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6] 이정수(李貞壽) - 내 모든 것 하늘에 맡기고 1. 정도령(正道令)을 만나자 - 2
11 내가 스물이 되자 부모님들은 지금의 남편인 김종학 씨에게 시집을 보냈다. 평범한 아내를 원하는 남편에겐 나의 신앙 행각이 고충이 되었다. 결혼 후에도 나는 가정에 예속된 평범한 아내가 되지 못하고 정도령 님 뵙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신앙인의 생활로 일관했다.
12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는데 도취된 나는, 가정이나 주위의 인간사에 별다른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고 매일 노심초사 갈구함은 정도령을 뵈옵고자 함이었다. 이토록 도취된 나의 신앙은 한때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13 1955년 말경은 ‘천지음양도수(天地陰陽度數)가 바뀌는 때라 지극한 정성을 들이면 정도령을 만나 뵈올 수 있다’라는 말을 듣고 반대하는 남편에게 설득이라기보다는 끈질기게 고집을 부려서, 결국 우리 온가족과 마을사람들을 데리고 대전의 보문산 범하사 밑에 가서 3일 동안을 정도령 님을 뵈옵고자 하는 일념으로 눈물 어린 기도를 드렸다.
14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그것이 벌써 사회의 물의가 되어 있었다. 경찰서에서는 나를 ‘사회혼란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조사하고 심문했지만 특별히 범법 한 사실이 없었으므로 무사히 해결되었다.
15 정월 10일에는 영동의 동화사 밑에서 ‘기원의 재’를 올리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섰다. 얼마나 춥고 폭풍 한설이 심했던지 길거리에는 사람 구경을 할 수가 없었으며 남편을 비롯한 온 가족들은 “이럴 때 어디를 가느냐”라고 적극 만류를 했다.
16 그러나 나는 이미 생명을 걸고라도 정도령을 뵈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각오가 되어 있었던 터라 무서워함이나 주저할 것이 없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해는 이미 서산마루에 걸려 온천지는 하얀 빛으로 변했다.
17 나는 곧 얼음을 깨고 냉수욕을 시작했다. 살이 찢어져 갈라지는 듯했고 차츰 온몸에 감각이 없어지는 듯하더니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모든 추위를 잊고 오직 일념으로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18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세찬 바람과 눈보라만이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시간은 새벽 3시, 금방 무언가 나타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 찰나, 세찬 바람 소리와 함께 대호(大虎)가 나타났다. 나는 머리를 숙였다.
19 그 순간 “네 정성의 성취를 진실로 축하하노라” 하는 음성이 들리더니 조용해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대호는 사라지고 없었다. ‘정성의 성취를 축하한다니 무슨 뜻일까? 정도령을 만난다는 말인가?’
20 나는 마음이 후련하고 그저 기쁘기만 해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밤을 지새우고 이튿날 아침에 하산하여 귀가하였다. 그런 후 왠지 금년에는 나의 기원이 성취될 것만 같아 기쁘면서도 초조한 마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