹이 던진 “왜 우주는 존재의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이 여전히 남아 있음도 놓치지 않고 전한다.
강연일자: 2015.10.17 열린연단 강연 (고전 36강) –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오세정 : 먼저 과학자와 책에 관한 얘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스티븐 호킹은 1942년 1월 8일 생입니다. 참 재미있는 게 갈릴레오(Galileo Galilei)가 죽은 날이 300년 전인 1642년 1월 8일이에요. 그래서 갈릴레오가 죽은 뒤 300년 후에 호킹이 태어났다, 그렇게 보통 얘기를 하고요. (…) 어떤 분야를 연구했냐면 우주가 어떻게 생겼나 하는 우주론하고 양자 중력입니다. 블랙홀(Black Hole)이라고 많이 들어봤을 거예요. 뭐냐 하면 굉장히 무거운 덩어리라서 그 때문에 빛도 빨려 들어가면 나오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물체를 관측한다는 것은 뭔가 나와야 되는 건데 전혀 아무것도 안 나오고 빛까지 못 나오는 것, 그래서 블랙홀이라고 얘기하는 건데 그에 대한 업적을 많이 냈고요. 특히 ‘특이점 정리’를 이야기했는데 특이점이라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인 수학으로는 예측하지 못하는 아주 특수한 점이라는 뜻입니다. ‘singularity’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영국의 유명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기도 한 펜로즈(Roger Penrose) 교수와 같이 발표하기도 했고요. 그다음에 특별하게 사람들한테 관심을 끈 것은 블랙홀에 대한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란 개념을 제안한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리기로 블랙홀의 정의가 워낙 무거워서 모든 물체를 다 빨아들인다, 심지어는 빛도 빨아들인다 그랬는데 호킹 복사라는 건 호킹이 1974년에 얘기한 것으로, 블랙홀에서 뭐가 나온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일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얘기를 했고요. 그래서 그것을 처음 발표했을 때 많은 물리학자들이 말도 안 된다고 얘기했는데 나중에는 그것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 이 책 『시간의 역사』에서 얘기하는 것은 영어 책의 부제에도 나와 있지만 ‘빅뱅부터 블랙홀까지’, 그러니까 우주의 첫 탄생부터, 블랙홀, 어떻게 보면 우주의 별 중의 거의 종말에 가까운 것, 그 두 가지, 즉 처음부터 끝까지 다루겠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열린연단 토론 (고전 36강) – 이필진 고등과학원 교수 문광훈(사회) :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통해 우주론이나 시간론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여기에 시간이나 공간이나 무질서도라든가 아니면 소멸, 또 책과 강연 맨 나중에 나오는 신의 마음, 그처럼 중요한 철학적 주제가 다 담겨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시간의 본질에 대해서 우리가 확연하게 절대화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늘 미지수, 엑스트라(extra)가 남아 있다는 뜻일 텐데요, 그런 점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모든 언어는 어떤 비유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에둘러서 넌지시 하는 암시적 요소를 같이 갖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필진 : 일반 상대성 이론이 하는 이야기하고 양자역학이 하는 이야기하고 서로 맞지 않습니다. 그것이 호킹이 1975년에 발견한 ‘호킹 복사’라는 데서부터 시작해서 30년 가까이 끌어온 블랙홀 전쟁(Black Hole War)의 내용입니다. (…)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하고 가장 근본적인 물리학적 사실이 무엇이냐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저는 ‘빛의 속도가 유한하고 일정하다’는 사실을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사실은 맥스웰 방정식이 한 이야기가 그것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상대론이 필요했던 겁니다. (…) 빛의 속도가 유한하고 일정하고 누구에게 다 똑같다는 이유가 블랙홀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블랙홀의 안에 있는 빛이 우리한테 오지 못하느냐를 이해한다는 게 조금 힘든 일이잖아요. 이것을 수학적으로 설명을 해드릴 수는 있겠지만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아요. 그런데 어쩌면 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말씀을 하나 드릴게요. 블랙홀을 싸고 있는 호라이즌(horizon)이란 데가 있는데, 그것을 경계로 안과 밖이 나뉩니다. 실제 블랙홀을 가지고 연구를 하는 저 같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하냐 하면 블랙홀의 표면이 저를 향해 빛의 속도로 온다고 생각을 해요. 조금 더 황당한 얘기 같죠. 그래서 경계면이 저를 향해 빛의 속도로 오기 때문에 그 뒤에 있는 게 이것을 따라잡지 못한다, 사실은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강의록 전문 보기 강연자 소개
스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이러한 신체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호킹은 전문적인 과학 연구를 하는 것과 더불어 자신의 이론 및 일반적인 우주론을 다룬 대중 과학 서적도 여러 권 펴냈다. 딸 루시 호킹(Lucy Hawking)과 더불어 어린이를 위한 대중 과학 서적을 내기도 했다. 그가 낸 책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오늘 다룰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인데, 이 책은 1988년 출판된 후 영국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최고 기록인 237주 동안이나 올라서 화제가 되었고,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1000만 권 이상 팔렸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1992년 유명한 영화 제작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사실 『시간의 역사』는 비전문가가 읽고 내용을 모두 이해하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세세한 사항들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전체적인 줄거리를 따라간다면, 우주의 역사와 인류 우주관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큰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창조주가 있다고 생각해야 우주 역사를 이해할 수 있나?” “우주는 공간적이나 시간적으로 끝이 있을까?” 이와 같은 질문은 우리 모두가 어린아이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고, 인류가 끊임없이 탐구해 온 주제이기도 하다. 본 강연에서는 위대한 과학자이자 현대 우주론을 확립하는 데 큰 공헌을 한 호킹이 직접 쓴 책 『시간의 역사』의 내용을 통해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현대 물리학의 대답을 나름대로 정리하려 한다. (주4)
(1) 고대 서양의 우주관―그리스 시대의 우주관 인류는 문명의 초기 단계부터 우리가 사는 지구와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였다. 이미 기원전 340년에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는 『천구(天球)에 대하여(On the Heavens)』라는 저서에서, 월식 때 보이는 지구 그림자가 둥글다는 사실과 수평선 너머에서 오는 배가 돛이 먼저 보인다는 사실로부터 지구가 납작한 것이 아니라 둥근 공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지구는 가만히 있고 그 둘레를 태양, 달, 행성, 별(항성)들이 원 궤도로 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Klaudios Ptolemaeos, 85?~165?)(주5) 에 의하여 완전한 천동설의 우주 체계로 확립된다. 이 우주 체계에서는 아래 [그림 1]에서 보듯이 지구를 중심에 두고 그 둘레를 달, 태양, 항성, 그리고 당시까지 알려진 5개의 행성(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실은 8개의 구면이 에워싸고 있다. 행성들은 각자의 구면에 붙은 작은 원을 돌게 되는데, 이것은 행성이 밤하늘에서 보여 주는 꽤 복잡한 경로를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이 모델로 당시에 알려져 있던 천체의 위치를 상당히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그림 1]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모델 (출처: 동아사이언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 모델은 1514년 폴란드의 신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가 지동설을 주장할 때까지 거의 1400년간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다. 특히 기독교 교회는 천동설이 제시하는 우주 모델이 성경의 말씀과 부합한다고 여겨 지지했기 때문에, 신부였던 코페르니쿠스는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낙인찍힐 것을 두려워해 지동설을 익명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탈리아의 유명한 과학자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가 지동설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1633년 종교 재판에 처해지기까지 한 일은 잘 알려져 있다. (2) 코페르니쿠스-뉴턴의 근대 우주관 이처럼 굳건했던 천동설도 근대 과학이 발달하면서 지동설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코페르니쿠스가 처음 지동설을 주장한 후에도 100년 이상이 걸렸다. 지동설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와 갈릴레오, 그리고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 1643~1727)의 역할이 컸다. 먼저 케플러는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가 축적한 방대한 천문 관측 자료를 분석해 행성 궤도에 대한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을 알아낸다. 이 중 첫 번째 법칙이 행성은 태양을 한 초점(focus)으로 하는 타원(ellipse) 궤도를 그린다는 것이다. 타원은 원을 조금 찌그러뜨린 달걀 모양의 도형을 의미한다.([그림 2] 참조. 이 그림에서는 행성 궤도의 찌그러짐이 실제보다 과장되게 그려졌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는 원(circle)운동을 가장 완벽한 운동이라고 여겼기에 행성들이 원 궤도를 따른다고 생각했지만, 행성 궤도에 대한 정밀한 측정 결과는 조금 찌그러진 타원이었던 것이다. [그림 2] 케플러 제1법칙: 행성의 타원 궤도 (출처: Wikipedia) 또한 거의 같은 시기에 갈릴레오는 당시 갓 발명된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측해,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들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모든 천체가 지구 둘레를 돌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야 한다는 천동설의 기본 가정을 뒤흔들게 된다. 즉 과거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사변적인 논리’를 통하여 자연 현상을 이해하려고 한 것을 벗어나, 갈릴레오나 케플러는 ‘관측(observation)’에 의하여 자연 현상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천상의 법칙과 지상의 법칙이 동일하고, 또한 그것이 시간에 관계없이 일정하다는 믿음은 우리에게 우주에 대하여 큰 깨달음을 주었다. 즉 지구 상에서 발견한 물리학 법칙을 우주에서 일어나는/일어났던/일어날 현상들에 보편적으로(universally) 적용함으로써, 우리가 가 보지 못한 먼 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나 수십억 년 전 우주에서 일어났던 현상에 대해서도 추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태양이 계속 에너지를 내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고, 태양과 지구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도 예측하고 있으며, 우주가 처음 생성됐을 때의 현상까지도 추측하고 있다. 호킹의 책에서 이야기할 대폭발(Big Bang) 이론이나 우주의 진화에 대한 이론 역시 모두 이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3)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개념과 현대 우주관 17세기에 확립된 뉴턴의 역학 법칙은 그 후 산업 혁명 시기를 지나면서 기계 문명을 이끌어 간 이론적 근거가 되었고, 그 정확도와 정밀도도 꾸준히 발전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뉴턴의 고전물리학에 대한 과학자들의 신뢰는 한없이 깊어져서, 어느 물리학자는 “앞으로 물리학에서는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오자마자 이러한 생각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만다. 그중의 하나가 시간에 관한 개념이다. 뉴턴의 고전적 우주관에 의하면 시간은 절대적인 양으로서, 시간의 흐름은 관측자의 위치나 운동 상태에 따라서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05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특수 상대성 이론(special theory of relativity)에 의하면 시간의 흐름조차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측자의 운동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하는 것이고, 시간과 3차원 공간이 서로 엉켜서 4차원의 시공간(space-time)을 형성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수 상대성 이론은 그 이후 물체의 속도가 매우 빠를 때 관측되는 여러 물리적 현상과 잘 부합함이 확인되었다. 또한 여기서 유도되는 에너지와 질량에 관한 법칙 은 여러 실험을 통하여 검증되었고, 원자 폭탄과 원자력 발전소 등 원자핵 에너지 이용의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특수 상대성 이론은 뉴턴의 중력 이론과 모순되는 점이 있었다. 뉴턴의 이론에서는 한쪽 물체를 움직이면 다른 쪽 물체에 미치는 힘이 순간적으로 변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중력의 효과가 무한히 큰 속도로 전해지는 것이라서, 어떤 정보의 전달도 빛의 속도를 넘을 수 없다는 특수 상대성 이론에 어긋난다.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에 어긋나지 않는 중력 이론을 만들려고 여러 번 시도하다가 마침내 1915년 일반 상대성 이론(general theory of relativity)을 발표한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아인슈타인의 혁신적인 생각은, 중력이 다른 힘과는 달리 시공간이 평탄하지 않은 데서 유래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즉 시공간이 그 속에 들어 있는 질량이나 에너지로 인하여 ‘구부러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력장 안에서의 물체의 운동은 ‘구부러진 시공간’ 안에서 두 점 사이의 최단 경로(측지선(測地線) 이라고 불림)를 따른다는 것이다. 광선도 구부러진 시공간에서 측지선을 따라 움직여야 하므로, 중력장에서의 궤도는 직선이 아니라 구부러지게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로 1919년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Sir Arthur Stanley Eddington, 1882~1944)이 적도 부근의 서부 아프리카에서 일식이 일어날 때 태양 부근을 지나는 별빛의 궤도를 측정함으로써 확인되었다.(주6) 일반 상대성 이론의 또 다른 예측은 중력이 큰 공간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높은 고도에서의 시계의 작동 속도는 지상에서의 속도와 다르다. 이 사실은 오늘날 GPS처럼 인공위성의 신호를 기준으로 하는 정밀 항법 장치에서 이미 실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공간과 시간은 이제 역학적인 양이 되었다. 즉 물체가 움직이고 힘이 작용할 때 이는 공간과 시간의 곡률(曲率)에 영향을 주고, 또 한편 시공간의 구조는 물체의 운동이나 힘의 작용에 영향을 주게 된다. 공간과 시간은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영향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의 개념 없이는 우주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이야기할 수 없듯이,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우주의 한계 밖에서 공간과 시간을 논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에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 새로운 이해는 우리의 우주관을 혁신하게 되었다. 과거에서 미래에 걸쳐 거의 변함없이 영원히 존속하는 우주라는 낡은 생각은, 이제 유한한 과거에 시작되었고 한정된 미래에 끝마칠지도 모를 역동적이고 팽창하는 우주란 개념으로 대치되었다. (……) 로저 펜로즈와 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우주가 시작이 있었고 또 아마도 종말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음을 밝혔던 것이다.(주7) 3. 빅뱅 이론 (1) 팽창하는 우주 우주가 시간에 따른 변화가 없는 정적(靜的)인 상태인지 혹은 끝과 시작이 있는 동적(動的)인 상태인지는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온 철학적, 과학적 문제였다. 물론 20세기 이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적인 우주론을 믿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호킹, 펜로즈 같은 우주 이론물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로 인하여 이것이 호킹이 말한 대로 “유한한 과거에 시작되었고 한정된 미래에 끝마칠지도 모를 역동적이고 팽창하는 우주란 개념으로 대치”되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대부분의 별에서 오는 빛이 적색 편이를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은하들은 서로 무질서하게 운동하여 적색 편이(파장이 길어지는 일)되는 경우와 청색 편이(파장이 짧아지는 일)되는 경우가 비슷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관측 결과는 거의 모든 은하가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1929년 허블이 발표한 논문은 또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즉 허블이 10여 년에 걸쳐 관측한 바에 의하면, 은하의 적색 편이 정도가 은하와 지구 사이의 거리에 거의 정비례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지구와 은하(별) 사이의 거리를 정확히 유추하기가 쉽지 않아서 가끔 관측 결과가 정비례 직선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둘 사이의 명확한 상관관계를 부인하기는 어려웠다. 이러한 결과는 우주가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팽창하고 있으며, 은하들 사이의 거리는 항상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함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별까지의 거리와 별이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는 속도가 비례한다는 사실은 별들이 어느 한 점에서 출발했음을 암시해 준다. 즉 과거의 어느 시점에 공간의 한 점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 우주가 시작된 것 같다는 것이다.(이를 대폭발이라는 의미의 빅뱅(Big Bang)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별의 속도와 거리 사이의 비례 상수(이를 허블 상수라고 부름)로부터 그 시기는 100억~200억 년 전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지금은 허블 상수의 측정이 점점 정확해져서 빅뱅의 시기를 지금으로부터 138억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실험 결과는 얼핏 생각하면 우주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가 특별함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우주의 은하와 별들이 우리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우주의 중심임을 말해 준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 3]의 풍선과 같은 2차원 평면이 팽창하는 모습을 살펴보자. 여기서 보면 풍선 위의 어느 점에서 보더라도 다른 점들은 모두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다른 점들이 모두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간다고 해서 어느 특정한 점을 평면의 중심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을 3차원 공간으로 확장해 보면 허블의 관측 결과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현대의 과학자들은 반대로 우주는 어느 점에서 보아도 모든 방향으로 동일하게 보일 것(isotropic)이라는 가정을 믿는다. 물론 이 가정이 맞는다는 과학적 증거도 없고 부정하는 증거도 없지만, “겸손하게 믿을 뿐”(주8) 인 것이다. 실제로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지구가 있는 태양계는 우리 은하계의 변두리에 있으며, 우리 은하계가 우주의 중심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허블의 발견이 함축하는 대폭발(빅뱅) 가설은 그 후 1970년 펜로즈와 호킹이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에서 “만약 일반 상대성 이론이 타당하고 우주 안에 우리가 관측한 만큼의 물질이 있기만 한다면, 대폭발의 특이점(singularity)이 있을 수밖에 없음을 증명함”(주9) 으로써 확실한 이론적인 근거를 얻게 되었다. 반세기 동안 여러 이론과 실험의 증거가 쌓여 가면서 수천 년 전부터 많은 사람이 믿어 왔던 정적 우주론이 깨어지고 우주가 시간의 시초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것이다. (2) 우주의 진화 하지만 대폭발(빅뱅) 이론이 학자들 사이에 널리 인정되기까지에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우선 아인슈타인부터 일반 상대성 이론이 동적인 해(解)를 갖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여 일반 상대성 이론식에 인위적인 우주 상수(cosmological constant)를 도입해 정적인 해를 갖도록 한 일이 있다. 그만큼 우주가 정적이라는 것을 확신했던 것이다.(주10) 그러나 그 후 빅뱅 이론의 신빙성을 결정적으로 높여 주는 두 가지 일이 발생해 결국 빅뱅 이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하나는 우주에 있는 수소와 헬륨 양의 비율을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 배경 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 의 발견이다. 또한 빅뱅 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그 후에도 계속 팽창하면서 온도가 낮아지는데, 38만 년쯤 지나면 원자핵이 전자와 결합하여 안정적인 원자를 만들게 된다. 전기적으로 중성인 원자는 전자기파(빛)와의 상호 작용이 아주 작아지기 때문에, 이때부터 전자기파는 자유롭게 온 우주 공간으로 퍼져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이 전자기파는 우주가 팽창하면서 점차 에너지가 낮아져서 138억 년이 지난 현재에는 절대온도 약 3도(정확히는 2.7도) 정도의 에너지를 가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예측은 1940년대 말, 1950년대 초에 가모브(George Gamow), 앨퍼(Ralph Alpher), 허먼(Robert Herman) 등 빅뱅 이론을 지지하는 이론물리학자들에 의해서 처음 발표되었고, 1964년 미국 벨 연구소의 펜지어스(Arno Penzias)와 윌슨(Robert Woodrow Wilson)이 실험적으로 관측함으로써 확인되었다. 이를 우주 배경 복사라고 부르는데, 펜지어스와 윌슨의 실험 결과는 빅뱅 이론이 받아들여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우주 배경 복사는 우주의 어느 방향을 보아도 거의 균일하여 전체적인 우주의 등방성(isotropy)을 확인해 준다. 그러나 후에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자세하게 측정한 결과, 방향에 따라 약 10만분의 1 정도의 정밀도 수준에서 차이가 있음을 알아내었다. 이 미세한 차이는 빅뱅 초기에 구역에 따라 약간의 밀도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러한 밀도의 차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질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별 및 은하단과 아무것도 없는 넓은 빈 공간 등 상당히 불규칙한 밀도 분포를 보이는 현재 우주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다. (3) 별의 일생 우주의 대폭발(빅뱅)이 일어난 후 우주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는 그 후 핵물리와 입자물리, 우주론 등의 합동 연구에 의하여 많이 밝혀졌다. 특히 은하의 형성 과정과 그 안에 있는 별들의 일생에는 당연히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고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왔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별들은 빅뱅 후 약 4억 년이 지나고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그중 지구가 속한 태양계는 지금으로부터 약 46억 년 전에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호킹은 『시간의 역사』에서 이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주 전체로는 계속 팽창하고 냉각되고 있으나, 평균보다 조금만 더 물질의 밀도가 높은 구역에서는 팽창이 그 여분의 중력으로 인한 인력(引力) 때문에 감속될 것이다. 이것은 마침내 어떤 구역에서는 팽창을 멈추게 하여 그 후 수축을 시작하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수축하는 구역에서는 외부의 물질이 이끄는 중력으로 작은 회전을 시작할 수 있다. 수축 구역의 크기가 줄어들면―마치 회전하는 빙상 선수가 팔을 오므리면 회전이 더 빨라지듯이―그 회전이 더욱 빨라진다. 마침내 수축하는 구역이 아주 작아져서 그 회전이 중력을 균형할 수 있을 정도로 빨라지게 되면 회전하는 원반형 은하가 태어나는 것이다. (……) 빅뱅이 일어난 이후 138억 년 동안 여기서 기술한 바와 같이 수많은 은하가 탄생했다. 현재 우주에는 1000억 개 정도의 은하가 있고, 각 은하에는 평균적으로 1000억 개 정도의 별(항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태양은 이 중의 하나인 평범한 항성이다. 각 은하 내에서는 수많은 별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데, 별의 일생은 그 질량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패턴을 따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 별의 질량이 태양보다 아주 작은 경우에는 수소-헬륨의 원자핵 반응이 일어나지 못하므로 강한 빛을 내지 못하고 갈색 왜성(brown dwarf)으로 일생을 마친다. 반면 태양과 비슷한 질량의 별들은 수소-헬륨 원자핵 반응이 가능하므로 내부의 핵융합 반응을 통해 빛과 열을 내다가 그 원료가 소진되어 가면 적색 거성(red giant)을 거쳐 백색 왜성(white dwarf)이 된다. 백색 왜성은 핵융합 반응에 의한 압력이 줄어들어 크기가 작아지지만, 전자들 간의 배타 원리(Pauli Exclusion Principle)에 의한 압력으로 중력에 대항하여 대략 지구 정도의 크기를 유지하는 상태이다. 태양은 앞으로 50억 년 후면 이런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측된다. 4. 블랙홀 (1) 고전적 이론 블랙홀(black hole)이라는 이름은 1969년 미국의 유명한 이론천문학자 존 휠러(John Wheeler)가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비슷한 아이디어는 이미 18세기에 영국의 존 미첼(John Mitchell)과 프랑스의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가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블랙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빛에 대한 중력의 효과를 모순 없이 설명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된 후에야 이루어지게 된다. 상대성 이론이 발표된 직후인 1916년 독일 과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Karl Schwarzschild)가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특수해로서 이를 구한 바 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당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 해의 물리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블랙홀의 실제 존재 가능성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 블랙홀의 물리적 실체가 과학자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중성자별이 발견된 1960대 후반 이후였다. 특히 이 시기에 로저 펜로즈와 스티븐 호킹은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른다면 블랙홀 안에도 밀도와 시공간 곡률이 무한히 큰 특이점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 바 있어 이론적인 관심도 높아졌다. 이러한 블랙홀에 대한 관심은 1971년 백조자리(Cygnus) X-1이라는 X선 쌍성(X-ray binary star)이 블랙홀일지 모른다는 실험적 관측이 발표되면서 더욱 고조되었다. 지금 대부분의 과학자들은(호킹을 포함하여) 백조자리 X-1이 블랙홀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또한 그 후에도 블랙홀 효과라고 생각되는 여러 실험적 사실들이 발견된 바 있다. (2) 호킹 복사 고전적인 이론에 의하면 블랙홀 안으로부터는 질량을 가진 입자는 물론 빛도 탈출할 수 없다. 그러나 1974년 스티븐 호킹은 양자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결합한 이론으로부터, 블랙홀이 복사를 통해 에너지를 방출하고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증발(evaporate)해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즉 블랙홀의 경계인 사건 지평선(event horizon) 부근에서 일어나는 양자역학적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에 의한 양자 요동(quantum fluctuation) 때문에, 블랙홀에서 (반)입자나 광자가 튀어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블랙홀에 대한 종전의 관점을 완전히 뒤엎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많은 반박과 반발에 부딪혔지만, 결국 그 후의 여러 다른 사람들의 연구에 의해 확인되어 지금은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 혹은 베켄슈타인-호킹 복사라고 불리게 되었다. 호킹 복사는 블랙홀의 질량에 반비례하는 호킹 온도(Hawking Temperature)를 가진 흑체 복사(blackbody radiation)의 스펙트럼과 일치한다. 일반적으로 호킹 온도는 우주 배경 복사 온도인 2.7도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태양 정도의 질량을 가진 블랙홀의 호킹 온도는 절대온도 10-7도 정도이다.) 실제로 태양만 한 질량의 블랙홀이 증발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질량이 매우 큰 블랙홀이 있다면(예를 들어 우주 초기에 밀도의 불균일성 때문에 생성된 원시적 블랙홀이 있다면) 호킹 온도는 질량에 반비례하므로 그 증발이 관측될 가능성은 있다. 이 이론은 현대 물리학의 두 축인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결합한 최초의 예측으로서 큰 주목을 받았다. 사실 펜로즈와 호킹의 특이점 이론은 일반 상대성 이론만으로는 우주 초기에 일어난 일을 해석하기에 부족하다는 사실을 이미 보여 주고 있다. 왜냐하면 펜로즈와 호킹의 특이점에서 시작한 우주의 초기에는 우주의 크기가 매우 작아서, 미시 세계를 기술하는 양자역학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킹 복사는 양자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결합하는 양자중력(quantum gravity) 이론의 한 예이고, 앞으로의 우주론은 양자역학적 효과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보여 준다. 초중력(supergravity) 이론이나 끈 이론(string theory),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 등은 이처럼 양자역학과 중력 이론을 동시에 고려하려는 대통합 시도의 하나이다. 만일 양자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이 완벽하게 결합된 이론이 나온다면, 빅뱅이나 블랙홀에서의 특이점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따라서 우주의 시작과 블랙홀의 성질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물리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3) 정보 손실과 엔트로피 문제 고전적인 ‘털 없는 정리’에 의하면 블랙홀은 질량, 전하, 각운동량의 성질 외의 다른 특징은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중력 붕괴로 블랙홀이 만들어질 때나 외부의 물질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게 되면 원래 물질이 가지고 있던 많은 정보는 모두 상실될 것이다. 만일 블랙홀이 영원히 존재한다면 이 정보들은 블랙홀 안에 저장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비록 외부 사람들이 알 수는 없더라도 정보는 우주 안에 남아 있는 것이므로) 물리 법칙상으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블랙홀은 호킹 복사에 의하여 천천히 증발해 없어질 수 있고, 1983년 호킹은 호킹 복사가 블랙홀을 원래 만들었던 물질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호킹 복사를 통하여 블랙홀이 증발해 없어지면 원래 우주 안에 있던 많은 정보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정보 손실, Information Loss)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물리학의 근본 법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여겨져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많은 학회와 논문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이론물리학자들 사이의 격론이 있었고,(주13) 결국 2004년에 호킹은 입장을 바꾸어 블랙홀에서 정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선언했다. 지금은 많은 과학자들이 그 견해에 동의하고 있지만, 아직도 의견을 달리하는 과학자들이 있어 아마도 이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좀 더 연구가 진전될 때까지 기다려야 될는지 모른다. 5. 맺는 말 (1) 시간의 화살 대부분의 물리학 법칙은 시간 대칭성(time symmetry)을 가진다. 즉 물리 법칙을 표현하는 방정식에 t 대신에 –t를 대입해도 그 방정식은 성립한다. 다시 말하면 시간을 거꾸로 돌려도 그 방정식은 성립한다는 것이다. 뉴턴의 운동 법칙이 그렇고 맥스웰의 전자기 방정식 또한 그러하다. 실제로 야구공을 하늘로 던져 떨어지는 것을 동영상으로 찍어 놓고, 그것을 거꾸로 돌려보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두 사람이 야구 캐치볼을 하는 경우에도 한쪽 사람이 던진 공의 궤적은 다른 쪽 사람이 던진 공을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과 똑같다. 이것은 뉴턴의 운동 방정식이 시간 대칭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처럼 물리학의 근본 법칙은 시간의 방향을 지정해 주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러면 우주 진화 과정에서의 시간의 방향도 이처럼 인간이 느끼는 시간의 방향과 일치할까? 우리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빅뱅과 우주 팽창 이론은 우주의 시간도 역시 인간의 시간과 같은 방향임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빅뱅 초기의 우주는 아주 매끄럽고 질서 있는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초기 우주가 시간이 지나면서 팽창하고, 인플레이션에 의해 미세했던 밀도의 불균일성이 점점 커지면서, 은하, 별과 같은 존재가 형성된 현재와 같은 울퉁불퉁하고 무질서한 상태로 변화한 것이다. 즉 우주의 시간도 열역학적 시간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왔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질문의 하나는 만약 우주가 팽창을 멈추고 수축을 시작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이 방향을 바꾸어 무질서가 시간에 따라 줄어들까? 이에 대해서 호킹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애당초 나는 우주가 수축하면 무질서가 적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왜냐하면 나는 우주가 다시 작아지게 되면, 매끈하고 질서 있는 상태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즉 수축 단계는 팽창 단계의 시간 역전과 같으리라는 것이다. 수축 단계의 사람들은 인생을 거꾸로 살 것이다. 즉 그들은 우주가 수축함에 따라 태어나기 이전에 죽을 것이며 차츰 더 젊어져 갈 것이다. (……) (그러나) 나는 내 실수를 깨달았다. 즉 무경계 조건이 사실은 무질서가 우주의 수축 단계에서도 늘어남을 알려 준다는 것이다.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과 심리적 시간의 화살은 우주가 수축할 때에도 혹은 검은 구멍 안에서도 역전하지 않는 것이다. (……) (그러나 다시 수축을 시작할 때의) 우주는 거의 완전한 무질서 상태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수축기에는) 뚜렷한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이 없어질 것이다. 우주는 이미 거의 완전히 무질서 상태에 있으므로 무질서는 크게 늘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주14) 위의 질문은 왜 열역학적 시간의 방향이 우주론적 시간의 방향과 같을까 하는 질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즉 왜 우리가 우주의 수축 단계가 아니라 팽창 단계에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인 것이다. 호킹은 이에 대해 ‘약한 인간 원리(Weak Anthropic Principle)’(주15) 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적 생물이 살아가는 데는 뚜렷한 열역학적 시간의 화살이 필요하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식량―질서 있는 형태의 에너지―을 소비해서 이것을 열―무질서한 형태의 에너지―로 변환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적 생물은 우주의 수축 단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열역학적 및 우주론적 시간의 화살이 둘 다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까닭을 설명해준다.(주16) (2) 과학과 우주관 인류는 오래전부터 우리 주위에 보이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를 원하며, 더 나아가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지, 우주와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지, 우주 안에서 인간의 위치는 어떠한 것인지 등에 대해서 알고 싶어 했다. 문명 초기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신령(神靈)에서 찾으려 했고, 그에 따라 부족마다 독특한 종교와 우주관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인류 문명이 발달하면서 점점 그 해답을 과학에서 찾으려고 했고, 이제 과학의 발달은 그 해답의 실마리를 주고 있다. 물론 19세기 프랑스의 과학자 라플라스가 생각했던 것과 같은 결정론적인 세계관(주17) 은 옳지 않다는 것을 현대의 양자론은 말해 준다. 대신 현대 과학은 불확정성 원리가 주는 한계 안에서 사건을 예언할 수 있는 법칙을 발견하려고 한다. 궁극적으로 양자역학을 일반 상대성 이론과 통합하는 이론이 완성된다면 특이점이나 경계가 없는 4차원 시공간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되면 은하와 별의 진화와 같은 우주의 특성은 물론, 시간의 화살이나 인류의 출현까지도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모른다. 주석 주1 이 석좌 교수 자리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지역구로 가지고 있던 영국 국회의원 헨리 루커스(Henry Lucas)가 1663년 창설했는데,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석좌 교수 자리 중의 하나라고 알려져 있다. 근대 과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아이작 뉴턴이 1669~1702년에 제2대 루커스 석좌 교수를 역임했고, 호킹은 제17대이다. 주8 『시간의 역사』, 79쪽. 주11 자세한 설명은 다음 책을 참고. Steven Weinberg, The First Three Minutes (New York: Basic Books, Inc., 1977), 스티븐 와인버그, 신상진 옮김, 『최초의 3분』(양문, 2006); 사이먼 싱, 곽영직 옮김, 『빅뱅』(㈜영림카디널, 2006). 주15 우리가 현재와 같은 우주를 보는 까닭은, 만약에 우주가 현재와 달랐다면 우리는 여기에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관측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 즉 우리가 현존하기 때문에 지금의 우주를 본다는 생각을 말한다. - 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