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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이어서 두 번째 서울 둘레길 길나섬이다. 원래 토요일에 길을 나서려고 했었는데, 하루 종일 오락가락 비가 온다는 예보다. 태풍의 뒤끝이 아직도 작렬하고 있는 것이었다. 태풍이 몰고 온 비구름의 그림자가 꽤 깊다. 그래도 비의 본류는 지나갔으니 길나섬을 해도 무방할 것 같았는데, 예보를 보니 비의 오고감이 좀 지저분하다. 비가 오고 그치고 또 오고 그치고 그리고 이의 반복. 물론 비의 양이 그리 많을 것 같지 않지만, 우산을 펴고 끄고 해야 하는 일이 반복되어야 할 것 같다. 말하자면 귀차니즘 때문에 길나섬을 주저하게 되었다.
그래서 고심하다가 길나섬을 하루 늦추었다. 마치 산이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하루 늦춘다고 길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니까. 사실 두 해 전 어느 5월 날, 성삼재에서 세석 대피소까지는 적지 않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세석부터 천왕봉까지는 눈이 날리고 있었는데 우산을 들고 그 종주로를 걸은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어느 길나섬에서건 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 예보대로 정말 비가 오다가 그치고 또 오다 그치고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런 비를 보면서 길나섬 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자위해본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기온이다. 요즘 삼십 몇 도는 기본이고, 지난 주에는 35도에서 길나섬을 했는데, 토요일 최고 온도가 23도 언저리다. 거의 가을 날씨 뻘로 서늘하기까지 하다. 이런 날 걸으면 정말 딱인데… 물도 거의 필요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를 생각해서 걷지 않음을 위안으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길나섬에 나선 일요일 새벽. 일요일에는 분명 비 예보가 없었는데, 비가 사실 왔다. 출발 한지 한 20~30분쯤 되었을까? 대모산 숲속 가운데쯤 그리고 세상은 고용한데 무엇인가 쏴~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하늘에서부터 내리는 뭔가 수분의 느낌이 감지되더니 조금 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대모산 숲 속 안에 있어서 비를 맞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비가 오래가지 않은 것임을 알기 때문인지, 비가 그리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숲 가운데서의 빗소리였다. 어느 해 소백산 연화봉 근처 숲 속에서 들어본 소리보다는 못하지만…
그렇게 비가 잠시 오고 가는 가운데 어둠 속에서 걷는 대모산이었다. 그런데 그 느낌이 마치 무박 지리산 산행 같은 느낌이랄까? 새벽 3시에 열리는 지리산 성삼재 입문 시간과는 대략 1시간 반 정도의 출발 시간의 차이가 났지만, 수서역에서 입산하여 밝음이 올 때까지 걸었던 시간은 지리산 종주로와 별 다름이 없었다. 헤드랜턴으로 발 아래를 비추며 어둠 속 성삼재를 출발하여, 노고단, 돼지령, 임걸령, 노루목을 거쳐 반야봉을 왕복하고 삼도봉에 도착, 화개재로 향하는 긴 데크 계단을 내려갈 때 세상은 희뿌옇게 밝아오곤 했다. 이와 유사하게 알 수 없은 횟수의 대모산과 구룡산 자락을 오르고 내린 후 구룡산 끄트머리쯤 도착했을 때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세상이 밝아져 왔을 때 정면으로 보이는 구름 속에 갇힌 청계산은 마치 아득한 저 세상 너머의 천왕봉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지리산에 또 갈 때가 되었나?
지난 일 주일 전 뜨거운 태양과 높은 기온 때 걸었던 도보 양상과는 천양지차였다. 무엇보다도 그때는 감기약을 먹고 반 졸음 상태에서 걸었다면, 어제는 정반대였다. 당연히 감기가 나아서 약을 먹지 않음은 물론이었지만, 대모산의 탐방로가 예전에 알던 그 길이 아니라 변경된 탓에 이 길이 맞나 하면서 정신을 곤두세우면서 걸었기 때문이었다. 알던 길이 갑자기 모르는 길로 둔갑했으니 졸음이 올 리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지난 주의 졸림은 어쩌면 아는 길이라는 매너리즘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지점에서 불국사로 향하는 길은 감각적으로 분명 이 길은 아니었음을 의미했는데 안내목과 주홍색 리본은 로봇 고등학교 방향 쪽으로 하방을 향해 가리키고 있었고 또한 보지 못한 이상한 시설물도 지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상으로 향하는 산길은 대부분 고정적이지만, 생물과도 같은 둘레길은 사실 금을 긋기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시설물이 생기거나, 사유지가 되거나 또는 공사 때문이라든가. 사실 산을 오를 때 들머리만 제대로 찾아도 70%는 접고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택지 개발 등으로 인해서 들머리가 사라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상으로 향하는 길보다 어쩌면 고난이의 작업이 들머리를 찾는 일 그리고 둘레길 찾아 가기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이 길은 아니었는데 하면서 혹시나 안내목과 리본을 잘못 보았을까봐 내려가던 길을 도로 올라와 맞는지 확인을 하기도 했는데, 정말 길은 바뀌어 있었다. 탐방로는 일원동의 차가 다니는 길가를 지나 다시 불국사 방향으로 오르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원래 있던 길이 없어졌나? 별별 생각을 하며 걷던 길이었다.
가뜩이나 정상으로 쭉 오르고 정상에서 내려가면 되는 대모산 등산로 대비 서울둘레길은 업다운의 횟수가 지극히 많아 등산로보다 오히려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되는 길이었는데, 일원동 길가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하는 과정이 더해지니 그 난이도가 조금 더 증가한 것 같다. 그 덕(?)에 졸음이 올 턱이 없었다. 그 자체가 각성제였다.
새롭게 위치한 양재 서울 둘레길 안내 센터도 반가웠다. 보통 일 주일에 한번씩은 옆을 지나곤 하는데, 가까이 아닌 멀찍이 보던 곳이었다. 그런데 반가움이란 이미 바뀐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는 익숙함때문일까? 아니면 밝음이 주는 효과일까?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런 상상도 해보았다. 만일 앞서 조금 헤매며 걸었던 대모산에서의 어둠 속 암중모색이 아니라 밝음 가운데 변화된 탐방로를 마주했다면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변화가 감지되는 곳이 한 군데 더 있었다. 호암산 아래 탐방로 중에는 호압사부터 호암산 폭포까지 멋드러진 긴 나무 데크 탐방로가 있다. 그런데 예전 서울둘레길은 그 데크 탐방로가 아니라 그 데크 길 위 아래에 있는 일반 탐방로였다. 그래서 이곳을 지날 때면 “아니 저 좋은 길은 놔두고 왜 이리 길을 의도적으로 꼬아 놓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어제 보니 둘레길이 이제는 온전하게 그 데크길을 걷는 것으로 바뀌었다. 모~ 원하던 대로 긍정적으로 바뀌어 있어서 즐겁게 걸었다.
그렇게 때로는 아무도 없는 가운데 호젓하게, 때로는 조용하게 걷기도 했지만, 안양천 가의 물놀이장을 여럿 있는 왁자지껄 시끄러운 길도 지났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탐방로는 조용했다. 지난 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았다 싶지만, 그래도 아직은 30여도를 넘나드는 고온 때문인지 아직 본격적으로 길나섬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안양천 벚꽃 터널안은 예상 외로 조용했다.
이렇게 두 번째 서울 둘레길 가을 걷기 축제 trekking을 마쳤다. 8개 구간 중 개인적으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구간은 거의 평지다시피한 고덕산/일자산 코스이고 이보다 더 어려운 구간이 안양천 구간이다. 그런데 두 구간을 지난 주와 어제 마쳤고, 이제는 가장 좋아하는 산을 끼고 있는 구간들이 남아 있다. 불암산, 수락산 북한산 그리고 봉산과 앵봉산 등. 앞으로 남은 길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첫댓글 더운날 고생많으셨어요~ 화이팅하시길… ^^
네 감사합니다. 팔사조의 발걸음도 곧 이어지리라 생각합니다. 8월도 벌써 반이 꺽였네요. 즐거운 8월의 하반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