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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너더리통신 80/180413]내 음치노래의 역사
‘봄날이 온다’며 남북한 당국자 뿐만 아니라 7000만 국민이 들떠 있는 2018년 봄이다. 평양의 공연, 얼마나 멋진 일이었던가?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의 화답(和答)도 좋았다. 뭐, ‘가을이 왔다’라는 제목으로 서울에서 다시 하자고? 그것 참, 북녘의 일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4월초의 날씨가 심히 수상쩍다. 청명한식에 거의 전국에 걸쳐 눈이 왔다. ‘춘설(春雪) 난분분(亂紛紛)’이 아니라, 남도(南道)와 제주(濟州)에는 눈이 쌓일 정도로 내렸다니 이건 뭔가 좀 이상하다. 오죽하면 아흔두 살 우리 아버지, 한식에 오는 눈은 평생 처음이란다. 산제사(시제.時祭)를 지내는데, 차가운 바람까지 부니 당해낼 도리가 없다. 대충대충 지내도 조상님들은 아시리라. 무엇보다 후손들의 정성(精誠)이 최고인 것을.
토요일 오후, 형님들과 사촌동생은 상경길이 바빠 점심만 먹고 떠나고, 다음날 오전에 가겠다며 나만 홀로 남았다. 며느리들도 없는데, 두 끼는 해드리리라 기특한 마음을 먹은 터이다. 쑥국을 끓여드릴 참이다. 집 뒤안 밭두렁에서 눈을 헤치며 바가지로 한가득 쑥을 캤다. 여러 번 헹궈 씻은 후, 엉켜 있는 쑥들을 좌악좌악 찢었다. 문제는 된장을 얼마 정도 푸느냐이다. 멸치가루를 넣고 된장 풀어 팔팔 끓는 물에 쑥을 넣고 조선간장도 눈대중으로 두어 숟갈 부었다. 쑥국을 먹을 때 향기를 느껴본 분들이 많으리라. 이거, 제대로 끓였다. 오죽하면 무슨 칭찬이든 별로 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허, 잘 끓였네, 밥도 잘 허고” 어머니께 식은 밥을 조금 쑥국에 말아드리며 “이것만 잡수면 되아” 했더니, 맛이 있는지 모처럼 말을 잘 들어주셔 기뻤다.
다음날 오전, 그러잖아도 ‘운전 미숙아(未熟兒)’인데, ‘나홀로 운전’ 분당 판교까지 갈 생각을 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기본적으로 늘 긴장해야 하는 운전이 나는 싫다. 무엇보다 운전을 생각하면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음주(飮酒)를 맘놓고 할 수 없으니, 아예 ‘베스트 드라이버’ 아내에게 맡기고 처음부터 배우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마흔 다섯에 모 기업의 홍보이사로 전직을 하니, 전용 자동차(소나타 골드)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때에사 부랴부랴 거의 100만원을 들여 급행 운전면허를 땄었다. 하지만 운전은 내가 아주 싫어하는 아이템이다. 지금도 ‘면허증 있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 “네가 운전을 다 해? 진짜?” 하지만, 오늘은 도리가 없다. 바짝 긴장하며 최소 3시간은 핸들을 잡아야 한다. 그제 오후에 나온 집으로 돌아가려면. 어느 누가 도와줄 수도 없는 일이다.
기면증(嗜眠症)이라고 아시리라? 핸들만 잡으면 졸음이 온다. 아내가 가장 걱정하는 일종의 병(病)이다. ‘졸음쉼터’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싶다. 아무튼, 출발이다. 운전은 아시겠지만, 나만 잘 한다고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던가. 기면증과 방어운전에 신경쓰다 보니 호남고속도로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졸린다. 지난밤에 숙면(熟眠)을 취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이 노릇을 어찌 할 것인가? ‘순간(瞬間)이 영원(永遠)’이라는 말이 결코 장난이 아니다. 고속도로 상의 플래카드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졸음운전의 종점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정신 차리자!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할까? 쉴새없이 노래를 부르자. 아, 옆좌석에 아내가 없어서 다행이다. 아내는 내가 노래 부르는 것을 지나치게 싫어한다. 아는 사람은 모두 안다. 내가 엄청난 음치(音癡)이자 박자치(拍子癡)라는 것을. 그런데도 나는 노래 부르는 것을 아주 좋아하여 여러 사람을 질리게 한다. 특히 아내를. 오죽하면 아내는 “대중 앞에서 한번만 더 부르면 이혼을 불사하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으로 으름장을 놓을 것인가? 자, 무엇부터 부를까?
나는 어릴 적부터(아마도 고교시절부터였을 듯) 걸어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음유시인(吟遊詩人)’이 되고 싶었다. 음치의 자격은 골고루 갖췄다. 남들은 잘 흉내낼 수 없는 길고 독특한 가사(歌詞)의 노래를 특히 좋아한다. ‘홀로 아리랑’이나 ‘늙은 군인의 노래’처럼 3절 이상의 노래를 즐긴다. 그리고 노랫말이 유행과 상관없이 의미심장한 것일수록 더욱 좋다. 또한 곡조가 단조롭고 일정해야 한다. 그래야 조금 따라부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들이 '저 넘이 잘 부르는지, 못부르는지'를 알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가사는 아무리 길어도 정확히 숙지(熟知), 틀리거나 헷갈려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의미 전달은 확실할 것으로 미뤄 짐작할 뿐이다. 남들의 시선이나 취향과 상관없이 악착같이 끝까지 부른다. 장소도 아무 상관없다. 노래방 기기는 저리 가라다. 사라지는 노랫말 속도를 절대로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라이브로 불러야 그나마 낫다. 내가 그날 ‘나홀로 운전’으로 상경하면서 부른 노래들을 상기(想起)해 본다. 고등학교 시절엔 김정호와 어니언스에 환장을 하였고, 그 뒤로는 스마일가수 송창식과 이장희의 노래에 깜빡했다. 김정호가 전주에서 하필이면 고3 야간자율학습시간에 콘서트를 했다. 당시 시내에서 음악DJ를 취미로 하는 동창과 땡땡이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수년 후 그 친구는 나와 함께 공연관람한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대학시절 김정호가 운영하던 종로1가의 카페 ‘꽃잎’을 혹시나 만날 수 있을까 하여 찾았던 적도 있다.
아아- 그런데 큰일이 났다. 즐겨 부르던 노래들의 가사가 생각나지 않고 군데군데 막히는 것이었다. 이런 적은 거의 없었다. 최소 50여곡은 언제든지 ‘자신있게’ 돼지 멱따는 소리로 부를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테이프가 곳곳에서 버벅거린다. 아예 한 소절이 몽땅 없어지기도 했다. ‘꽃잎’ ‘이름모를 소녀’ ‘편지’ ‘어제 내린 비’ ‘고래사냥’ ‘한번쯤’ ‘상아의 노래’ ‘토함산’ ‘가나다라마바사’ 등을 띄엄띄엄 불렀다.
<버들잎 띄워놓고/쓸쓸히 돌아가는 이름모를 소녀/밤은 깊어가고 산새들은 잠이 들어/아무도 찾지 않은 조그마한 이 연못에/달빛 바람에 이누나/...>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가슴속 울려주는 눈물젖은 편지/하얀 종이 위에 곱게 써내려간/너의 진실 알아내곤/난 그만 울어버렸네/멍 뚫린 내 가슴에/서러움이 물흐르면/떠나버린 너에게 사랑노래 보낸다/ ....>
‘고래사냥’조차 가사를 헷갈리니 자존심이 마구마구 상한다. 몇 번 REPLAY를 하다보니 간신히 퍼즐이 맞추어진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무엇을 할 것인가/둘러보아도/보이는 건 모두 다 돌아앉았네/자 떠나자/고래 잡으러/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간밤에 꾸었던 꿈의 노래는/아침에 일어나면 사라지지만/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한 마리 예쁜 고래 한 마디/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다른 노래로 방향을 바꿨다. 정태춘과 박은옥이다. 그 부부의 공연을 몇 번이나 쫓아다녔다. ‘촛불’ ‘북한강에서’ 등 서정노래를 작파하고 ‘황토강’ 등 운동권노래를 부를 때였다. ‘아가야 가자’라는 노래를 들어보셨는가? 우리 두 아들 떡애기때 자장가로 불렀는데, 지난해 손자를 재우며 이 노래를 부르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가사는 이렇다.
<아가야, 걸어라/두 발로 서서/아장 아장/할매 손도 어매 손도 놓고/가슴 펴고 걸어라/흰 고무신 아닌 꽃신 신고/저 넓은 땅이 네 땅이다/삼천리 강산 거칠 데 없이/아가야 걸어라//...>
1절만 하자. ‘아가야’는 당연히 아들 33년전 아들 이름으로 대체했고, 이제 손자 이름으로 대체한다. ‘황토강’이라는 노래를 들어보신 적 있는가?
<저, 또랑을 타고 넘치는 황토물을 보라/쿨렁쿨렁 웅성거리며 쏟아져 내려온다/물도랑이 좁다. 여울목이 좁다/남으로 남으로 밀고밀려 온다/막아서는 가시덤불. 가로막는 돌무더기/에라, 이 물줄기를 당할까 보냐/차고차고 넘쳐온다/어서 가자. 어서 가/큰 강에도 비가 온다/강바닥을 긁어버리며/강둑 출렁 넘실대며/옛다, 번쩍. 천둥번개에/먹장구름도 찢어진다/우르르쾅쾅. 산도 깬다/가자. 어서 가자/옛 쌓은 강둑이 무너진다/가자, 어서 가자. 황토강으로/...>.
아, 깡다구로 똘똘 뭉친 ‘한국의 아바’ 정태춘이 황토강을 열창하며 주먹을 불끈 위로 쳐들던 모습이 오버랩된다. 2005년 초겨울, 나의 첫 수필집 ‘백수의 월요병’을 직접 주면서 ‘고맙다’고 말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다음으로는 양은희와 한돌 그리고 김성환, 최백호, 조용필 그리고 범능스님이다.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을 부르며 울었다는 어느 돈독 오른 대통령도 있었지만, 우리 대학시절 ‘고래사냥’과 ‘아침이슬’을 몇 번이나 불렀을까? 무릇 기하였으리라. ‘한계령’도 좋고, 그녀가 부른 노래는 모두 다 좋았다. 따라 부르지 못하는 음치와 박자치여서 한심한 일지만, 좋아하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지 않는가. 한돌의 ‘홀로 아리랑’을 80년대 중반 직접 들은 적이 있었다.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밤/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아리랑 아리랑 홀로아리랑/아리랑고개를 넘어가보자/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손 잡고 가보자/같이 가보자//...>
<나 태어나 이 강산에 농사꾼 되어/꽃피고 눈 내리어 어언 80년/무엇을 하였으냐/무엇을 바라느냐/나 죽어 이 강산에 묻히면 그만이지/아 다시 못올 흘러간 내 청춘/삼베적삼 논두렁에 흘러간 이 내 청춘/아들아 내 딸들아/너희들은 자랑스런 농사꾼 자식이다//...>
아, ‘가는 세월’의 서유석도 있구나.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아가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듯이/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했구료/하지만 이것만은 변할 수가 없어요/하지만 이것만은 변할 수 없어요/새들이 저 하늘을 날아서 가듯이/달이 가고 해가 가고/산천초목 다 바뀌어도/이 내몸이 흙이 돼도/내 마음은 영원하리>
요즘 ‘국민탤런트’로 주가가 높은 거시기형님 김성환의 노래도 부를 만하지 않던가.
<세상에 올 때 내맘대로 온 건 아니겠지만/이 가슴엔 꿈도 많았지/내 손에 없는 내 것을 찾아 낮이나 밤이나/뒤볼새 없이 나는 뛰었지/이제 와서 생각하니 꿈만 같은데/두 번 살 수 없는 인생 후회도 많아/스쳐간 세월 아쉬워한들 돌릴 수 없으니/남은 세월이나 잘 해 봐야지/돌아본 인생 부끄러워도 지울 수 없으니/나머지 인생 잘 해 봐야지>
<묻지 마세요 물어보지 마세요/내 나이 묻지 마세요/흘러간 내 청춘 잘한 것도 없는데/요놈의 숫자가 따라 오네요/여기까지 왔는데/앞만 보고 왔는데/지나가는 세월에 서러운 눈물/서산 넘어가는 청춘/너 가는 줄 몰랐구나/세월아 가지를 말어라/...>
김성환님은 2014년 몇 번 사적인 자리에서 어울리며 형님이라 호칭한 사이였다. 2016년 11월 <인간극장> 5부작에서 당신의 노래 ‘묻지 마세요’를 90세 주인공이 여러 번 흥얼거리시는 것을 보고 수소문하여 아버지께(최영록 아우의 아버지인 줄은 모르고) 직접 고맙다는 전화를 했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의 팬이 되어, 지난해 10월 관촌사선축제때 두 분을 만나게 해드리기도 했다. 그것 참, 사는 것은 재밌다. 그렇지 아니한가?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와 조용필의 ‘일편단심 민들레’ 그리고 ‘선녀와 나무꾼’은 노래방에서 그나마 내가 자신있게 부를 수 있는 세 곡이다. 이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안된다.
<궂은 비 내리는 날/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짙은 색스폰 소리 들어 보렴/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짙은 색스폰 소리 들어보렴/이제와 새삼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님 주신 밤에 씨 뿌렸네/사랑의 물로 꽃을 피웠네/처음 만나 맺은 마음/일편단심 민들레야/그 여름 어인 광풍/그 여름 어인 광풍/낙엽지듯 가시었나/행복했던 장미인생/비바람에 꺾이니/나는 한떨기 슬픈 민들레야/긴세월 하루같이/하늘만 쳐다보니/그이의 목소리는/어디에서 들을까/일편단심 민들레는/일편단심 민들레는/...>
<하늘과 땅 사이에/꽃비가 내리던 날/어느 골짜기 숲을 지나서/단 둘이 처음 만났죠/하늘의 뜻이었기에/서로를 이해하면서/행복이라는 봇짐을 메고/눈부신 사랑을 했죠/그러던 그 어느 날/선녀가 떠나갔어요/하늘 높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저멀리 떠나갔어요/선녀를 찾아 주세요/나무꾼의 그 얘기가/사랑을 잃은 이 내 가슴에/아련히 젖어오네요>
혼자 미친 넘처럼 신이 났다. 점점 돼지 멱따는 목소리가 되어간다. 졸음만 달아나면 만사 오케이다. 아무렴. 청중은 없어도 누구 하나 음치라고 놀려먹는 사람도 없다. 아내가 옆에 있었으면 엄청 타박했으련만,완전 흐흐다. 밑천이 점점 달려간다. 이때 등장한 나의 18번. 비장의 무기가 범능스님이다. 속가 이름 정세현. 운동권 노래인 ‘광주출정가’ 등을 짓고 부르던 가수였다. 광주항쟁의 말도 안되는 비극을 보고 절망하여 이혼을 하고 머리를 깎았다. 타고난 기를 못버리고 스님이 되어서도 기타를 잡았다. 노래하는 스님, 범능, 노래집을 4번째 냈던가, 나처럼 ‘귀 밝은’ 몇몇은 마니아가 되었다. 전국을 돌며 산사(山寺)콘서트를 했다. 전남 화순의 어느 절 주지로 있었는데, 50대 중반, 느닷없이 열반을 하였다. 아,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서울 삼청도 법련사에서 부처님 오신 날 언저리에 노래 일곱 곡을 직접 들으며 황홀해 했던 적이 있다. 동안(童顏)이었다. 골백번 들었을 터인데, 안부르다보니 가사가 까막까막이다. 큰일났다. 소설가 최일남 선생은 술도 즐기지 않는데 앉은 자리에서 유행가 300곡을 부른다하였는데, 나는 이게 무엇인가. 몇 번이고 되새기다 보니 그래도 서너 곡은 부를 수 있었다. ‘푸른 학’ 등을 불러 본다.
<사색을 먹고사는 눈 푸른 운수납자/구름에 쌓여 도는 인간사 속진을 떠나/나 여기 한 마리 꾸밈없는 푸른 학으로/무심천을 날아가리/뜬구름 같은 인생 청산을 닮아가며/자연의 순리 따라 한 삶을 살으다가/어느 날 문득 지는/석양에 내 모습을 불태우리니>
<고단한 날개를 접어라/허공의 새여/근심도 걱정도 다 벗어라/사람이여/꽃이 지는 건/다시 피겠단 약속일지니/해가 지는 건/다시 뜨겠단 약속일지니/한 발 물러나 먼 산을 보아라/고개 들어 저 하늘을 보아라>
<바람이 오면/오는 대로 두었다가/가게 하세요/그리움이 오면/오는 대로 두었다가/가게 하세요//아픔도 오겠지요/머물러 살겠지요/살다간 가겠지요//세월도 그렇게/왔다간 갈 거예요/가도록 그냥 두세요>
<흔들리잖고 피는 꽃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곧게 세웠나니/흔들리면서 꽃망울 고이고이 맺었나니/흔들리잖고 피는 사랑/어디 있으랴/...>
<긴 어둠을 뚫고/새벽 닭 울음소리 들리면/안개 낀 강물따라/꽃등 들고 가는 흰옷 입은 행렬 보았네/때론 흐르는 물이 막히고/때론 흐르는 물이 멀다해도/아아 흐르는 일이야/우리 행복하지 않나/아아 우리네 땅 되살리고/그 길 따라 님 오시면/꽃등 들어 불 밝히리라/님 오실 길 불 밝히리라>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은/아무도 먼저 가지 않은 길/지금 당신이 걷는 그 길은/아무도 먼저 걷지 않은 길/저마다 길이 없는 곳에 태어나/동천 햇살 따라/서천 노을 따라/길 하나 만들고 음음음음 돌아간다/...>
그 스님, 다비식때 마침 5번째 CD가 도착, 그 노래를 틀었다한다. 제목 이 ‘나, 누구인가?’. 의미심장하지 아니한가? 대체, 나는, 너는,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가? 아는가? 모르는가?
가객 장사익님은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다. 이 분의 노래는 사람을 먹먹하게 만든다. '찔레꽃' 등 서너 곡은 너끈히 부를 수 있다. '섬'이란 노래 가사말을 이렇가.
<순대속 같은 세상살이를 핑계로/퇴근길이면 술집으로 향한다/우리는 늘 하나라고 건배를 하면서도/등 기댈 벽조차 없다는 생각으로/나는 술잔에 떠있는 한 개 섬이다/술 취해 돌아가는 내 그림자/그대 또한 한 개 섬이다>
아주 모처럼 30여곡을 불러제켜 머리가 다 개운하다. 한마디로 스트레스가 풀린 셈이다. 왕년에 정말 ‘한 총기’했는데, 이렇게 가사를 까먹다니, 한심하다. 한때는 소동파의 ‘적벽부’와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줄줄줄 외웠었다. 이래서야 어디 ‘걸어다니는 음치 음유시인‘이 되겠는가? 아무튼, 어느덧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지나고 ‘마의 정체구간’ 안성IC 근처이다. 이 정도만 와도 팔부능선은 넘은 셈. 어제 나온 집이 벌써부터 그립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윤슬이가 요즘 영상통화를 하면 하는 말 “하삐집 보고 싶어”다. 흐흐. 노래가 없었더라면, 졸음운전으로 어떻게 되었을지 누가 아는가? 우리네 인생, 참 초로(草露)가 아니던가? 꽃비가 날린다. 이제 녹음이 지리라. 그리고 또 머지않아 오색옷으로 갈아입을 것이고, 눈도 내리고 크리스마스도 내일모레이리라. 사는 날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