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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은 수많은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선택함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자유롭다 자유화의 상태에서 선택했다 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내가 한다고 하는 이 자유 선택에 미치는 영향들도 많이 있습니다. 크게는 인종, 성별, 그러니까 한국 사람이라는 거, 내가 남자냐 여자냐 하는 것, 또 국가 가족 외모 이런 많은 것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우리가 잘 알듯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죠.
그래서 이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가 그렇게 완전히 자유하지 않다는 겁니다.
또 우리가 자라온 환경, 그리고 현재 처한 상황, 그것이 건강의 상태이든지 경제적 상태이든지 아니면 이미그레이션 상태이든지 이런 것들도 우리가 내리는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보세요. 우리가 이거를 마음껏 조정하거나 또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가 자유롭다고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 감정, 말 행동 그런 영역이라 그럴 수 있는데 바로 이 작은 영역에서 이 작은 부분에서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이 있다는 것이 성경이 복음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훈입니다.
그중에 하나는 우리가 들었듯이 육신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입니다. 둘 다 사람을 통해서 일하기를 원한다고 했고, 그리고 그들을 따름에 있어서 결과가 있다고 했습니다. 육체 육신이라는 것을 따름에 나타나는 육신의 일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2주 전에 말씀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보자면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15개가 있다고 그랬는데 이 중에 어떤 단어들은 영국에서 자란 청년들 같은 경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근데 여기서 주목해 볼 것이 하나 있어요. 무엇이냐 하면 음행, 호색, 우상숭배와 주술, 술취함과 방탕함이 있죠. 그런데 그와 함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단중된 것, 분열 이단, 투기도 함께 있다는 것이에요.
왜 주목해야 할까요? 균형 잡힌 판단을 위해서 주목해야 합니다. 음행과 호색이 나쁘지 그런가요?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지만 성경은 그렇다고 말하기 때문에 성경을 믿는 우리도 음행과 허색, 섹슈얼 이모럴리티와 포니피케이션 러스트 같은 거는 좋지 않은 것이라고 우리가 말을 하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만큼 나쁜 것이 여기에 같이 나오는 시기와 투기도 그렇다 하는 것이에요. 우상숭배와 주술이 나쁘지요. 분열과 이단도 투기도 그만큼 나쁜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모두 육체를 따름의 결과다. 예컨대 성적으로 문란한 것, 종교적으로 문란한 것, 그것만큼 관계적으로 문란한 것도 모두 육체를 따름의 결과다. 육체의 일이다. 안 좋은 것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성경적이고 그렇게 생각해야 우리가 비정상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할 수 있어요.
다음으로 성령을 따를 때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가 있습니다. 본문에는 9가지가 있는데 같이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22절 23절인데 시작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윤 집사님 그냥 영어 그거를 저기 도훈이한테 건네주시면 좋겠습니다. 통역은 하지 말고 영어 번역만 전해 주십시오.
여기서 9개를 말하고 있는데 이것도 성령의 열매 전부가 아니라 대표적인 것으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성령의 열매라고 하십니다. 왜 이 같은 것들을 이 같은 것들을 대하는 그 많은 법이 있다고 말씀을 하시죠. 여기서도 주목할 것이 하나 있어요.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이 갈라디아 땅이라는 지역은 이미 그리스도와 그리스와 로마의 영향을 받은 곳입니다. 그 세계에서는 지금 말하고 있는 이 희락, 화평, 절제 같은 것들은 높임을 받았지만 또 같이 나오는 인내 자비 양선, 온유 이런 것들은 그렇게 노편을 받은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플라톤의 목록을 보아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목록을 보아도 나타나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이 성령의 열매로 지금 언급되는 것은 이제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에요. 그동안은 사람들이 기준이고 그동안은 남자들이 기준이고, 그동안은 전쟁의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준 것이 기준이 되는 것이에요.
먼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렇고, 그리고 앞으로 믿게 될 사람들에게도 그렇고, 나중에 믿은 우리들에게도 그렇습니다. 그뿐만 아니죠. 희락, 화평, 절제와 같이 이미 사람들에게서 높임을 받고 있는 것들, 인정을 받고 있는 것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의미를 얻게 되었다고 우리가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도 사랑과 희락을 말합니다. 또한 자비와 양선도 말을 하고 높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참다운 의미에서 그런 건지 정말로 무슨 사랑을 말하고 무슨 희락을 물하고 무슨 화평을 말하는 건지 우리가 물을 수가 있습니다. 서로를 정말로 위하는 참다운 사랑이 있지만, 자기의 만족을 위하는 사랑, 이기적 사랑도 있고 함께 기뻐하는 희락이 있지만, 정말 자기가 만족할 때만 자기의 욕구만 채워질 때만, 자기의 욕구만 채워질 때만 기뻐하는 희락도 있습니다.
자기의 만족을 위한 것이나 자기 만족이 채워질 때만 기뻐하는 것도 사랑이다 희락이다 부르고 싶겠지만 그들의 본질이 있습니다.
그들의 본질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고 육체의 열매다. 바울 구약 시대에 바과 같어요. 바은 신으로 하나님으로 인정을 불리기를 불리기 시키고 싶겠지만 바의 본질은 우상인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성령의 열매가 어떤 것인지 이 9개를 아는 것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 열매가 정확히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육체의 일을 행하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고 착각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야 우리가 육체의 일을 버리고 성령의 열매로 나아갈 수 있다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여기 나온 성령의 열매 9가지가 나오는데 다는 못하고 그중에 앞에 네 가지만 같이 함께 조금씩 본질적인 의미에서 어떤 것인지 찾아보게 따라가 보겠습니다. 사랑 9개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의 근원이라고 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사도 요한은 어떻게 말했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언했죠. 그리고 바울은 모든 은사 중에 가장 좋은 것으로 사랑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신 계명 중에 으뜸은 서로 사랑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본문 이 안에서 특별히 5장 안에서도 사랑의 말씀이 있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아무 효력이 없고 어떻게 해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그렇게 말씀하시며 또한 너희는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너희는 사랑으로 서로 섬기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 이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그리스 로마사에도 이 사랑을 가리키는 말들이 있었어요. 육체적인 사랑을 가리키는 에로스가 있었고, 또 우정을 나타내는 필리아가 있었고, 또 가족 친족 간 유대를 뜻하는 스토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 중 어느 것도 죄인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그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만들어진 단어가 지금 말한 것들이 아니고 아가페라는 말입니다. 아가페는 명사이고 동사는 아갑하오인데 아갑하오라는 동사는 이미 있었어요.
그러나 아가페라는 명사는 없었던 때에 우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이 하나님의 사랑을 뜻하는 단어가 아가페가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아 사랑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접하고 있는 아가페 사랑이라는 것이죠. 이 아가페의 사랑이 사람들 안에서 나타나면 이것은 사람들 안에서 생각해 보면 이 사랑은 무엇이냐 자기를 위한 자기의 만족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심지어 나를 미워하는 자를 위해서도 그의 최선을 바라는 마음의 마음이고 사랑이라는 것이에요.
그런 사랑의 시작, 그런 사랑의 역사는 자연적으로 본능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계시고 그리고 그 영을 따를 때 가능한 사랑이에요. 그래서 성령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희락이에요. 희락 어려운 말이고 요즘에 잘 쓰지 않는 말인데 영어로 하면 조이고 우리 말로 쉽게 하면 기쁨입니다. 그죠? 기쁨 일반적으로 기쁨이 언제 나타납니까? 즐거운 상황의 연결과 연결됩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 먹고 마시고 또 입고 쓰고 할 수 있을 때 기분이 좋지 않습니까? 그리고 행복감을 느끼지 않습니까? 우리가 일하는 중에 그날을 원하면서 일하지 않습니까?
반대로 그렇지 못하면 기분이 안 좋아요. 먹고 싶은 거 먹지 못하고 마시고 싶은 거 마시지 못하고 하고 싶은 거 하지 못할 때 기분이 안 좋고 또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도 그랬고, 제가 그리스 로마 세계라고 하는 거는 성경 시대의 배경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그렇습니다. 본문이 말하는 기쁨은 그런 것이 아니죠. 성령의 열매로 말하고 있는 기쁨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누리는 기쁨이고,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이 누리는 기쁨이나 즐거운 상황에 나에게 유리한 상황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상황을 넘어계시고 모든 상황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인 것입니다.
감옥에 있던 바울이 경험한 기쁨이고, 또와 함께 고난받는 교회를 향하여서 가지라고 권한 그 기쁨 이것은 구약 성경에도 잘 표현돼 있는데, 하박국 선지서의 마지막 부분에 여러분이 찬양도 하고 외우기도 하는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박국 3장인데 여러분 이 부분도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비록 무화가나무가 무성치 못한다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위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의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리라.
이 믿음과 확신도 자연적인 힘으로 하기는 어려운 것들이고, 오직 기쁨, 희락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있고 그 영의 인도함을 따를 때 가능한 믿음과 확신이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겠습니다.
화평 세 번째가 화평인데 여기서는 화평이라고 번역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보려면 평강이나 평안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뒷부분에는 평안으로도 말을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평강 평안 피스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 좋은 것으로 여겨지기는 했지만 이것은 보통 부정적인 방식으로 이해를 했어요. 그래서 평안하면은 뭐냐 하면 없는 것 고통, 괴로움, 어려움, 싸움 이런 나쁘고 부정적인 것들이 없는 상태 밖에도 없고 안에도 없는 그런 상태를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사람들도 평안 흘리는 피스로 이해할 때 많이 그렇게 이해하죠. 틀린 부분이 아닙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이 성경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평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평안을 이렇게 소극적으로만 부정적인 의미에서만 이해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 평안을 평강을 좀 더 긍정적으로 이해를 합니다. 고난이나 문제가 없는 상태라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온전한 건강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죠.
이것은 복음으로 확실하게 해주신 평강의 의미이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평강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무질서 혼돈을 만드시는 분이 아니고, 화평 곧 질서를 만드시고 샬롬을 만드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되 화평으로 평강으로 부르셨고 할 수 있거든 우리로 하여금 모든 사람과 화평하라 화평하게 지내라. 평화롭게 지내라고 말씀을 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이 말하는 이 화평 평간 평화는 내 안에서만 있는 내면의 질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세상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루어져야 할 관계죠. 공동체적인 샬롬이다 평강이다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는 게 예수 믿는 사람들의 정체성의 일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까?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고 주 안에서 평안을 얻는 사람이 우리라 그런 평안 다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가 인내입니다. 인내 본문에는 오래 참음이라고 돼 있죠. 하스 우리 말인데 인내는 어디에서든 인정되는 지금은 어디에서나 높게 인정되죠. 인내하면 좋은 것이죠. 그렇지만 이 당시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는 그렇게 높임을 받는 덕목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으로 보면 이 인내는 일찍부터 아주 높은 위치에 있어요. 인내는 오래 전문 하나님의 속성 중에 하나이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속성 중에 하나이고, 또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에게서 나타나야 할 덕목이다. 인내 그중에 한 말씀만 보자면 골로새서 3장 12절에 있습니다. 여기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극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죠. 여기에 오래 참음을 입을 옷의 하나로 말씀을 하고 있어요.
인내를 왜 그렇게 합니까? 왜 이런 옷을 입습니까? 거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도 않은 이런 것들을 왜 우리가 입어야 할까요?
이어지는 말씀에 따르면 서로 용납하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내를 생각할 때 보통 참는 것은 뭐예요? 고난 아픔, 괴로움, 어려움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데 거기에 더해서 다른 사람이 내게 가하는 죄 이것도 인내에 포함돼요.
누군가가 내게 잘못을 하면 내가 화가 나고 그리고 똑같이 해주고 싶잖아요. 그런데 그런 마음을 자연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때에 그렇게 하지 않고 참는 겁니다. 그게 인내심 그래서 화내지 않고 복수를 꿈꾸지 않고 복수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 안에서 소망 가운데 견디는 거 그것도 우리가 갖는 인내의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이에요.
이것도 자연적인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자연적으로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겁니다. 인간의 동물적인 본성에 맞지 않습니다. 오직 인내하시는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있을 때 그의 영을 따를 때 가능한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래 참고 인내할 수 있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성령의 열매 9가지 중에 4가지를 살펴보았는데 이제 나머지 5개는 다음 기회에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름만 읽고 가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한 번 9가지라면 오직 성령에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인내와 절제 이렇게 개가 있는데 기억을 하시고 다음 기회에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은 시간에는 우리가 오늘 말씀에 비추어서 세 가지를 이렇게 전하고 싶은데 첫 번째로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말하는 성령의 론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래서 속성 에트리브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하는 거고 우리 하나님의 모든 신의 속성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보여주신 우리 하나님의 속성이 사랑이고 그리고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안에서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나야 할 덕목이다. 포츠다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 안에는 그 하나님의 영이시니 그리스도께서 보내주신 성령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성령의 열매를 지금 말씀을 하시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이 열매들을 맺으라 이렇게 새로운 명령을 주시기 위해서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따라 해야 할 명령은 이미 앞에서 받았듯이 성령을 따라 행하라. 워크 바이더 스페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렇게 하면 첫째로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을 것이지만 지금 둘째로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성령의 열매는 우리 안에서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요. 하지만 세 번째로 성령만 하시는 게 아니고 우리의 참여도 있다 하는 것이에요. 육체의 일 그건 육체만 하는 일이 아니고 육체에 참여한 우리의 일이기도 하고 또 성령의 열매도 성령님께서 하지만 거기에 분명히 우리의 참여도 있다.
어떤 참여인가요? 그 소리를 듣고 따라가는 거예요. 육체의 소유 육체가 원하는 소리를 듣고 거기에 따라가는 것이 하나의 길이라면 또한 성령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참여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일까요?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성령을 따라 하는 것일까요?
주어진 말씀, 또 선포되는 말씀, 그것을 따르는 것도 있지만 나 자신의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거슬러 말하는 것도 포함이 돼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소중하죠. 그리고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도 다 소중합니다. 힘들어서 나오는 소리도 있고 괴로워서 나오는 소리도 있고 탄식도 있고 원망도 있고 불평도 있을 수 있어요.
근데 그것이 단순히 그냥 무시할 것이 아니고 들어줘야 할 귀중한 소리인 것이죠. 그건 우리가 압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라고 해서 다 들어줄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 안에서 우리 자녀들이 내는 소리 다 들어줘야 되지만 다 듣고 그대로 해줘야 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안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소리들이 일어나는데 그 모든 소리를 우리가 다 들어줄 것은 아니고 때로는 힘들어하고 불평하는 나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의 말씀으로 명할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있어요.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시편 42편에 있습니다. 여러분 많이 들어보셨죠? 우리 한번 내가 하는 소리처럼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야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것은 시편 42편과 43편 두 편에서 세 번 반복되는 구절이에요. 거의 결론의 부분처럼 반복되는 구절입니다. 중요하다는 건데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나요? 자연적으로 낙심하고 불안해하는 상황이지만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나 자신에게 알려주고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에서 말한 내 안에서 힘든 소리가 날 때 그를 향해서 헤질 수 있다 하는 것이야 여기에 성경을 성령을 따라 행하고 성령을 성령의 열매를 맺는 비결이 하나 있어요.
이 말씀에 우리가 지금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듣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중요한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라는 것은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우리를 통해서 맺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 열매가 무엇인지 다 알려주셨어요. 육체의 일이 무엇인지도 알려주셨지만, 또한 성령의 열매가 무엇인지도 다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9개는 알아야 성령의 열매 중에 적어도 9개는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을 때 처할 때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또 평안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평안 오래 참음 이것을 붙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랑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평안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 우리에게 주신 이 성령의 열매를 우리가 붙들면 어떻게 될까요?
성령께서 일하시고 그리고 그 일하신 성령께서 우리의 상황을 바꾸시거나 바꾸시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해 가신다 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이고, 그렇게 할 때 성령의 열매도 맺힐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기억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삶은 한마디로 말하면 역설이에요. 파로덕설이에요. 역설이에요. 왜냐하면 사랑할 수 없는 중에 사랑하라고 하시고 또한 기뻐할 수 없는 중에 기뻐하라고 하시고, 평안할 수 없는 중에 평안하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이유,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 그것은 우리가 정말로 어리석거나 무지하거나 아니면 제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 시편의 저자로 기록된 다윗의 길이었고, 우리 앞에 먼저 가신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의 길이었고, 그리고 저도 따라가는 길인데 여러분들의 길이 되고 여러분들의 길이 아니라면 앞으로 되기를 바라는 길입니다.
말씀 잘 기억하고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각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소리가 음성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