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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6월입니다.
추억을 운운할 계절은 아닌 줄 아옵니다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좌우의 이념 문제가 휴화산처럼 내연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치학도인 저는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뼛속까지 붉은 극렬 좌파 의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선천적 원인인가 후천적 요인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레닌이 사춘기 어린 시절 그토록 숭배하던 친형이 반체제 혐의로
사형당하지 않았더라면, 공산혁명가로 일생을 바쳤을까. 아니면 타고난 혁명의 천재였던 것인가.
오래 전의 영화 "추억(The Way We Were)"를 보면서
무엇이 우리를 좌우의 길로 나뉘게 하는지 저 나름대로 성찰해 보았습니다.
늘 평강하시길 기원하며.
박성훈 배
<호원대 초빙교수/통일교육원장, 통일부 정책실장, 청와대 통일비서관 역임/
전주고~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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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Way We Were”
추억 속의 대학 캠퍼스 풍경을 따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가
흐느끼듯 호소하듯 주제곡을 타고 흐르기 시작하면, 문득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아련한 대학시절의 회상에 빠져든다.
오래전, 80년대 중반,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버클리 캠퍼스에 연수파견을 나가서 한동안 체류했던 적이 있다.
학교에서 멀지않은 엘 세리토 동네의 어느 가정집에 방을 얻어 지내고 있었는데,
저녁에는 거실에 앉아 젊은 유태인 주인아줌마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면서,
영화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아줌마는 같은 유태인이라서 그랬는지, 스타 여배우 바브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바브라가 결코 예쁜 배우는 아니지만, 그녀의 손을 보았느냐고 물으면서
손이 그렇게 예쁘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영화 <추억>은 바브라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로버트 레드포드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면서 시작하고 또 끝이 난다.
시작할 때의 손은 빨간 매니큐어를 열 손가락에 예쁘게 칠하고,
빨간 립스틱, 빨간 귀걸이, 빨간 브로치, 빨간 팔찌로 곱게 단장한 모습이지만,
끝날 때는 검은 가죽 장갑 낀 손을 들어 로버트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며 헤어진다.
영화 첫 장면은, 뉴욕의 거리에 붙여놓은 루즈벨트 민주당 대통령 후보 벽보로 보아 1944년 가을쯤 인 것 같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막바지에 있을 무렵의 어느 날 저녁,
바브라가 방송국의 바쁜 일과를 마치고 휴식 차 들렀던 나이트클럽에서
뜻밖에 대학 동창생을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케이티(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소란스러운 클럽 바에 앉아 졸고 있던
해군 중위 허블(로버트 레드포드)을 우연히 발견, 벅찬 반가움에 차마 그를 깨우지 못하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수년 전의 대학시절을 회상한다.
회상 속의 이 대학은 아마도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명문대학으로 보인다.
케이티 모로스키는 러시아계 유태인 여대생이다.
그다지 미인은 아니지만, 당차고 정의로우며 옳다고 믿는 일에 과도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불같은 성격 때문인지 가정 형편 때문인지 강의실, 도서관, 학생기자실,
아르바이트하는 카페, 학생운동 조직을 분초를 아끼며 언제나 숨 가쁘게 뛰어 다닌다.
케이티는 도대체 천천히 걷는 법이 없다. 공산주의 청년연맹 회장도 맡고 있다.
그녀의 하숙방 벽 한가운데에는 레닌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케이티는 캠퍼스에서 학생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며 학생운동 집회를 열어 열정적인 웅변을 토한다.
“스페인을 구하라! 프랑코는 학살을 중단하라!” 그렇다면, 이때가 아마 1936년쯤인가 보다.
당시에 스페인은 6.25동란보다 더 참혹한 동족상잔의 내란(1936-1939)을 겪고 있었다.
새로 들어선 공화파 정부에게 기득권을 잃고 싶지 않은 군부의 쿠데타에 가톨릭 교회세력과 보수파가 가담하여
내란이 일어나 결국 프랑코장군이 이끄는 쿠데타 군의 승리로 끝났다.
공화국 정부군은 소련이 지원하였고 반란 쿠데타군은 당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정권과
독일의 나치 히틀러 정권의 지원을 받았다.
미국은 중립을 표방했다. 개혁 성향의 공화파 정부를 위해 각국의 진보 지식인들이 지지하고 가담하였고
헤밍웨이 원작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주인공 로버트 조르단(게리 쿠퍼)도 참전 의용군이었다.
이 영화 마지막 장면, 전쟁고아 소녀 마리아(잉그릿 버그만)가 부상 입은 로버트를 적진에 남겨두고
"로베르또"를 절규하며 처절한 메아리와 함께 협곡너머로 멀어져가는 이별 장면은
너무나 유명하다.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 군사독재정권(1939-1975)은 혹독한 파시스트 통치에 들어간다.
프랑코 규탄 집회 연설을 하던 중, 케이티는 일부 개념 없는 교우들의 장난 끼 섞인 야유를 참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의 호소는 지상 낙원 같은 대학 캠퍼스에서 최상의 교육과 풍요를 누리는 교우들에게
일말의 정의감과 양심을 새삼 일깨운다.
허블은 "나는 어쩌면 이 나라(미국)와도 같은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너무 쉽게 누리게 되었습니다."라는 내용의 에세이를 쓰며 자신을 성찰한다.
숙제로 제출한 리포트 평가에서 허블의 에세이가 최우수 작품으로 뽑혀 낭독되자,
속이 상한 케이티는 수업이 끝나자 자신의 리포트를 찢어 휴지통에 버리며 남몰래 서럽게 운다.
남들처럼 시간여유가 많았더라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깜냥에는 최우수 점수를 기대했었나 보다.
절대로 굴하지 않는, 샘 많고 자존심 강한 또순이 여대생의 학업 성취 욕심에 코끝이 찡하다.
허블은 당당하게 소신껏 살아가는 케이티를 사랑하지는 않아도 마음속으로는 존중한다.
케이티도 온유한 성품의 미남 스포츠맨인 허블을 남몰래 좋아하지만
그의 유복한 부르주아 그룹 친구들에 대해서는 매우 못마땅하게 여긴다.
1937년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저녁, 대학 타운의 길목 카페에 앉아서 쉬고 있던 허블은
마침 바쁘게 지나가던 케이티를 불러 맥주 한 모금을 나누며
최우수 레포트 성적을 놓쳐 서운했을 그녀의 마음을 은근히 달래준다.
좌우를 살피더니 케이티는 윈저 공과 심슨 부인의 결혼 뉴스(1937)를 무척 부러운 특종뉴스라도 되는 듯이
슬그머니 귀띔해 준다. 어떻게 알았느냐 묻자 신문사 아르바이트하면서 알았단다.
허블은 그녀에게 열심히 사는 것은 좋지만 유머도 여유도 없이
세상을 너무 각박하게 살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풀어진 그녀의 신발 끈을 다정하게 묶어 준다.
졸업 행사인 댄스파티에서조차 웨이트리스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케이티를 위해
허블은 달콤하고 따뜻하게 블루스 댄스를 함께 추며 졸업을 축하하고 노고를 위로한다.
이처럼 잠시 대학 시절(1937)의 회상으로부터 현실(1944)로 돌아온 케이티는
졸고 있던 허블을 깨워 반갑게 해후하고, 두 사람은 클럽에서 만취하여
늦은 밤 케이티의 집으로 가게 된다.
그녀의 작은 아파트에는 루즈벨트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케이티는 사모하던 허블을 만났으니 온갖 성심을 다해 대접하고 이후로
이들은 연인관계가 되어 깊이 사귀게 된다.
워싱턴에 근무하는 해군장교 허블이 잦은 뉴욕 출장 때마다 케이티의
아파트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케이티는 급진 좌파적 정치성향과 불같은 성격 때문에
허블 친구들과의 모임 때마다 항상 심각한 언쟁을 일으킨다.
허블은 그녀의 고지식하고도 급진적인 진보 성향에 진저리를 치고
그때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심각한 갈등을 겪는다.
허블은 그녀가 세상만사에 너무나 경직되고 격정적인 자세를 고치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음을 토로한다. 허블을 너무나 좋아하는 케이티는 앞으로 노력해서 급격한 성격을
고치겠다고 단단히 다짐하고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게 된다.
허블은 극작가로서 그 당시 절정기에 있던 헐리웃에 진출하고 두 사람은
그림 같은 태평양 해변 도시에서 더없이 행복한 신혼의 삶을 보낸다.
좌파든 우파든 “나의 행복”에 대한 개념은 같다.
다만, 그것을 이루는 방식과 속도에서 입장이 다르다.
열성적 좌파는 세상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치열한 혁명으로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
심지어 인간의 영혼까지도.
한편, 2차 대전(1939-1945)이 끝난 후 세계는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어 점차 냉전의 구조로 들어간다.
1917년에 민중 혁명을 성공시켜 프롤레타리아 공산독재정부를 수립한 소련(레닌과 스탈린)은
급진적 혁명 전략으로 세계 각국에 팽창을 시작하였는데,
불과 20여년 만에 공산혁명이 요원의 불길처럼 옮아 붙어
세계 각국은 급속한 공산주의 확산에 몹시 긴장하는 상황이었다.
미국은 1차 대전(1914-1918)으로 방만해진 경제규모를 감당 못하고
1929년 경제 대공황을 겪게 되자, 자유방임주의에 사회주의적 요소를 가미하여
뉴딜정책 등 수정자본주의로 대전환을 꾀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4선(1944)이 보여주듯이 이러한 미국의 좌향적 변화와
2차 대전 후 세계 각국의 공산화 도미노 현상에 미국의 보수파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때에 나온 것이 미국의 매카시즘(1950-1954)이었다.
매카시즘은 미국 내 반공산주의 소동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매카시즘에 연루되었고, 급기야 정보 당국의 도청 등 첩보수집활동은
헐리웃 영화사업자들에게 까지 확대되었다.
이념이나 혁명 문제에 있어서 영화산업만큼 영향력과 전파력이
큰 분야도 없다. 급진 좌파 운동가인 케이티가 참지 못하고
워싱턴으로 달려가 매카시즘이 무차별적 마녀사냥임을 강력 규탄하면서
큰 소동이 벌어졌고 이러한 소란 속에서 이들 부부는 그동안 잠재되었던
극명한 이념의 간극을 절실히 확인하게 된다.
결국,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온건한 부르주아 작가인 허블과
당돌하게 혁명을 추구하는 프롤레타리아 지식인 케이티는 서로가 사랑과 노력만으로는
성격과 이념의 간극을 도저히 메울 수 없음을 깨닫고 그만 헤어지게 된다.
케이티 처럼 좌파적 성향은 불같은 성격 때문인가 자라온 환경 때문인가.
이데올로기적 간극은 남녀 간의 지극한 사랑으로도 메울 수 없는 것인가.
수년이 흐른 후, 뉴욕의 어느 중심 거리에서 케이티는 핵 반대 운동
전단지를 나누어 주며 캠페인을 하다가 길 건너편 호텔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허블 내외를 우연히 발견한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서로를 안아주고 소식을 나눈다.
허블은 케이티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아이(라헬)의 안부와 새 남편의 인성을 묻고 마음을 놓는다.
새 부인과 함께 놀러 오라는 케이티의 초청에 허블은 고개를 젓지만,
그 대신에 핵무기 반대 전단지 한 장을 기꺼이 받아간다.
또 한 번의 짧은 이별이 너무 애틋하지만 그러나 깔끔하다.
헤어지고 나자 곧바로 케이티는 핵 반대 캠페인을 계속한다.
세월이 흘러도 나이가 들어도 그녀는 타고난 골수 운동가로서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투쟁하고
완벽한 새 세상을 꿈꾸며 끊임없이 혁명을 추구한다.
명문 대학에서 함께 교육받고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되어 더없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어도,
한 사람은 벅찬 정의감을 못 이겨 부단히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과감히 행동으로 옮기는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대세에 순응하고 현재의 안락과 평화를 소중하게 지키며 살아가고자 한다.
사랑도 이데올로기도 부질없는 몽환이며 환상일까.
이념의 궁합이 더없이 잘 맞아도 부부 백년해로가 결코 쉽지 않은데,
이념이 상반되면 부부 불화가 한시도 그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격 아닐까.
어린 라헬 -구약에 나오는 참하고 여성스러운 이름이다-은 정치성향이나
성격이 엄마의 유전자를 닮았을까 아빠를 닮았을까.
아니면 새 아빠의 영향을 받게 될까.
참혹한 동족상잔의 전쟁 중에 태어나 이념 문제가 격동하던 시대에
이념과 일상 사이에서 고뇌하며 학창시절을 보내고
이 영화가 나온 바로 그 해(1973)에 “미라보 다리”를 건너 속세로 튕겨져 나왔던 우리 세대에게는
<추억〉영화 자체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다.
바브라는 인생무상의 달관한 노래가사로 흐느끼듯 절규하듯
우리들의 추억을 자극하며 심금을 울린다.
Memories the way we were.
Memories light the corners of my mind
Misty water-colored memories of the way we were
Scattered pictures of the smiles we left behind
Smiles we gave to one another for the way we were
Can it be that it was all so simple then
Or has time rewritten every line
And if we had the chance to do it all again
Just tell me, tell me, would we, would we?
Could we, could we?
Memories may be beautiful and yet
So many memories too painful to remember
The way we were
Can it be that it was all so simple then
Or has time rewritten every line (or has time rewritten)
And if we had the chance to do it all again
Tell me would we, would we?
Ah could we, could we?
추억들...
내 마음 속에
희미한 수채화처럼 남은
그 시절 우리들의
추억들
우리가 주고받던 미소가
담긴
빛바랜
사진들이여
둘이서 주고받던
그 미소
서로 마주보던 그 미소들
그 때는 모든 것이 그저 단순했던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한 줄 한 줄 고쳐 써 버린
것일까
이제 다시 모든 것을 바꿀 수만 있다면,
말해줘요 다시 시작할래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추억들...
아름답긴 하지만
다시 떠올리면 너무나 마음이 아파
그래서 우리는 잊고 말지
그냥 웃고 말아
생각날 땐 회상하고
그랬었구나 하며 떠올릴 꺼야
그 시절의 우리들
그 시절의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