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의 끝자락이다. 모처럼의 느긋한 휴일은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집안일을 해치우기에 적당하다. 가을 초입의 바람처럼 나붓해진 마음으로 집 근처 대형 마트에 갔다. 매실 발효액을 거르고 난 뒤 남은 매실에 소주를 부어두면 한해는 거뜬히 먹을 양의 과실주가 나오기에 과실주용 소주도 사고 제습기도 바꾸어 줄 때가 되어 겸사겸사 장을 보러 마트 지하로 향했다. 짐의 무게가 꽤 될듯하여 밀고 다닐 수 있는 카트기를 빼려고 지갑을 열어보니 50원짜리 동전 두 개만 달랑 있다. 근처에 있는 동전 교환기에서 마침 화장을 곱게 한 성장을 한 여인이 천 원권을 동전으로 교환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천 원을 교환하려고 지갑을 뒤졌으나 만 원권뿐이다. 오십 원짜리 동전 두 개를 내밀며 말했다.
“저 죄송한데요, 백 원으로 교환 좀 부탁드릴게요.”
“동전은 무거워서 바꾸어주기 싫은데요.”
그녀가 립스틱이 곱게 칠해진 입술을 달싹이는 순간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여 그녀의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하지만 그녀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자신의 길을 갔다. 이런 일로 감히 거절을 당할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해서인지, 너무 급작스런 상황이라서인지 한동안 명하니 동전 교환기 앞에 서서 마트 깊숙이 들어가는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장을 보는 내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나 하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그녀의 대답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많은 애를 썼다. 처음부터 무거운 물건을 살 거면서 집에서 동전을 챙겨오지 않는 잘못인가. 차라리 1층 계산대에 가서 만 원을 열 장의 천 원짜리로, 그리고 그중 천 원한 장을 또 백 원짜리 열 개로 바꾸지 않은 잘못인가를 되묻고 물었지만, 답이 보이지 않았다. 가슴에서 답답하니 늦더위가 시작되었다. 생각이 많아서였는지 둘러봤지만, 과실주용 소주는 보이지 않았다. 공기 속의 물방울들이 아닌 가득한 의문들을 잡아내기나 하면 좋겠다는 듯이 제습제만 두 상자를 안고 집으로 왔다.
장 본 것을 패대기친 다음 휴대폰을 열어 검색을 해본다. 도대체 백 원짜리 동전 하나의 무게와 오십 원짜리 동전 두 개의 무게의 차이는 얼마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50원 무게 4.16그램
100원 무게 5.42그램
50원 두 개는 8.32그램.
그녀가 100원 열 개를 들고 다닌다면 54.2 그램, 100원 아홉 개에 50원 두 개를 들고 다닌다면 57.1그램, 그렇다면, 그 차이는 2.9 그램이다.
냉수 한 잔을 벌컥 마신 후 동전 두 개를 손바닥에 올려본다. 무게보다는 금속의 촉감이 느껴진다. 가을 이맘때의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고 뒷면에는 1983년생인 동전이 한국조폐공사에서 탄생했다고 적혀있을 뿐이다. 2.9 그램의 무게가 무겁다는 그녀는 장을, 잘 보고 갔을까. 2.9 그램보다 가벼운 물건에는 무엇이 있을까.
또각또각 경쾌한 구두 소리처럼 2.9 그램이 빠진 그녀의 하루는 날아갈 듯 가벼울 텐데 8.32 그램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있는 내 마음은 왜 이렇게 무겁기만 할까.
첫댓글 세상 인심이 아무리 각박하다 하더래도, 이건 좀 이해가 안됩니다. 동전이 무겁다고 한 그 여인은 아이는 무거워서 한번도 안아 주질 못하겠네요. 밥 숫갈 은 어떻게 들까 궁금해 집니다.
작가님께서 얼마나황당하였을지 짐작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