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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대마불사 빚쟁이(?)
구름이 끼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만약 맑은 하늘이었다면 달이 떴을 테고, 이렇게 몸을 피하는 모습이 놈들의 눈에 띄고 말았을 것이다.
유명계는 좌우를 살폈다.
지금 생사림 무인들은 두 패로 나뉘어 있다.
삼천 명 정도가 정문을 통해 들어온 자들을 진식 안으로 유인해 갔고, 나머지 삼천은 서쪽으로 이동 중이다.
그 서쪽으로 이동하는 자들 중 신수 강사인은 천 명을 이끌고 북쪽으로, 마수 장립은 남쪽으로, 그리고 괴수 천익 역시 천 명을 이끌고 중앙으로 향했다. 각기 방향은 다르지만,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당호 방면이다. 당호 주변엔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겠지만 대야벌을 빠져 나가기 위해선느 그곳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너희들은 절대 날 잡을 수 없다.”
유명계는 차게 중얼거렸다.
당호로 쏟아져 들어가는 무인들은 적과 전투를 벌일 테고 그들이 싸우는 틈을 타, 자신을 비롯한 삼백 명은 지하 비밀 통로를 통해 이동할 것이다. 물론 비밀 통로도 당호로 이어져 있지만, 물속으로 헤엄을 쳐 당호 서편에 도착하면 적을 따돌리는 건 일도 아니다. 비급도 방수처릴르 해 두었으니 걱정할 이유가 없다.
“ 저기다, 놈들이 도망친다.”
느닷없이 내공이 잔뜩 실린 외침이 밤하늘을 타고 울려 퍼졌다.
“ 저런 개자식.”
유명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 저기 유명계가 도망친다! 천마삼경이 도망친다!”
“ 저기에 천마삼경이 있다.”
또다시 요란한 외침이 들려오며,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던 자들이 몸을 날려 오기 시작했다.
“ 도대체!”
유명계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얼마나 많은 무인들이 생사림으로 들어와 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진식으로 유인한 자들만 해도 수천 명을 헤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적들이 사방에서 몰려나오고 있었다.
“ 언젠가는 반드시 갚아주겠다. 개자식들!”
유명계는 내공을 끌어올려 몸을 날렸다.
지하통로까지 거리는 이백 장. 일단 비밀 통로로 들어가면 놈들을 따돌리는 건 문제가 아니다.
“ 서둘러라!”
지하통로로 들어가는 건물이 보이자 유명계는 고함을 내질렀다.
“ 지하에서 연기가 올라온다! 지하에 비밀 통로가 있다!”
“ 헉!”
유명계는 전면으로 시선을 주었다.
진작부터 뿌연 연기를 보았다. 하지만 밤안개로 여겼을 뿐 연기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금 전 외침을 듣고 자세히 보니 주변을 뿌옇게 만들고 있는 것은 연기였던 것이다.
“ 림주님!”
무사대의 대주 생사침 유기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하로 들어갈 건지, 아니면 지상을 통해 외부로 나갈 건지 결정을 해달라는 외침일 터였다.
유명계는 주변을 살폈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지금 생사림 서쪽엔 삼천여 명의 무인들이 서쪽의 당호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결국 이번 벌내쟁투가 막을 내릴 곳은 당호가 될 것이다.
“ 응?”
무사대 건물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주었던 유명계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건물 사이로 황금빛 광채를 본 탓이었다. 그는 눈으로 내공을 집중했다. 그러자 황금빛 광채가 좀더 선명하게 보였다.
‘ 똥지게?’
언젠가 산책을 하다가 황금색 빛이 나는 옷을 입고 있는 자를 발견하고는 총관 강사인에게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강사인은 똥지게들의 작업이 밤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적으로 오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야광 물질을 입힌 옷을 입는다고 하였다.
‘ 아직 작업이 끝나지 않은 건가?’
“ 림주님.”
대답을 기다리다 못한 유기령은 유명계 앞으로 다가갔다.
[ 비밀 통로를 통해 탈출하게, 대주.]
유명계는 전음을 보냈다.
[ 알겠습니다. 림주님.]
유기령 역시 전음으로 대답하고는 전방으로 달려갔다.
유기령이 이끄는 무사대 대원 삼백 명이 비밀 통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유명계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지금 갈등 중이었다.
마지막 격전지가 될 당호 주변에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했다. 설사 그들과 싸운다고 해도 빠져나갈 자신은 있다. 하지만 싸움이 끝나고 난 뒤도 대비를 해야 한다. 천마삼경이 자신에게 있는 이상 놈들은 추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에게는 천마삼경 세 권이 전부 있었다.
강사인과 강립에게 비급을 주기 전에 필사하여 따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설사 두 사람이 의림까지 오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 좋다.”
그는 오른편으로 이동했다.
무사대 건물의 처마 밑을 통해 몸을 날린 그는 잠시 후 금빛을 발하는 옷이 걸려 있는 장소에 내려섰다.
“ 역시.”
그의 얼굴에 희미하니 미소가 어렸다.
뚜껑이 열려 있는 분관에는 분뇨가 절반쯤 차 있었다. 상황으로 보건대 똥지게 연우강은 작업을 하고 있던 중에 벌내쟁투가 벌어지자 서둘러 몸을 피한 게 분명했다.
유명계는 다급히 움직였다. 나무에 걸려 있던 황금빛 옷을 뒤집어 걸어 빛이 새나가지 않도록 한 다음 베게로 쓸 만한 돌을 주웠다.
“ 빌어먹을, 생사림의 림주인 내가....”
유명계는 분관을 노려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문득 부하들과 함께 나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아니다. 이 분관은 어차피 밖으로 나가게 돼 있다. 길어야 이틀이다.”
유명계는 이를 악물고 분관 안으로 들어갔다.
역한 냄새와 함께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왔다. 돌을 위쪽에 놓고 머리를 올리자 뺜 아래쪽가지 분뇨가 차 올랐다.
“ 이틀이다. 이틀.”
그는 이를 악물고 뚜껑을 덮었다.
귀식대법이라도 펼치면 좋겠지만, 주변이 조용해질 때까지는 그럴 수도 없다. 그는 천리지청술을 펼쳐 주변을 감시면서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그를 가만히 쳐다보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연우강과 몽요였다.
두 사람이 들어와 있는 곳은 화장실에서 삼십여 장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건물 안이었다.
“ 미치겠네.”
몽요는 더 이상 놀랄 기력도 없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비밀 통로에 불을 지른 연우강은 곧바로 밖으로 나왔다. 처음엔 생사림 무인을 공격하려고 나온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으슥한 곳으로 숨더니 고함을 내지르는 것이었다.
천마삼경이 있다는 외침과 지하에 비밀 통로가 있다는 사실을 무인들에게 알린 사람이 그였다.
주변에 숨어 있던 자들이 전부 비밀 통로를 향해 달려갔는데 한 사람만 남았다. 주변을 살피는 그를 보며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그자는 저녁 무렵에 연우강이 놓아두었던 분관으로 몸을 날려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분관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린 자는 생사림의 림주 유명계였다. 그가 분관으로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생사림의 림주, 대야벌 백대고수 서열 십오 위.
그런 엄청난 자를 연우강은 손 하나 쓰지 않고 분관으로 몰아넣은 것이었다.
“ 뚜껑을 닫으면 큰일 나는데.”
창밖을 쳐다보던 연우강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 큰일 나요?”
“ 혹시 화장실에서 작업한 적 있어요?”
창가에서 물러난 연우강은 사망궤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 자주는 아니지만 몇 번은 있었어요.”
“ 화장실에 오래 있으면 머리가 어지럽다거나 하지 않았어요?”
연우강은 사망궤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야명주 빛이 흘러나와 실내를 환하게 밝혔다. 연우강은 그 중 하나를 거내 한 편에 놓인 침상 위로 던졌다.
“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몽요는 얼른 창문을 닫으며 뒤물었다.
“ 밀폐된 공간에서 그 냄새를 장시간 맡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연우강은 사망궤 안쪽에 있는 상자 뚜껑을 열어 암기들을 하나씩 집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 글쎄요. 그건.....”
몽요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연우강을 보았다.
그의 몸에서, 아니 정확하게는 그의 옷에서 수많은 무기가 떨어져 나와 궤짝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에 저렇듯 많은 암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 다 뭐죠?”
그녀는 여전히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사람 죽이는 무기지 뭐겠습니까?”
“ 그렇게 많은 걸 전부 던지고 회수를 할 수 있어요?”
“ 당연히 가능하죠.”
“ 던진 암기는 허공섭물로 끌어당기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요?”
“ 허공섭물이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겁니다.”
연우강은 마라천력으로 침상에 던져두었던 야명주 조각을 끌어당겨 몽요의 머릿속으로 집어넣었따. 그러자 그녀의 머리에서 푸른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 어떻게 한 거죠?”
“ 그건 나중에 좀더 친해지면 그때 말해 줄게요.”
“ 킥! 좋아요. 그럼 조금 전에 했던 말은 뭐죠?”
전에 연우강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자 몽요는 낮게 웃음을 흘렸다.
“ 정신을 잃게 됩니다.”
무기를 전부 집어넣은 연우강은 마지막으로 사망묵의를 벗어 안으로 집어넣고는 안쪽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그때까지도 몽요의 눈은 연우가의 손을 부지런히 좇고 있었다.
“ 정말이에요?”
“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죽은 자들이 대부분 그렇게 죽는 겁니다. 오래된 분뇨 냄새는 마취독 성분이 섞여 있어서 계속해서 냄새를 들이키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을 잃게 됩니다. 그 상태에서 몸이 가라앉게 되고 결국엔 질식사하게 되죠.”
“ 그렇다고 해도 유명계는 대야벌 십오 위에 올라 있는 강자잖아요.”
“ 시간이 좀더 걸릴 뿐 정신을 잃는 건 다르지 않습니다. 알고 대비를 한다면 모를까 그는 전혀 모르는 상태잖아요. 차 한잔 할래요?”
“ 차가 있어요?”
“ 사람 사는 곳인데 있겠죠.”
연우강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편 구석에서 찻주전와 찻잔 그리고 ㅊ를 찾아내 몽요 곁으로 다가갔다.
벌내쟁투를 기다리는 초조함을 견디지 못한 무인들이 차를 마시고 있었는지 차주전자 안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연우강은 삼매진하로 찻주전자의 물을 데워 잔에 따랐다.
“ 조금 전 그것들을 알기 위해선 더 친해져야 하나요?”
몽요는 찻잔에 찻잎을 넣으며 물었다.
“ 우연히 사막에서 주운 겁니다.”
“ 기연?”
“ 그런 셈이죠. 이놈이 없었다면 진작 저승에 가 있었을 테니까.”
“ 하지만 우강이 무공을 익힌 사실을 알아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잖아요. 그게 가능해요?”
그 또한 이상한 일이었다.
자신은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이 그의 무공을 확인하였고, 그들 중에는 율령궁의 궁주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 연우강이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그건 비밀이에요. 몽요.”
“ 흥!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디게 뻐기네.”
몽요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 대야벌로 들어온 건 환백을 찾기 위해서입니까?”
전에 그녀가 무성에 대해 물어보았던 게 떠올라 은근슬쩍 화제를 돌렸다.
“ 천오백 년 전에 잃어버린 무기를 어떻게 찾겠어요. 무기는 차치하고라도 비급이나 찾았으면 해서 온 거죠.”
“ 환백으로 펼치는 무공비급을 말하는 겁니까?”
“ 원래 환백은 두 자루에요. 잃어버린 도는 대환백이라고 불렸고, 가문에 내려오는 도는 소환백이라고 불러요. 그 소환백으로 펼칠 수 있는 무공을 찾아볼까 하고 왔어요. 전에 무성에 대해 물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요.”
“ 이제 와서 굳이 비급을 찾으려는 이유가 뭐죠?”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천오백 년이 지났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비급을 찾으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 소환백을 대신할 신물이 필요해서 그래요.”
“ 소환백을 분실했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 우리 가문에 없으니까 분실한 거나 마찬가지죠.”
“ 그렇군요. 도법 이름이 뭐죠?”
“ 파라구천일도류란 도법이에요.”
“ 두 자루라면 이도류가 돼야 하는 거 아닌가?”
“ 이 초식으로 이루어진 도법이에요. 이 초는 파라구천이도류란 초식명이고요.”
“ 그것도 찾아달라는 말?”
“ 하나라도 찾게 되면 은밀막부를 다시 되찾게 되는 거고, 아니면 끝이죠, 뭐.”
몽요는 어눌하게 웃었다.
“ 후회하지 않아요?”
“ 무슨 후회?”
“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가문을 택한 걸 말하는 겁니다.”
“ 호호호! 우강도 심각한 말을 할 줄도 아네요?”
“ 때로는 진실 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을 때도 있는 겁니다. 몽요.”
“ 이 약사 영감님의 복수를 해주는 것처럼?”
찻잔을 내려놓은 몽요는 연우강을 향해 다가갔다.
“ 이번 일은 복수가 아니라 약사 영감에게 비법을 돌려주기 위해 나섰다고 했잖아요.”
“ 그게 그 말이잖아요.”
몽요는 궤짝에 앉아 있는 연우강의 무릎 위로 걸터앉았다.
“ 몽요는 고객입니다. 난 고객과......”
몽요는 손끝으로 연우강의 입을 막았다.
“ 후회하지 않느냐고 했죠?”
몽요는 연우강의 눈을 바라보았다.
연우강은 몽요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 처음엔 후회를 많이 했어요. 아니 가문을 위해 생전 처음 보는 사내를 안아야 할 때나, 그들이 준 검을 가지고 살인을 하고 돌아설 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아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자신이 쿠라다(백제) 가문 자체가 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내가 무너지면 쿠라다가 무너진다는 걸요.”
“ 자신의 삶을 위해 가문을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 나는 그렇게 하질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서른을 넘겨버렸더군요. 여자 나이 서른이 넘으면 새로운 꿈을 꾸는 건 그야말로 꿈이 돼버려요.”
“ 이제 이십대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몽요. 얼마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 내가 쿠라다가 돼버렸다고 했잖아요.”
“ 그럼 그렇게 살다가 죽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네요. 그런데 계속 이러고 있을 겁니까?”
“ 지금 떨고 있죠?”
“ 개독새 연우강이 떨어요?”
“ 그럼 고민하고 있는 건가?”
“ 무슨 고민?”
“ 보통 남녀 관계는 함께 잠을 자기 전과 후가 판이하게 다르잖아요.”
“ 예를 들면?”
“ 우선 공대를 하던 말투가 반말로 바뀌고, 채무 관계도 상쇄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그러다가 관계가 지속되면 상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게 되고요.”
“ 맞습니다. 몽요. 우리 둘 사이엔 바로 그 돈이 문젭니다. 몽요는 내게 진 빚이 너무 많아요.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에 이런 부적절한 관계는 옳지 않습니다.”
말과는 달리 연우강의 손은 몽요의 허리를 강하게 틀어쥐었다.
“ 맞아요. 옳지 않아요. 하지만 때로는 옳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어요. 설사 나쁜 결과가 온다고 할지라도 말이에요.”
몽요는 연우강의 얼굴을 가만히 감싸 쥐고는 얼굴을 가져갔다. 연우강의 입술을 덮는 몽요의 입에서 뜨거운 숨결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숨결은 금방 사라졌다.
두 입술이 하나가 되면서 연우강의 입술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탓이었다.
연우강은 몽요의 숨결만 빨아들인 게 아니었다. 어느새 몽요의 혀마저 집어삼켜 버렸다.
거칠게 입맞춤을 하면서도 두 사람의 손은 바쁘게 움직여 다녔다. 몽요의 손에 연우강의 상의가 벗겨지고, 연우강의 거친 손길에 몽요의 상기가 저 멀리 나가 떨어졌다.
연우강은 몽요를 안은 채 벌떡 일어났다. 몽요는 재빨리 다리로 연우강의 허리를 감았다. 그런 상태로 연우강은 몽요의 가슴 가리개를 벗겨냈고, 몽요의 손은 연우강의 요대를 풀었다.
오대를 떨쳐낸 몽요는 양손으로 연우강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엉덩이를 살짝 뺐다. 기다렸다는 듯 연우강이 몽요의 하의와 속옷을 한꺼번에 내리고 이에 질세라 몽요는 두 발로 연우강의 속옷과 하의를 동시에 벗겨냈다. 완전하게 알몸이 될 때까지 두 사람은 입술을 떼지 않았다.
착 달라붙어 있을 것만 같았던 입술이 이윽고 떨어지고 두 사람은 상기된 얼굴로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 지금은 어때요?”
몽요의 얼굴에 화려한 미소가 떠올랐다.
“ 옳지 않은 일은 말없이 하는 겁니다. 몽요.”
연우강은 몽요를 번쩍 들어 올려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 유키에요. 쿠라다 유키!”
몽요는 연우강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오랜 기다림 때문인 듯 온몸이 급격하게 달아올랐다. 그의 숨결이 덮자마자 몸 곳곳에서 불꽃이 일렁였다. 몽요는 머릿속으로 그 불꽃을 좆았다.
처음엔 반딧불처럼 아주 작았다.
하지만 작은 불꽃은 수십 군데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오른편 가슴에서 왼편 가슴에서, 겨드랑이에서 타오른 불꽃은 아래로 이동하면서 조금씩 크기가 커졌다.
몽요는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녀가 상체를 젖히는 순간 연우강은 다시 사망궤 위로 주저앉았다.
“ 걱정말아요. 우강. 우린 단지 잠을 잤을 뿐. 어제와 같을 거예요. 나는 빚쟁이고, 당신은 악덕 상인. 그대로일 거예요.”
몽요의 손이 뱀처럼 연우강의 가슴을 쓸자, 연우강의 손은 홀린 듯 몽요의 가슴을 찾았다. 몽요의 입에서 마른 신음이 터져 나왔다.
반딧불은 어느새 촛불이 되었고, 금세 호롱불 크기로 커졌다.
하지만 호롱불이 끝이 아니었다.
심지를 올린 것처럼 커져가던 호롱불은 그의 숨결이 스칠 때마다 더욱 커져갔다. 불길이 커질 때마다 몽요의 손길은 점점 깊어져갔다.
준마처럼 탄탄한 근육의 느낌에 절로 몸이 떨려온다.
왼쪽에서 머물던 연우강의 손길이 오른편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조금 전보다 강한 악력이 느껴지면서 심지를 키운 호롱불은 어느새 횃불이 돼가고 있었다.
반짝!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뜨고 몽요는 연우강을 보았다.
그녀는 미소를 머금으며 손을 깊숙이 밀어넣었다.
연우강의 얼굴이 취한 것처럼 붉게 달아오르자 그녀의 얼굴에 어린 미소도 더욱 진해졌다. 그녀는 다시 얼굴을 연우강 앞으로 가져갔다.
또다시 깊은 입맞춤이 이어졌다.
‘ 당신은 미워할 수가 없는 남자에요. 개독새.’
그녀는 내심 중얼거리며 상체를 들어올렸다.
폭음을 한 다음날처럼 몽롱하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상쾌한 기분이 들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오늘은 없군.”
연우강은 빙그레 웃었다.
얼마 만인지 모른다. 하루도 빠짐없이 들려오던 기상나팔 소리가 오늘은 들려오지 않았다. 물론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기상나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아침은 더욱 상쾌했다.
“ 이제 완벽히 군대 물이 빠졌다는 증거일 거야. 더는 그놈의 나팔 소리를.....”
문득 허전한 기분이 들어 옆을 보았다.
시작은 사망궤 위에서 했지만 끝은 침상이었다.
분명 함께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몽요가 보이지 않았다.
“ 나팔 소리만 들리지 않았을 뿐 함께 잤던 여자가 없어지는 건 변하지 않았네.”
연우강은 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가 중천에 떠오른 듯 창문이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옷을 챙겨 입고는 창문을 열었다. 벌내쟁투는 하룻밤만 하기로 묵시적인 협의가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생사림 전역은 쥐 죽은 듯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 백제의 눈이라...... 이름하곤 정반대네.”
간밤의 일이 떠올라 연우강은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는 이름처럼 차가운 눈이 아니라 불타는 화산이었다. 얼마나 뜨거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 그나저나 저 자식은?”
연우강은 천리지청술을 펼쳐 분관을 살폈다.
한동안 분관을 살피던 그의 입가에서 차가운 미소가 맺혔다. 분관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정신을 잃었거나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거나 둘 중 한가지일 터였다.
“ 어떤 상태라고 해도 상관없지.”
내공을 푼 그는 침상으로 자리를 옮겨 찻주전자를 데워 물을 따랐다. 찻잔에 찻잎을 띄우고 있는데 인기척이 감지됐다. 연우강은 문으로 시선을 주었다.
문이 살짝 열리더니 구수한 냄새와 더불어 몽요가 들어왔다.
“ 도망친 줄 알았는데요?”
“ 죄진 것도 없는데 도망을 왜 쳐요?” 몽요는 눈을 흘기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보자기 하나가 들려 있었다.
“ 잠룡이 그렇게 자릴 오래 비워도 되는 겁니까?”
연우강은 빙긋이 웃으며 그녀가 가져온 보자기를 받았다.
“ 자유시간이 많아져서 상관없어요.”
“ 어? 약이네?”
보자기를 풀어내던 연우강은 깜짝 놀랐다. 음식을 담는 대바귀에 위에 뚜껑이 덮인 대접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그건 약을 먹을 때 쓰는 대접이었다.
“ 하루라도 약을 먹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렸다고 하던데요?”
“ 막장을 만났어요?”
“ 걱정할 것 같아서 소식을 전해주고 왔어요.”
“ 잘했습니다. 그런데 밖은 어떻습니까?”
연우강은 약대접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며 물었다.
“ 절반 정도는 빠져나갔나 봐요. 지금은 율령궁 무인들이 나와서 조사 중이고요.”
“ 비밀 통로에도 들어가던 가요?”
“ 들락날락 하는 것 같았어요. 타다 만 책자를 들고 나온 자들도 있고요.”
“ 그럼 그것도 제대로 된 것 같아요. 근데 아침은요?”
“ 원래 난 아침을 먹지 않아요.”
“ 그래도 오늘은 좀 먹어요.”
연우강은 바구니 뚜껑을 열었다.
“ 함께 먹으려고 싸온 것 같은데요?”
“ 몸이 부실한 사람은 많이 먹어야 하잖아요. 주로 고기 종류로 담아 왔어요.”
“ 내가 부실한 게 아니고 몽요가 무지막지하게 센 겁니다.”
“ 그런 걸 부실하다고 하는 거예요. 자요.”
몽요는 배시시 웃으며 젓가락을 건넸다.
“ 잘 먹겠습니다.”
연우강은 접시에 담긴 음식을 집어 입으로 밀어넣었다.
“ 저치는 어때요?”
몽요는 턱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 기절 중일 겁니다.”
“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음식 먹는 연우강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는 젓가락을 들었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오며 입에 침이 고였다.
침을 삼키는 꼴불견을 보이느니 음식을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다고 해도 결과는 같습니다. 하루 종일 귀식대법을 펼칠 수는 없을 테니까, 귀식대법을 푸는 순간 기절하게 될 겁니다.”
“ 그냥 내보내줄 건가요?”
“ 그럼 생포한 보람이 없잖아요.”
“ 어떻게 처리할 건데요?”
“ 아침을 안 먹는닫고 하지 않았어요?”
“ 지금은 왠지 먹고 싶어서 그래요.”
“ 배가 고파서 그런 건 아니고?”
“ 혼인을 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젓가락질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몽요는 배시시 웃었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혼자였다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침을 챙겨먹지 않았을 테다.
“ 단지 아침을 먹기 위해 혼인을 한다는 말입니까?”
“ 자꾸 딴소릴 할 거예요?”
“ 뭘 물었죠?”
“ 제 말 안 듣고 있었던 거죠?”
“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그런 겁니다. 직접 만든 겁니까?”
“ 주방에서 훔쳐온 거예요. 할 말을 잊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고요.”
“ 음식 맛은 분위기에서 나온다는 말을 모르는 걸 보니까 쿠라다 가문은 가난한 모양이네요.”
“ 분위기?”
“ 음식 맛을 평가함에 있어 가난한 자는 양을 따지고, 어느 정도 사는 자는 질을 따지고, 부자는 분위기를 따지거든요.”
“ 지금 분위기가 좋다는 말이에요?”
“ 나는 그런데 몽요는 아닌가 보네요.”
“ 그게 바로 분위기라는 겁니다. 몽요.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사람과 식사를 하게 되면 음식 맛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는 겁니다.”
“ 호호호! 역시 우강의 언변은 알아줘야 해요. 그런데 어떻게 처리할 거죠?”
“ 무슨 처리?”
“ 유명계지 누구겠어요.”
“ 지금 이 분위기에서 그런 말을 하고 싶습니까??”
“ 궁금하잖아요.”
몽요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와 함게 식사를 하는 게 마냥 좋았다. 설사 식사 중에 동 이야기나 시체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 터였다.
“ 유명계는 평생 젓가락질을 못하게 될 겁니다.”
“ 손을 자르려고요?”
“ 손가락입니다.”
“ 굳이 살려주려는 이유가 뭐죠?”
사실 유명계가 도망치기를 바란다고 할 때부터 궁금했다. 하지만 그때는 유명계를 생포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유명계의 목숨이 연우강에게 달려 있는 상황. 연우강이 굳이 그를 살려서 보내려는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 무공을 전혀 모른다고 알려진 내가 잠룡쟁패를 받은 이유를 알아요?”
“ 그러니까 금릉 연씨 세가에서 잠룡쟁패를 요구해서 내가 이곳으로 왔다고 소문이 났다고요?”
“ 아닌가요?”
“ 그 반댑니다.”
“ 반대라면?”
‘ 조양궁의 대머리 똥자루 그놈은 내가 이곳으로 오지 않으면 대야벌 벌주가 엄청나게 기분 나빠 할 거라고 협박하면서 잠룡쟁패를 던져 주고 갔습니다.“
“ 원하지도 않았는데 잠룡쟁패를 주고, 대야벌로 들어오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거라고 협박을 했다는 것은 혹시 대야벌에서 상단을....”
여자의 몸으로 한 가문의 가주 직위에 오른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연우강이 압력에 의해 대야벌로 왔다는 말을 듣자 전후 사정을 대충 짐작해 냈다.
“ 창설이 아니라 기존의 상단을 흡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가 바로 연씨 상단이고요.”
“ 그럼 우강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 거죠?”
“ 아버지와 우진이 녀석이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면 상단의 상속자는 내가 됩니다. 물론 숙부가 둘이나 있지만 그들은 이미 대야벌 쪽과 손을 잡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 꼭두각시 상단주가 된다는 말이군요.”
“ 맞습니다.”
연우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유명계를 살려 보내려고 하는 건 대야벌 수뇌들을 바쁘게 만들려는 거군요.”
“ 원래 일에 치이다 보면 다른 생각을ㅇ 하기 힘들잖아요.”
“ 하지만 조직이라는 것은 모두가 한 방향만 보고 가는 게 아니잖아요. 특기 대야벌 같은 거대 조직은 각자 하는 일이 달라요.”
“ 천마삼경을 맡고 있는 자와 상단을 병합하려는 자가 서로 다르단 말입니까?”
“ 그렇죠. 천마삼경을 찾는 일과 상단을 창설하는 일이 동시에 진행될 거예요. 더구나 대야벌은 무인으로 넘쳐나는 곳이잖아요.”
“ 하지만 밀천의 등장이 알려지면 아무리 대야벌이라도 해도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겠죠.”
“ 대야벌 같은 거대 단체는 소문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우강, 신중하게 생각해야 해요.”
“ 그래서 몽요의 도움이 필요한 겁니다.”
“ 내 도움이라고요?”
“ 소환백을 분실했다면 훔쳐간 자들이 있겠죠?”
“ 미나모토 가문일 거예요.”
“ 그놈들에게 알리세요.”
“ 뭘 알려주라는 말이죠?”
“ 유명계가 천마삼경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놈들의 귀에 들어가도록 하면 밀천의 상부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게 될 겁니다.”
“ 꼭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 몽요와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 우리 쿠라다 가문엔 무슨 이익이 있죠?”
“ 동영에 있지 어디에 있겠어요?”
“ 천마삼경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미나모토 가문은 밀천에 보고할 겁니다.”
“ 밀천에서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 알고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실체를 드러내는 게 마땅찮은 밀천은 은자들을 대거 보유한 미나모토 가문을 중원으로 불러들이게 될 거니까요.”
“ 미나모토 가문의 정예들이 자리를 비우면 쿠라다 가문을 운시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는 뜻인가요?”
“ 그렇습니다. 더불어 미나모토 가문의 은자들이 중원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 대야벌은 그들을 주시하게 될 테고, 결국엔 밀천의 등장을 알아차리게 되죠.”
“ 대야벌에서는 어떻게 나올 걸로 보죠?”
“ 원래 드러나게 활동하는 적보다 숨어 있는 적이 더 상대하기 힘들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법입니다. 대야벌은 밀천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겁니다. 그래서 과거 팔황새를 정벌했을 때처럼 밀천을 치려고 하겠지요.”
“ 하지만 환백이나 파라구천일도류가 없으면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고 해도 은밀막부의 장악은 불가능해요.”
“ 파라구천일도류는 내게 맡기고 일이나 추진해요.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다.”
“ 전서구를 절강지부로 보내고, 그곳에서 배를 타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 그럼 오늘 저녁에 당장 연락을 취하도록 하세요.”
“ 왜?”
음식을 먹다말고 몽요가 물었다.
“ 무슨 질문이 그래요?”
“ 왜 우릴 도와주는 건지 그걸 묻는 거예요.”
간밤 그와의 일은 충동적인 것에 불과하다. 연우강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그도 거절하지 않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이 깔린 건 아니다.
한 번의 관계로 서로에게 뭔가를 요구한다는 것은 좋았던 관계를 서먹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한 사실은 둘 다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을 챙겨오고, 어색하지 않는 얼굴로 그를 볼 수 있었다.
“ 대마불사란 바둑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몽요.”
“ 대마불사 빚쟁이라는 나쁜 종자들이 있다는 말 들어봤어요?”
“ 처음 들어요.”
“ 아무튼 대마불사라고 불리는 빚쟁이들이 있는데, 그것들의 특징은 돈을 빌려간 주제에 채권자보다 더 큰 소리를 친다는 겁니다.”
“ 어떻게 큰소릴 친다는 거죠?”
“ 한마디로 돈 없으니까 배 째라고 하죠. 그러면서 제 ㅎㄹ 건 다 하고 다닌다는 거 아닙니까?”
“ 그러다 정말로 배를 째버리면 어떡해요?”
“ 배를 짼 것까지는 좋은데 그렇게 해버리면 돈은 어디서 받습니까?”
“ 훗!”
몽요는 피식 웃었다.
결국 연우강의 말은 그동안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울며겨자 먹기로 은밀막부를 도와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그런데 계속 여기에 있을 거예요?”
몽요는 젓가락질을 하며 물었다.
“ 당분간은 생사림을 주시하는 자들이 꽤 될 겁니다. 이곳에 대한 관심이 뜸해지면 슬슬 나가봐야지요.”
“ 그럼 내일 아침에도 이렇게 함께 밥 먹을 수 있겠네요.”
“ 좋아요?”
“ 당연히 좋죠.”
“ 이곳에 아주 오래 있어야겠네요.”
“ 그래주면 더 좋고.”
몽요는 배시시 웃었다.
“ 그럼 난 열심히 먹어야겠네요.”
연우강은 게걸스럽게 음식을 해치웠다. 그 모습을 그녀는 생글거리는 얼굴로 지켜보았다.
“ 그런데 천마삼경은 정말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문득 이번 일의 원인을 제공했던 천마삼경의 존재가 궁금했다.
“ 욕심나요?”
“ 백옥수는 소수마공이라고 불리는 엄청난 무공이잖아요. 욕심이 안난다면 거짓말이겠죠.”
“ 은밀막부에도 무공은 꽤 있을 것 같은데, 아닌가?”
“ 대부분 유실됙 남아 있는 건 별로 없어요. 그나마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건, 내가 익힌 만화은신사형과 같은 은신술이에요.”
“ 무공도 별 볼일 없는데 미나모토 패거리들이 욕심을 낸다는 건 돈은 좀 모아두었다는 말이네?”
“ 금룡 연씨 상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동영에서는 상당한 부자 축에 들어요.”
“ 그럼 돈을 못 받을 걱정은 없겠네요?”
“ 외상값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했던 거예요?”
“ 환백에 대한 단서까지 찾아주면 무려 삼백만 냥에 육박하는 금액이 됩니다.”
“ 반드시 갚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 은밀막부의 무인들이 익히는 무공은 주로 도법인가요?”
“ 네.”
“ 백만 정도를 더 투자해 보 생각은 없어요?”
“ 아예 우리 집 기둥뿌리를 뽑을 생각이세요?”
몽요는 연우강을 흘겨보았다.
“ 난 다른 건 몰라도 암기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 무슨 소리죠?”
“ 비고에 있는 도법을 암기해서 비급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말이지 무슨 말이겠습니까.”
“ 그, 그게 가능해요?”
“ 다른 사람들은 불가능하지만 난 가능합니다.”
“ 우강이 문제가 아니라 대야벌에서.....”
문득 자신의 말이 모순이라는 사실을 몽요는 깨달았다.
비급은 들고 나오지 못하지만 머릿속에 담아 나오는 건 가능한 곳이 두 비고다. 더불어 비급의 내용을 머릿속에 담아 나온 자들은 그것들을 필사하여 비급으로 만들기도 한다. 연우강의 제안은 합법적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 비급을 대야벌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다는 게 문제인데, 그것도 연우강이라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 승낙하는 건가요?”
“ 가능만 하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요.”
환백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하면 그거라도 가지고 나가서 훗날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하급 무인들이 사용하던 숙소라, 생사림을 조사하는 자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밥 시간이 되면 몽요가 나가서 식사를 준비해 오는 생활이 이어졌다.
더하여 삼 일째 되는 날 밤, 몽요는 연우강이 펼치는 그 특이한 능력이 마라천력이라 부르는 염력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아침.
몽요를 돌려보낸 연우강은 조용히 처소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