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내일이 일요일이라 다행이다.
많이 마신 술은 아니었는데 취해도 너무 많이 취했다. 꼭 술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세월이 흘러 가고 왜 하필이면 이런 모임에서 그녀를 만났나!.
이런것도 인연이라고 우겨대고 싶지는 않다.
정확히 사십삼년의 시공을 건넜다.
비슷하게 생긴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갔다 .
" 저 혹시 닉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
그녀도 나의 시선을 느꼈다고 생각될 때
나는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여자들이 몇 모여있는 자리로 다가가 다짜고짜 그녀의
닉을 물었다.
가까이에서 본 그녀의 모습에서 하얗고 동그란 얼굴. 생머리를 양갈래로 묶었던 그 옛날의 학생 시절 그녀의 모습이 설핏 떠올랐다
" 글라라예요 "
힐긋 바라보고 작은 미소를 보였다
" 세례명이세요 ?"
" 네 "
" 닉이 참 멋지십니다 "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그 순간 나는 호흡이 멎는듯 하였다.
분명 그녀였다.
" 저는 아차라고 합니다 . 제가 아는 여자분이랑 너무 비슷해서요 "
흔해 빠진 말 따위로 여자에게 접근해보려는
의도는 아님을 강조하는 척하였다
" 네 . 즐거운 시간 되세요 "
나는 그녀가 나를 알아챌까 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그녀는 입술을 오무려 쫑긋거리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인터넷 싱글카페의 번개모임이었다.
아내가 먼저 가고 나서. 한동안 갈 곳을 잃은 모습으로 서성거렸다 .
술을 빼면 어느 한구석 마음 붙힐 곳이 없었다.
오랜 신앙도 나를 붙들어 주지 못했다
몸과 마음을 갉아 먹어가고 피폐해진 나의 삶은 어느새 희망의 끈을 놓아 버리고 있었다.
그러다 술병에서 시작된 육체의 파괴는 몇군데 칼질을 하는 병원신세까지 이르게 되었다.
어느 날 우연잖게 알게된 홀로된 자들의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악카페나 문학카페 보다 더 오프라인의 만남이 빈번하고 싱글이란 공통점이 주는 끈끈한 유대감이 좋았다. 처음에 번개라는 것에 혹시나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시끌법석한 시골 장날처럼
설렘을 안고 시작하여 체념으로 끝나곤 하는 짧은 만남이라는 것을 금방 터득할 수 있었다 혹시나 애인이나 여자친구라도 만날 수 있는 어렴풋한 희망이 그저 희망사항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후론 벙개에 큰 기대도 하지 않으니 실망도 크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어색할 것 같고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무슨 술맛이나 날까마는. 낯을 가리던 내게 그래도 위안이 되는 이유는 혼술보다 더 즐거운 분위기 탓인지도 몰랐다. 사유야 어떻든 혼자 되었다는 공통분모의 동그란 틀에 갖힌 자들끼리 대화와 술을 나누는 얕은 즐거움이 좋았던 것이다.
오늘도 조금은 젊은 티를 내 보려 외모에 작은 정성을 드리고 발길도 가볍게 종로로 나갔다.
언제나 그렇듯이 동갑 친구가 되어버린 녀석과 구석자리에 앉아 금방 나온 뜨근한 안주에 몇 순배 잔을 돌리고 있었다.
건너 편 여자들은 우리들의 안중에는 이미 없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귀려하는 그 과정의 긴장과 스릴은 길가의 강아지한테 주어 버린지 오래다. 번개에서 남녀가 제대로 짝이 된다는 것은 아주 비효율적인 확률을 갖고있다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떠들고 노래방에를 가면 같이 몇 곡 뽑으며 술기운을 털면 그만인것이다
간혹 코끝을 스치는 여인네의 향기가 맥박을 거칠게 뛰게 하거나 서투른 춤솜씨로 블루스라도 한번 땡겨보자면 가슴에 뭉클한 느낌이 아랫도리까지 번질때도 있지만 요즘 같은 시절에는 남자가 조신해야 한다는 것도 잘 숙지하고 있다 .
술잔이 돌고 가까이 자리한 사람끼리 한창 이야기가 이어질때면 언제나 그렇듯이 번개를 주최한 사람 ( 일명: 벙주 )은 각자 소개의 시간을 시작한다.
몇몇은 지난번 . 아니면 먼젓달에 보았던 여자들이다 . 이런 의식은 번개에 어떤 이유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중요하지만 몇번 겪다보니
그 시간만은 조용히 경청해주고 박수를 쳐주는 일이 최고의 예의인 것임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때였다
망치에 머리라도 맞은듯 강한 충격이 일었다.
오랜 아주오랜 옛날의, 잊고 있던 이름 하나가 나의 뇌리를 강하게 때리고 지나갔다 .
" 글라라 라고 합니다 . 사는곳은 00동. 친구따라 오늘 처음 와 보았어요 ."
나는 놓칠세라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멀지는 않아도 저편 끝쪽에 앉은 그녀의 옆얼굴은 자세히 볼 수 없었다.
내 몸은 나도 모르게 심하게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마치 무려 반세기에 가까운 시공을 건너 까까머리 시절 그녀 앞에 섰을때의 그대로
가슴은 방망이질하듯 쿵쾅거리며 뛰고 있었다.
" 강 선영 "
내 인생 처음으로 사랑의 대상이었던 그녀.
하얀 칼라가 눈이 부시고 . 교복이 제법 학생티를 내게 해주던 때 . 그녀는 중 2 였다.
뽀얀 얼굴.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것 같은 눈동자 . 내가 말을 걸면 되돌아오는 미소. 그녀보다 두살 위였던 나에게 세상이 다르게 보이게 하였고 . 하늘과 나무와 별과 바람이 다른 의미로 보이고 . 사랑이 어떻게 삶을 바꾸어 놓게 만들어 주는가를 알게해준 그녀 .
고궁에서의 첫번째 데이트 하던 날의 흥분이 지금도 똑같이 나의 심장이 경주마의 박동처럼 뛰고 있었다
솜털이 채 가시지않은 뽀얀 목덜미가 눈부시던 초여름의 휴일.
" 선영아 " 하고 부르면 방긋 웃으며 돌아 볼때 서로 눈길이 마주 칠때 뺨이 발그래지던 물들던 그녀 . 당시에는 학생의 신분으로 손 잡는것 조차 규제의 대상이던 시절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벚꽃 휘날리던 고궁을 쏘다녔다.
첫댓글 고운 추억을
간직하셨네요
추억은 아니지만
감사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제가 버리고 싶은것 하나가 무궁한 상상력이었지요.
밥 벌어먹을 일 하나 없는 공상 ~ ㅎㅎ
시간 때우기엔 그만 입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 ㅎㅎ
어멋,오라버니 ~
드뎌 올리셨군요?
본인의 경험이 많이 녹아드는 것 같은데요?^^ㅎ
넘 따스할것 같은 소설,기대로 기다려봅니다.
대 환영요!!!
헛헛허 ~
픽션이라고 말하면
어째 못 믿으실까 ? ㅎㅎㅎ
저도 이런 추억 하나
안고 살고 싶습니다 ^^*
넌픽션이길 바래요~~ㅎ
그것은 읽어 주시는 분의 뜻대로 해석 하시는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
하필이면 홀애비와 홀에미로 만나는 구성으로 풀어가십니까 ㅋ
ㅋㅋㅋ
그것이 글 쓰는자의 마음입니다 ㅡㅋㅋ
ㅇ이런 맛에 잡문이라도 쓰는 거지요 ^^*
싱글의 애환이 녹아있네요. 픽션+넌픽션
네 ㅡ 편하게 보아주시면
더 바랄 나위 없나이다 ^^*
감사합니다 ~
좋은 결과 있으십시요 ㅋㅋ
넘겨 짚으시기는 ~
ㅋㅋㅋ
저는 진짜인줄 알았더니만 ....^^
그런 행운이 우연하게 찾아 오시길 바랍니다
우연히 찾아오는 시기는 지난것 같습니다 ㅡ
좋은 모티브 주신것 같습니다 ^^*
감사합니다 ~^^*
넌픽션이건 픽션이건 즐감했습니다~~^^
추억은 아름답습니다~~
고마워요 ㅡ
초이님 ~^^*
좋은 날 되소서
1탄을 읽고 2탄에 댓글을~~~ㅎㅎ
실화인줄 알고 맘 졸이면서
읽었더니~~모야 ㅋ
2탄 보러 갑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우리네 싱글키페에서 해피엔딩으로 맺음되는 경우가 너무 적어서 ㅎㅎㅎ
다음 이야기엔 그리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