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게 좋아
관응스님과 대담

■ 임오년이 가고 계미년이 밝았습니다. 새해나 지난해는 물리적 시간이라는 점에선 똑 같으나, 불자들에겐 의미상 다른 것 같습니다. 새해를 맞은 불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전처럼 하면 됩니다. 평상심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잘 하려고 하기보다 평상심대로 하면 됩니다.”-
■ 얼마 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5년 동안 국정을 담당할 새 지도자가 뽑혔습니다. 새 지도자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국정에 임해야 하는지요.
“언제나 똑같은 소리지만 진실하고 정직해야 됩니다. 남을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하면 모든 것이 잘 됩니다. 잘 하려고 하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것이 좋습니다. 넘치는 것이 문제입니다.”
■ 현대사회는 여러 가지 어려움과 급격한 변화 속에 놓여있고,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것 같습니다. ‘급격한 변화’를 현명하게 맞이할 방안은 없는지요.
“옛날 하던 것을 꾸준히 하면서 계통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발전이 있습니다. 너무 급하게 모든 것을 하려고 하면 문제를 일으킵니다. 옛 것을 지키고, 옛 것에 뿌리를 두면서, 새로운 것을 지향해야 합니다.”평상심대로 하도록
■스님께서는 평소 참선과 간경(看經)을 모두 중요하게 여기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선의 길’과 ‘교학의 길’은 다른 것인지, 선이란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다를 리가 있습니까. 시간이 지나며 ‘말’들만 많아져 수다해진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둘일 리 없습니다. 본디 하나이고, 둘이 아닙니다. 다만 중생들이 둘로 차별 하는 것일 뿐입니다.”
■ 근대 한국불교를 살았던 스님들의 길을 ‘한암 스님의 길’과 ‘만해스님의 길’을 흔히들 대별(大別)하곤 합니다. 스님이 보시기에 두 길은 어떤지, 만약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어느 길을 택하실 것인지요.
“한암스님은 고요한 맑은 물과 같고, 만해스님은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두 분 다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한암스님은 산중에서 후학들을 많이 제접하신 분이고, 만해스님은 세간에서 불교를 널리 펴신 분입니다.”
■최근 산문 밖에서는 간화선법 등 수행법에 관한 논의가 많습니다. 간화선 위주의 현행 수행풍토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화두를 어떻게 간(看)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잘 들 모르니까 여러 말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학인의 자기 입니까’(如何是學人自身)하고 물으니 ‘병정의 동자가 불을 구하러 왔다’(丙丁童子來求火)고 답 했습니다. 어떻게 간(看)하는 것이 화두인지 잘 몰라요. 깨달음의 정점에 가야만 알 수 있습니다.”
■하안거 동안거가 되면 전국적으로 2,000여명의 스님들이 결제에 들어갑니다. 그럼에도 옛날에 비해 참 수행인이 적어진다는 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는 지, 대책은 없습니까.
“수적으로는 많으나, 수행의 질적인 면에서는 옛 납자들의 정진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옛 사람들보다 관찰하는 힘이 점점 약해진다고 느껴집니다. 공부하려고 노력하는 이도 드뭅니다. 옛날에는 공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수행자들이 세상에 대해 너무 관심이 많고, 신심이 박약해져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옛날엔 (선방에) 한 번 들어가면 몇 철씩 났습니다. 요즈음은 안 그런 것 같아요. 뭐든지 알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근기도 옛 수행자보다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분발해야 합니다.”요즘 수행자들 근기 약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수행자가 꼭 참구해야 될 화두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깨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무엇이 ‘바른 지견’(正知見)인지를 제대로 알아 깨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르면 모르는 만큼 막히고, 알면 아는 만큼 터지는 것이 공부입니다. 선지식을 찾아 정지견(正知見)을 배워야 합니다.”
■ 불생불멸한 법신(法身)이 있습니까,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부처님 가르침이 법신입니다. 지금까지 내려온 불교의 역사가 법신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불교가 면면부절하게 전승되는 것은 모두 법신 덕분입니다.”
■ 한국불교는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공부하고, 학인들을 교육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선(禪)만 주장해서도 안 되고, 교(敎)만 우선시해서도 안 됩니다. 선과 교는 수레의 양 바퀴와 같습니다. 함께 발전시켜야 합니다.” ‘육조단경’자주 읽어
■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스님들과 불자들에게 당부 말씀을 해주십시오.
“가장 높은 사람에서 가장 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자기 분수를 알고 지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 역할에 적합한 노력을 하고, 분수를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성직자는 성직자답게, 농부는 농부답게 노력할 때 세상은 아름답게 됩니다.”
■ 가장 생각나는 도반은 누구입니까.
“석주스님하고 가깝게 지냅니다. 석주스님은 참으로 사심이 없고, 정직하신 분입니다.”
■ 무슨 경전을 자주 보시는지요.
“나이 80살 까지는 그럭저럭 경전을 보았습니다. 90살 넘으니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혜능스님의 〈육조단경〉을 자주 봅니다. 세간에 사는 분들은 〈유마경〉을 읽으면 좋습니다.”
■ 불자들에게 하실 말씀은.
“정직하게 신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바로 알고 바로 행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취가 있습니다.”
▶수행 이력
1910년 경북 상주군 외서면에서 출생.
1929년 상주 남장사에서 혜봉스님을 계사로 탄옹스님을 은사로 득도.
1934년 유점사 전문강원 대교과 졸업.
1936년 서울 선학원에서 보살계․비구계 수지.
1938년 중앙불교전문학교 졸업. 문경 김용사 강사 취임. 해인사 해외유학생으로 선발.
1942년 일본 경도 용곡대(龍谷大) 졸업.
1943년 오대산 월정사서 안거.
1952년 해인사 백련암, 고성 옥천사 등지서 안거 수행.
1956년 황악산 직지사 조실 추대.
1959년 조계사 주지 및 중앙포교사 취임.
1961년 동국학원 이사
1963년 용주사 주지.
1965년 대구 능인학원 이사.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 6년 결사.
1981년 직지사 주지.
1985년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1989년 학교법인 보문학원 이사장. 황악산 직지사 조실.
2004.2.28. 입적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