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마케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지난해 말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본선 조추첨식장에서 보여준 ‘아디다스(adidas)’의 힘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FIFA월드컵의 공식 스폰서이자 독일 대표팀 후원업체인 독일계 스포츠 메이커 ‘아디다스’는 조추첨 행사를 자신들의 홍보 무대로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맘껏 활용했다.
일단 조추첨 메인 행사 못지 않게 펼쳐진 것이 바로 그들이 제작한 역대 월드컵 공인구에 대한 소개와 이번 대회 공식구 “팀가이스트”에 대한 홍보였다. 현 독일 최고 스타 ‘발락(Ballack)’이 직접 나와 전세계 30억 인구가 생방송으로 시청하고 있는 본선 조추첨식장에서 검은 구둣발로 태연스럽게 볼 트래핑을 보여주며 “아디다스가 정말 잘 만들었어요!”라고 호소하는 상황이니, 아디다스 입장에선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이었을 것이고 다른 라이벌 업체들의 배는 얼마나 아팠을까?
이뿐이랴? 조추첨 첫 순서였던 축구 스타들의 월드컵에 대한 기대 인터뷰에서도 각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 현 아디다스 모델들이었다. 지단, 베컴, 카카, 네스타, 발락등이 등장했지만 -'차두리‘는 왜 빠졌냐는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을 듯 - 타사 모델인 호나우두, 호나우디뉴, 앙리 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2004년과 2005년 2년 연속 FIFA 올해의 선수 수상자인 호나우디뉴가 빠지다니 이런~~^^!
아무튼 독일을 대표하는 스포츠 메이커인 ‘아디다스’와 말 그대로 한 핏줄이면서 숙명의 라이벌인 ‘퓨마(PUMA)’의 관계을 살펴보는 건 독일 스포츠 마케팅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요소이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뉘렌베르크에서 약 20km 떨어진 곳에 ‘헤르초게나우라흐(Herzogenaurach)’란 소도시가 있다. 1920년대에 이곳에 “다슬러(Dassler) 신발 공장”이 문을 열었다. 루돌프(Rudolph) 다슬러, 아돌프(Adolf, 애칭으로 Adi) 다슬러 형제가 설립한 이 신발 공장이 바로 20세기 스포츠 메이커의 대표 상표가 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형제가 각고의 노력으로 뛰어난 품질을 확보한 다슬러 신발이 결정적으로 전세계로 파급된 계기는 바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었다. 당시 최고의 육상스타가 ‘제시 오웬즈’라는 걸 간파한 아디 다슬러는 손수 베를린까지 차를 몰고 선수촌에 찾아가 오웬즈에게 스파이크 달린 경기화를 보여주며 경기 때 착용해주길 요청했다. 그의 성의에 감복한 오웬즈는 결국 승낙했고, 올림픽에서 4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오웬즈가 신은 경기화 ‘다슬러 슈즈’는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그들의 판매고는 불티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복이 있으면 흉이 생기는 게 세상 이치이듯, 이 용감한 형제는 독일의 2차대전 패배 후 완벽한 남남이 됐다. 요즘처럼 정보화 시대에서도 최근 벌어진 국내 모 기업의 ‘형제의 난’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듯 다슬러 형제의 결별 이유도 정확히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들이 모두 나찌에 가입했고 - 특히 루돌프는 아주 적극적이었다 한다 - 그 활동에 있어 갈등이 있었다는 점과 형제들의 부인끼리도 불화가 장난이 아니었다라는 점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들의 결별 과정에서 있었던 일 중엔 1943년 헤르초게나우라흐에 연합군이 폭격했을 때, 아디 다슬러와 그 부인이 방공호에 대피하러 들어오자 이미 그곳에 루돌프 다슬러 가족이 있는 걸 보고 “더러운 녀석들이 또다시 왔군!”이라고 아디가 혼잣말한 걸 - 이 말은 분명 연합군 폭격기를 지칭한 거란다- 루돌프가 오해하고 서로가 돌이킬 수 없는 사이로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이들 형제는 1948년 아디 다슬러가 “아디다스(adidas)", 루돌프 다슬러가 ”루다(Ruda)-이후 퓨마(Puma)로 변경-“로 갈라졌다. 결별 이후에 이들 형제가 어떻게 사업을 키웠는가는 일일이 나열할 필요는 없고 실례만 몇가지 살펴본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남자 100m 우승자인 독일의 아르민 하리(Armin Hary)는 원래 아디다스를 신었었다. 하지만 이재에 밝았던 하리는 경기전 아디에게 돈을 요구했고, 당시로서는 선수에게 용품 사용으로 인한 돈을 지불한 적이 없었기에 거절당했다. 하지만 루돌프는 이를 받아들였고, 스포츠 마케팅 사상 최초로 선수에게 돈을 주고 용품을 공급하는 계약이 성사됐다. 하지만 더욱 황당한 사건은 하리가 금메달을 딴 뒤 시상식때 벌어졌다. 돈 맛을 본 하리가 이번엔 아디다스를 신고 시상식에 나왔다. 아디에게서도 돈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욕심에 말이다. 하지만 분개한 아디는 다시는 하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결승전 <브라질:이탈리아>경기는 펠레의 엄청난 활약으로 브라질이 3번째 우승하며 쥴리메컵을 영구 보유하게 된 경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스포츠 마케팅 역사에서 의미심장한 사건이 이 경기 중에 발생했다. 경기 Kick-off 바로 직전 펠레가 주심에게 신발 끈이 풀렸다며 양해를 구한다. 그리곤 펠레가 자신의 축구화 끈을 다시 매는데 이때 TV 중계 카메라가 펠레의 축구화를 클로즈업한다. 그리곤 축구 황제가 신은 ‘퓨마’ 로고가 선명한 축구화가 위성을 타고 전세계에 전파됐다. 축구 황제가 신은 ‘퓨마 축구화’를 확실하게 각인시켜준 이 장면은 펠레가 퓨마로부터 당시 12만 달러라는 거금을 받고 의도적으로 연출한 장면이었다. 참~ 대단하지 않나?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도 만약 호나우디뉴가 경기를 멈추고 축구화 끈을 다시 맨다면 그 순수성을 먼저 의심 해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PS) 현재 ‘아디다스’와 ‘퓨마’ 양사(兩社)는 1980년대 이후 족벌 경영 자체가 많이 약해졌고, 예전 같은 감정적인 경영을 하지 않게 되면서 서로간의 라이벌 감정은 이제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