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좋은 어른과 자두네 - 맹현, 『아기자두와 아기호두의 시』

[이영숙]

▪추천의 글

좋은 어른과 자두네

이영숙(시인ㆍ문학평론가)

깨알 같다. 아니, 깨알이다. 작고 고소하고 톡톡 튀는 이야기들이 책의 어디를 펼쳐도 후드득 떨어진다. 어느 만큼은 아기자두와 아기호두였고, 어느 만큼은 자두와 호두였으며, 또 어느 만큼은 그 주변 인물이기도 했던 때로 깨알은 우리를 데려간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우리는 자두네의 일원이 되어 책에 동참하거나, 울타리 너머에서 자두네 이야기를 즐기거나, 자두네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토핑’처럼 각자의 일상에 얹어보기도 한다. 아무래도 인상적인 수평적 사유와 언어적 실천이 녹아나는 가족 간의 대화법을 가져다 화분에 심고 ‘일주일에 한 번씩 깨끗한 물’을 주기도 할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의 깨알 재미까지 우리는 챙길 건 다 챙기는 독자다.

궁금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책의 제목은 『아기자두와 아기호두의 시』이고, 부제는 ‘어린이 말 줍줍 에세이’다. 과연 이 책의 장르는 시인가, 에세이인가. 혹은 시 같은 에세이인가, 에세이 같은 시인가. 자녀 양육 일지인가, 부모 ‘훈육’ 일지인가. 시와 에세이를 내걸면서 작가는 이 책을 문학으로 보아달라는 강력한 주문을 이미 한 셈이지만,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니 저절로 알게 된다. 아, 에세이라는 형식에 시라는 내용을 담았구나! 지성이라는 정적 체계에서 출발하는 에세이와, 정서라는 동적 감응에서 출발하는 시의 차이는 어떤 면에서는 그대로 어른과 아이의 차이로도 이어진다. 규율로 사회화된 어른이 백지상태의 아이와 대면하면서 ‘반성’하고 ‘항복’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차이를 줄이려는 좋은 어른의 표상이다.

다행이다. 자녀에 관한 한 자두가 완벽주의자가 아니어서. 「꿈마을」에서 아기호두가 ‘꿈마을’이란 길 이름을 듣고 현실을 꿈속으로 치환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아기호두를 ‘아직 한글을 모르는 일곱 살’로 놔둔 자두의 덕분이다. 단답형이 아닌 자두네의 느긋한 대화 패턴을 보라. 아이들은 그렇게 길이 들었다. 부모가 대답을 종용해도 진심이 아니라면 울음을 터뜨릴망정 부모가 듣고파 하는 억지 대답은 하지 않는 아이들. 다행이다. 자두가 성과주의자가 아니어서. 즐겁게 뛰노는 가운데 아기자두와 아기호두는 상황의 본질에 가닿는 직관력을 얻었다. 정말 다행이다. 자두는 모성 뒤에 자기를 숨기지 않고 피로와 짜증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아이들과 대등해졌고, ‘엄마, 인정할 건 인정해.’, ‘엄마, 화가 나는 건 아픈 거래. … 침대에 누워서 좀 쉬어.’, 아이들은 의젓해졌다.

사실 필자는 이 책 이전부터 자두와 인연을 맺어왔다. 자두는 만학도인 필자의 대학 동기로 학교에서 이미 절친이었고, 졸업 후 몇 년간 같은 직장에 몸담았으며, 호두와 연애 중일 때도 자두는 가끔 필자를 깍두기처럼 끼워주기도 했다. 그들의 결혼과 출산에 함께 했고, 아이들의 드문드문한 성장 과정을 올린 페북에 진국으로 졸인 좋아요를 눌렀으며, 브런치 카페에 연재된 「아기자두와 아기호두의 시」도 게재되는 족족 읽는 신분이었으니……. 이 과정에서 깨닫게 된 것은 무엇보다 자두가 준비된 엄마가 아니라 준비하는 엄마라는 사실이다. 이는 출판사를 차리기 위해 두어 개의 출판 관련 강의를 겹쳐 듣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내기 위해 짬짬이 글을 쓰고 드로잉을 배워서 삽화를 그려내기까지 한 열정과 맥을 같이 한다. 심지어 글과 드로잉은 남매처럼 따뜻하고 창의적이다. 출판인이자 작가이고, 만능 엔터테이너인 자두는 부족한 것이 있다면 없는 시간을 쪼개 또 배움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원고를 다시 한번 읽는다. 먼저보다 더 많은 깨알이 멍석 위에 수북하다. 누구는 가져다 음식에 솔솔 뿌리고, 누구는 기름을 짜고, 또 누구는 깻묵으로 발효시킨 친환경 비료를 어린뿌리 곁에 한 삽씩 나눠 묻을 것이다. 튼튼한 줄기와 가지를 뻗으며 아기자두와 아기호두는 생장점을 한껏 밀어 올릴 것이며, 더위와 비바람과 추위를 꿋꿋하게 이겨낼 것이다. 일과 육아와 자아실현을 꿈꾸는 세상의 자두들, 공동육아에 참여하는 세상의 호두들, 그리고 아기자두와 아기호두를 둘러싼 세상의 이웃들에게 놀라운 영감을 주는 책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아기자두와 아기호두의 시』, 출판사 핌,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