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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A는 벤처기업의 성장 과정에 따라 단계별 맞춤 지원방식을 적용한다. 스타트업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 전까지 인큐베이터에 머물고, 규모·수익 면에서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지면 인큐베이터를 벗어나 회의실·사무실 등을 공유하는 비즈니스센터로 이전한다. 오랫동안 인큐베이터의 ‘장기 입주자’ 신세였던 익시니는 2011년 일본의 한 기업과 계약을 체결한 후에야 비즈니스센터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현재 이 회사는 관련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자랑하며 세계 각국에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 만약 이 회사가 한국에서 탄생했다면 과연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벤처기업의 5년 이내 폐업률이 75%에 달한다. 10년 이상 사업을 지속한 창업기업의 생존률은 8%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생존률 제고’를 최대 목표로 내세우는 정부의 정량적인 평가 기준에 따른 결과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감안하면 국내 벤처기업의 ‘실질 생존률’은 그보다 더 낮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벤처기업협회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열린 세미나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의 벤처 지원 정책에 맹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자금 지원 확대에만 열을 올릴 뿐 제도적 보호 장치는 미비한 실정이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유독 글로벌 시장 진출에 소극적인 모습도 개선해나가야 할 과제다.
벤처 강국도 초기 단계에선 정부가 적극 개입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벤처 지원에 직접 나서는 것 자체는 일단 긍정적이라는 입장이다. 우리 벤처 생태계가 아직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 주도로 시장을 이끄는 것이 밑거름을 다지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벤처 강국인 미국과 이스라엘도 벤처 시장 형성 초기 단계에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제도·자금 지원을 했다. 다만 정부가 벤처 기업에 지원을 한 뒤엔 철저한 사후 관리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의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제껏 정부는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성과를 내기에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단기간에 성과를 거두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미래를 준비해가는 장기적인 태도로 벤처 토양을 다져 나가야 한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정부가 내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리하게 벤처기업을 지원하면 자칫 자격이 떨어지는 벤처 기업에까지 예산을 쓰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조금 지원에 있어서도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되도록이면 간접 지원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다. 무분별한 자금 지원에 치중할 게 아니라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 원장은 “벤처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가 아닌 시장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우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벤처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평가 방식이 생존률이나 고용·매출액 등 정량적인 요소를 중시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지표는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장 연구위원은 “1인당 임금, 1인당 영업이익 등 생산성과 연관된 지표를 분석해야만 진정한 성과를 평가할 수 있다”며 “이러한 질적 평가를 토대로 생산성이 높은 기업에 선별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벤처 지원 목표가 단순히 생존률을 높이는데 머물러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정부 지원금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담당 부처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여러 부처에서 ‘무늬만 다른’ 벤처 지원 정책을 펼치다 보니 정부 예산이 샐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독일·핀란드 등 해외 선진국 벤처 시장은 모두 하나의 부처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하며 벤처 지원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정부의 벤처 지원 정책도 연방정부의 중소기업청(SBA)과 긴밀하게 연결돼있다. 김병균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정부 부처들의 벤처 지원 정책을 통합해 특정 부처만이 관할하고, 지방자치단체도 이를 통해 벤처 기업과 협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비 창업자에게는 세분화된 멘토링 서비스와 창업보육센터 등의 공동업무 공간 제공이 절실하다. 창업 기업을 시중은행이나 벤처캐피탈 등 재무 공급자 역할을 하는 곳과 연결해주는 일도 해당 기업 지원 못잖게 중요하다. 대기업·대학·연구소·주식시장과의 연계 지원도 필요하다. 창업 연계 지원 기능을 하는 전문적인 창업 지원 기관을 세우고, 창업 동아리나 커뮤니티 활성화를 돕고, 비즈니스 센터와 인프라 구축에 나서고, 투자자와 창업 기업 간의 매칭에도 힘써야 한다.
이런 골치 아픈 일들을 다른 나라 정부는 어떻게 해오고 있을까? 이영달 동국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벤처기업 협회 세미나에서 선진국의 벤처 창업 정책을 분석, 발표했다. 이를 살펴보자. “세계 각국은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벤처 창업 정책을 산업 정책, 또는 고용 정책 차원에서만 분절적으로 다뤘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이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불거지면서 상황은 바뀌었죠. 실업률이 폭등하는 등 심각한 전 세계적 위기 속에 새 혁신의 계기가 필요해졌습니다.”
EU, 벤처 창업정책 강화해 실업률 하락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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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진행된 각국의 벤처 창업 정책 강화는 실업률 하락이라는 가시적 성과로 이어졌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해당 국가의 많은 젊은이들이 창업으로 눈을 돌린 결과 중 하나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EU 통계청인 유로스탯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 위기 전후인 2007년 8.1%, 2009년 7.5%였던 독일의 실업률은 지난해 10월 기준 4.5%까지 떨어졌다. 2009년 7.6%였고 2011년 8.2%로 정점을 찍었던 영국의 실업률도 지난해 2월 기준 5.4%로 낮아졌다. 미국도 2009년 9.9%에서 올해 1월 4.9%로 실업률이 대폭 하락했다. 2008년 2월 이후 무려 8년 만에 최저치다.
나라별로 보면, 미국은 2011년 수립한 벤처 창업 정책에서 정부 부문과 민간 부문으로 나눠 세부안을 짰다. 정부 차원에서는 벤처 기업들의 자금 접근성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SBA가 1조원 가량의 창업 및 초기 단계 투자 펀드를 조성했고, 미국 재무부도 민간 투자 관련 세액 공제 규칙의 간소화를 선언하면서 힘을 실었다. 미국 보훈 부는 군 퇴역자를 위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마련, 기업가와 멘토를 연결해줬다. 미국 특허청도 특허 심사 기간 단축에 나서면서 지원 사격을 아끼지 않았다. 민간 차원에서는 창업 지원을 위한 비영리 재단인 ‘스타트업 아메리카 파트너십(Startup America Partnership)’이 조직되고, 저소득층과 소외 청소년을 대상으로도 청년 기업가 양성 교육이 활발히 진행됐다.
영국도 같은 해 수립한 정책을 통해 ▶영국 내 모든 학교들이 창업 경진대회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창업을 적극 지원하도록 하고 ▶모든 대학과 고등 교육기관에 창업 동아리를 개설하고 ▶‘혁신 런치 패드(Innovation Launch Pad)’라는 새로운 온라인 도구를 만들어 소규모 창업이 보다 쉽게,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다양한 아이디어와 창업 과정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1년 44만개가량이던 영국 내 스타트업 수는 2014년 58만개 이상이 됐다. 2011년 대비 31.9%나 성장한 것이다. 이밖에 EU도 2011년 이후 2020년까지 매년 창업을 통해 25만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고, 매년 1만 개의 기업이 창업되도록 이끈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매년 2000개 기업에 창업 초기 자금을 공급(투자)하기로 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들 사례는 건강한 벤처 창업 생태계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면서도 애를 먹고 있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교수는 “선진국들은 벤처 창업을 국가 전략으로 채택하면서 특히 기업가적 인재 양성과 문화 조성을 창업 정책의 시발점이자 플랫폼으로 인식했다”며 “창업 교육 인프라에 투자를 집중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고 분석했다. 창업 대상 그룹과 목적별로 세분화해 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선진국들의 노하우다.
이영달 교수는 이렇게 강조한다. “한국도 벤처 창업 정책을 국가 전략으로 채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절적 접근이 아닌, 중장기적 국가 전략에 기초한 입체적이고도 전 주기적인 정책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기업들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사회 기여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려면 정책 추진 체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개별 창업자 직접 지원 중심의 정책에서 교육과 문화 등 인프라 투자 중심으로의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내년 일몰 예정인 ‘벤처기업 활성화를 위한 추진방안(이하 벤처특별법)’에 대한 논의도 시급하다. 벤처특별법은 벤처기업협회가 1997년 제시한 벤처기업 육성 정책이다. 벤처기업 확인제도를 도입해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벤처기업을 선별하기 위해서였다. 이 제도를 통해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개인이나 투자조합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이 주어졌다. 이뿐 아니라 벤처기업 전용단지와 벤처 직접 시설 등에 대한 입지지원도 이뤄졌다. 대학교수와 연구원의 창업을 위한 휴직이 허용됐으며 벤처기업부설 연구소 연구원에 대한 병역특례도 이뤄졌다. 이 제도를 통해 3만 개 벤처기업이 혜택을 입었고, R&D 투자 확대, 지식재산권 증대 등 다양한 지원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을 통해 융자보증중심의 벤처확인기업이 전체 기업의 88%를 차지했고, 기업들이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고위험·고기술을 기피하면서 ‘벤처생태계의 하향평준화’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또한 1997년 한시법으로 제정된 벤처특별법이 2007년 1회 10년 연장을 거쳤음에도 내년 소멸 예정인 점에 따른 대안도 촉구되는 상황이다.
벤처특별법 일몰 앞두고 개선안 논의 시급해
한편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지금보다 세계로 뻗어나가게 하기 위한 정책적 뒷받침도 충분히 갖춰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국내 벤처기업의 해외 진출은 정체됐다. 2008년 37.1%였던 해외 진출률이 2012년 30.7%, 2013년 23.8%로 갈수록 떨어졌다. 벤처기업의 세계화를 위한 촉진 생태계 조성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이상명 한양대 교수는 “현재 벤처기업들의 세계화는 과거 제조업과 B2B 업종 위주에서 비제조업과 B2C 업종으로 진화해 이뤄지고 있다”며 “현지 창업 후 역진출 하거나, 해외 자본 유치를 통해 해외에 진출하는 등 새 형태의 세계화도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우리 정부도 이를 감안해 세계화 유형별로 종합적인 연구·개발(R&D) 지원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며 “기술 혁신형 제조 벤처의 기술 인프라 확보를 지원하고, 시장 개척형 벤처의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들 기업의 기술 역량 강화와 해외 트렌드 파악을 돕기 위해 해외 대학, 해외 기업과의 산학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일에도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