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스토리도 중요하지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저는 공간적 배경이 아주 맘에 들었어요.
서촌에서 남산까지의 길, 나무, 사람, 집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졌거든요.
첫 장면....배우지망생 은희가 연습을 합니다. 뭔가 서투릅니다.
그리고 일본 작가 료헤이를 만나고 어설픈 영어로 대화를 나눕니다.
이때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지요.
그리고 두 번째 남자- 지금 배우를 하고 있는 남친-를 만납니다.
둘은 거짓말에 거짓말로 뒤엉켜 있고...
남산에 앉아 올린 트위터에 올린 사진을 보고 또 한 남자가 찾아옵니다.
그 남자는 이혼남이고 역시 남친...
둘은 또 거짓말을 하고 거짓으로 대답하고...
얼키고 설킨 거짓말로 지친 은희의 하루, 과연 최악의 하루였을까요?
이 날은 모든 게 거짓말임이 들통나고, 두 남자와도 끝나고,
은희의 이전 생활이 일단은 끝난 날이니, 최선의 하루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
여주인공 한예리(JTBC 청춘시대에서 눈여겨보았던 배우)의 연기가 돋보였던 영화,
깜찍하게 거짓말하는데도 하염없이 귀여웠던 캐릭터...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하루가 최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던 영화였습니다^^
* 영화평론가의 글을 옮겨와 보았습니다.
재치 있고 깔끔한 에세이 같기도 하고, 리드미컬하면서 신비로운 시 같기도 하다. 김종관 감독의 신작 <최악의 하루> (8월 25일 개봉)는 일도 관계도 마음 같지 않아서 속을 끓였던 일정의 끝, 기왕이면 한 주가 저물어가는 금요일 저녁쯤에 보면 최적일 영화다. 이건 삶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해피엔드를 선물하는 영화니까.
배우 지망생인 은희(한예리)는 길을 잃은 일본 소설가 료헤이(이와세 료)를 우연히 만나 도와주다가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낀다.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남자 친구 현오(권율)와의 선약 때문에 은희는 료헤이와 헤어지지만 정작 현오를 만나서는 말다툼 끝에 화를 내고 돌아선다. 혼자 남아 SNS에 글과 사진을 올린 은희는 그걸 보고 자신이 있는 곳에 찾아온 운철(이희준)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운철은 이전에 은희가 사귀었던 남자였다.
<최악의 하루>를 보면 직접적 연관성이 없음에도 이런저런 영화들이 떠오른다. 한 여자를 서로 다르게 보는 세 남자라는 설정에서는 <우리 선희>가 생각나고, 극의 분위기나 캐스팅에서는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연상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남자 주인공 유스케가 배우였던 여자 주인공을 찾아 한국으로 온 후에 겪게 되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지닌 감성과 위트는 고스란히 김종관 감독의 것이다.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에서 장편 <조금만 더 가까이>까지, 김종관은 긴 시간에 걸친 삶의 궤적이나 연애의 역사를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한 단면을 조심스럽게 떼어낸 후, 고유한 시공간 속 감정의 흔들림을 관계 속에서 예민하게 스케치한다. <최악의 하루> 역시 그렇다.
그 짧은 하루 동안 은희는 세 남자를 차례로 만난다. 언뜻 은희는 <조금만 더 가까이>에 나왔던 은희(정유미)의 연장선상에 놓인 캐릭터처럼 여겨진다. (<조금만 더 가까이>에는 현오와 운철이란 이름의 캐릭터도 등장했다.) 하지만 <최악의 하루>의 은희는 상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현오를 만날 때 내내 통통 튀는 느낌이라면, 운철과 마주할 때는 낮게 가라앉아 있다. 그리고 료헤이에게 다가갈 때는 산뜻하다. 어투도 제각각이라서 현오에겐 격한 반말로 톡톡 내쏘지만 운철에겐 시종 존댓말로 내리깔고, 료헤이와는 짧은 영어로 간신히 소통한다. 심지어 은희는 사람에 따라 헤어 스타일을 바꾸기도 한다.
대체 어떤 게 은희의 진짜 모습일까. 우리는 은희라는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걸까. 물론 영화 속 관계들은 꼬여 있고 얽혀 있다. 그런데 상황마다 서로 다른 사회적 감정적 가면을 쓰곤 하는, 자기방어적이든 자기모순적이든, 누구나 사실 그렇지 않은가. 어쩌면 은희는 극 중 연극 대사를 빌어서 이렇게 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짜라는 게 뭘까요. 사실 저는 다 솔직했는걸요."
한예리는 서로 다른 가면들을 능숙하게 바꾸어 쓰는 변검술사처럼 다양한 매력을 뽐낸다. 권율과 이희준은 각각 원심력과 구심력을 무기 삼아 정반대의 방식으로 코믹 연기를 흥미롭게 소화한다. 그리고 이와세 료는 메인 스토리의 안과 밖에서 안온한 외투를 마련한다.
우디 앨런과 리처드 링클레이터를 섞어놓은 듯 재치 넘치는 연애소극처럼 전개되던 <최악의 하루>는 후반부에 이르러 전혀 다른 단계에 진입한다. 이야기는 겹을 만들어가며 몽롱해지고, 맴을 돌던 감정은 마침내 훌쩍 비상한다. 극 중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지만 그중 단 하나의 관계만이 서로의 틀린 말을 교정해준다.
이건 '거짓말'을 하는 여자가 '거짓말'을 하는 남자를 만나서 '거짓말'을 통해 마침내 휴식과 평화를 얻는 이야기인 걸까. 부박하고 지난했던 모든 일들은 정말로 일어났던 일일까. 그날은 최악이 아니었다. 내내 벗어나지 못했던 서촌에서 남산 사이, 짜증과 설렘으로 명멸했던 아침에서 밤 사이, 혹은 말과 말이 끊어진 그 잠깐의 사이에서, 장소와 인물만이 정해진 채 텅 비어 있지만 마침내 주문(呪文)처럼 불러들인 해피엔드. 설령 최악이었다고 해도 그 하루는 이제 지나갔다.
첫댓글 저 일본배우, <한여름의 판타지아>에서 감농사를 짓는다던... 여기서는 분위기가 완전 다르네요.
일본영화 느낌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