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서공파발전협의회 성료 ●
2019년 10월 29일(화), 18:30 강남역 주변 바우골 식당에서 판서공 후손 12명이 참석하여 성료되었다.
이날 모임에서 丹山 성배 회장은 후손들을 만나니 매우 반갑다면서 매년 2회 모임을 정기적으로 추진하겠다면서, 4월 15일 울산시 충의사(忠義祠) 호조판서공 제향 때 관심을 갖고 참여 및 주변에 알고 있는 종친의 본회 참여 독려를 하자고 인사말을 하였다. 이어서 栢江 성록 총무는 참석자 12명을 한분한분 소개를 하였다.
野雲 이환 재무는 2019년 애·경사와 4월 15일 울산시 충의사 제향에 따른 지출과 회비 협찬 등 수입에 대해 전반적 재원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栢江 성록 총무의 설명이 있었다.
첫째 돌아오는 陰 10월 13일(양 11월 9일, 토요일) 관산읍 농안리
화운동 화운재에서 모시는 판서공의 차자 정양재공(22세 廷赫), 청우당공(23세 東翼), 수우옹공(24세 世稷), 운곡공(24세 世卨), 잉여옹공(25세 命德) 등 5位 제향
둘째 陰 10월 15일(양 11월 11일 월요일) 장천문계에서 주관하는 관산읍 천관산 영은동천 자락
장천재에서 모시는 통덕랑공(16세 自良), 한성참군공(17세 宗復), 승문원습독공(18세 由亨), 통선랑공(19세 晉秀), 강릉참봉공(19세 晉賢), 성균진사공(20세 鯤), 호조판서공(21세 德和), 웅천현감공(22세 廷烈) 등 8位 제향에 대해 설명하였다.
원래 장천문계에서는 장흥읍 평화리 회주사 뒤 다전등 통덕랑공(16세 自良), 한성참군공(17세 宗復), 승문원습독공(18세 由亨) 3位 제향은 매년 陰 10월 10일, 회진면 대리에 위치한 성균진사공(20세 鯤), 호조판서공(21세 德和)은 매년 陰 10월 1일 제향을 묘전에서 시제를 각각 모셔왔으나. 본향 내 청·장년층 부재와 농촌사회의 고령화에 따른 제향문화 변화에 따라 2018년부터 두 곳 제향을 기존 장천재 제향과 합제 방법으로 모시게 됨을 설명하면서 시제 참여를 독려하였다.
셋째 방촌리 492번지에 위치한 판서공파 종댁은 병조참판공(22세 廷喆 1683~1657)께서 숙부 안항공(德厚)에 이어 당동 판사터에서 방촌으로 입촌하여 1623년(癸亥, 天啓3년) 현 자리에 집터를 조성하였다.
이때 公은 경상도 곤양군수 재임 때라 호조판서공의 配인 모친 정부인 죽산안씨(1560~1625)와 정부인 配 창령조씨 두분이 집을 지었다고 하여 속설에는 과부할머님 두분이 고택을 지었다고 傳해내려 왔다. 이는 판서공은 1598년 타계하여 죽산안씨 할머님은 혼자이고, 창령조씨 할머님은 부군인 병조참판공께서 곤양군수에 재임하고 있어 와전되어 전해 내려온 말이다. 여기에 아우 정양재공(22세 정혁 1589~1627)이 모친과 형수를 모시고 종택을 조성하였음이 傳해내려온다.
또한 사당(祠堂)은 당대 제도에 따라 정2품 이상만이 사당 3칸을 세울 수 있어 호조판서에 추증된 1631년 8월 23일 후에 사당이 지어졌다고 추정된다. 2002년 11월 27일 종택 3칸 사당은 전남도문화재로 제38호로 지정 되고, 2017년 12월 20일 고택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고택 앞 장흥군청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최초 고택 조성시기를 17세기 초반으로, 사당 건립을 1621~1627년 사이에 건립하였다고 기록하고 안내판 글자 크기가 적어 글씨를 알아 볼 수 없는 등 정정(訂正)이 필요하였다.(필자가 금번 9월하순경 종택에 갔었을 때 확인.)
이에 고택 조성 최초 시기는 17세기 초반보다 1623년(癸亥, 天啓3년)이 정확한 기록이다. 사당 건립은 1621~1627년 사이가 아닌 1633년 아들 위정철이 제76대 가리포첨사 재임 때 건축하였다고 문구를 고쳐 다시 세우도록 장흥군청 문화관광과에 설명 등 안내판 정정案을 제시하였다. 이에 장흥군청에서 시정중에 있다. 위와 같은 내용을 참석 후손들에게 설명하였다.
끝으로 다음 정기 모임은 2020년 1~2월경에 추진 예정이다.
참석인원 : 12명 방촌(공량, 성중, 성록), 초당(희량), 김제 월현(훈), 모산(재호), 용전(이환), 단산(성배, 성석, 찬복), 예천 효갈(홍환, 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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