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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 14:15~17
제목: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
● 기독교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신앙입니다.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는 주님의 계명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명목상의 신자라고 하면서도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고 감정과 육체가 시키는 대로 사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주님을 사랑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간에 주님을 믿기는 하지만 사랑하지는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님을 적당히 생각과 말로 믿으면 주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고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주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도덕률폐기론과 율법폐기론 입장에 있는 자칭 기독교인들은 구원파 스타일인데, 이들은 주님을 믿는 척 위선은 하지만 주님을 진정으로 믿고 사랑하는 자들은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하나님의 뜻대로 부름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쉬운 비유의 예화를 들겠습니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윤여정씨가 덜 유명할 때 찍은 ‘어미’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윤여정의 사랑하는 딸이 인신매매를 당해서 행방불명이 되었는데요. 평소대로 운전석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려다가 딸이 이전에 ‘엄마, 담배 피우지 말고 끊어!’라고 이야기 한 것이 생각나서, 담배를 분지르고 피우지 않았습니다. 지금 눈에는 안 보이지만 사랑하는 딸의 말이 생각나서 담배를 끊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랑하는 사람이 한 말을 지킵니다. 사랑에는 그러한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당연히 사랑하는 딸을 사랑해도 딸이 했던 말대로 실천을 하는데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 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계명을 지키는 원동력은 의지력이나 율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혹시 우리에게 숨겨진 죄악이나 중독이 있다면 그 이유는 하나님을 어느 정도는 믿지만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왜 목사들의 성 추문이 들리고 보도됩니까? 눈에 보이게는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고, 눈에 안 보이게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장로∙집사들이 알코올에 중독되고 가정을 불편하게 합니까? 육안으로는 가족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고 신앙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위선을 한 것입니다.
● 개역개정 기준으로 ‘주의 계명’은 구약 성경에 많이 나오는데 특히 시편에 많이 나옵니다. 신약 성경에는 아래와 같이 2번만 나옵니다.
눅1: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고전7: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
눅1:6에서 하나님 앞에 의인인 두 사람은 세례 요한의 부모인데요. 인간은 율법으로 하나님 앞에 진정한 의인이 될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의 믿음만으로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이신칭의, 롬3:20~24). 그런 점에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본성과 본질적으로 의인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긍정적인 평가로 인해서 의인이라는 뜻입니다. 이 의인이란 말은 선민 이스라엘에서 가장 탁월한 칭찬의 말로 간주되었었는데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한 경건한 인물에게만 붙여진 유대인의 이상형이었다고 합니다.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였다는 것은 세례 요한의 부모가 매우 경건하고 신실한 성도들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고전7:25 말씀을 더 쉬운 성경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대인의성경) 처녀에 대해서는 주님의 명령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자비하심으로 신뢰할만한 사람이 되어 내 의견을 말합니다. |
바울은 사도이기 때문에 특별계시의 방편인 하나님의 직접적 의사전달(음성∙환상∙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처녀에 대해서 그러한 특별한 방편으로서의 주님의 명령을 받은 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뢰할만한 교회 지도자로서 개인의 의견을 제시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개혁주의와 건전한 복음주의는 특별계시의 방편인 직접적 의사전달(음성∙환상∙꿈)이 사도의 시대에 종료하고 그 이후로는 없다고 봅니다. 사도 시대 이후에도 특별계시의 방편인 직접적 의사전달(음성∙환상∙꿈)을 받았다면 이단∙사이비∙신비주의자이거나 개인의 주관적 체험에 불과합니다. ‘주의 계명’이 구약 성경, 특히 시편에 많이 나온다고 했는데요. 너무 많아서 다 찾아보지는 못하고요. 중요한 것 몇 개를 찾아 읽고 그 의미를 음미해 보겠습니다.
시편 119:172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이다 |
주의 계명은 단순한 율법이 아니라 주의 말씀과 호환되는 표현이고 성도들이 노래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찬송가). 의로운 말씀인데 쉽게 표현하면 거룩한 말씀입니다. 참 성도는 말씀으로 노래하는 신자들입니다.
시편 119:166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나이다 |
주의 계명은 구원과 연관되며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주의 계명을 실행합니다. 더 정밀하게 말하면 구원을 받은 자가 구원받은 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현대 구원의 서정에서 성화라고 하는 것이지요.
시편 119:47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
주의 계명을 율법주의가 말하는 그 율법이나 고된 의무라고 보며 성급한 편견을 가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정도로도 볼 수 있습니다. 주의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는 아래와 같이 복을 받은 성도입니다.
시1: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
율법이나 계명은 때때로 말씀과 호환될 수 있는 용어입니다. 시119:47과 시1:2는 율법∙계명을 즉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할 수 있다고 표현합니다. 행위적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묵상의 대상도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86 주의 모든 계명들은 신실하니이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
주의 계명은 우리가 핍박을 받거나 곤경에 처했을 때 성도를 위로하고 돕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를 악물고 지켜내야만 하는 부담의 율법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부담을 덜어주시고 도와주시는 신실한 의지가 됩니다.
시편 119:48 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meditate, 묵상하리이다) |
다시 강조하지만 계명을 율법주의의 율법으로 속단하면 아니 됩니다. 시119:48에서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고 묵상하는 매개가 될 수 있습니다.
시편 119:127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
주의 계명은 행위의 대상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 되는 용례가 있습니다. 주의 계명을 순금보다 더, 즉 진실하게 사랑하는 자가 참 성도입니다. 이사랑은 주의 계명을 수여하신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시편 119:143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
고난을 당하며 성도의 심령이 침체하고 상했을 때 주의 계명은 즐거움이 됩니다. 참 성도는 어려울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평안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즐거움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즐거움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기쁘고 행복하지 못할 때에도 말씀이 참 성도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습니다.
시편 119:151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
이 구절에서 주의 계명이 단순한 율법이 아니라 진리를 의미하는 용례가 나옵니다. 말씀(계명)은 진리이고 진리의 결정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 예수 그리스도는 먼저 이 땅에 오신 보혜사이신데요. 성자 예수께서 구하신 바대로 성부께서 보내시는 또 다른 보혜사는 성령이십니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
동방정교회는 성령이 성부에게로부터‘만’ 나오신다고 어거지를 씁니다. 그러나 성경과 정통 개신교는 성령이 ‘성부와 그리고 성자로부터’ 나오신다고 믿습니다(필리오케 교리). 극단적 세대주의는 현재 교회의 시대를 성령의 시대라고만 과도하게 강조하는데요. 성부 성자 성령의 위격은 구분(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습니다. 현재를 교회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성령‘만’의 시대라고 불필요한 강조를 하면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시대입니다. 보혜사(파라클레토스)는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에게 지혜를 주시고(Counselor) 위로를 주시며(Comforter) 도움을 주시는(Helper) 성령이십니다.
NIV) And I will ask the Father, and he will give you another Counselor to be with you forever. KJV) And I will pray the Father, and he shall give you another Comforter, that he may abide with you for ever. NASB) I will ask the Father, and He will give you another Helper, that He may be with you forever. |
Counselor(지혜공급자)∙Comforter(위로자)∙Helper(돕는 분)의 첫 글자가 대문자인 이유는 하나님의 위격인 성령이기 때문 그리 쓴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아들의 영∙그리스도의 영∙예수의 영∙그리스도의 영∙양자의 영 등으로도 표현되는데요. 오늘 읽은 본문인 요14:17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진리의 영’이라고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요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세상과 세상 사람들은 결코 받지 못합니다. 오직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만이 받습니다. 성령은 참 성도들의 안에 내주하십니다. 성령은 구원과 성화를 역사하십니다.
살후2: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성화)과 진리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은 따로따로가 아닙니다. 두 개념이 구분은 되지만 분리되지 않고 함께 합니다. ‘성령이 진리’라는 말씀이 있음을 보시면 이해가 됩니다.
요한1서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
성령은 성도가 진리를 믿어 구원을 받게 만드시고 구원받은 이후에 계속 성화할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보혜사는 지혜를 주시고(Counselor) 위로를 주시며(Comforter) 도움을 주시는(Helper) 성령이신데요. 이 묵상을 읽은 우리 모두가 그러한 성령의 역사하심의 수혜를 받는 복된 분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첫댓글 더 다양하고 폭 넓은 이해를 위하여 주석의 내용을 아래에 올립니다. 시간이 없는 분이나 초신자는 위의 묵상 본문만 읽으셔도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묵상 본문만 읽어도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22
<호크마 주석>,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 여기 이른바 "구하겠다"는 말의 헬라 원어(* )는, 상대방을 향하여 동등 처지를 취하고 구하는 태도와 과히 틀림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혜사"란 말(* )은 "대언자"를 의미한다. 요일 2:1에 예수님을 "대언자"라고 하였으니, 성령을 가리켜 "다른 대언자"라고 함이 적당하다. 성령은 우리를 위하여 도고하여 주시는 대언자이시다(롬 8:26). 그 뿐 아니라, "보혜사"란 말을 위로자란의미도 가진다. 그가 우리를 위로하신다는 것은, 성도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음과 마찬가지의 힘과 평안과 기쁨과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하실 그의 역사를 가리킨다. 여기 약속된 보혜사의 오심은, 오순절 임하실 성력을 가리킨다. 그가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고 하셨으니,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단 한 번 있을 것이지만, 그 역사의 영구할 것이 알려진다(마 28:20).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저는 진리의 영이라." 이 말씀은, 진리(그리스도의 인격과 속죄 사업에 대한 설명 계시)가 성령님의 것이라는 뜻이다. 세상이 그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은 육안에 보이는데로만 무엇을 믿는 까닭이다. 그러나 신자들이 그를 받는 이유는, 그가 그들 속에 거하셔서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까닭이다. 그것이,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하신 말씀이 의미한 바이다.
@장코뱅 네, 아주 어렵지는 않은 담백한 설명으로 잘 참고하겠습니다.
<박윤선 주석>, 요한복음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 제자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참되고 진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흔히 그렇듯이 이들의 사랑에는 어딘가 미신적이 것이 있었다. 곧 그들은 그를 이 세상에 붙잡아 두고자 했는데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이러한 잘못을 교정하는 뜻에서 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사랑을 재정립할 것을, 곧 그가 그들에게 주신 계명을 준수하는 일에 집착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듯한 사람들 가운데서 올바르게 그를 존경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은 참으로 유용한 가르침이었다. 아니 시시한 짓거리를 해 놓고 자화자찬하며 기만에 빠지는 우리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참사랑은 그의 가르침을 유일한 척도로 지킬 때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인 순수한 순종과 결합되지 않을 경우에는 흠투성이 이므로 우리의 감정이 얼마나 죄악스러운가 하는 점에 대해서도 경고를 받고 있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 그는 그들이 그의 부재중에 느낄 슬픔을 달래는 뜻에서 이 말씀을 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그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데 권고만으로는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당장, 비록 그가 몸으로는 떠나 있겠지만 그의 영을 통해서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므로 그들에게 도움이 없이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덧붙이고 있다.
여기서 그는 성령을 가리켜 '아버지의 선물'로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그의 기도를 통해서 얻을 선물이었다. 다른 곳에 보면 그가 손수 성령을 주시마고 약속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이시기 때문에 아버지에게서 성령의 은혜를 받는가 하면, 그는 또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은혜를 직접 베푸신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두 말씀은 참되고 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의미는 "아버지께서는 나를 너희들에게 보혜사(Comforter)로 주셨지만 그러나 그것은 잠정적인 것이었다. 이제는 내가 나의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아벚*에게 다른 보혜사를, 그것도 잠간 동안이 아니라 영원히 너희들과 함께 있을 보혜사를 주십사하고 기도할 것이다."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보혜사'(Paracletus;파라콜레투스)가 그리스도와 성령 모두에게 적용되고 있는데
양자의 임무가 그들의 보호를 통해서 우리를 권면하고 인도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백성에 대한 보호자였으나 그 후에는 그들을 성령의 보호와 지배에 위탁하셨다. 그럼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Sub Christi cliemtela)있지 않는가 하고 누가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그리스도는 계속적인 보호자이지만 더 이상 눈에 보이는 방법을 이용하지는 않고 있다. 그가 이 세상에 계실 동안에는 그는 자신을 그들의 보호자로 공공연하게 드러내셨다. 이제 그는 그의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보호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가리켜 다른 보혜사로 부르는 것은 우리가 각자에게서 받는 축복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임무는 세상 죄를 속죄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고 인간들을 사망에서 속량하며 의와 생명을 획득하게 하는 것이었다. 성령의 임무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자신에게 동참할 뿐 아니라 그의 모든 축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과 성자는 서로 다른 인격인 만큼 여기서 이 둘의 인격을 구별하는 것도 잘못이 없을 줄 안다.
==14:17
진리의 영이라 -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에 대한 또 다른 명칭을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진리의 스승(magister veritatis)이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가 그를 통해서 내면적으로 가르침을 받기 전에는 우리의 모든 마음은 허영과 거짓에 휘말려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 그의 의도는 세상이 빼앗기고 있는 은사가 보통은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대조는 하나님께서 그의 선택 받은 백성들에게만 베푸시는 은혜의 탁월성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사야도 (60:2)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나타나리니"하는 말을 외치고 있다. 하나님께서 특이한 특권을 통해서 교회를 온 세상보다 뛰어나게 하실 때 그의 교회에 대한 자비는 더욱 더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세상이 흔히 육신의 모습에 따라 그렇듯이-자만에 빠지지 말것을 권고하는 가운데 자신들이 아니라 성령의 은혜를 생각할 것을 단단히 당부하고 있다. 지상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성만 의지하고
하늘의 조명을 무시하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성령에 대한 성경의 모든 귀절이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성령의 빛을 할 수 있는 한 불식하는 이 교만이 온 사방에 깔려 있더라도 우리는 자신의 빈곤을 의식하고 건전한 이해에 속하는 것은 모조리 다른 근원에서 흘러나온다는 점을 명심해야겠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성령에 관계된 것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배울 수 없으며, 그는 오직 신앙의 체험을 통해서만 알려지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세상은 성령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를 감당할 수 없으나, 너희들은 그가 너희들과 함께 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를 알고 있다"고 하는 식으로 그는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 주시는 분은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는 알려지지 않은 그대로요, 이해할 수 없는 그대로 남아 있다.
@장코뱅 파라콜레투스는 표기가 어색한 것 같습니다. 검색해 보니 헬라어 '파라클레토스', 라틴어 '파라클레투스'이네요.
하지만 옥의 티 이외의 나머지 내용은 다 좋습니다.
<매튜 헨리 주석>, 그리스도의 위로의 말씀(4)(요한복음 14:15-17)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안위하시기 위하여 그러한 일들을 말씀하시고, 여기서는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고 계신다. 성령은 오시면 그들의 위로자가 되시고 이러한 주님이 분부하신 일들을 그들에게 모두 다 이루실 것이다.
Ⅰ. 주님은 약속의 이러한 경고를 전제하시고 있다(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의 계명을 지킬지니"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일은 일반적으로는 경건의 연습을 위해 그리고 특별하게는 사도로서의 직분을 신실하고 근면하게 수행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이를 보면,
1.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위안하실 때 그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명령을 지킬 것을 명하셨다. 왜냐하면 우리는 위로를 기대하기 보다는 의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말인 훈계하다와 위로하다라는 두 가지 뜻을 모두 지니고 있다.
2. 제자들이 주님께서 떠나신 후 어떻게 해야 할까 또 무엇이 그들 앞에 일어날 것인가 근심 중에 있을 때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그의 계명을 지키기를 명하고 계시며 그렇게 하면 아무것도 그들을 잘못되게 못할 것이다. 어려운 때의 하루 일에 대한
우리의 걱정은 그날 해야 할 의무에 관한 걱정으로 가득 차게 되곤 한다.
3. 제자들이 그리스도가 떠나시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슬퍼함으로써 그에 대한 자기네들의 사랑을 보이고 있고 또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생각하며 슬퍼하고 있을 때 주님은 그들에게 만일 그들이 주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 부인다면 이러한 약한 연민의 정을 보이지 말고 그들의 신뢰를 수행할 성실한 염려와 주님의 계명을 모두 복종함으로써 그것을 나타내 보일 것을 명하시고 계신다. 이것이 제사보다 더 낫고 눈물보다 더 나은 것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4.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과 보혜사의 오심 등에 대한 귀한 약속들을 주실 때 그는 이러한 조건을 덧붙여 약속의 말씀을 하고 계신다. "만일 너희가 나의 예명을 지킨다면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라." 그리스도는 아무 사람이나 그들을 지도하는 분을 따르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 옹호해 주신다. 성령의 지시에 움직여라. 그러면 너는 성령의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Ⅱ.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위대하고 말할 수 없는 축복을 약속하시고 계시다(16. 17절).
1. 그들은 다른 보혜사를 가지게 될 것을 약속받았다. 구약성서의 약속은 메시야의 오심이었으나, 이 위대한 신약 성서의 약속은 보혜사의 오심인 것이다(행 1:4). 한 약속이 슬픔 속에서 위안을 구하고 있는 제자들의 당면한 고난에 떨어진 것이다. 여기서 살펴 보자.
(1) 약속된 축복(a;llon para,khton) 이 말은 요한1 서 2잘 1절과 그리스도의 말씀 중 단지 여기서만 사용되었는데 요한 1서에는 그것이 변호자로 번역되었다. 레미스트(Rhemist)들과 하몬드(Hammond) 박사는 헬라어 보혜사(Paraclete)의 뜻을 그대로 보존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사도행전 9장 31절에서 보혜사로서의 모든 직임을 내포하고 있는 성령의 위안이라는 말을 찾아 볼 수 있다.
[1] 우리는 다른 보혜사를 가게 될 것이다. 성령의 직임은 그들 제자들과 그 밖에 다른 모든 사람들을 변호해 주는 그리스도의 변호 즉,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괴로움을 돌보고 탄원해 주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업 바로 그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고통 당할 때 그들을 위해 말씀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떠나가실지라도 그들은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성령이 그들 안에서 계속 말씀해 주시고(마 10:19, 20), 이러한 대변인에 의해 탄원되어지는 청원은 꼭 이뤄지고야 만다.
[2] 너희들은 또 다른 주와 선생, 그리고 다른 훈계자를 가지게 될 것이다.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지냈을 때에는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의 할 일을 격려하고 훈계하셨다. 그러나 주님이 떠나시는 이 시점에서 주님은 비록 고요하게 일하시지만 이러한 일들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게 할 한 분을 그들에게 머무르게 하신 것이다. 얀세니우스(Jansenius)는 이러한 분을 가리켜 가르치는 일과 보호하는 이 두 가지 일을 모두 하는 분으로서 변호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3] 다른 위로자.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위로자로서 기대되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기대되는 메시야의 이름 중의 하나는 위로자(Menahem)였다. 탈굼(Targum)은 메시야의 날을 위안의 날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늘 그들을 위로했다. 그들을 떠나려고 하는 이 순간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인 다른 위로자를 주님은 그들에게 약속하신 것이다.
(2) 이러한 축복의 수여자. "아버지께서 그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요, 이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이신 바로 그분이시다." 모든 인류의 구세주이신 그 아들을 주신 바로 그분이 그와 똑같이 모든 인류의 위로자이신 그의 성령을 주실 것이다. 아들로서의 주님이 제자들에게 위로자를 보낼 것을 말씀하고 있다(15:26). 그러나 위로자이신 성령을 보내시는 분은 바로 아버지이시다.
(3) 이러한 축복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그것은 주 예수의 중보를 통해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할 것이다. 내가 시행하리니"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14절) 이는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시라는 것과 왕이시며 또한 제사장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자신이 모든 것을 대신하여 간구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대제사장으로서의 그가 인간들을 중재하도록 책임을 맡았고 그는 왕으로서 아버지로부터 심판할 권세를 위임받으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내가 아버지께 간구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버지께서 원하시지 않으므로 그 일을 위해 떼를 쓰셔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선물은 그의 공로로 이루어지며 그의 중보에 의하여 그같은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4) 이러한 축복의 연속.
"그가 너희와 영원히 머무시도록." 이 말씀은,
[1] "너희가 살아 있는 한 너희와 함께 하시며 너희는 위로자가 안 계신다거나 내가 떠난다고 슬퍼하는 것같이 그의 떠남을 슬퍼하게 될 염려도 없는 것이다." 잠간 위로받지 못하게 되지만 우리에게는 영원한 위로가 지속되리라는 확신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은 임기응변의 말이 아니다. 공적인 사명을 위해 택함을 받은 그들은 집단생활을 항상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 흩어진 어떤 곳에서든, 어떤 재난에 직면해 있든 그들의 위로자가 되어야 하므로 주님의 이 말씀은 매우 진실되고 적합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2] "너희가 사라질지라도 너희 후계들과 끝까지 함께 할 것이며 그들의 목회 속에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3] 이러한 위로의 최고의 상태는 모든 성도들의 영원한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위원 속에서 성취될 것이다.
2. 이러한 위안자는 진리의 성령이시다(16,17절).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주님과 대등한 분으로서 위로자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하나님의 영을 받을 것이요,
그는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아들과 같은 분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1) 약속된 위로자는 영이시며 인간들의 영 위에 임재하는 분으로서 내적으로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영적인 방법으로 그의 일을 성취하실 것이다.
(2)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그는 너희에게 진실함을 나타내 보이시며 너희를 끝까지 돌보실 것이다. 그는 너희에게 진리를 가르칠 것이며, 너희 마음을 진리의 지식으로 비추며 진리에 대한너희의 신앙을 견고하게 할 것이다. 또한 진리에 대한사랑을 증가시킬 것이다. 이방인들은 우상 숭배로 유대인들은 전통 때문에 커다란 실책과 잘못에 빠졌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은 너희들을 모든 진리에로 인도할 뿐 아니라, 너희들의 역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도 진리에 이르도록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진리이시며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기름 부음 받은 그러한 영 즉, 그리스도의 영이신 것이다."
(3) 세상은 그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신다.
[1]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선택받고 부름받았기 때문에 세상과 구별된다.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다른 세상의 자녀들이며 상속자인 것이다.
[2] 진리의 영을 받을 수 없도록 이 세상에 푹 파묻혀 있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세상의 영과 하나님의 영은 정반대가 된다(고전 2:12). 세상의 영은 높아지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으나 하나님의 영은 그렇지 않다. 이 세상의 임금들은 임금으로서 지식이라는 유리한 도구를 지니고 있으나 이를 극도의 편견을 가지고서 사용하므로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알지 못한다(고전 2:8).
[3] 사람들은 진리의 영을 받을 수 없는데 그들은 그 진리의 영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성령의 위로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처럼 어리석게 보인다. 또 율법처럼 복음의 위대한 사실들 역시 이상하게 보인다. 그들의 판단은 이것을 이해하기에 미치지 못하며 오히려 성령의 일을 너희가 그들에게 말한다면 그들은 너희들을 야만인처럼 취급하게 될 것이다.
[4] 진리의 영을 잘 알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경험에 의해 얻어지기 때문이다. 진리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너희는 그와 함께 교제하며 이로써 진리의 영을 알 수밖에 없다. 그들 제자들은 어떤 점에 있어서 성령으로 옷입혀지게 된다. 무엇이 그들로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며
역경 속에서도 그와 함께 계속 지내도록 하는 것일까?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심으로 그들은 복음을 전하고 기적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성도들의 경험을 통하여 이 약속의 말씀은 명백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세상의 자녀에게 있어서 역설처럼 보이는 것이 그들에게는 자명한 이치로 드러난다.
[5] 성령과의 교제를 경험한 사람들은 주님이 계속 함께 하신다는 확증을 지니고 있다. 성령은 축복의 영으로써 계속 너희 안에 거하실 것이다. 성령의 내주하는 경험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이 성령이 얼마나 위대한지 또 어떻게 그를 영접하고 환영해야 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성령은 그들 안에 공중의 빛같이, 나무의 수액같이 몸 안의 영혼같이 그들 안에 거하게 될 것이다. 그와의 친교는 친밀하게 이루어지고 결코 분리될 수 없게 된다.
[6] 성령의 선물은 제자들을 세상과 구별짓게 하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특수한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선물은 그들에게 있어서 감추어진 만나이며 흰돌이다. 나타나 보이지 않는 위로일수록 고요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선택하심의 특성이며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의 얻을 유산이다.
@장코뱅 대강은 훑어보았지만, 내용이 너무 깊고 풍부해서 시간적 여유를 두고 더 읽어 보겠습니다.
본문이 3 구절에 불과하지만 의미심장하고 중요한 진리가 많이 녹아들어가 있네요. 좋은 묵상입니다.
매우 공감합니다.
좋은 묵상을 올려주셔서 저에게 도움이 많이 됩니다.
계명, 말씀, 진리, 예수 그리스도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이고, 아버지의 말씀을 예수께서 동일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셨고, 또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므로 진리로써 구원을 받도록 이끄시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해주심으로 계명에 순종하도록 이끌어주시고, 감화와 감동을 역사하십니다.
계명,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것을 신앙 연륜이 쌓여갈수록 더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단계를 지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로 진입하는 것이 큰 축복이며 행복이라고 느낍니다.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말을 지키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람 간에, 또 하나님과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입니까?
진리의 말씀이 우리를 위로하고 지혜롭게 하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게 하고 영생을 주시네요. 아멘. 주님의 사랑을 더욱 알아가기를 원합니다.
잘 요약하고 풍성한 댓글을 쓰셨네요. 논지를 잘 파악하셨습니다.
좋은 댓글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