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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and die” 하고 죽는다
함석헌
씨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신가 묻지만 나는 사실은 지난 한달 두고 생각한 것이 죽는다는 것뿐이었습니다.
Do and die, 하고 죽는다!
왜 이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지난해 정월 이래 개헌서명운동, 민청학련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몰려나온 것을 보고 한 말입니다. 2월 15일에 영원히 아니 열릴 줄만 알았던 감옥 문은 열리고 땅에서는 영 다시 볼 날이 없을 줄만 알았던 그리운 얼굴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나오되 그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태평양의 물결소리 같은 웃음을 웃으며 “언제든지 다시 들어올 각오가 되어 있다!” 하며 나왔습니다. 그러니 그 기쁘고 시원함을 무엇으로 표시하겠습니까?
개선장군들이다!
나는 바로 그 감옥 문에 서서 그 말을 했는데, 사람의 마음 참 알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은 꼭 같은 말을 하기는 하면서도 반대로 합니다.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그것을 개선장군이나 되는 양 만세를 부르고 떠드니” 하며 아주 못마땅해 하는 말씨로 나무랐습니다. 나는 저런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한나라의 정치를 할 수 있을까하고 의심했습니다.
개선장군들입니다. 비유도, 과장도 아니고 사실로 이기고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무엇을 이겼는가고 묻습니까?
물을 것 없습니다. 대적이람 오직 하나의 대적이 있고, 싸움이란 단 하나의 영원한 싸움이 있을 뿐입니다.
삶과 죽음의 싸움입니다.
참과 거짓의 싸움입니다.
그 싸움에서 이긴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 전쟁에서 이긴 군인보다 더 참 의미의 개선장군입니다.
못마땅히 안 분은 자기들의 앉았는 의자를 뺏으려는 줄로 알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가엾은 착각입니다. 그런 것 겨누는 사람들 아닙니다. 의자란 것이 무엇입니까? 옥으로 만들었거나 강철로 만들었거나 두골로 쌓아올렸거나, 요컨대 구름장 위에 놓인 구름조각입니다.
그들의 생명은 청천백일에 살자는 혼들입니다. 구름을 불어제치는 일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것을 타고 앉아 악마의 그림자를 땅에 던지자는 생각은 하지도 않습니다.
그 개선장군들을 보고 내가 환영하는 말을 해야겠는데 적당한 말을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본래 시인이 못되지만 정말 어느 때보다도 더 내 붓끝의 무딘 것을 한탄했습니다. 그래서 내 소리로는 못할망정 젊어서 한번 듣고 이날껏 못 잊고 일 있을 때 일없을 때 씹어보는 테니슨의 글귀를 빌어서 하기로 했습니다.
Do and die, 하고 죽는다!
이것은 영국이 러시아와 싸웠던 크리미아 전쟁 때에 있었던 한 경기병대(輕騎兵除)의 용감한 사적을 찬양한 시 안에 있는 말입니다.
어떤 날 어째 그랬던지 한 장교가 육백 명으로 되는 경기병대를 향해 갑자기
Forward The Light Brigade!
Charge for the guns!
경기병대 앞으로 갓!
포열(砲列)을 향해 돌격!
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육백 명밖에 아니 되는 기병대를 보고 대포진에 대해 돌격을 하라니, 정신이 빠지지 않고서는, 못할 일입니다. 그러기에 테니슨은 “Some one had bounder's.”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명령을 받은 졸병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뭔가 잘못된 데서 나온 것인 줄을 알면서도, 한 사람도 주저함도 투덜댐도 없이 명령대로 그 돌격을 실행해서 대포진 속을 향해 나갔습니다.
Cannon to right of them,
Cannon to left of them,
Cannon in front of them,
좌에도 대포
우에도 대포
앞에도 대포
그 터지는 소리에 하늘 땅이 뒤흔들리고 불소나기가 퍼붓는 그 죽음의 골짜기, 그 지옥의 벌린 입속을 육백 명은 달려 들어가며 무찔렀습니다.
그 무서운 돌격에 러시아 군대는 무너지고 코사크 병은 물러섰습니다. 그들은 포진을 부셔버리고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대포는 다시 울기 시작했습니다. 좌에도 대포, 우에도 대포, 뒤에도 대포가 탄환을 퍼 부었습니다. 그 죽음의 입속을 빠져나오는 동안 많은 사람과 말이 거꾸러졌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육백 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테니슨은 여전히 육백 명이라 부르며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찬양합니다.
그 영광이 언제 사라질 때 있겠느냐?
그 무서운 돌격에 전세계가 놀랐다.
그 행한 돌격에 영예 있을지어다!
경기병대에 영예 있을지어다!
영광의 육백 용사!
전편이 여섯 절인데 그중 가장 좋은 데가 둘째 절입니다.
“Forward, the Light Brigade!”
Was there a man dismay'd
Not tho' The soldier new
Some one had blunder'd.
Theirs not to make reply,
Theirs not to reason why,
Theirs but to do and die.
Into the valley of Death
Rode the six hundred.
어느 한사람 당황했던가
아니다. 비록 누군가가 바보짓 할 줄
다들 알고는 있었지만,
그들의 할일은 대답이 아니다.
그들의 할 일은 이유 따짐이 아니다.
그들의 할일은 하고 죽음이다.
죽음의 골짜기 속으로
육백 용사는 달렸다.
내 마음에는 민주용사들이 죽을 뻔했다가 살아 돌아온 것으로 뵈지 않습니다. 그들은 벌써 죽었습니다. 그리고 나온 것은 죽은 가운데서 다시 난 새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 무서운 긴급 특별조치를 내려서 이렇다 저렇다 비평만 해도 죽인다 했을 때 어느 누구인들, 배짱이 아무리 좋기로, 그것을 감히 농담으로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다 알고, 그 하는 일이 긴급조치에 걸리는 줄 다 알고 하는 사람들이 감히 살 생각했겠습니까?
우리도 테니슨의 경기병대와 같이 누군가가, 어디선가, 크게 잘못 된 것이 있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이때 있은 일은 인간의 정상적인 이성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무슨 착각이나 오산입니다.
그런데 그 칠백여 명은 그것을 다 알면서도 죽음의 골짜기를 향해 들어갔습니다. 그들도 대답도 하려 하지 않았고, 왜 이럽니까 이유를 따지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저 나갔으니, 그것은 분명 그렇다, 우리더러는 죽으라는 것이니 그대로 하고 죽는다 하는 각오를 해서 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살아나오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나온 사람이 외양은 비록 그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속은 분명 들어가던 그날에 벌써 죽고 이제 나온 것은 새로 난 사람입니다.
또 그들을 재판했던 사람들도 모든 이성과 인정에 눈을 일부러 꽉 감은 매정한 결심을 가지고 한 이상 결코 깎으면 감해줄 장사꾼의 흥정 심리를 가지고 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그것을 증거하는 것은 놔주어서 나와서 방안에 채 앉기도 전에 벌써 다시 잡아넣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첨부터 힘을 넣어서 절대로 석방이 아니란 것을 거듭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러기에 깊이 생각해보면 당초부터 그들이 잡아넣은 것 아닙니다. 들어가는 사람들이 자진해 들어간 것이지. 이쪽에서 아니 들어가려면 얼마든지 아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논 것도 잡아넣던 그 손이 내논 것 아닙니다. 지금도 다시 잡아넣고 싶어하는 것 보면 알지 않습니까? 내놓은 것은 역사의 손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하나님의 손이요, 그렇지 않으면 민중의 손입니다.
정치권력이란 결국 따지고 보면 감옥 자물쇠에 있습니다. 그 쇠를 쥐고 있는 한 권력자 노릇을 할 수 있지만, 그 쇠를 뺏겨버리는 순간 그는 집 잃은 강아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양보는 다 하더라도 감옥 자물쇠만은 절대 놓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어리석습니다. 그것은 현실의 감옥 간수가 제가 세상에 가장 권세 있거니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간수가 윗사람에게서 쇠를 받았기 때문에 열고 닫는 권세가 있는 것처럼, 정치의 주권자도 주는 데가 있어서 받은 것입니다. 간수직이 면직될 때에 쇠를 내놓지 않으려는 간수가 어리석은 자라면 역사의 손이 감옥 문을 열라 할 때에 아니들으려는 정권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정치의 주권자는 다만 간수의 간수의 또 간수일 뿐입니다. 감옥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고맙다는 말도 하나도 없이 언제든지 다시 들어올 준비가 돼있다 하는 것은 자기 앞에 문을 따주는 간수 뒤에 또 간수가 서 있고 그 뒤에 또 서 있는 정말 열쇠를 쥔 이를 보기 때문에 한 말일 것입니다.
그럼 그 들어가고 나옴은 무엇으로 결정되나? 죽으면 나오고 살면 들어갑니다. 죽으려는 권력자에게는 능히 죽는 놈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죽지 않으려는 놈은 죽일 수가 있지만 능히 죽는 놈은 죽일 수가 없을 뿐 아니라 그의 쏘는 생명의 눈빛에 죽음의 심부름꾼 내가 녹아버리기 때문입니다.
듣는 말에 사형을 선고하자 그것을 받는 학생이 “영광입니다!” 했답니다. 이것이야말로 역사상에 큰일입니다. 누가 정말 재판장이며, 누가 죄수입니까?
나도 그 나오는 장면을 가보았습니다만, 하나도 기가 죽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새파랗게 젊은것들이 사형이다 무기징역이다,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고문을 받았다, 또 그까짓 것은 다 말고라도 터무니없는 죄의 거짓 자백을 강요당했다는데, 하나도 기운이 죽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보다가 혼자 속으로 “우리나라 절대로 비관 아니다. 기백이 저렇고서는 못사는 법이 없다!” 했습니다.
또 그것만입니까? 고문을 그렇게 심히 했다는데 그 수백 명에 배신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놀랍습니다. 나는 첨부터 학생들께 잘못 없다 합니다마는, 이것을 보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들 편에 서기를 결심했습니다.
할 것을 하고 죽는다!
역사의 명령에 대해 주저 없이, 앙탈 없이, 하는 대로 하고 죽는다.
한 다음에 죽는다는 말 아닙니다. 함과 죽음이 딴것 아닙니다.
할 것을 하면 죽는 것이고, 죽음 없이 할 것을 할 수 없습니다.
죽음으로 하고 함으로 죽습니다.
함은 다함입니다. 다함 없이 할 수 없습니다. 다하면 죽습니다.
죽으면 반드시 살아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옛것의 계속이 아니라 한층 높은 생명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짐을 대신 지고 죽음으로 인해 보다 높은 생명으로 살아 온 우리 사랑하는 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은 죽음이란 실속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군사재판과 사형과 비상조치, 또 그밖에 무엇이건, 그것이 우리 생명을 터럭 만큼도 건드릴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신기합니다. 어쩌면 동아일보 사건이 그렇게 묘하게 준비가 됩니까? 신랑을 맞으려는 신부집 대문처럼 동아일보는 활짝 열렸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우연이라 하겠습니까? 이것이 아니라면 저것도 될 수 없었을 것이고, 저것이 아니라면 이것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원리는 다 같은 데서 나왔습니다.
Do and die, 하고 죽는다!
그렇습니다. 하고 죽읍시다. 이 역사가 살아날 것입니다.
씨알 여러분 3월입니다.
씨알의 소리 1975.3 41호
전작집; 8- 259
전집; 8-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