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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완 목사
오늘은 전도서 6장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함께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생들이 겪어야 하는 세 가지의 대표적인 폐단을 소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폐단'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괴롭고 번거로운 일', '귀찮고 해로운 일'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생들이 당하는 불행이나 고통스러운 일들을 폐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세 사람의 경우를 소개하면서 인생의 세 가지 폐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받았으나 누리지 못하는 인생
먼저, 첫 번째의 경우는 받았으나 누리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그것이 1∼2절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본 첫 번째 폐단은 해 아래 인생들에게 중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귀영화죠....
2절에 보니까, 이 사람은 마음의 소원대로 부족함이 없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복인지 모릅니다.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넉넉하게 받았으니 마음에 더 이상 부러운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사람들이 사는 것을 가만히 보면, 어떤 경우.... 불합리하고 억울하게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면서부터 갑부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하루 세끼 먹기도 힘든 집에 3대가 모여 사는 집안에 장남으로 태어납니다. 얼마나 불합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타난 이 사람은 아마 태어나면서부터 굉장한 부와 명예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 같습니다. 부모를 잘 만난 것인지... 아니면 시대를 잘 타고났는지... 좌우간 이 사람은 마음에 소원하는 대로 부족함이 없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넉넉하게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누리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많이 받았으면 뭐합니까?.... 내 것이 아니고, 남이 것이 되고... 또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죠.... 이것이 첫 번째 인생이 만나게 된 폐단입니다.
2절의 말씀을 살펴보면 아마 이 사람은 병이 들어서 일찍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또 그것을 물려줄 자식이나 친척도 없었나 봅니다. 아니면, 부도가 나서 일순간에 무너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넉넉하게 받았는데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라고 했습니다.
자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엉뚱한 사람, 알지 못하는 제 삼자가 그것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헛수고만 한 것입니다. 헛고생한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드는 병폐입니까?
성경을 살펴보면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때는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의 일입니다. 그때 다윗은 자기를 따르는 부하들과 함께 광야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형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따라 다니는 충성스런 부하들이 있었기에 다윗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군사들이 식사를 해야 되고, 의복도 갈아입어야 되고, 잠도 자야 되는데... 사울을 피하여 도망 다니는 신세이니 참 형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때 마침, 그 근처에 나발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집은 굉장히 소문난 부자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부자 집에서 양털을 깎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양털을 깎게 되면 주인은 일꾼들을 위해서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농사 짓는 사람으로 말하면 추수를 하는 날입니다. 큰 경사이고, 기쁜 날이죠....
그래서 다윗은 자기 수하에 부하 열 사람을 그에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먹을 것과 쓸 것을 좀 나누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나발이라는 사람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윗의 부하들 앞에서 이런 저런 말로.... 다윗을 심하게 모욕을 합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다윗은 크게 분개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부하 400명을 이끌고 나발을 죽이기 위해서 올라갑니다.
그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이 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아비가일은 대단히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부랴부랴 떡과 포도주와 고기를 넉넉히 준비해서 다윗을 맞이하러 갔습니다. 다윗 앞에 이르러서.... 그는 크게 절을 하며, 자기의 남편 나발이 다윗을 몰라보고 큰 실수를 범했으니 너그러이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간절히 빌었습니다.
아비가일의 행위를 보고 다윗의 마음이 누그러졌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비가일을 봐서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나발은 부인을 통하여 다윗이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 400명을 이끌고 왔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겁에 질려서 부들부들 사시나무 떨듯이 떨기 시작하면서.... 그로부터 열흘동안 시름시름 앓더니...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삼상25:38절을 보면 그 이유를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치셨다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내가 너에게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주었지만 너는 그것들을 누릴 자격이 없구나! 이리와!"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후에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발이 가지고 있던 그 많은 재물과 부요와 존귀가 다 다윗의 수중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발이 누려야 할 재물의 복과 부귀 영화가 다윗이 대신 누리게 된 것입니다.
전5: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재물과 부요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누리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그것을 '분복'이라고 했습니다.
타고난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누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발처럼 움켜쥐고만 있으면 안됩니다. 필요할 때는 손을 펼 줄도 알아야 되고, 베풀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받은 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권속들은... 마음에 더 이상의 소원이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풍성한 분복을 더하시고... 그것을 누리게 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심령에 평안이 없는 인생
두 번째 인생은 3∼6절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이 사람은 굉장히 오래 살았습니다. 장수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많이 낳았습니다. 자녀의 복을 받았습니다. "일백 자녀를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무엇이 문제입니까? 3절에 보면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어요....
아무리 오래 산들 무엇합니까?... 마음속에 평안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인 것입니다.
계속해서 본문은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죽었어도 누구하나 장사 지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자녀들이 있지만 자녀들에게 공경을 받지 못하고 효도 한번 받지 못하고.... 그 몸 하나 제대로 장사지내 줄 자녀가 없다면 백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3절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무슨 말씀인가 하면, 오히려 낙태된 자보다 더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낙태된 자가 얼마나 불행합니까? 솔로몬은 4∼5절에서 낙태된 자의 불행을 다섯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4절 말씀을 보니까, "헛되이 왔다"고 했습니다.
낙태된 자가 이 세상에 와서 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을 소유하지도.... 무엇을 누려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헛되이 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어두운 중에 가매" 라고 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다가 그대로 어두운 땅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그 이름이 어두움에 덮이니" 라고 했습니다.
그는 사람이지만 이름조차 없는 사람이요, 아무도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네 번째는 5절 말씀에 "햇빛을 보지 못하고" 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어야 햇빛을 볼 수 있을 텐데, 단 하루도 살지 못한 인생이니 햇빛도 보지 못했습니다.
☛다섯 번째는 "알지 못하나" 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일들.... 되어 가는 일들을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주인공은 낙태된 자가 더 낫겠다고 했습니다.
해 아래서 인생들이 겪어야 하는 폐단, 인생들이 당해야 하는 불행을.... 낙태된 자는 겪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낙태된 자가 더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평안이 없으면 그런 고백을 하겠습니까?...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이 사람은 자식이 많아서 마음고생 꽤나 했는가 봅니다.
참으로 사람에게 있어서 마음의 평안이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마음의 평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솔로몬은 6절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가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천년의 갑절은 2천년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제일 오래 산 사람이 '므두셀라'인데, 그는 969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2천년은 am두셀라가 산 것의 두 배가 넘는 기간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산다고 한들... 심령에 낙이 없으면 2천년을 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잘 다니고 신앙생활을 잘 하던 변호사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네 명의 자녀와 아내를 데리고 영국으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1873년 11월 15일 뉴욕을 떠나 유럽을 향해 가는데.... 영국 근교 해협에 이르러서 자욱한 안개 속에... 앞에 오는 배를 보지 못하고 그만 두 배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 배에 탄 226명이 바다에 빠져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스탭포드 변호사는 자기의 네 아들을 잃어버리는 비극을 경험했습니다. 가까스로 부인과 둘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를 위로하기 위해서 친척들과 교인들이 모였다. "힘 내세요, 용기를 내세요..."
위로하는 조객들에게 이 스탭포드 변호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내 영혼은 이상하리 만치 평안합니다...."
너무나 큰 슬픔을 당했지만 그의 영혼을 주님께서 품어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조객들이 다 떠나간 후에 그의 마음속에서 마구 영감이 솟아났고... 그는 그것을 글로 적어 내려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찬송가 470장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의 평안도 주님이 주셔야 됩니다. 세상이 주는 행복, 세상이 주는 기쁨, 세상이 주는 평안은 세상이 끝남과 동시에 끝이 납니다. 유한한 것입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변하고,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요14:27절 말씀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바로 이 평안...., 하늘 위에서 내려오는 주님의 평안.... 이 평안이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욕구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생
마지막 세 번째 인생은 7∼9절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7절 말씀에 보면 이 사람은 상당히 많이 먹는 사람 같습니다. "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하느니라."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먹어야 살죠....
우스개 소리로 이런 말이 있죠.... 먹기 위해서 사느냐? 살기 위해서 먹느냐?... 어떤 말이 정답입니까?.... 여기서 정답이란 없습니다. 생각하는 것에 따라서 둘 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먹어야 사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혜자도 먹어야 하고, 우매자도 먹어야 합니다. 부자도 먹어야 하고, 가난한 사람도 먹어야 하고, 누구나 다 먹어야 살죠....
그러나 아무리 먹어도 식욕은 차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늘 잔치집에 가서 잔뜩 먹었다고.... 내일부터 안 먹을 수는 없습니다. 내일이면 또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식욕은 음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욕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구는 식욕뿐만이 아니라, 재물의 욕심, 명예의 욕심 등... 그것이 종류도 많지만 그것의 끝도 없습니다. 그러니 무슨 수로 그 욕구를 채울 수 있겠습니까?
8절 말씀을 보면 그러한 것은 지혜자나 우매자나 다 같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다 똑같습니다.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것.... 이것이 인생의 폐단이라는 것입니다.
9절 말씀을 보면 "눈으로 보는 것이 심령의 공상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자꾸만 솟아오르는 인간의 욕구, 욕심은 끝이 없고...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사글세방에 사는 사람은 "전세방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세방을 가지기까지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것을 이루기까지는 마음에 만족이 없습니다.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노력에 노력을 경주합니다. 손에 쥐지 못했기 때문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마음속에 늘 전세방을 그리면서 공상을 합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수고하고 고생합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됩니까?... 결국 전세방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쁜지..... 자기의 목표, 소원을 이제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행복합니까? 기쁨이나 만족도 잠시이고... 또 다시 마음에 새로운 공상이 생깁니다.
"15평 짜리 아파트라도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서 또 고생하고 수고합니다. 그것을 얻기까지는 행복이란 없어요... 허리띠를 더 졸라맵니다.
드디어 15평 짜리 아파트가 손에 쥐어졌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만족합니까? 좀더 큰 평수... 방도 넉넉하고 화장실 두 개 달린 아파트... 아담한 산이 뒤에 있어서 공기도 좋고... 예수 믿는 사람은 "코앞에 교회도 있다면 금상첨화지!" 그러면서 다산아파트, 율곡아파트, 소월아파트 같은 곳을 상상합니다.
인간의 욕구는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세상의 떡을 목표로 하는 인생은 언제나 낙심하게 되고 비참한 인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사세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그것을 목표로 살아야 합니다.
요8:29절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주님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해 사셨습니다. 그랬더니 혼자 두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늘 함께 하시고, 동행해 주셨습니다.
그 길은 때로 십자가의 길이요,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참된 만족이 있고, 평안이 있고, 훗날에 빛나는 면류관과 상급이 예비되는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바로 그런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참된 행복의 길
그렇다면... 해 아래 사는 인생들이 당하는 여러가지 폐단을 해결하는... 참된 행복의 길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0절 이하에 보면, 우리에게 결론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미 있는 무엇이든지 오래 전부터 그 이름이 칭한 바 되었으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안 바 되었나니 자기보다 강한 자와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무슨 뜻인가 하면, 어떤 것이든지.... 이미 오래 전부터 창조주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첫째 날에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낮'이라고 칭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둠은 '밤'이라고 칭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빛은 낮이고, 어둠은 밤이 되었습니다. 빛이 밤이 될 수 없고, 어두움이 낮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이기 때문에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이름을 칭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셨습니다.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만드시고 난 뒤에 사람의 이름을 '아담'이라고 칭하셨습니다.
아담이라는 이름은 흙에서 왔다는 뜻입니다. 흙에서 왔으니까 흙으로 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만큼 약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자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돼요..
그러니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서 하나님과 감히 다툴 수가 있겠습니까? 10절에 "자기보다 강한 자와 능히 다툴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과 다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11절에 보면, 해 아래 인생들 가운데는 어리석게도 하나님과 다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유익한 일 이 못됩니다. 헛된 일입니다.
바울이 사도가 되기 전에 그랬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고 핍박을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날도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가는데, 다메섹 도상에 이르러 갑자기 강한 빛이 임하더니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행26:14절 말씀입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무슨 말씀이예요?... 하나님과 겨루는 것은 마치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가시를 발로 차면 자기 발만 찔리고, 피가 나고, 아플 수 밖에 없습니다. 누가 손해입니까?....
즉,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서 유익한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12절에서는 "그 신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장래에 대해서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따르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주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 복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인생의 참된 행복은 재물이나 부귀와 영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건강하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장수한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믿음의 권속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성도가 되셔서 남은 생애가 주안에서 더욱 복되고 아름다운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