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신곡 29곡】 " 사기지옥의 열 번째 구렁, 위조범, 연금술사"
피를 흘리며 죽어 간 수많은 사람들과 끔찍하여
바로 볼 수 없는 상처들을 나는 취한 듯
흐릿해진 눈으로 지켜보았다.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단테의 말입니다.
단테 신곡 지옥 편을, 뒤로 읽어 갈수록 글을 읽으면 글과 함께 단테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단테의 회심의 미소, 은근히 잘난 척 하는 모습, 안타까워하며 망령과 함께 괴로워하거나 슬퍼하는 모습, 짓궂은 모습까지 단테가 보입니다. 내 머리 뒤에 단테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단테가 다음 길로 가지 않고 아홉 번째 구렁을 뚫어지도록 보다가 베르길리우스에게 꾸중을 듣습니다. 단테는 아홉 번째 구렁에 친척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제리 델 벨로라는 아버지의 사촌 동생입니다. 가문에서 치욕을 갚아 주어야 하는데 아직 이루지 못해 그가 나를 경멸하면서 말도 없이 사라진 것 같다고 단테는 말합니다.
제리 델 벨로라는 시게티 가문에 의해 살해되었으나 알리기에리 가문이 1310년에 복수하고 1342년에 화해했는데 단테는 두 가문이 화해하기 전에 이 글을 썼습니다.
이런 대화를 하며 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 다른 구멍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말레볼제(사악한 구렁)의 마지막인 수도원 위에 있었습니다. 그곳의 수도자들이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애달픈 화살들을 나에게
쏘아 댔다. 그 상처는 연민으로 물들었고
나는 손으로 귀를 막았다.
아래서 악취가 풍겨왔습니다. 여기서 풍기는 악취는 썩어 들어가느 인육에서 나오는 듯 했습니다.
왼쪽으로 길게 이어진 다리를 내려가 말레볼제의 마지막 둑에 올라섰습니다. 그때서야 그 아래 바닥까지 보였습니다.
그곳에서는 기만을 허락하지 않는 정의가 위조자들에게 벌을 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속이거나 위조자들의 영혼들이 역겹게 악취가 나는 질병에 시달리는 벌을 받고 있습니다.
아이기나의 모든 백성이 병에 걸리고
공기는 사악한 독으로 가득 차
짐승들은 물론 미물들까지 모두 쓰러졌다는데
이 어두운 계곡에서 때를 지어
괴로워하는 망령들을 보는 것보다
더 슬프지는 않았으리라.
아이기나는 강의 신 아포소스의 딸입니다. 제우스는 아이기나에게 반해 독수리로 변해 아이기나를 낚아채어 그녀를 빼앗아 한 섬(이 섬은 나중에 아이기나 섬으로 불렸습니다.)으로 데려갔습니다. 제우스의 바람피우는게 어지간해야지요. 질투심에 사로잡힌 헤라는 섬에 병을 퍼뜨리고 제우스와 아이기나 사이에 태어난 아이아코스만 남기고 모두 죽게 만듭니다. 아이아코스가 제우스에게 섬을 다시 사람들로 채워 달라고 기도하자 제우스는 개미들을 인간으로 바꿔서 섬을 채웠다고 하는 이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슬픈 예로 들고 있습니다.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7부 6. 아이아코스와 개미 족>
아이아코스가 아이기나의 왕이 되어 아킬레우스 아버지 팔레스를 낳습니다.
더러는 배를 깔고, 더러는 서로의 등을
베고 눕고, 또 더러는 고달픈 길을
고통스럽게 엉금엉금 기어 다녔다.
우리는 천천히 걸으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 병든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단테는 서로 기대앉은 두 사람을 보았습니다. 미칠 듯 가려워 손톱으로 제 몸을 할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식칼로 잉어나 그보다 더 거친
비늘로 덮인 큰 물고기의 비늘을 벗기듯이
손톱으로 상처의 딱지를 긁어 떼어 냈다.
선생님이 그들 중 하나에게 이 가운데 라틴 사람이 있는지 또 손가락을 영원히 그런 일에만 쓰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중 하나가 울며 우리는 둘 다 이탈이아 사람인데 당신은 누구라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거라며 대답했습니다.
어지신 선생님께서 네가 듣고 싶은 것을 저들에게 말해라 하셨습니다. 단테가 당신은 누구인지 어느 가문 출신인지 말해주라 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나는 아레초 사람인데 미노스가 나를 맨 밑바닥인 열 번째 구렁에서 벌을 받게 하는 것은 연금술사 노릇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또 시에나 사람처럼 허황된 사람이 또 있었는지 프랑스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던 다른 이가 말을 받았습니다.
낭비족 스트리카와 그의 숙부 니콜로는 사치와 낭비족의 주도자입니다.
그런 시에나 사람과 다른 당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는다면 내 얼굴이 답해줄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연금술로 금속을 위조했던
카포키오(연금술사, 화형당하였음)의 망령임을 당신은 알게 될 거요.
내가 당신을 제대로 보았다면, 당신은 기억할 것이오.
내가 얼마나 원숭이 기질을 타고났는지를!
절제가 인간을 짐승과 구별해주는 최고의 미덕이라면 사기나 위조는 그 미덕을 범죄에 의도적으로 가담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카포키오는 자기가 사람이 아닌 원숭이 기질을 타고 났다고 하는 가 봅니다.
29곡을 읽으며 왜 위조 범들이 말레볼제의 맨 밑바닥에 있나 의아했습니다.
단테는 사기를 ‘사람 많이 행하는 죄악’이라 부릅니다. 인간의 고유 능력인 이성을 적극 이용해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단테는 지옥편에서 사기를 세세하게 분류하고 분석 묘사합니다.
단테는 사기를 자기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치는 사기나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에게 사기를 치는 둘로 나눕니다. (지옥편 11곡 52~54)
자기를 믿어 주는 사람에게 치는 사기를 배신자라 부르며 그 배신들을 지옥 맨 밑바닥 코키투스에 넣어 그들의 고통은 잠들지 않습니다.
자기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치는 사기는 다양해서 매춘 알선, 아첨, 성직매매, 예언자, 탐관오리, 위선자, 도둑, 기만적 조언, 분열, 그리고 위조 등 열 가지입니다. 단테는 이런 사기를 저지른 자들을 배신자들이 있는 코키토스 바로 위층 말레볼제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기범들 중 위조를 맨 아래에 배치하는데 배신자 빼고는 가장 흉악한 범죄입니다.
위조가 중범죄인 이유를 단테는 문서나 화폐의 위조를 공동체의 기본 질서를 어지럽히는 중범죄로 간주합니다. 현 사회에서도 문서의 위조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지만 특히 그 당시 피렌체 시대에는 상인 시민 계급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활발한 상황에서 경제와 사회의 불안을 초래하는 행위를 더욱 엄중하게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위조 범이 말레볼제에서 가장 아래쪽에서 벌을 받고 있습니다.