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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장 45-57절. 예수는 우리 민족이 살길. 요약설교
1.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셨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유대인들만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정부 당국자들에게 고발했습니다.
2. 그러자, 정부 당국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모여서 회의를 하였습니다.
즉, 유대 민족이 예수님을 믿고 따를 것인가, 아니면 유대민족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의 지배를 따를 것인가 결정하는 회의였습니다.
그런데 회의의 결론은 민족이 살길은 로마의 지배를 받는 길이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민족이 망한다는 것이었습니다.
3. 그러나, 이 결정은 너무나 잘못된 결정이었습니다.
오히려, 유대 민족이 살길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이었습니다.
4. 이때 유대민족이 예수님을 버리고, 로마의 압제를 택했다가 40년 후에 유대 민족은 로마에 나라가 망하고, 근 2천 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유랑 생활을 하였습니다.
5. 그러기 때문에, 마태복음 23장 37-3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암닭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예루살렘을 모으려고 한 적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6. 정말 유대 민족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다면, 그토록 버림을 받지 않고, 2천 년 동안이나 유랑 민족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7.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왔으나, 이조시대에 유교의 제사를 문제 삼아, 수많은 신자들과 선교사들을 죽였습니다.
오늘날 그 증거가 <절두산>(切折山에) 있습니다.
이처럼 쇄국 정책을 쓰자, 나라는 쇠약해졌습니다.
그러자, 이조 말 고종 황제 때, 세계열강들이 앞을 다투어 우리나라를 침략했습니다.
8. 이러한 열국의 각축전 사이에서, 결국 일본이 우리나라를 먹어버렸습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과 2010년 한일합방이 그것입니다.
9. 그러나 다시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특히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을 벌였습니다.
10. 이날을 기념하여 매년 3월 1일이면, <삼일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도 며칠 후면, <삼일절>을 맞이할 것입니다.
11. 그런데, 이 3.1 독립운동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주동이 되어서, 결행했던 것입니다.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 가운데, 태반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써, 살길을 찾았던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우리 민족의 살길이었습니다.
죽음과 같던 일제 치하에서, 오직 예수님과 교회는 우리 민족의 살길이었던 것입니다.
12. 오늘 본문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로마의 압제를 선택함으로써,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죽음과 같은 일제 치하에서, 예수님을 선택하여, 믿고 따름으로써, 결국 생명과 해방을 맞이했던 것입니다.
13.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은 우리 민족의 살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말씀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오늘 말씀은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본 유대인들 중에 여러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당국자들에게 고발했다고 했습니다.
45절.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46절.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1. 그러자, 나라의 지도자들이 산헤드린 공회를 모아서, 예수님에 대한 대처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47절.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1. 먼저, 당국자들은 예수님이 여러 가지 기적 사건들을 행하므로, 그대로 가만두면, 모든 민중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따르게 될 것이고, 그러면 로마인들이 쳐들어와서 다시 유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48절.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1) 이런 생각의 밑바탕에는 당국자들이 예수님을 거짓 메시아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유대 당국자들이 예수님을 거짓 메시아로 생각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2) 그 이유가 사도행전 5장 36-37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즉, <드다>라는 사람이 메시아로 자청하여 4백 명의 군사들이 따랐으나, 로마 군대에게 망했고, <갈릴리 유다>라는 사람이 다시 메시아로 자청하여, 백성들이 따랐으나, 다시 로마 군대에게 망한 전례가 있었습니다.
(3) 그러기 때문에, 당국자들은 <예수님>도 거짓 기적으로써 백성들을 선동하는 그런 거짓 메시아로 오해한 것입니다.
(4) 그래서,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르면, 다시금 로마인들이 쳐들어와서, 많은 군중들을 죽이고, 백성들이 로마의 압제를 더욱 받게 된다는 우려였습니다.
(5) 그러니, 차라리 로마군의 침략이 있기 전에, 당국자들이 <예수님>만을 처치해버리면, 모든 군중들은 잠잠해질 것이란 말입니다.
49절.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절.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1) 이와같이, 산헤드린 회의의 논제는, 유대 민족이 예수님을 믿고 따를 것인가, 아니면 로마의 지배를 계속 따를 것인가 였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예수님을 처형하고, 로마의 지배를 받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처형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정부 당국은 <예수님>을 처형하기로 결정하고, 이 일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1. 이처럼, 유대 민족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보다는 <예수님>을 버리고, 로마의 압제를 따름으로써, 결국 AD 70년에 로마에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그 후로, 1948년 5월 14일 독립하기까지, 약 2천 년 동안 유대인들은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온갖 불행을 당하고 살아왔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버린 나라는 멸망하고, 온갖 불행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개인도 구원과 행복을 얻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민족들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누리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도 국가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섬겨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받는 나라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51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절.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53절.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54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여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유하시니라.
55절.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56절. 저희가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저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57절.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성경에는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시편 33:12.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는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1. 그렇습니다.
우상 미신을 섬기는 나라는 망할 나라가 되고 맙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우상 숭배하고 미신을 따르는 나라는 가난하고 병들고 불행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백성은 모두 잘살고 있습니다.
2. 우리나라도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미신을 숭배할 때는 미개한 나라요, 학교나 병원이나 복지 시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옴으로써, 학교 교육이 시작되고, 병원이 설립되고, 고아와 과부와 노인 복지 사업을 시행했습니다.
3. 기독교와 정치 -미국과 불란서의 예
18세기에 거의 동시에 주권 국가로 태어난 두 나라가 있었습니다.
1776년 독립한 미국과 1789년 시작된 프랑스 공화국입니다.
(1) 그런데, 프랑스는 당시에 무신론 국가여서, 테러와 혁명이 끊임없었습니다.
나폴레옹 제국과 왕정복고 등, 19세기 불란서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나라가 당하는 불행이었습니다.
(2) 그러나, 원래 미국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명시한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원래는 최초 헌법 서문에 기록하기를,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축복들을 보전하게 하기 위해서 이 헌법을 설립하게 해주셨습니다>(We, the People of the State of California, grateful to Almighty God for our freedom, in order to secure and perpetuate its blessings, do establish this Constitution)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 정신으로 건설된 미국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 속에서, 계속 번창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미국은 현재 전 세계를 제패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4.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니엘 4:34.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편 22: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으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돌보심과 축복 속에서 발전하는 나라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에서 민족 지도자들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민족을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 위대한 민족 지도자인 모세
(1)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배신하고,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멸망시키고, 모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민족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시려거든, 차라리 모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출애굽기 32:30-32.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2) 다시 이스라엘 백성은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께 큰 죄를 범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서 이제 곧 가나안 땅을 주시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광야에서 죽이려고 인도해냈다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돌로 쳐 죽이고,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전염병으로 다 죽이고, 모세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민수기 14:11-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민수기 14:13-19.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열국이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력이 없으므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이제 구하옵나니,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같이 사하시옵소서.
2. 바울 사도도 민족 구원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기를 원했습니다.
로마서 9: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즉, 바울 사도는 자기 민족이 구원받는 길이라면, 차라리 자기가 저주를 받더라도 민족이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모두 민족을 위해서 일하고 희생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3. 에스더 같은 여성은 민족 구원을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고 한 몸을 바쳐 헌신했습니다.
4. 우리나라도 나라를 구원하는 데는 여성들의 힘이 컸습니다.
임진왜란 때의 일입니다.
일본 군인들이 소총을 가지고 쳐들어오므로, 우리나라는 파죽지세로 점령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경기도 행주산성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남자 군사들의 힘만으로는 행주 성을 지키기가 불가능했습니다.
전멸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성들이 전쟁에 나섰습니다.
여성들이 치마를 찢어서, 앞치마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치마로 돌을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앞치마로 나른 돌로 왜군들을 쳐부쉈습니다.
이처럼, 여성들의 힘으로 행주산성에서는 왜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소위 <행주대첩>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여성들이 앞치마로 돌을 날라 나라를 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 후로 앞치마를 <행주치마>라고 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건설된 것은 우리 기독교 지도자들의 힘이 거의 절대적이었습니다.
1. 민족 지도자 도산 <안창호 선생>의 신앙과 애국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안창호 선생은 1878년에 태어나서, 1938년 58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창호는 3살 때, 사서삼경을 공부할 정도로 천재였습니다.
(2) 1894년에 청일 전쟁이 나서, 일본이 <장총>이라는 신무기를 가지고, 중국을 삼키는 것을 보고, 신학문을 배워서 나라의 힘을 길러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이듬해인 1895년 16살 때, 평양에서 600리를 걸어서, 서울 경신학교로 갔습니다.
당시 경신학교는 선교사들이 세운 기독교 학교였습니다.
입학시험 때의 일입니다.
교장 선교사님이 안창호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학생은 우리 학교에 입학하려고 600리를 걸어서 왔습니까?>
안창호: 네,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6억 만리를 건너오셨는데, 학생이 600리 걸어서 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요.
이렇게 해서, 안창호는 경신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3) 경신학교에 입학한 안창호는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어야 나라가 산다는 것도 확신했습니다.
(4) 안창호는 더욱 공부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러나, 1905년 일본이 한국을 보호한다는 <을사보호 조약>이 체결되자, 한국으로 귀국하였습니다.
그래서,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우고, 학생 청년이 살아야 나라의 장래가 있다고 생각하여, 청년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때가 26세 때였습니다.
(5) 1913년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서, 기독민족청년 단체인 <흥사단>(興士團)을 조직했습니다.
저도 대학시절에 서울에서 <흥사단>에 가보았습니다.
(6) 40세 되던 1919년에는, 기독교 지도자로서 <3.1 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 상해 임시 정부에서는 국무총리 서리를 지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를 이끌던 김 구(1876~1949년) 선생도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7) 안창호는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폭탄테러에 연루되어, 감옥에 갔다가, 1938년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8) 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친 안창호 선생은 늘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나라 백성이 손에 성경을 드는 날, 비로소 우리나라는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살고, 싸우면 망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안창호 선생에게 배워서, <뭉치면 살고, 해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9) 대한독립 운동을 했던 모든 지도자들은 찬송가 338장 가사에 맞추어서,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이후에 안익태((安益泰, 1906~1965년) 선생이 지금의 곡을 작곡하여, 찬송가 곡조를 현재 곡으로 바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도산 안창호 선생으로부터 배워야 하겠습니다.
① 첫째, 우리 민족의 살길이 예수 믿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② 둘째, 우리 민족의 장래가 학생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학생들을 기독교 신앙교육으로 잘 길러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주일학교와 어린이집은 너무도 소중합니다.
<사랑하는 교회 학교 교사 여러분!>
안창호 선생님과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학교 학생들을 통해서,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2. 민족 지도자 이승훈 선생(李昇薰, 1864~1930년)의 기독교 신앙과 애국 운동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남강 이승훈 선생은 1864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0살 때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5살 때 좋은 부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24살 때, 유기공장 사장으로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이승훈 선생은 타고난 사업가였습니다.
(2) 그런데, 31살 되던 1894년 청일 전쟁이 나서, 일본군에게 모든 살림을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이후로는 더 크게 국제 무역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또 돈을 많이 모았습니다.
(3) 그러나, 40살 되던 1905년에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다는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그러자, 재산을 모두 일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4) 그러던 중, 44살 되던 1909년에, 도산 안창호 선생을 만나서, 민족의 살 길은 예수 믿고, 청년 학생들을 기르는 길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안창호 선생과 함께, <신민회>(新民會) 활동에 참가했습니다.
<신민회>란 옛날 이조시대의 유교 정신으로는 나라가 살 수 없고, 기독교 정신을 가진 민족이 되어야 나라가 살 수 있다는 청년운동이었습니다.
이 신민회 회원들에는 기독교인들이 많았습니다.
(5) 즉, 상동교회의 전덕기 목사, 이동녕, 이덕환 장로, 최공옥(의주 양산학교 교장) 등이었습니다.
전덕기 목사(全德基, 1875~1914년)가 시무한 <상동 감리교회>는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의 아지트였습니다.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상동교회에서 비밀 모임들을 가졌습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는 상동교회가 원상대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안타까운 것은 유명한 문화재인 상동교회가 재개발 건설사업에 밀려서, 본래의 교회당을 팔고, 남대문 시장 부근에, 높은 빌딩을 짓고, 맨 꼭대기 층에 교회당을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6) 이처럼, <이승훈>은 기독교가 독립운동의 중심부라는 사실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서울과 평양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이 학교들을 많이 세워서 신학문을 교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병원들을 많이 세워서, 불우한 백성들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이 고아원을 지어서,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고, 불우한 여성들을 데려다가 돌보고, 교육시켜주는 것들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7) 그러던 중, 45세 되던 1910년에, 평양 <산정현 교회>에서 한석진 목사님(韓錫晋, 1868-1939년)의 설교를 듣던 중, 강력한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예수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한석진 목사님은 최초 7인 목사님들 중 한 분입니다.
특히, <한석진> 목사님은 외국 선교사들에게 한국 교회는 한국 사람이 지도해야 한다는 것을 관철시키신 목사님입니다.
(8) 일단 예수님을 믿은 이승훈 선생의 신앙은 철저했습니다.
이승훈 선생이 예수 믿은 해 1910년 12월에 <안명근> 사건이 터졌습니다.
즉, 안중근 의사의 사촌 동생 되는 안명근(安明根, 1879~1927년) 성도가, <데라우찌 총독>을 암살하려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9) 그런데, 당시 기독교인들은 신앙으로 민족의 원수들을 죽였습니다.
절실하게 예수님을 믿던 <장인환과 전명훈> 성도의 경우가 그런 신앙을 잘 말해줍니다.
한국초대 기독교와 민족운동에 대해서, 24권으로 된 <여명>이라는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고종황제 당시에, 일본 군인들이 우리나라를 압박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일본군도 밉지만, 더욱 미운 것은 미국 외교관으로서 일본의 압잡이를 하는 <스티븐슨>이라는 미국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한국민이 <스티븐슨>을 원수같이 미워했습니다.
그때, 장인환(張仁煥, 1876∼1930년)과 전명운(田明雲, 1884∼1947년) 청년 성도가 스티븐슨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190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드디어 장인환과 전명훈은 스티븐슨을 죽일 기회를 만났습니다.
장인환은 스티븐슨을 죽이려고 권총을 준비하고, 밤새 교회당에 가서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밤새도록 민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스티븐슨을 죽이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라고 기도하는 장면이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밤새 눈물로 철야 기도를 한 장인환은 이튿날 드디어 스티븐슨을 권총으로 쏘아 즉석에서 살해했습니다.
그래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일본 총영사와 미국 사람들이 장인환을 사형에 처하라고 야단이었습니다.
재판날이 되었습니다.
재판정에서 장인환은 말했습니다.
<저 원수 스티븐슨은 한국의 녹을 먹으면서,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한국 사람을 독살하는 자였습니다. 나는 밤새 철야기도하고 신앙심으로 스티븐슨을 죽였습니다.>
재판관이 이 말에 감동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이라고 구형했어도, 재판관은 25년형을 언도했습니다.
그 후로, 장인환은 모범수로 풀려났습니다.
이처럼, 당시 기독교인들은 신앙심으로 애국 운동을 했습니다.
(9) <이승훈>(李昇薰, 1864~1930년)도 <총독 암살사건>(물론 총독이 암살된 것은 아니지만)과 연루되어, 서울 경무총감부 구치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 때, 양산학교 설립자인 <김용제>(金庸濟, 1878~1931년) 선생이 같은 감방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김용제> 선생이 이승훈 선생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혹독한 고문을 잘 참아내십니까?>
이승훈: <고문이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께 능력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깁니다!>
(10) 그 후로 이승훈은 감옥에서 나와, <오산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 오산학교는 민족지도자들을 배출한 유명한 학교입니다.
이승훈은 오산학교 안에 예배당을 건축해서, 기독교 신앙으로 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만이 우리 민족이 살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11) 참고로, 오늘날 우리 정부가 <종교 사학법>을 개정하여, <기독교 학교 말살 정책>을 펴는 것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저도 한국 대표적 기독교 학교이고, 영락교회가 설립한 <대광고등학교> 출신입니다.
우리나라가 <기독교 학교>를 통해서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12) 오산학교를 세운 이승훈 선생은 너무나 기독교 신앙이 뜨거워서, 52세 되는 1925년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신학교 교장이신 <나부열> 선교사가 목사가 되는 것보다, 오산학교를 통해서 기독교 교육에 힘쓰라는 권고를 받아들여서,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13) 그리고, 신학교를 나오자마자, 53세 되는 1916년에, <조만식>(曺晩植, 1883~1950년) 장로님에게 오산학교 교장직을 맡겼습니다.
(14) 2년 후인 1918년에, 만주에 있는 독립운동자들과 일본에 유학중인 학생들이 <독립선언>을 계획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상해임시정부와 <선우혁>(鮮于爀, 1889~1967년)을 통해서 연결하고, 이승훈은 국내 <독립선언>의 대표직을 맡았습니다.
다만, 여러 종교의 협력을 얻기 위해서 가장 약세인 천도교 지도자 <손병희>를 형식상 대표자로 정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불교도의 지지도 받기 위해서, <한용운>을 포섭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해 12월 평양에서 이승훈이 주도가 되어, 독립선언을 할 동지들을 모았습니다.
이승훈, 조만식, 남궁벽, 조철호, 심재덕, 박재화, 김태동, 박기선, 변봉현 등이었습니다.
이승훈은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우리는 2천만 동포의 의지를 대표적으로 나타내 보여주여야 합니다. 우리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15) 드디어 1919년 3월 1일 정오에 <독립선언문>이 낭독되고, 전국 방방곡곡에 <대한민국 만세>가 울려펴졌습니다.
<만세운동>에서 <유관순>(柳寬順, 1902~1920년) 여사를 비롯한 교회 여성들이 주동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6) 이승훈은 독립선언문 낭독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3인 중 최고의 형을 받아 세 번째 옥살이를 했습니다.
1차 공판 때, 이승훈은 <수석 판사 다찌가와>와 <사카이 검사>앞에서 이렇게 발언했습니다.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한국과 일본에 고유의 권리를 주셨는데, 당신들은 왜 우리나라의 자유를 빼앗습니까? 옛날에 일본은 우리나라에 은혜를 입었던 나라였습니다. 이런 배은망덕은 하나님께 벌 받을 악행입니다. 이번 독립운동은,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에게 주신 명백한 권리입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을 대항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7) <이승훈>은 감옥에서도 기도 생활과 성경 읽기를 열심히 했습니다.
이승훈은 마치 기도 생활을 하기 위해서 감옥에 들어온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감옥에서 성경도 열심히 읽었습니다.
신약 40회, 구약 10회 이상을 읽었습니다.
(18) 61세 되는 1924년 5월에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때, 오로지 민족주의자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리 민족이 살길은 오직 예수 믿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 우리 민족이 복 받을 길임을 믿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각 민족과 나라를 다스리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9) 그렇습니다.
이승훈의 말처럼, 하나님은 각 나라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시편 22: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
다니엘 4:32.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20) 이처럼, 이승훈은 기독교 신앙으로 애국을 한 민족지도자였습니다.
이승훈처럼, 민족 지도자들이 대부분 기독교 신앙인들이었습니다.
(21) 안창호, 이승훈, 조만식을 비롯한 애국 운동가들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애국 운동의 지침을 세웠습니다.
① 우리나라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서 <물산장려운동>을 한다.
② 나라를 망치는 주범이 술과 담배를 끊는다.
③ 우리 국민을 위해서 교육사업, 병원사업, 사회복지 사업을 한다.
(22)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신앙을 가지고 애국 운동을 하는 선조들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① 물산 장려운동을 본받아 국산품을 애용하시기 바랍니다.
② 금주, 금연 운동을 본 받기 바랍니다.
전문가들은 각종 질병과 교통사고와 홍수 등 재난으로 당하는 모든 피해보다, 술로 인한 피해가 더욱 크다고 말합니다.
담배는 패와 건강을 해치는 주된 독극물입니다.
금주운동과 금연 운동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국 교회의 특별한 전통입니다.
③ 우리는 오늘날 초대 기독교회처럼, 지역사회를 위해서, 복음 전도와 함께, 교육사업, 병원 전도, 사회복지 사업을 계속 실천해가야 할 것입니다.
즉 노인복지사업, 호스피스사업, 부모 유기 자녀 돌봄 사업, 공부방 사업, 재가복지 사업, 미혼모 보호 사업, 청소년 상담사업, 여러 종류의 캐어복지 사업 등을 계속 실천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3.1절을 맞이하여, 아름다운 교회의 전통과 애국 운동을 잘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 민족의 살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정신을 가지고, 민족을 사랑하시고, 봉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